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영화 <덩케르크>.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이것은 전쟁영화가 아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영화 <덩케르크>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1940년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 포위돼 프랑스 덩케르크 해안에 고립됐던 40만여 명의 연합군을 구출하기 위한 '다이나모 작전'을 소재로 한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함에도, 영화의 예고편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등장한다. '이것은 전쟁영화가 아니다.'

전쟁영화 하면 으레 떠오르는 요소들이 있다. 화려한 총격전, 폭파 신부터 감동적인 전우애 그리고 전쟁 승리로 인한 환희까지. 그러나 <덩케르크>에는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 모습들이다. 오히려 영화는 전쟁이라는 하나의 시간을 겪어내는 사람들에 집중한다. 물론 영화에는 총격전, 비행기 전투장면 등의 일부 액션 장면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요소들은 그 자체로 존재하기보다는, 전쟁이라는 시간에 반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기 위한 수단으로서 작용한다.

그렇기에 <덩케르크>는 전쟁영화라 부를 수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존의' 전쟁영화가 아니다.

세 시점 그리고 사람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영화 <덩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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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 감독은 실화를 통해 전쟁영화를 만들면서도 변주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덩케르크>는 역사적 사건을 세 시점으로 나눠 재구성한다. 됭케르크 해변에 갇힌 연합군들의 1주일, 그들을 구출하기 위해 도버 해협을 가로질러 온 어선과 구조 선박들의 1일 그리고 영국 왕립공군 전투 비행사들의 1시간. 그리고 영화는 세 시점 속에서 전쟁을 마주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조명한다.

토미는 됭케르크 해변에 갇힌 40만여 명의 연합군 중 한 명이다. 갑작스러운 독일군의 총격을 받아 동료를 잃었던 그처럼, 연합군들은 언제 가해질지 모르는 독일군의 폭격을 두려워하며 오매불망 구조대가 오기만을 기다린다. 그러나 앞서도 말했듯이, 영화의 초점은 폭격 그 자체가 아닌 폭격에 반응하는 연합군들의 모습에 맞춰져 있다.

토미를 비롯한 연합군들은 어떻게든 탈출하기 위해 애를 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살아있던 동료가 몇 초 만에 시체로 변한다. 그들을 구출하러 온 구축함은 독일군 비행기의 폭격을 받아 전복된다. 이 과정에서 연합군들의 정신 상태 또한 황폐해진다. 그들에게 전우애를 기대하는 건 사치인 상황이다. 영국군 구축함에 프랑스군을 태우지 않거나, 총격을 받는 상황에서 소수자인 프랑스군에게 바깥 상황을 정찰하라는 영국군의 모습은 어찌 보면 슬프지만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소년병들이다. 영화는 됭케르크 해변에 고립된 연합군들의 1주일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곳에는 어떠한 희망도, 애국심도 없었다.

됭케르크로 향하는 어선의 1일은 어부인 도슨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영군 정부는 다음 작전 수행을 명분으로, 구출을 위해 보내는 구축함의 수를 제한한다. 대신 민간 어선들을 징발해 구출 작전에 내보낸다. 이에 분개한 도슨과 아들 그리고 아들 친구는 직접 배를 몰고 됭케르크로 향한다.

하지만 그 과정은 험난하기만 하다. 도중에 조난된 군인을 태웠지만, 그와 실랑이를 벌이던 중 불의에 사고로 아들의 친구가 목숨을 잃고 만다. 하지만 도슨과 아들은 이미 제정신이 아닌 조난 군인을 염려해 이 사실을 말하지 않고, 어떠한 화도 내지 않는다. 또한, 도슨은 독일군 비행기의 폭격으로 배가 위험에 처하기도 하고, 눈앞에서 조난된 군인들이 불에 타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한다. 이렇듯 영화는 어부의 1일을 통해서도 전쟁의 처참한 단면을 화면에 담는다.

전투 비행사의 1시간 또한 마찬가지다. 파리어는 동료들과 삼각편대를 이루어 됭케르크로 향한다. 도중에 독일군 비행기를 맞닥뜨리지만, 모두 격파하며 구축함을 호위하는 데에 성공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편대의 리더는 목숨을 잃고, 다른 동료는 바다에 추락한다. 파이어 또한 연료 계기판이 고장 나 곤란한 상황에 부닥치고 만다. 도버 해협의 하늘에 승리의 영광은 없었다. 전쟁의 허망한 결과뿐이다.

