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를 걷고 있는데, 치즈케이크를 닮은 목소리가 나에게 말했다. "아름다운 그대, 당신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네요. 사랑해요~" 일순 빠른 세상은 일시정지가 되면서, 나는 댄싱 퀸으로 변신했다.

어릴 적에 교사가 되고 싶었다. 학교를 다니며 인성이 자격 미달인 교사들을 볼 때면 "저런 선생님은 되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했다. 그래서 취업문이 더 넓다는 아버지의 말에도 '국어국문'이 아닌 '국어교육'을 전공했다. 그런데 4학년 5월에 교생실습을 다녀온 후 추잡한 학교의  모습과 "배 선생은 닳아질 필요가 있어"라는 교감의 말에 원효대사의 해골 물에 비견되는 충격을 받았고, 꿈을 접었다.

임용고사 합격이 사범대의 취업 성과인 까닭에 졸업논문을 대충 써도 무조건 인정되었으나, 리포터 쓸 때부터 익숙한 논문실 들락거리며 홀로 졸업논문을 준비했다. 그러다 언어학 전공으로 대학원 진학을 생각했는데, 아버지는 "교수가 될 거 아니면 대학원에 뭐 하러 가"라며 남극해에 사정없이 던져 넣었다. 당시 내 논문을 본 담당교수는 "이 정도면 석사논문 수준"이라 평했건만. 동기들도 대학원 진학을 하지 않은 것에 의아해 했었다.

교사가 되고 싶었으나... 백수가 되다

졸업한 그 즈음은 IMF로 경제위기인데다 지방의 사범대 출신이라 '교사'가 아닌 일로 취업하기는 어려웠기에, 부모님 눈치가 보여서 사립학교에 원서를 냈는데 탈락. 역시나 인맥과 돈이 가장 중요한 스펙이었다. 부모는 모두 일하러 가고, 혼자 집에 남아 있는 시간은 지루했다.

지역 방송사에서 리포터를 뽑는다 하여 응시원서를 썼는데, 부모의 경제력도 기입해야 했다. 나름 머리에 힘도 주고, 눈썹과 립스틱도 칠했다. 실습 나갈 때 입던 정장을 입은 채 1시간 반 가량 고속버스를 타고 카메라 테스트를 받으러 갔다. 그런데 다른 응시자들을 보니 미스코리아 대회에 온 줄 알았다. 나중에 고위직 임원과의 독대 면접까지 갔으나 탈락. 

신문을 뒤적거리다 보니 신차 브랜드명과 휴대폰 광고 공모전이 보였다. 나름 글짓기를 잘했고, 대학 다닐 적에 경제학 서가도 기웃거린 터라 도전했으나 실패. 그러면서 카피라이터에 끌리기 시작하여 광고학원을 알아봤더니 학원비가 만만치 않은 데다 서울이다. 한참을 고민하다 엄마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그동안 아버지와 두 오빠 일로만 점집을 찾았던 엄마는, 기껏 대학까지 보냈더니 백수로 빈둥거리는 막내딸에 답답했던 지라 점쟁이를 찾았다. 신 사주는 "딸이 글로 제법 유명할 팔자"라 말하며 누가 쓴 수필까지 선물로 주었고, 엄마는 기쁜 마음으로 며칠 후 학원비를 송금했다. 훗날 술자리에서 광고학원 담당자는 자기소개서가 눈에 들어와서 비전공에 공모 수상 이력도 없지만 입학시켰노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업계에서 버티려면 술을 무조건 배우라고 조언했다. 참고로 나는 체질상 술을 전혀 하지 못한다.

서울 이문동에 사는 오빠의 원룸에 함께 살면서, 용돈이라도 벌기 위해 패스트푸드점 알바를 하면서 광고학원을 다녔다. 나름 괜찮은 서울의 대학 출신에 어학연수까지 다녀온 오빠는 졸업하면서 외국계 항공사에 취업했다. 그런데 1년도 못 넘기고 정리해고를 당했다. 경기침체로 인원감축에 들어간 회사는 신입부터 먼저 정리했다. 

졸지에 실업자가 된 오빠는 만만한 동거인에게 툭하면 짜증을 냈다. 가뜩이나 광고는 '창작'하는 세계라 머리를 많이 쓰는데, 팀 작업을 할 경우엔 무임승차나 안하무인 등의 꼴불견 동기도 참아야 하니 스트레스가 점점 쌓여 신경성 위염이 재발했다. 언젠가는 뇌에 과부하가 걸렸는지 지하철 투입구에 승차권이 아닌 집 열쇠를 넣는 일도 발생했다. 그간 나름 잘났다 생각하며 꿈도 많던 내 인생이 대학 졸업 후에는 잿빛으로 변했다.

