말 한 마디, 표정 하나로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배우. 넋 놓고 보다가 어느새 울거나 웃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적 있으시죠? <오마이스타>는 작품의 꽃인 배우 한 명 한 명을 조명하고자 합니다. [배우열전]은 시민-상근기자가 함께 쓰는 기획입니다. 관심 있는 여러분의 참여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2000년 이후 한국영화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배우 송강호. 그는 소위 대박작품이라 할 수 있는 500만 관객작품만 11개, 천만관객 작품 2개를 보유하고 있다. 송강호는 흔한 TV드라마나 예능에 출연한 적 없이 오롯이 스크린에서만 매력을 발산하고도 정상 위치를 지키고 있는 명배우이다.

경남 김해 출신인 송강호는 부산경상대학 방송연예학과 졸업 후 상경해 1991년 <동승>으로 연극무대에서 먼저 연기생활을 시작한다. 연극무대에서 코믹 연기로 주목을 받았던 그는 1995년 홍상수 감독의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영화계에 진출한다. 이후 장선우 감독의 <나쁜 영화>에서도 기주봉, 안내상 등과 행려로 잠시 출연하는데 연기자인지 실제 노숙자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연기를 선보인다.

송강호의 1997년

송강호는 1996년까지 12편의 연극에 출연한 실력파 연극배우였지만 영화판에선 단역에만 머물고 있었다.

그런 그가 영화계에 존재감을 알린 작품은 이창동 감독의 데뷔작 <초록물고기>에서다. 송강호는 1996년 <비언소>를 보러 온 이창동 감독의 눈에 띄어 <초록물고기>에 캐스팅되었다. 그는 배태곤(문성근 분)의 똘마니 판수 역을 맡아 리얼한 건달 연기로 당시 관객들로 하여금 진짜 건달을 섭외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품게 만들 정도의 연기를 선보였다.

 관객들을 각인 시켰던 송강호의 인생 캐릭터 '조필'

관객들을 각인 시켰던 송강호의 인생 캐릭터 '조필' ⓒ 시네마서비스


곧이어 송강호는 송능한 감독의 <넘버3>를 통해 주연보다 빛나는 조연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넘버3>에서 맡은 말더듬이 조폭 '조필'을 맡아 충무로를 접수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부하들에게 '무데뽀' 정신과 헝그리 정신을 늘어놓은 일장 연설 장면은 관객들에게 송강호를 각인시켰고 그의 대사들은 그해 최고의 유행어가 되었다. 그가 출연한 <초록물고기>와 <넘버3>가 1997년 상하반기의 최고 이슈작 자리를 나눠 가지며 흥행과 비평에서 성공을 거두게 된다. 특히 그는 <넘버3>의 열연으로 97년 대종상 신인남우상과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을 휩쓸며 97년 한 해 가장 주목받는 배우가 된다.

송강호는 김지운 감독의 데뷔작 <조용한 가족>에서도 철없는 백수 영민 역을 맡아 웃음을 만들어내며 희극배우로서의 입지를 탄탄히 하게 된다. 그 후 송강호는 정형화된 코믹배우의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쉬리>에서 다른 모습을 시도한다. <쉬리>는 한국영화 최초의 블록버스터란 타이틀로 기념비적인 흥행성적을 거두었지만 정작 송강호는 배역과 겉도는 연기로 연기 폭의 한계만을 노출하고 말았다.

<쉬리>에서 주춤하며 뻔한 코믹 전문배우로 소비될 뻔했던 송강호는 김지운 감독의 두 번째 작<반칙왕>을 통해 처음으로 단독 주연을 맡으며 우려를 씻어낸다. <반칙왕>에서 특유의 코믹연기와 액션연기는 물론 평범한 회사원들의 애환까지 연기에 잘 담아내며 코믹 이상의 풍성한 연기로 주연배우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한다. 영화 또한 서울관객 78만 명을 동원하며 흥행배우로서의 입지도 다지게 된다. 송강호는 조연배우에서 처음 주연배우로 발돋움 할 수 있게 해준 <반칙왕>을 본인에게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라고 밝힌 바 있다.