하지만 세 시점이 한 데 모이며 영화의 분위기는 반전된다. 우여곡절 끝에 어선들은 됭케르크 해변에 닿는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연합군을 태우기 위해 구조 작업을 멈추지 않는다. 파리어는 해변에 폭격을 가하려던 독일군 비행기를 격추하며, 연합군들을 구한다. 됭케르크의 군인들은 이에 환호를 보낸다. 반면 어부 도슨은 바다에 추락한 비행 조종사를 구한다. 구출을 기다리는 연합군들은, 자신들의 처지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돕는다. 그 전과는 다른 희망과 감동의 이미지가 영화를 뒤엎는다.

영화는 세 시점을 각각 보여주며 전쟁을 직면한 개개인의 참담한 모습을 조명한다. 하지만 세 시점이 합쳐지며, 사람들은 서로에게 의지의 존재가 되어주고 연대하여 암담한 상황을 함께 헤쳐나간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우리로 하여금 전쟁 그 자체가 아닌 실제로 전쟁의 한 복판에 속해있는 사람을 주목하게 한다. 어부 도슨의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은 집에 있고, 무고한 어린 청년들만 전쟁터에 나간다"는 취지의 발언은, 영화가 실제 전쟁에 참여한 사람에 주목하는 거로 이어진다. <덩케르크>는 전쟁 그 자체나 승리의 영광을 다루는 기존의 전쟁영화가 아닌, 전쟁의 참상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 전쟁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전쟁영화'인 것이다.

마지막 시점, 영국인들과 우리의 시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영화 <덩케르크>.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하지만 영화의 의도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시점이 필요하다. 바로 영국으로 돌아온 연합군을 반기는 영국인들과 영화를 보는 우리의 시점이다. 연합군은 전투에서 패해 됭케르크 해변에 고립됐고, 우여곡절 끝에 40만여 명 중 30만 정도가 영국으로 돌아왔다. 한마디로 그들은 패잔병이다. 그러나 영국 국민은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연합군을 구출하러 온 어부들처럼, 그들을 따뜻하게 맞는다.

뜨거운 차 한 잔이 건네지고 시각장애인은 돌아온 그들을 정성스럽게 어루만진다. 영화를 보는 우리 또한 마찬가지다. 106분의 시간 동안 우리는 전쟁의 참상을 느끼고, 연합군이 구출되는 모습을 보며 감동을 한다. 이러한 영국인들과 우리들의 시선이 존재하면, 그들이 패잔병이라는 사실은 전혀 중요치 않아진다. 중요한 건 전쟁이 아닌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네 번째 시점은 앞서 언급한 세 시점과 합쳐져 진정으로 역사적 사건을 재구성한다.

그러나 영화에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대사가 있다.

"영국인들은 패배해서 돌아온 우리를 부끄러워할 것이다."

토미와 함께 구출된 군인 알렉스는 지속해서 패잔병이라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시각장애인인 노인을 가리키며 "그는 우리의 얼굴을 쳐다보지조차 않았어"라고 말한다. 단지 노인이 시각장애인이었을 뿐임에도 말이다. 그는 왜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됐을까? 이는 평소 우리가 어떻게 전쟁을 바라봐 왔는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역사적 사건, 전쟁을 그 결과로서만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그 안에서 고통받던 사람에는 귀 기울였었는가? 기존의 전쟁영화는 전쟁에 참여한 사람들을 충분히 조명해왔는가?

영국인들 그리고 우리의 네 번째 시선이 없다면 역사적 사건, 전쟁은 제대로 재구성될 수 없다. 전쟁의 결과와 스펙터클만을 주목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안의 사람들은 도외시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전쟁에 실제 참여하고, 그 참상을 목격하는 것은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전투에서 승리하든 패배를 하든 끔찍한 광경을 목격한다. 자신들의 동료를 순식간에 잃고, 그들의 마음 또한 황폐해진다. 그렇기에 진정 우리가 주목할 것은 전쟁이 아닌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덩케르크>는 묻는다. 과연 영화를 보기 전 우리는, 영화 속에서 연합군을 맞이했던 영국인들 그리고 영화를 보며 영화 속 인물들에게 감정이입하고 그들의 귀환을 희망하며 영화를 보던 우리와 같은 사람인지.

그렇기에 <덩케르크>는 기존의 전쟁영화와 다르다. 진짜 전쟁영화다.

덧붙이는 글 최산 시민기자는 유튜브에서 영화 리뷰 콘텐츠 '덕선씨'(덕후가 선정한 씨네마)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덩케르크 진짜 전쟁영화 네 번째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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