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운전사>

ⓒ (주)쇼박스


<레미제라블>의 소설가 빅토르 위고는 인간에게 있어 최고의 의무는 타인을 기억하는 일이라고 했다. 1980년 5월 이후, '5.18 광주'의 참상을 알게 된 '남한' 사람들에게 '광주'란 기억해야 하고 그 기억을 널리 공유해야 하는 의무와도 같았다.

인권 변호사 출신인 문재인 대통령 역시 그중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집권하자마자 올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9년 만에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할 것을 지시한 것도, "1980년 오월 광주는 지금도 살아있는 현실입니다"라며 "광주정신을 헌법에 새기겠다"는 기념사를 통해 당선 전 약속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을 것이다.

그렇다. 광주에서의 '제한된 기억'을 대한민국 차원의 '집단적 기억'으로 끌어 올리고 환기시키는 일이야말로 빅토르 위고가 말한 '최고의 의무'와 일맥상통하는 행위이리라. 5.18 광주를 소재로 삼았던 예술과 대중예술가들 역시 그 '기억'을 중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때 그 공간에서 '원체험'을 하지 못한 이들은 모두다 '외지인'일 수밖에 없었고, 또 어떤 형태로든 부채감을 공유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2007년 7월, 노무현 정부의 임기 마지막 해에 도착한 영화 <화려한 휴가> 속 마지막 장면을 기억하는가. 신군부의 도청 진압이 공포로 다가왔을 5월 27일 마지막 새벽, 신애(이요원)는 가두방송을 통해 "광주 시민 여러분, 우리를 잊지 말아 주세요"라고 절규한다. 그 '잊지 말고 기억해 달라'던 절규의 외침이야말로 광주 시민들이 원했고 바랐던 투쟁의 요체였을 것이다.

"아아, 끝내 이렇게 되고 마는 것인가. 이 나라의 국민들은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서울은, 부산은, 대구·인천·대전 사람들은 이 순간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토록 구원의 손길을 기다려왔는데도, 끝끝내 아무도 달려와 주지 않고 마는구나. 아아, 결국 우리들만, 우리들의 도시만 이토록 홀로 처참하게 버림받고 말아야 한단 말인가…." - 임철우, <봄날5>(문학과 지성사) 336쪽 중에서

'5.18 광주'의 전후를 5권짜리 장편 소설을 통해 총체적으로 조망한 임철우 작가의 소설 <봄날> 역시 이러한 광주의 고립과 광주시민들이 가질 수밖에 없었던 '억울함'의 본령을 가감 없이 묘파해낸 바 있다. 이는 '우리를 잊지 말아 달라'던 <화려한 휴가>의 마지막 절규와 일정 정도 맞닿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38년 만에 <택시운전사>가 2017년 여름 극장가에 당도했다. 예정(?)대로라면, 박근혜 정부의 막바지에 선보였을 이 120억짜리 '대중영화'는 외지인으로 눈으로 본 '발포 당시' 5.18 광주의 현장을 '기억'해낸다. 게다가, 한국관객들이 '애정'해 마지않는 '실화영화'다.

외지인의 시선으로 본 5.18 광주

 <택시운전사>

ⓒ (주)쇼박스


"내 눈으로 진실을 보고 전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용감한 한국인 택시운전사 김사복씨와 헌신적으로 도와준 광주의 젊은이들이 없었다면 다큐멘터리는 세상에 나올 수 없었다."

독일 언론인 위르겐 힌츠페터가 지난 2003년 제2회 송건호 언론상을 받으면서 남긴 소감이다. 이 수상소감이 담긴 짤막한 기사로부터 출발했다는 <택시운전사>는 1980년 5월 당시 이 '푸른 눈의 이방인'을 서울에서 광주까지 태워줬던 택시 기사 만섭(송강호)의 눈높이에서 극을 전개한다. 캐릭터 설정부터 '광주'를 기억할 언론인과 서울 사람이라는 두 '외지인'의 성격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하루 전날 일본에서 입국했고 '인권'과 '보도'라는 명분이 분명했던 피터(토마스 크레취만)와 달리 만섭은 요즘 말로 '정알못'에 해당하는 보통 중년 가장이다. 그 시대가 다 그랬듯 먹고 살기 빠듯하고 천 원짜리 한 장이 아까워 벌벌 떠는 그런 보통 사람 말이다. 더욱이 친구 집에 세 들어 사는 만섭은 아내를 잃고 11살 초등학생 딸을 홀로 키우느라 소풍 한 번 제대로 못 가고, 새 운동화도 변변히 마련해 주기 힘든 '가난한' 보통 가장이기도 하다.

