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는 7월 13일부터 10월 16일까지 100일 프로젝트로 '당신이 기다리는 다큐멘터리 제작자가 되어주세요 600'(당기다 600)을 진행합니다. 인권활동과 다큐멘터리 제작을 이어가기 위해 안정적인 활동비를 확보하고 아픈 활동가와 지친 활동가에게 안정적인 쉼을 제공하기 위한 프로젝트입니다. 아래 글은 빈곤사회연대에서 활동했으며, 용산참사, 세월호 진상규명 활동 등을 통해 연분홍치마와 인연을 맺어온 최예륜 활동가의 글입니다. [편집자말]
영상 활동가. 영상으로 활동한다, 활동가인데 영상을 한다. 누구나 쉽게 영상을 접하는 시대가 됐고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잘 조명되지 않는 소외된 삶과 투쟁을 알리는 카메라도 있고 많은 사람이 모이는 집회나 문화제에서 웬만한 말이나 노래보다 힘을 갖는 영상물도 있으며 다수가 속한 대중운동조직들은 운동의 결산이나 조직화 수단으로서 영상이 종종 활용되기도 한다.

영상 활동가들의 할 일이 분명 많아졌다. 물론 활동방식이나 가치관, 노선은 다양할 것이다. 때로는 성실한 기록자로서, 때로는 지나치는 진실을 파헤치는 고발자로서, 또 자신의 생각을 담아내는 감독으로서 그들은 항상 카메라를 들고 서 있었다. 그런 영상 활동가들이 아프다. 아픈 정도가 아니라 잇따라 쓰러지고 있다.

[관련기사] <두 개의 문> 감독의 투병... '알바' 뛰는 가난한 감독들

연분홍치마 연분홍치마는 5명의 영상활동가가 성소수자, 철거민, 노동자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이런저런 삶의 문제를 다루는 작품활동을 왕성히 펼치는 공간이자 단체다. 이들의 영상은 매번 호평을 받으며 상을 휩쓸지만 정작 이들은 재정난과 생활고에 허덕이고 있다.

▲ 연분홍치마 연분홍치마는 5명의 영상활동가가 성소수자, 철거민, 노동자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이런저런 삶의 문제를 다루는 작품활동을 왕성히 펼치는 공간이자 단체다. 이들의 영상은 매번 호평을 받으며 상을 휩쓸지만 정작 이들은 재정난과 생활고에 허덕이고 있다. ⓒ 연분홍치마


영상 활동가들이 잇따라 쓰러진다

세월호국민대책회의 활동에 앞장섰다는 이유로 김혜진, 박래군 두 활동가가 구속되었던 재작년이었다. 박래군 활동가 면회를 함께 갔던 김일란 감독은 <두개의 문> 후속작인 <공동정범>을 촬영하는 중이었다. 4.16미디어팀장 활동을 병행하던 그는 무척 지쳐 있었다. 더는 병행이 어려워 박종필 감독에게 팀장을 맡아달라고 했다며 미안한 마음을 토로했다.

사실 그때까지도 국가폭력 피해자들 내부의 갈등을 드러내는 <공동정범>이라는 기획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 의심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영화는 만들어졌다. 김일란, 이혁상 두 감독은 운동의 공백을 고발하는 고발자 같다고 여겨졌다. 영화의 제작과정이 운동의 새로운 국면을 여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체감했다. 그들은 무척 집요하고 치열했다.

<공동정범>이 완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촛불이 밝혀졌다. 김일란 감독은 퇴진행동 미디어팀을 꾸려 광장을 기록했다. 4.16미디어팀장이었던 박종필 감독도 함께였다. 그들을 비롯해 많은 미디어 활동가들이 카메라를 메고 광장을 누볐다.

김일란 감독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은 날 꿈에서 그 소식을 듣고 깨어난 나는 "꿈에 일란이 암이라는 거야. 황당하지"했는데 현실이었다. 큰 병을 뒤늦게 알게 되어 수술을 앞두고 있는 그 자신은 얼마나 황당할까. 그리고 박종필 감독에 관한 말도 안 되는 소식이 들려왔다.

김일란, 박종필, 장호경...