영화 <컨스피러시> 멜 깁슨과 줄리아 로버츠가 나온 1997년 영화 <컨스피러시>의 수록곡으로, 1967년 프랭크 밸리가 부른 “Can't Take My Eyes Off You”를 모튼 하켓이 리메이크했다.

▲ 영화 <컨스피러시> 멜 깁슨과 줄리아 로버츠가 나온 1997년 영화 <컨스피러시>의 수록곡으로, 1967년 프랭크 밸리가 부른 “Can't Take My Eyes Off You”를 모튼 하켓이 리메이크했다. ⓒ 워너 브러더스


지친 내게 다가온 노래

그러던 어느 날 대학로를 걷고 있는데, 어디에선가 처음 들어보는 팝송이 들려왔다. 남자의 목소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치즈케이크를 닮았고, 영어를 못하던 나이지만 가사도 이해가 되었다.

You're just too good to be true
Can't take my eyes off you
You'd be like heaven to touch
I wanna hold you so much
At long last love has arrived
And I thank God I'm alive


남들은 걷고 있는데, 움직일 수 없었다. 아니다. 몸치에 노래도 못하며 무대공포증까지 있는, 내가 회백질 주름투성이 배경에서 마치 <시카고> 속 여주인공처럼 도도하게 노래를 부르며, 김연아가 되어 누비고 다녔다. 목소리가 커졌다.      

I love you baby
And if it's quite all night
I need you baby
To warm the lonely night
I love you baby
Trust in me when I say
Oh pretty baby
...

이제 내 몸은 싯 스핀에서 "I love you baby"에서 빠르게 회전하면서 올라오고 있었다. 업라이트 스핀으로 자세가 바뀌었다. 이제 유유히 종횡무진. 

며칠 후 오빠에게 여행을 간다는 쪽지만 남기고 부모님께도 비밀로 한 채 배낭을 메고 떠났다. 일주일 남짓 동안 난생 처음으로 동해도 가보고, 홀로 등산도 했다. 예전 대학 다닐 때 한 달 일정의 반패키기 유럽여행에서 동반한 대학생들이 지각하여 홀로 기차를 타고 스페인에서  파리의 숙소까지 찾아갔던 때보다 더 낫다 여겼다. 오빠는 핼쑥해진 얼굴로 반겼다. 나는 부모님을 설득하여 강북구의 알바를 하던 매장 인근의 빌라 옥탑방을 얻어 독립했다. 

당시 우울했던 청춘인 나에게 "나를 사랑해"라고 계시를 내린, 이 노래는 포시즌의 리더 싱어인 프랭크 밸리가 1967년에 처음 불렀다. 그리고 치즈케이크를 닮은 목소리 주인공은 1997년에 멜 깁슨과 줄리아 로버츠가 나온 영화 <컨스피러시>의 수록곡으로 리메이크한 모튼 하켓.

영화 <써니>에서 춘화의 장례식장 장면 2011년에 개봉한 영화 <써니>에서  칠공주 리더인  춘화의 유언에 따라  나나미와  4명의 친구들은 장례식장에서보니 엠의 "Sunny"란 노래에 맞춰 춤을 춘다.

▲ 영화 <써니>에서 춘화의 장례식장 장면 2011년에 개봉한 영화 <써니>에서 칠공주 리더인 춘화의 유언에 따라 나나미와 4명의 친구들은 장례식장에서보니 엠의 "Sunny"란 노래에 맞춰 춤을 춘다. ⓒ 토일렛픽쳐스(주), (주)알로하픽쳐스


80년대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흥행을 한 <써니>(2011)에서 칠공주 리더인 춘화의 장례식장에서 유언에 따라 얼음공주를 제외한 나머지 다섯 친구들이 보니 엠의 "Sunny"에 맞춰 흥겹게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온다. 미래의 내 장례식에서는 모튼 하켓의 "Can't take my eyes off you"가 흘러나오며, 지인들이 "잘 놀다간 인생"이라며 축하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니 점쟁이가 한 예언은 뻥이 아닌 걸로~ ㅋㅋ  

모튼 하켓의 "Can't Take My Eyes Off You" 노래 듣기 https://youtu.be/94te-AqH4ts

덧붙이는 글 내 인생의 BGM 공모전 응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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