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갔다 온 남자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군 시절의 기억은 떠올릴 때마다 아련한 추억으로 다가온다. 비록 살면서 제일 무서운 꿈이 '재입대하는 꿈'이라는 말도 있지만,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청춘의 시절이 종종 그리울 때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웃으며 그 시절을 추억하지만, 입대한 직후만 해도 나의 군 시절은 악몽에 가까웠다. 철저한 위계질서로 돌아가는 조직, 융통성·합리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꽉 막힌 조직문화, 24시간 신체의 자유가 통제당하는 생활은 숨 막힐 듯 답답했다.

더군다나 유난히 소심했던 내 성격은 군 생활에 적응하는 데 큰 어려움으로 작용했다. "이등병이 되면 누구나 바보가 된다"고들 하지만, 미숙한 업무 능력으로 실수를 연발할 때마다 남들보다 배 이상으로 심한 자책감과 자괴감을 느끼곤 했기 때문이다.

상관이나 선임들에게 심한 질책을 들을 때면 보이지 않는 구석에 처박혀 눈물을 찔끔거릴 정도였다. 그 시절, 나를 위로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고, 가슴 속엔 오로지 절망만이 가득했다.

 드라마 <미생> 포스터

드라마 <미생> 포스터 ⓒ tvN


힘들었던 군 시절, 운명처럼 만난 <미생>

갓 이등병을 떼고 일병이 되었을 무렵, 나는 극심한 우울증에 빠져있었다. 유난히 사건·사고가 자주 일어나 상관의 호된 질책이 연일 이어지던 때였다. 상관의 질책은 선임들의 '내리갈굼'으로 내게 이어졌고, 나는 결국 입맛도 잃은 채 시름시름 앓는 지경에 이르렀다.

바로 그때, 나는 지친 군 생활에 유일한 위로가 되어줄 인생작을 만나게 된다. 바로 2014년 방영된 tvN 드라마 <미생>이었다.

<미생>은 고졸 출신 낙하산으로 대기업에 취직한 뒤,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비정규직 사원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윤태호 작가가 그린 동명의 만화가 원작이다. 드라마가 방영될 당시 직장인들의 애환을 제대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한동안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미생> 열풍은 병영 안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부대 내 온 장병들이 <미생> 본방사수를 위해 매주 금, 토요일 저녁이면 TV 앞에 모여들었다. 짬찌 중 짬찌(군대에서 군번이 낮은 이들을 부르는 속어)로 채널 선택권이 없던 나는 선임들 틈바구니에 끼어 곁눈질로 TV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미생>과 처음 만났다.

제목 <미생>은 바둑 용어로 '집이나 대마가 아직 완전하게 살아있지 못한 상태'를 뜻한다. 쉽게 말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삶'이란 뜻이다. 그 반대의 뜻으로는 완성된 삶을 의미하는 '완생'이 있다. 즉, 미생이란 이제 막 사회생활에 첫 발을 내디뎌 어수룩할 수밖에 없는 주인공 장그래(임시완 분)의 처지를 빗댄 표현이었던 셈이다.

그 당시의 나 역시 장그래의 처지와 다를 바 없었기 때문에 금세 드라마에 푹 빠져들기 시작했다.

드라마 속 장그래는 뛰어난 스펙을 자랑하는 동기들과 달리 이렇다 할 스펙도, 경력도 없는 비정규직 사원이다. 미숙한 업무 처리능력으로 매번 실수를 연발하다보니 상사에게 깨지기 일쑤지만, 낙하산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동료들에게조차 외면당한다. 그런 그를 위로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오직 그 스스로 노력해서 극복해나갈 뿐이다.

일이 안 풀릴 때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혼잣말을 읊조리는 그의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했다. 나는 그를 보며 내 처지를 위로했다. '군대나 사회나 결국 다 똑같은 거야', '여기서 살아남지 못하면 밖에 나가서도 아무 것도 못할 거야'라고 끊임없이 되뇌면서 말이다.

 드라마 <미생> 스틸컷

드라마 <미생> 스틸컷 ⓒ tvN


애틋했던 <미생>과의 만남

무언가 기댈 데가 필요했던 내게 운명처럼 찾아온 <미생>은 그래서 더욱 애틋했다. 당시 신병휴가를 앞두고 있던 나는 '집에 가서 <미생> 정주행하기'를 휴가 중 계획으로 세워두기까지 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서울역 앞 서울스퀘어(극중 장그래가 다니던 '원 인터내셔널'의 배경이 되는 건물)를 방문해 로비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감상에 젖는 등 온갖 주접을 떨기도 했다.

휴가 나가 처음 만난 친구와 소주 한 잔 기울였던 곳 역시 장그래가 속한 영업3팀 식구들이 자주 회식하던 닭갈비집이었다. 그리고 부대로 복귀하는 내 손에는 <미생>의 OST 앨범이 들려 있었다.

 첫 휴가를 나오자마자 향한 곳은 서울역 앞 서울스퀘어(드라마 <미생>에서 장그래가 다니던 '원 인터내셔널' 촬영지)였다. 당시 촬영한 사진.

첫 휴가를 나오자마자 향한 곳은 서울역 앞 서울스퀘어(드라마 <미생>에서 장그래가 다니던 '원 인터내셔널' 촬영지)였다. 당시 촬영한 사진. ⓒ 김경준


침낭 속에서 눈물 찔끔거리며 듣던 <미생> OST

보안이 철저한 군대에서는 음반 하나 반입하는 것도 무척이나 까다로운 일이다. 당시 우리 부대 역시 MP3 반입이 금지된 대신 CD 플레이어 반입만 가능했는데, 그것도 어학공부용이라는 전제 아래였다.