몇 달 전에도 광화문에 카메라 들고 있다가 웃으며 인사하던 사람인데 암세포가 퍼져 이제 손 쓸 수 없는 상태가 됐다니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당장 그를 보러 갈 수도 없었고 할 수 있는 건 기적이 일어나길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또한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그의 동료들이 무사한지, 괜찮은지 묻는 일이었다. 내가 가장 가까이 알고 지냈던 영상 활동가 장호경에게 정말 오랜만에 전화했다. 그는 박 감독에게 가는 길이었다. 건강검진 꼭 받고 내년에 생애전환기 종합검진 같이 받으러 가자고 약속했다.

용산참사 다큐영상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2009년 용산참사 현장을 기록한 수많은 미디어활동가들이 있었다. 장호경은 재개발과 국가폭력의 문제를 파헤치며 기록하고 영상을 만들었다.

▲ 용산참사 다큐영상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2009년 용산참사 현장을 기록한 수많은 미디어활동가들이 있었다. 장호경은 재개발과 국가폭력의 문제를 파헤치며 기록하고 영상을 만들었다. ⓒ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어쩌다 보니 영상 활동가가 되었다고 말하던 장호경 활동가는 빈곤사회연대 자원 활동가로 돈 한 푼 받지 않고 오랫동안 <빈곤의 얼굴들><떠나지 못하는 사람들><다시, 봄>(최옥란 열사 이야기)을 비롯해 수많은 영상을 만들고 현장을 기록했다. 2009년에 내내 그는 용산 참사 현장을 기록했고 매 주말 집회마다 영상을 쏟아내면서 자기 이름 한 번 새겨 넣지 않았다. 주위에서 하도 성화를 하니 타협한 게 빈곤사회연대 이름 정도 넣는 거였다.

2010년부터 호경은 빈곤사회연대 반 상근 활동을 시작했는데 어차피 4대 보험도 안 되고 수입이 느는 것도 아니며 일만 배로 늘었으니 호경을 위한 일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영상 활동가들의 노고를 몰랐다

나도 영상 활동가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2004년에 <계속 된다 - 미등록 이주노동자 기록되다>를 만든 주현숙 감독에게 "영상 활동가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요?"하고 물었는데 그의 대답 중 아직까지 기억에 남은 두 단어는 '체력'과 '끈기'였다. 체력은 자신 있었지만 끈기가 부족한 나는 망설이다가 꿈을 접고 '그냥' 활동가가 되었다. 당장 성과를 내기 힘든, 타인에 대한 꾸준한 기록이라는 활동양식을 내가 감당하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언젠가 급한 영상 하나를 만들어야 해서 당시 갈월동에 있던 <참세상>에서 일터와 숙식을 겸하던 정용택 감독(<파티51>)을 찾아가 밤새도록 괴롭혔던 적이 있다. 만일 내가 진지하게 꿈꿨다면 그런 막무가내 폐를 끼쳤을까 싶다. 실은 영상 활동가들은 이미 그때도 너무 고단해보였다. 한때 <참세상>에는 영상 활동가가 대거 모여 있었다. 그들은 긴박한 속보영상에서부터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같은 집단적인 작품 활동을 조직했다.

지금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 안 프로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안 프로를 처음 본 건 2005년 부산에서였는데 그는 APEC반대국민행동 미디어팀으로 활동 중이었다. APEC반대 국민행동 집행부였던 나는 문화제에서 상영할 영상이 직전까지 도착하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다 CD를 들고 온 안 프로에게 버럭 화를 냈다. 초면에 화를 당한 안 프로는 황당한 얼굴이었다. 훗날 그날 일에 대해 사과하며 반성했지만 오래 부끄러운 기억 중 하나다. 안 프로는 다양한 곳에서 영상 활동을 지속하다 홈리스행동, 빈곤사회연대 자원 활동가로 다시 만나기도 했다. 그때 <빈곤의 얼굴들 2>도 만들었다. 그런 영상 활동가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운이 좋았던 일이다.

말로는 백날 해도 몰라주는 사연이 넘쳐나는데 매스미디어가 만드는 '불쌍하지만 성실한 가난한 이웃의 프레임'을 벗어나 빈곤을 재조명하는 영상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큰 축복이었다. 다양한 가치관, 노선, 정체성들이 있겠지만 내가 만난 영상 활동가들은 하나같이 오십견과 관절염, 마음의 부대낌에 시달리면서도 끈질기고 집요하게 기록하는 사람들이었고 모두 다 가난했다.