그런 그에게 밀린 월세와 맞먹는 10만 원이란 광주 출장(?)비는 어떻게든 받아내고 싶은 큰돈이었다. 그렇게 사우디 건설 현장에서 익힌 짧은 영어와 운전 실력만 믿고 독일기자 피터를 택시에 태운 만섭은, 심지어 데모하는 대학생들에게 막말을 퍼붓던 그 만섭은 신군부가 시민들에게 발포하기 시작했던 광주로의 짧고 굵은 여정을 떠나게 된다. 이미 광주의 상황이 심각하단 사실을 알고 있던 피터와 달리 자신 앞에 어떤 참상이 펼쳐질지 전혀 예상치 못한 채로.

관찰자와 기록자, 그리고 송강호의 얼굴

 <택시운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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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가 포스터에서 웃고 있을수록 영화는 슬프다."

택시 안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만섭의 표정을 담은 영화 포스터가 공개된 이후 SNS를 타고 퍼진 문구다. <택시운전사>는 그 친숙한 '송강호의 얼굴'만으로 많은 것을 설명하고, 또 빚지고 가는 작품일 수 있다. 만섭의 직업은 물론 예의 그 송강호가 연기하는 '80년대 서민 중년 남성'이 가리키는 캐릭터의 성격은 더없이 확실하다.

예상 범위 안인 데다 친근하고 '호감형' 인물로 묘사된 만섭. 그가 맞닥뜨린 광주의 참상과 그로 인한 만섭의 내적 갈등, 그리고 마지막 선택이야말로 대다수가 '외지인'일 수밖에 없는 관객들이 정서적으로 공감하기에 더없이 좋은 보편성을 담보해낸다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론, 그러한 선택이 <택시운전사>가 지닌 시선의 한계로 지적될 순 있다. 왜 아직도 '5.18 광주'의 진상에 더 다가가고 학살자들의 만행을 정면으로 파헤치지 못하느냔 지적 말이다.

하지만 '기억'과 그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이러한 만섭이란 캐릭터가 주는 공감대와 보편성은 <택시운전사>의 주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귀결된다. <택시운전사>는 집요하게 묻는다. 과연 당신이라면 어찌하겠는가, 당신이라면 만섭의 자리에서 폭도도, 빨갱이도 아니었던 광주 시민들을 외면할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있겠는가.

이러한 물음은 중반부 이후 "머시가 미안혀라, 나쁜 놈들은 따로 있구만"이라며 홀로 떠나려던 만섭을 보내주던 광주의 택시운전사 황태술(유해진)의 너그러운 비감과 조응하며 '외지인'의 자리에 위치한 관객들의 이성과 감정을 뒤흔든다.

그렇기에, 후반부 딸아이의 신발을 사고, 국숫집에서 단숨에 국수 면발을 삼킬 정도로 '먹고사니즘'의 엄정함을 체득한 만섭이 운전대를 돌려 광주로 향할 때, 심정적으로 이 평범한 시민이자 인간인 만섭의 고뇌와 선택을 공감하고 응원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만섭이 그때 그 시절 외지인의 시선을 대변하고 또 광주를 기억하기 위해 상상된 인물이라면, 그를 광주로 이끄는 또 다른 외지인 피터는 좀 더 지시적이고 명징한 상징을 부여받은 캐릭터다. <택시운전사>의 광주 장면에서, 만섭과 택시기사들(<화려한 휴가>의 주인공 강민우도 택시기사였다. 실제 당시 광주 택시기사들의 활약상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로 대변되는 '민중'들 외에 주요하게 등장하는 캐릭터는 광주지역 신문기자인 최기자(박혁권)와 피터와 만섭을 끝까지 쫓는 '악역' 사복조장이 유이하다.

그만큼 <택시운전사>에서 '언론'의 역할은 주요한 모티브다. 영화 속에서도 등장하듯, 당시 실제로 광주 MBC 건물에 방화가 일어났던 배경 역시 "왜 방송이, 언론이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우리를 폭도로 만드느냐"였다. 만섭과 피터, 황태술을 돕는 최기자는 당시 언론 통제에도 끝까지 보도를 위해 뛰어다녔던 언론인의 모습과 한계를 드러내는 캐릭터다.

그와 반대로, 피터의 활약과 존재 이유야말로 '정의'와 '인권'을 대변하는 언론인으로 해야 할 역할을 문자 그대로 상징한다. 피터는 만섭과 황태술 등 광주시민들 모두가 매달리는 극 전체 서사의 동인이 되는 캐릭터이자 "광주의 진실을 알려 달라"던 광주시민들의 바람을 끝끝내 지켜낸 냈던, 이른바 '광주 비디오'를 존재케 한 실존 인물이다. 그 자체로 '기레기의 시대'로 갈무리되는 작금의 시대 분위기를 연상케 하는 절묘한 캐릭터와 설정인 셈이다.