그러나 나의 CD 플레이어는 제 기능(?)을 상실한 채, <미생> OST를 무한반복재생하는 용도로만 활용됐다. 휴가 복귀 후 거의 매일 밤마다 <미생> OST만 주구장창 들었던 것이다.

그 시절 나의 유일한 낙은 취침소등 후 모두가 잠자리에 들었을 때, 침낭 속에 들어가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미생> OST를 감상하는 것이었다. 그 시간만큼은 나에게 허락된 유일한 자유시간이었다.

하루 종일 선임들의 눈치를 보느라 종일 예민해졌던 신경도 스르르 풀리며 온전히 나만을 위한 '힐링타임'에 푹 빠져들었다. <미생>의 OST들은 고단했던 나의 하루를 위로해주기에 안성맞춤인 곡들이었다.

 휴가 복귀하는 내 손에 들려있던 드라마 <미생> OST 앨범. 군부대 보안인증스티커의 '일병 김경준'이 선명하다.

휴가 복귀하는 내 손에 들려있던 드라마 <미생> OST 앨범. 군부대 보안인증스티커의 '일병 김경준'이 선명하다. ⓒ 김경준


드라마 <미생>이 하루 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청춘들을 위로하고 응원하기 위한 드라마였듯이, OST 역시 고요하고 잔잔한 선율로 지친 이들을 위로해주는 곡들이 대부분이었다. 눈을 감고 잔잔한 선율에 귀를 내어맡길 때마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부딪쳐 깨지고, 좌절하고, 주눅 드는 장그래의 모습이 떠올랐다. 다시 그 위로 선임들에게 혼나며 잔뜩 주눅 든 내 모습이 겹쳐보였다.

그러다보면 드라마 속 장그래가 내 옆으로 다가와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또 하루가 가고 / 내일은 또 오고 / 이 세상은 바삐 움직이고 / 그렇게 앞만 보며 걸어가란 아버지 말에 / 또 한참을 울고 / 다짐을 해보고 / 어제 걷던 나의 흔적들은 / 푸르른 하늘위로 나의 꿈을 찾아 떠나고 / 난 고집스런 내일 앞에 약속을 하고 / 매일" - 한희정, <내일>

감정이 너무 이입된 나머지 찔끔 눈물을 흘릴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다시 트랙을 돌려 조금 신나는 노래들을 찾아 듣기도 했다. 장미여관이 부른 <로망>이나 이승열의 <날아>와 같은 곡들 말이다.

"뒤 돌아보니 상처투성이 / 못난 내가 울고 있네 / 또 다시 해가 뜸을 / 괴롭도록 슬퍼해 / 이 약한 내 영혼을 / 나약한 내 가슴을 / 그 누구도 동정 하지 마라 / 운명을 바꿀 테니" – 장미여관, <로망>

"거기서 멈춰있지마 / 그곳은 네 자리가 아냐 / 그대로 일어나 멀리 날아가기를 / 얼마나 오래 지날지 / 시간은 알 수 없지만 / 견딜 수 있어 날개를 펴고 날아" - 이승열, <날아>

빠른 템포와 힘 있는 목소리, 희망 가득한 가사들로 구성된 이 노래들을 듣다보면 노곤해진 몸과 마음에도 활기가 되살아났다.

이윽고 나는 두 주먹을 꼭 쥔 채, 다짐하곤 했다. "그래, 이 세상에 힘든 사람이 나 혼자 뿐이더냐. 내일은 더 열심히 살아보자!" 그렇게 나는 밤마다 미생에서 완생이 되기를 꿈꾸며 하루 하루를 버텨나갔다.

 드라마 <미생> OST 가사집

드라마 <미생> OST 가사집 ⓒ 김경준


결국 나는 언제까지나 미생일 뿐...

그러나 막상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병장이 되고 보니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계급이 오를수록 늘 새로운 고민과 과제가 던져졌다. 후임들과의 관계에서도 나는 미숙했고 팀의 리더로서 우리 팀을 최고의 팀으로 만들어보겠다는 욕심만 앞섰을 뿐,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전역증을 받는 순간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이등병이었을 때나 병장이었을 때나 나는 늘 미생이었음을.

병장 계급장을 떼는 순간 해방의 몸이 될 거라 믿었으나, 전역하고 돌아온 사회는 막막하기만 했다. 그동안 이뤄놓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오히려 앞으로 내가 해야 할 과제들만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토익을 비롯한 어학·자격증 등 취직을 위해 쌓아야 할 스펙은 끝도 없었다. 나는 다시 '취준생(취업준비생)'이라는 새로운 계급장을 달고 군대보다 더 각박한 현실 속에 내던져졌다. 결국 나는 언제까지나 미생일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요즘도 <미생> OST를 즐겨 듣는다. 침낭 속에 틀어박혀 완생을 꿈꾸던 군 시절을 추억하면서 말이다. 그 시절 나를 버티게 해줬던 노래들은 오늘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지친 나를 위로하고, 내일은 더 나은 하루가 될 거라 토닥여주고 있다.

"어떻게든 버텨봐라. 여긴 버티는 게 이기는 데야. 버틴다는 건 어떻게든 완생으로 나아간다는 거니까. 우린 아직 다 미생이야" - 드라마 <미생> 4국 中

PS. 장그래 역할을 맡았던 배우 임시완이 얼마 전 입대했다. 그가 연기한 장그래는 내가 군 생활을 무사히 버틸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었다. 그의 연기가 절망 속에 빠져있던 내게 위로를 건네주었듯이, 나 역시 그가 군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복귀할 수 있기를 응원한다.



덧붙이는 글 '내 인생의 BGM' 응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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