기록하는 사람은 왜 다 가난하고 아파야 하는지

박종필 감독은 장애운동, 빈곤운동에서 꾸준히 일해 왔다. 거리에서 살면서 <거리에서>를 만들었는데 "형들이 다 죽었다"고 했다. 그가 찍은 사람들 많이 죽었다. 죽은 사람들 얘기도 계속 담아내야 했다. 진지한 성격의 그에게 무거운 무언가가 계속 쌓여왔을 것이다. 20년 동안 그 무거운 카메라를 메고 다니며 울고 있는 사람, 싸우는 사람, 죽어버린 사람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들여다보길 반복했던 사람이었다.

박종필 감독은 <노실사>(노숙인 복지와 인권을 실천하는 사람들) 시절부터 홈리스운동의 오랜 지지자다. 야학 교사를 하면서 <홈리스행동> 감사를 수년째 맡아왔고 홈리스행동 활동가들과 술도 한 잔 하고 당구도 치면서 숨통 터주는 존재였다. 순식간에 경매로 날아가 버린 집이었지만 반빈곤 운동공간 <아랫마을>을 만들기 위해 모금할 때 선뜻 1000만 원이라는 큰돈을 내줬다. 그가 일하는 <다큐인>은 운영이 빠듯했다. 꽤 오래 전에 다큐인 사무실에 놀러간 적 있었다. 그때 상근비가 60만 원이었다고 기억된다.

사실 빈곤사회연대도 그 정도 수준이어서 별 감흥이 없었다. 홈리스의 삶을 담은 영상작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는 송윤혁 감독으로부터 상근비가 밀려 못 받고 있다는 소식을 간간이 듣기는 했지만 "어떡하냐..." 말뿐이었다. 지금 박종필 감독의 곁을 지키고 있는 윤혁은 무슨 생각을 할까.

영상이 점점 더 많이 필요한 시대이며 영상 활동가들의 할 일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개인이든 단체든 영상 활동가들의 처지는 여전히 열악하다. 자신의 운동을 펼치기 위해 '운동이 요구하는 일', '생계를 위한 알바'에 오히려 더 주력해야 하는 구조에 처해 있다. 함께 고민해야 한다. 수년, 수십 년을 헌신했던 활동가들이 연쇄적으로 아프다는 게 그저 범상한 일은 아니다. 그 헌신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을 수 있다는 얘기다.

홈리스야학 교사였던 박종필 감독 2011년 아랫마을 홈리스야학 가을학기 개교식. 장애인운동, 반빈곤운동의 벗이었던 그는 홈리스운동에 오랫동안 함께해왔다.

▲ 홈리스야학 교사였던 박종필 감독 2011년 아랫마을 홈리스야학 가을학기 개교식. 장애인운동, 반빈곤운동의 벗이었던 그는 홈리스운동에 오랫동안 함께해왔다. ⓒ 홈리스행동


또한, 그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너무 심하게 열심히 하지 마세요. 아프면 아프다고 하고 쉬어야 할 땐 쉬어요. 자기 자신을 챙겨요. 박종필 감독님. 너무 고생 많았어요. 근데 고생만 하고는 이게 뭐예요. 얼른 일어나요. 어떻게든 빚 갚을게요. 여기저기 받아낼 빚 많을 거 아녜요. 쉬엄쉬엄 하고 싶은 작업 골라가면서 하고 여행도 하고 즐겨요 이제. 얼른 일어나세요. 할 수 있는 말이 이런 것뿐이네요. 당신과 당신의 동료들이 더 이상 아프지 않길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김일란 감독이 속한 '연분홍치마'는 김일란 감독의 수술후에도 회복을 위한 쉼을 가질 수 있도록 조건을 마련하고자 한다. '연분홍치마'는 최근 재정난으로 후원을 조직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당신이 기다리는 다큐멘터리의 제작자'가 되고 싶다면(연분홍치마 후원가입): https://goo.gl/xyJ9BD('후원받는 단체' 이름에 '연분홍치마'라고 기재해주세요)
후원계좌: 우리은행 1006-701-255845(연분홍치마)
후원 문의: 02-337-6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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