 송강호의 첫 주연작 <반칙왕>

송강호의 첫 주연작 <반칙왕> ⓒ 시네마서비스


<반칙왕>에 이어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인간미와 냉철함을 겸비한 북한군 중사 오중필역으로 연기의 스펙트럼를 넓히는 동시에 충무로의 블루칩임을 확고히 하게 된다. 또한 <공동경비구역 JSA>로 38회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첫 국내 메이저 영화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차지하는 쾌거를 거두었다. 

그리고 2003년 봉준호 감독의 농촌 스릴러 <살인의 추억>에서 박두만을 맡아 특유의 유머와 스릴러를 넘나들며 다시 한 번 저력을 과시한다. 봉준호 감독과 송강호의 첫 만남으로 탄생한 <살인의 추억>은 당시 5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크게 흥행했고 비평 면에서도 한국영화에 기념비적인 스릴러로 남아있다. <살인의 추억>으로 2003년 40회 대종상을 비롯해 각종 시상식의 남우주연상을 휩쓸며 2000년대 초반 한국영화계의 최고 거물배우로 자리 잡는다.

2006년에는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통해 천만배우 반열에 올랐다. 이후에도 2008년 최고흥행작으로 668만 관객을 동원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과 550만 관객을 불러들인 <의형제> 등의 흥행작들 내놓았다. 그렇지만 <푸른 소금>과 <하울링>이 흥행과 비평을 모두 놓치며 다소 주춤하게 된다.

하지만 2013년 송강호는 그가 출연한 세 편을 통해 2천만 배우가 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935만 명의 <설국열차>을 시작으로 913만 명의 <관상>과 당시 역대 최단기간인 32일 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한 <변호인>을 합쳐서이다. 이후 2014년 <사도>와 지난해 <밀정>까지 다섯 작품연속 600만 관객을 동원하는 막강 티켓파워를 과시하고 있다. 또한 2006년 <괴물>을 시작으로 <밀양>,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그리고 <박쥐>로 네 차례 칸에 진출하며 국제적 명성을 쌓기도 했다.

한국 거장들의 페르소나

김지운, 박찬욱, 봉준호 감독에겐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충무로에서 할리우드로 진출한 한국의 대표 거장이란 것과 또 한 가지는 바로 송강호를 페르소나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제일 먼저 송강호와 작업한 사람은 데뷔작에서 부터 그를 캐스팅한 김지운 감독이다. <조용한 가족>에서 처음 인연을 맺어 좋은 출발을 보인 두 사람은 <반칙왕>에서 흥행과 비평을 사로잡으며 나란히 충무로 대표감독과 주연배우로 안착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과 지난해 <밀정>까지 함께하며 동반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송강호가 가장 많이 작품을 함께 한 사람은 박찬욱 감독이다. 박찬욱 감독을 흥행감독 반열에 올려놓은 <공동경비구역 JSA>를 시작으로 <복수는 나의 것>, <친절한 금자씨>, <박쥐>까지 네 편의 장편영화를 함께 했고, 단편영화 <청출어람>을 포함하면 총 5편을 함께 했다. 박찬욱 감독은 <박쥐>를 끝내고 "예전엔 천재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너무 마음이 잘 통하고 가까워서 그냥 형제로 느껴진다"라고 말한 적도 있다.

 영화 <괴물>이 송강호.

영화 <괴물>이 송강호. ⓒ (주)쇼박스


작품 수는 가장 적지만 송강호를 이 사람의 페르소나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바로 봉준호 감독이다. 그들이 함께한 작품 수는 세 편에 불과하지만 항상 평단과 관객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들이 감독과 배우로 만난 <살인의 추억>(525만 관객)과 <괴물>(1301만 관객) 그리고 <설국열차>(935만 관객)는 총 27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송강호와 봉준호 감독은 서로를 최고의 파트너로 지칭한 바 있으며 현재 그들은 자신들의 네 번째 작품 <기생충>의 제작을 앞두고 있다.