체험으로서의 5.18 광주, 그 영화적인 표현과 상상력

 <택시운전사>

<택시운전사>ⓒ (주)쇼박스


이러한 '외지인의 시선'이 극대화되는 것이 바로 발포와 시위 진압 장면의 묘사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전작 <고지전>을 통해 리얼한 전쟁 장면을 연출했던 장훈 감독. 그는 <택시운전사>를 통해 그 어떤 5.18 광주 소재 영상 텍스트와 비교해도 더는 처절하고 참혹할 수 없는 진압군의 발포와 시위 진압 장면을 완성해 냈다.

당장 <화려한 휴가>의 관습적이고 슬로우 모션 등으로 감정을 극대화하는 비슷한 시퀀스의 연출과 비교하면 더 명징하다. 극도로 혼란스러우면서도 시위 당사자와 관찰자의 시점을 잃지 않는 이 발포와 시위진압 장면은 이 분야에 정평이 나 있는 '본 시리즈'의 폴 그린그래스 감독이 연출한 <블러디 먼데이>의 시위 장면이나 <플라이트 93>의 들고 찍기 연출을 연상시킬 정도다.

두 번에 걸친 이 시퀀스들이 지향하는 의도는 명확하다. 영문도 모른 채 평생 단 한 번도 겪지 못했던 자국 군인들의 무자비한 폭력 앞에 노출된 '범인'이 느껴야 했을 공포와 당혹감, 비통함 말이다. 그 광주 시내 한복판에서 벌어진 살육의 현장으로 관객을 데려다 놓은 듯한 연출은 그래서 외지인의 시선에서 비롯된 공감이란 <택시운전사>의 주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나아간다.

아무래도 그러한 '체험'으로서의 감정이 지속하기에, 장면 자체가 조금 길어 보일 순 있다. 하지만 비단 '충격 효과'나 감정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 이 진압장면의 연출이야말로 광주의 비극을 '영화적'으로 강조하는 동시에 아직도 책임을 전가 중인 '학살'의 책임자들을 강하게 비판하는 '영화적'인 대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좌파선동'이라니, 안타깝다

 <택시운전사>

ⓒ (주)쇼박스


2일 개봉한 <택시운전사>는 이렇게 외지인의 시선으로 다시 소환하는 5.18 광주의 짧았던 기억이다. 하지만, 피터, 즉 위르겐 힌츠펜터가 기록한 실제 영상은 전 세계에 광주의 실상을 알리는데 혁혁하게 기여했다. <택시운전사> 역시 그러한 시선과 사실을 일정 정도 따라잡으며 기억과 기록이란 주제를 '보통'의 눈높이에서 유지해 나간다.

결과적으로, 영화적인 욕심보다는 5.18 광주란 주제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으면서도 보편성과 공감대를 강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개봉 직후 <택시운전사>를 향한 기이한 관심, 그러니까 '평점 테러'나 '찬반'이나 '좌우'와 같은 대결 구도로 몰아가는 프레임은 온당하지도, 상식적이지도 않아 보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시도나 보도들을 접하면서, 지금 우리가 어떤 정권에서 살고 있나, 여전히 이 영화를 기획했을 당시 제작사에서 '블랙리스트'나 투자 자체를 걱정해야 했을 보수 정권에 사는 건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반문을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택시운전사>의 영화적인 시선이 더욱 깊숙하게 뻗어가지 못했느냐는 타박 역시 과도하게 다가온다.

무려 38년이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은 "광주정신을 새 헌법에 새기겠다"고 공언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좌파선동' 운운하는 그 자체가 '선동'일 수밖에 없는 '흰소리'들도 적지 않게 들려 온다. 영화를 봤다면, 색안경을 벗고 자신의 역사적 무지를 내려놨다면 언급하기 힘든 몰지각한 주장이다.

어쩌면, <택시운전사>에 쏠리는 영화 외적인 잡음들이야말로 작금의 한국사회가 갈 길이 얼마나 먼지, 왜 광주시민들이 38년 전에 "광주를 알려달라"고 호소했는지 납득하게 만드는 현실의 입증일지 모른다. 그렇게, 논란보단 감동과 공감을 태운 '택시운전사'가 송강호의 또 한 번의 호연과 함께 2017년의 '외지인'들을 찾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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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영화 기자, 오늘은 프리랜서 글쟁이. 살다보니 시나리오 쓰는 사람.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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