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택시운전사>에 출연한 토마스 크레취만.

영화로 전 세계를 돌고 있는 토마스 크레취만은 <택시운전사>로 한국 영화 현장을 처음 경험했다. ⓒ 쇼박스


독일 출신 배우 토마스 크레취만은 우리에게 <피아니스트>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으로 잘 알려져 있다. 스스로 외국인 전문 배우라 칭할 만큼 그는 다양한 할리우드 영화에서 '독일인' 역을 그것도 나치 군인 역을 수행했다.

그런 그가 광주 항쟁의 진실을 알리는 독일인 기자로 분했다면? 관객 입장에선 영화 <택시운전사>를 감상할 또 하나의 포인트가 생긴 셈이다. 25일 전격 내한한 토마스 크레취만은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진행된 인터뷰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간 나치 배역을 많이 했고, 대위 계급도 많이 해서 어떤 사람들은 날 '나치 대위'라고 부르기도 한다. 참 다양한 캐릭터를 해왔다. 너무 전형적으로 그런 역할을 맡기 보단 다양한 걸 원한다. 이 영화도 그래서 택하게 됐다."

배우 송강호와 유해진, 류준열과 함께 낯선 나라에서 낯선 이야기에 도전한 그의 심경은 어땠을까. 다음은 독일 배우 토마스 크레취만의 일문일답이다.

광주, 그리고 한국

- 광주 항쟁에 대해 잘 알고 있었나. 소재 면에서 외국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솔직히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내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는 소식에 주변에서도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았다. 그 분들도 광주 항쟁에 대해 잘 모르더라. (그래서) 내겐 큰 도전이었다. 내 삶의 목표 중 하나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하는 건데 그러기 위해선 배우가 최적인 것 같다. 어느 나라를 가든 쉽게 적응했다, 근데 한국은 예상과 다르더라."

- 어떤 부분에서 달랐나.
"언어 문제다. 한국에 처음에 왔을 때 그게 생각보다 어려웠다. 다른 나라들에선 그곳 언어를 몰라도 대충 감을 잡아서 문장의 시작의 끝을 알 수 있었는데 한글은 리듬 파악을 못하겠더라. 지금도 어렵다(웃음). 한국은 문화적 기반이 탄탄해서 사람들 간 공감대나 통일성이 있다는 걸 느꼈다. 아마 아시아에선 작업을 많이 안 해봐서 그럴 수도 있겠다. 아무튼 내게 가장 큰 장벽은 언어였다. 통역을 받는데 시간이 걸리고, 나 때문에 촬영 흐름이 끊기고. 그래서 죄송하고 불편했다."

 영화 <택시운전사>의 포스터. 외신기자 위르겐 힌츠페터 역을 맡은 토마스 크레취만.

영화 <택시운전사>의 포스터. 외신기자 위르겐 힌츠페터 역을 맡은 토마스 크레취만. ⓒ 쇼박스


- 출연 결심하고 따로 공부한 게 있는지. 당신 역시 공산권 동독을 탈출해 타국에 정착한 경험을 하고 있다.
"일단 시나리오를 읽으며 준비했다. 물론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거나 감독에게 많은 얘길 물어보기도 했다. 최대한 많은 자료를 읽으려고 했는데 불행히도 5.18에 대한 자료가 많지 않아 안타까웠다. 실제 힌츠페터(영화 속 토마스 크레취만의 캐릭터이면서 광주 항쟁의 진실을 전한 독일 기자의 이름) 기자를 만나고 싶었는데 촬영 전 돌아가셔서 유감이었다.

동독 탈출 경험이 인생에 여러모로 도움이 됐다. 개인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도 내 세계관 형성에도 말이다. 동독에 살 때 지리적으로 러시아와 가까웠다. 역사의 반복 구조를 그때 이해했다. 광주 항쟁도 그것과 유사한 구조이지 않나. 동독을 나와 헝가리를 통해 유고슬라비아에 갔었다. 나름 중립국이었는데 이후 나라가 아예 사라졌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경험 등으로 <택시운전사> 속 감성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박찬욱 감독과의 인연

 영화 <택시운전사>에 출연한 토마스 크레취만.

ⓒ 쇼박스


- 이 작품을 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뭐였나.
"사실 내가 작품을 택할 땐 간단하다. 대본 읽고 이 영화를 보고 싶은지, 내가 연기하고 싶은지 생각한다. 연기적 욕심 보단 내가 공감이 가는 지로 결정한다. 연기 역시 뭔가를 치밀하게 준비해 가기 보단 직관에 따라 한다. 시나리오 받자마자 매우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훈 감독이 LA까지 날 만나러 왔더라. 캐스팅을 위해 감독이 이렇게 먼 길 오는 게 흔치 않은데 놀랐다. 감동받은 게 크다."

- 실제 경험과 함께 역할을 바라봤을 때 광주항쟁에 대한 남다른 감정을 느꼈을 것 같다.
"사실 촬영할 때 생각을 많이 할 틈은 없었다. 카메라나 스턴트에 집중해야 했기에 말이다. 그런데 영화 보면 건물 옥상에서 참상을 보다가 나와 류준열이 현장으로 뛰어 내려가잖나. 그 느낌을 위해 장훈 감독이 촬영 전 위에서 찍은 장면을 먼저 보여줬다. 가슴이 아팠다. 사실 배우로서 참여한 작품에 감정적으로 좋게 반응하긴 어렵다. 작품 보단 내 실수가 더 잘 보이기 때문이다."

- 함께 한 송강호, 유해진 등에 대한 느낌이 어땠나.
"송강호씨와는 매일 거의 같이 있었다. 전 과정을 함께 하면서 잘 의사소통했다. 물론 언어 장벽이 있었지만 손짓발짓으로(웃음). 그와 함께 연기해서 운이 좋았다. 훌륭한 배우다. 가장 놀란 건 가벼운 감정과 무거운 감정을 빠르게 전환하는 거였다. 훌륭한 리듬이 있는 배우다. 마치 탁구 치듯 연기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유해진씨를 '진'이라고 불렀는데 항상 유쾌하시더라. 장난도 치고 그랬다. 모든 스태프와 배우들이 배려해주셔서 좋은 촬영이 가능했다."

- 촬영 현장에 박찬욱 감독도 찾아온 걸로 안다. <피아니스트> 얘기에 눈물을 흘렸다고 들었다.
"많은 얘기를 했고, 사실 구체적으로 무슨 애기했는지 기억은 안 난다. 내가 좀 자주 우는 편이다(웃음). 박찬욱 감독의 여러 작품을 봤다. <아가씨>는 우리 영화 촬영 전에 봤고, 개인적으론 <올드보이>가 인상적이었다. 또 <스토커>는 색감이 너무 좋아 우리 집 TV 색상 설정을 할 때 그 영화를 기준으로 해놨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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