어찌 보면 송강호가 불황을 타지 않는 흥행력을 보이고 있는 데는 이들과 함께한 작품들이 많아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거장들 또한 송강호를 만나 흥행감독 반열에 올랐음을 잊어선 안 된다. 또한 천만관객을 넘긴 <변호인> 양우석 감독은 완전 신인이었으며, <의형제>의 장훈 감독은 <의형제>가 두 번째 작품이었다.

전 세대의 '믿고 보는 배우'

송강호가 현재 한국영화에서 가장 신뢰감을 주는 배우로 등극한 비결은 무엇일까? 아마도 뛰어난 공감능력을 지닌 소시민적 매력과 유머에 기반을 둔 풍성한 연기력일 것이다.

김지운 감독이 또 다른 페르소나 이병헌과 송강호를 활용하는 것을 보면 확연하게 알 수 있다. 김지운 감독은 <달콤한 인생>을 시작으로 <밀정>에 이르기까지 이병헌을 복수의 화신이자 멋진 남성적 매력을 뽐내는 인물로 활용한다. 하지만 송강호에겐 <조용한 가족>을 시작으로 <반칙왕>, <놈놈놈>, <밀정>에 이르기까지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고 속물근성도 엿보이는 소시민적 캐릭터를 맡겨 웃음을 만들게 한다. 

김지운 감독과 함께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 송강호는 '이상한 놈'을 맡았었다. 근데 송강호 연기를 정의하는 데 적합한 말 중 하나가 바로 '이상한 놈'인 듯하다. 실제로 그는 스크린에서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중적인 인물이나 좀 모자란 듯한 이상한 캐릭터들을 잘 소화해 냈다.

<놈놈놈>에선 정말 좋은 놈도 나쁜 놈도 아닌 말 그대로 정말 '이상한 놈'이었고 <설국열차>에선 모두가 엔진 칸으로 전진할 때 홀로 세상 밖으로 나가려하는 이질적인 캐릭터를 소화했다. <살인의 추억>에선 정의감 넘치는 형사이면서도 증거를 조작해 생사람을 범인으로 몰아세운 형사 두식을 맡아 그 시대의 모순이 투영된 캐릭터를 완성한다. 또한 <사도>에선 자식에겐 엄격하면서도 자신에겐 관대한 이중적인 인간상을 잘 그려낸다. 이런 양면적이면서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는 그의 개성 있는 얼굴도 한 몫 한다. 실제로 <공동경비구역 JSA>를 함께 했던 이병헌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강호형은 한쪽 눈에만 쌍꺼풀이 있고 양쪽 눈의 느낌과 감정이 달라서 어디에 초점을 두고 상대해야할 할지 모르겠다. 언제나 밀리는 느낌이다"라고 말이다.

 송강호의 애드리브로 탄생한 <살인의 추억>의 명대사 "밥은 먹고 다니냐"

송강호의 애드리브로 탄생한 <살인의 추억>의 명대사 "밥은 먹고 다니냐" ⓒ 사이더스


박찬욱 감독은 그를 두고 "최민식과 더불어 가장 감독적인 시선을 지녔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작품에 대한 뛰어난 이해력으로 연기한다는 뜻으로 그의 애드리브는 연출의 빈 공간을 채워주기도 한다. 그의 애드리브가 빛난 대표적인 장면은 <살인의 추억> 후반 박해일을 향해서 분노와 무기력한 심정을 삼키며 내뱉는 명대사 "밥은 먹고 다니냐?"가 있다.

어느덧 50대에 접어든 송강호는 전 세대에 걸쳐 가장 믿고 보는 배우가 되었다. 훗날 안성기로 부터 '국민배우'의 타이틀을 이어받을 가장 유력한 인물 중 한 명이 아닐까 싶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구건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zigm)와 포스트(http://post.naver.com/zig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송강호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두 아이의 아빠이자 영화 좋아하는 네이버 파워지식iN이며, 2018년에 중소기업 혁신대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보안쟁이 입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