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 한 편의 영화로는 알 수 없는 영화감독만의 세계가 있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한 국내외 영화감독들을 집중 조명합니다. 관심 있는 여러분의 참여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대니 보일 < 127시간 > 촬영 현장에서의 대니 보일 감독.

▲ 대니 보일 < 127시간 > 촬영 현장에서의 대니 보일 감독.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대니 보일(Danny Boyle) 감독은 영국 랭커셔 주(Lancashire) 래드클리프의 아일랜드계 노동자 계층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자신을 무신론자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의 의지와는 다르게 어린 시절의 그는 아일랜드 가톨릭(Irish Catholic)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처음부터 영화에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웨일스 주에 있는 뱅거대학교에서 영문학과 드라마를 전공한 대니 보일은 연극 연출에 흥미를 느끼고 조인트스톡 컴퍼니(Joint Stock Theatre Company)와 영국 왕립 극단인 로열 코트 극단(Royal Court Theatre)을 왕래하며 경험을 쌓기 시작한다. 이는 1982년, 그의 나이 27살이 되던 해의 일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 두 극단의 성향이 완전히 반대였다는 것. 그는 이렇게 보수적인 집단과 급진적인 집단 사이를 오가며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

32살에 BBC 프로듀서로, 1994년엔 영화감독으로

그렇게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32살이 된 그는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된다. 영국 공영 방송인 BBC(BBC Northern Ireland)로 자리를 옮겨 프로듀서로서의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사실 당시에 극단에서 알고 지냈던 많은 지인은 그의 선택을 만류했었다고 한다. 대니 보일이 극단에서 보여줬던 재능은 그만큼 대단했고, 또 한편으로는 극단의 환경과 방송 프로그램의 환경이 그 당시에도 매우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그의 재능이 무대 위에서 극을 연출하는 데 쓰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니 보일은 방송가로 자리를 옮기고 난 뒤에도 < Screenplay > < For the Greater Good > 등과 같은 미니 시리즈들을 성공적으로 연출하며 재능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 시기의 그가 모든 작품을 연출자의 위치에서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곳에서의 다양한 경험들 역시 훗날 그의 재능을 더욱 성장시킬 기회가 된다.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은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고 난 이후에도 계속되어 비교적 최근인 2014년에는 < Babylon >이라는 작품을 통해 브라운관으로 복귀하기도 했으며, 현재도 2018년 방영을 목표로 < Trust >라는 작품을 연출 중이다.

그가 정식으로 영화감독 데뷔를 하게 된 것은 1994년, <쉘로우 그레이브(Shallow Grave)>라는 작품을 연출하면서부터다. 그가 영화감독으로 전향하게 된 데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지옥의 묵시록>이라고 알려진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Francis Ford Coppola) 감독의 명작 < Apocalypse Now > 때문이었다. 대니 보일은 이 작품을 보자마자 영화라는 장르의 매력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영화는 그에게 있어 '껍데기만 남을 정도로 머리를 헤집어 놓은(It had eviscerated my brain, Completely)' 작품이었다고 한다. 그 영향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냉혹하면서도 유쾌함이 묻어 있는 스릴러였던 그의 첫 작품 <쉘로우 그레이브>는 이듬해 영국에서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영화로 선정되며 대니 보일 감독이 단번에 평단의 주목받을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된다.

 영화 <트레인스포팅>의 한 장면

대니 보일 감독의 초기 작품 <쉘로우 그레이브><트레인스포팅><인질>의 주연은 모두 이완 맥그리거였다. 영화 <트레인스포팅>의 한 장면 ⓒ Intersonic


이완 맥그리거와 함께 뜨다

그의 초창기 작품들 중 <쉘로우 그레이브>와 함께 가장 많이 언급되는 영화는 바로 <트레인스포팅(Trainspotting)>이다. 세상에 동화되지 못하고 부유하는 젊은이들에 대한 문제의식을 빠르고 격렬한 편집과 적절하게 어우러지는 브리티시 팝 중심의 사운드 트랙으로 많은 비평가들에게 큰 화제를 일으켰던 작품. 사실 이 영화는 이완 맥그리거(Ewan Mcgregor)를 위한 영화였다고 설명해도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다. 물론 이완 맥그리거는 대니 보일 감독의 초창기 두 작품인 <쉘로우 그레이브>와 <트레인스포팅>을 이야기하면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작인 <쉘로우 그레이브>보다 <트레인스포팅>에서 이완 맥그리거가 보여준 존재감은 대단했다. 오죽했으면 <트레인스포팅>의 속편인 < T2 : 트레인스포팅 2 >를 제작하며 감독이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이 이완 맥그리거였을까.

다시 돌아와서, 대니 보일 감독이 처음이었던 것처럼 그 당시의 이완 맥그리거 역시 이제 갓 데뷔한 배우일 뿐이었다. 그보다 먼저 <인생 이야기>(Being Human)라는 작품으로 데뷔하기는 했지만,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으며 이 작품을 통해 보여준 그의 연기력 역시 논란의 중심에 있었을 정도로 그저 그렇고 그런 배우. 다소 어려움을 겪던 중 BBC 미니시리즈에서의 짧은 인연을 바탕으로 대니 보일 감독이 자신의 데뷔작에 함께 하자는 러브콜을 보냈고 이완 맥그리거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했던 두 편의 영화, 그중에서도 특히 <트레인스포팅>을 통해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하게 된 것이다.

대니 보일 감독이 명성을 얻어감에 따라 충분한 제작비가 보장된 많은 작품이 그에게 제안되었던 적도 있었다. 특히 <에어리언 4(Alien: Resurrection)>의 연출은 '장 피에르 주네'(Jean Pierre Jennet) 감독이 아니라 최초 제안이 대니 보일 감독에게 들어갔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사실이 되었을 정도. 다만, 그가 이 제안을 거절했던 것은 이완 맥그리거와 카메론 디아즈가 출연했던 <인질(A life less ordinary)>이라는 작품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과는 그리 좋지 못했다. 그가 처음으로 겪은 실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정도로. <에어리언 4>가 1억600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동안 그의 작품인 <인질>은 겨우 470만 불에 그쳤고, 이는 30배가 넘는 차이였다. 처음으로 제안받은 할리우드 자본을 마다하고 고집스럽게 제작한 세 번째 작품이 이렇게 외면당하면서 잠깐의 아픔을 느끼게 되었지만, 이 세 작품을 통해 대니 보일 감독과 이완 맥그리거 두 사람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이어가게 된다.

하지만 좋았던 시절도 잠시, 두 사람의 관계는 오래가지 못하게 되는데 이때가 바로 대니 보일 감독이 자신의 네 번째 작품 <비치(The Beach)>를 제작할 무렵이다. 사실 이완 맥그리거가 대니 보일 감독의 완벽한 파트너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까다로운 요구도 수용할 줄 알고, 주어진 시나리오에 완벽히 적응해 나가는 그만의 스타일 때문이었다. 앞서 언급한 세 작품을 함께 하는 동안 그들은 서로의 성향에 대해 이미 완벽히 이해하고 있었으며, 그랬기 때문에 이완 맥그리거는 당연히 감독의 다음 작품 또한 자신이 주인공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 내심 확신하고 있었다. 감독 역시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비슷한 뉘앙스의 발언들을 내뱉고 있었던 상황.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대니 보일 감독은 그 기대를 저버리며 <비치>의 남자 주인공 역할에 당시에 한참 떠오르고 있었던 스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Leonardo DiCaprio)를 선택하고 만다. 이 소식에 화가 난 이완 맥그리거는 공식 석상에서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하며 서운함을 드러내고 대니 보일 감독과 거리를 뒀다. 지난 2009년 <슬럼독 밀리어네어> 시상식을 기점으로 서로 사과를 주고받으며 관계를 개선해 온 두 사람은 신작 < T2: 트레인스포팅 2 >에 다시 감독과 주연으로 재회하게 된다.

이완 맥그리거를 떠나보냈던 탓이었을까, 1996년 <트레인스포팅> 이후로 그의 작품들은 그리 큰 환영을 받지는 못했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나서야 다시 한 번 반등의 기회를 맞이하게 되는데, 이때의 작품이 바로 그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되는 <슬럼독 밀리어네어(Slumdog Millionaire)>다. 전 세계적으로 3억6000만 불을 벌어들이며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작품으로 손꼽히는 이 영화는 아카데미 시상식 8개 부문 석권과 더불어 골든글로브 최우수감독상이라는 명예까지 함께 선사하게 된다. 그 뿐만 아니라, 대니 보일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골든 글로브, 미 제작자협회 상, 영국 아카데미 상, 미 오스카를 한 작품으로 모두 석권한 전 세계 8명밖에 되지 않는 감독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이 작품 이전에는 '이안' 감독이 <브로크백 마운틴(Brokeback Mountain)>으로 선정된 바 있었다.

<트레인스포팅> 이후 하락세... 12년 만에 멋지게 반전을 맞다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

아카데미 시상식 8개 부문 석권과 골든글로브 최우수감독상까지 안긴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 ⓒ 미디어 소프트


감독이 되겠다고 마음 먹은 지 불과 13년 만에 영화감독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오른 대니 보일 감독. 사실 역사 속에 남긴 커다란 업적들보다 그가 더 대단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이후의 행보에서 보이고 있는 왕성한 활동량과 장르를 넘나드는 다재다능함 때문이다.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인 2010년에는 영화 < 127시간(127 Hours) >을 연출하면서 이듬 해에 있었던 83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을 뿐 아니라, 그 해 2011년에는 연극 <프랑켄슈타인>을 무대에 올렸고, 2012년에는 영국 런던올림픽의 개막식 예술 감독을 맡았다.

이어 스티브 잡스를 모티브로 한 동명의 작품 <스티브 잡스>에서는 연출과 제작 등의 모든 역할을 해내며 영화를 완성했으며, 그의 모든 팬들이 20년이란 세월을 기다린 < T2 : 트레인스포팅 2 >는 비록 1800만 달러밖에 들지 않았으나 올해 초 북미 개봉을 하며 옛 추억을 되살리는데 성공했다는 평을 얻었다. 이 작품은 최근 국내에서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특별 상영된 바 있다. 이처럼 그는 현재도 분야와 장르에 구애 받지 않고 다양한 영역에서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t2 : 트레인스포팅 2 스틸컷 트레인스포팅 2의 한 장면.

▲ t2 : 트레인스포팅 2 스틸컷 트레인스포팅 2의 한 장면. ⓒ SPE


어쩌면 그의 필모그래피 속에는 소위 유명한 작품보다는 그렇지 못한 작품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팬들이 20년이 넘도록 그의 속편을 기대하고,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 대니 보일 감독이 하고자 하는 것이 작품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은 아닐까? 영화는 물론 드라마와 연극까지 자신이 서 있는 곳을 가리지 않고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내 보여줄 줄 아는 힘. 그게 바로 대니 보일 감독이 가진 매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 감독 대니보일 트레인스포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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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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