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택시 운전사>에 출연한 배우 송강호.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송강호는 서울 출신 택시운전기사 김만섭을 연기했다. "보통의 상식을 지닌 자연인"이라고 그가 캐릭터를 소개했다. ⓒ 쇼박스


강물은 흘러갑니다 제 3한강교 밑을
당신과 나의 꿈을 싣고서 마음을 싣고서

젊음은 피어나는 꽃처럼 이 밤을 맴돌다가 
새처럼 바람처럼 물처럼 흘러만 갑니다 

어제 다시 만나서 다짐을 하고 
우리들은 맹세를 하였습니다.

이 밤이 새면은 첫차를 타고 
행복어린 거리로 떠나갈 거예요 

강물은 흘러갑니다 제 3한강교 밑을 
바다로 쉬지 않고 바다로 흘러만 갑니다 (노래 '제 3한강교' 중)

영화 <택시운전사> 속 만섭(송강호)이 울컥하며 부르는 노래다. 광주 항쟁 당시를 기록한 황석영 작가도 특별 시사회 때 보면서 눈물 흘렸다는 이 장면은 다소 담담하게 흐르던 이야기의 주요 반전 지점 중 하나다. 송강호가 아니라면 살리기 어려웠을 장면이기도 하다. 데모하는 학생들을 향해 "사우디로 확 보내서 고생해 봐야 우리나라가 얼마나 살기 좋은지 알지!"라고 일갈하던 김만섭과 광주 항쟁의 진실을 알리려는 외신기자와 합심하는 만섭 사이의 간극을 바로 송강호가 온전히 채웠다.  

<변호인>과 연결지어 보면 이번 작품 역시 송강호에겐 쉽지 않았다. 보통 작품을 택할 때 답을 빨리 주는 편인 그는 <변호인>과 <택시운전사>를 초반에 거절했었다. 그러다가 "이야기가 점점 커지고 인물이 분명하게 다가와 선택했다"는 게 그간 송강호가 밝힌 두 작품의 출연 이유다.

"<변호인> 때처럼 이 이야기 역시 내 안에서 점점 커지더라. 거절한 이유는 다른 게 아니고 이 거대한 이야기를 내가 어떻게 부끄럽지 않게 많은 분들에게 할 수 있을까 부담이 돼서다. 일종의 건강한 부담감이지. 이걸 두고 '고민해보겠다'라고 할 순 없었다. 고민해보겠다는 건 한다는 뜻이지 않나. 내가 준비가 됐는지 자문하는 과정에서 주저한 거다."

 영화 <택시운전사>에 출연한 송강호.

영화 <택시운전사>의 한 장면. 데모하는 대학생들에게 부정적이던 만섭은 외신 기자와 함께 광주의 참상을 보며 차츰 자신도 모를 감정에 괴로워 하기 시작한다. ⓒ (주)쇼박스


제 3자의 시선

광주 항쟁 한 가운데 서 있던 피해자들과 가해자가 아닌 주변인의 입장, 그러니까 외지 택시 기사와 외신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의 시선으로 바라본 작품이다. 송강호는 "그런 제 3자의 시각으로 사건을 바라본다는 점이 좋았다"고 말했다. 애초에 송강호도 광주 항쟁 당시 "중학생 때였는데 라디오에서 폭도를 진압했을 때 안도감이 들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만큼 가려진 진실에 당시 많은 사람들이 속던 때였다.

"(그 비극을 직접 겪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그 진실을 특별한 계기로 안 건 아니고, 1980년 중후반까지 하나씩 알게 된다. 어떤 사진이나 여러 통로를 통해서 사람들이 점점 실체를 파악하는 거지."

스스로 조심스럽게 접근해서일까. 최대한 송강호는 애드리브를 자제했다. 토마스 크레취만과 주고받는 일부 대사가 애드리브였을 법했는데 그는 "지금 찍고 있는 <마약왕>이나 <살인의 추억> 등은 현장성의 애드리브가 영화를 풍성하게 하는 점이 있는데 <택시 운전사>와 <사도>는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대사가 그만큼 중요했다는 뜻이다. 소재와 캐릭터 특성상 송강호는 몇 가지 선입견과 맞서야 했다.

"(소재 때문에) 영화가 무겁고 슬프다는 선입견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밝게 가자! 이렇게 접근한 건 아니다. 김만섭이란 인물이 어떻게 살고 있나, 외국 손님을 태웠을 때, 그와 함께 광주에 갔을 때 느낌을 하나씩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일부러 목소리를 변주하거나 뭔가 즉흥적으로 덧붙이진 않으려 했다. 광주 주유소 장면에서 류준열과 대화하는 장면을 빼곤 애드리브가 거의 없다. (전작인) <사도>의 경우엔 일부러 목소리를 만들어 낸 거고."

 영화 <택시운전사>에 출연한 배우 송강호.

ⓒ 이선필


 영화 <택시운전사>에 출연한 배우 송강호.

ⓒ 이선필


광주의 노래

애써 구체적으로 설명하진 않았지만 <택시운전사>가 굳이 아니더라고 송강호는 틈틈이 광주 항쟁에 대한 글을 읽어왔다. "계엄군 입장에서 쓴 책들, 문학작품들도 봤다. 매우 고통스러워했던 사람들의 수필 등 그런 기록을 많이 읽었던 기억이 난다"며 송강호는 말을 이었다.

"누가 피해자고 누가 가해자가 아닌 모두가 피해자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희망을 얘기한다. 그 아픔과 고통의 세월을 극복하고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이들이 수많은 시민들이다. 어떤 정치가들이 아니지. 인간의 도리를 아는 수많은 사람들이 인내하면서 만든 나라 아닌가. 80년의 광주를 기억합시다!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 그 아픔을 어떻게 누가 어떤 마음으로 이겨냈는지, 그래서 대한민국이 어떻게 성숙했는지 이 얘길 영화로 나누길 원한다."

좀 더 깊이 들어가 보기로 했다. 어린 나이지만 직접 그때를 겪은 세대로서 이 작품에 임할 때 소재 자체를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았는지 물었다. 제 3한강교 일화가 바로 나왔다.

"그 노래가 밝은 분위기잖나. 가사를 보면 행복을 꿈꾸며 흘러가는 내용이다. 내 입장에선 그게 광주의 노래 같았다. 광주 시민들이 정말 원했던 사회가 그 노래에 담겨 있는 거 같았다. 원래 그렇게 부르는 게 아니었는데 내게 그렇게 다가왔다. 그래서 (몰래 서울로 향하던) 택시를 돌릴 수 있었지.  

김만섭은 투사로서 현실을 받아치는 사람이 아니다. 그냥 흘러가며 사는 자연인이지, 어떤 정의감이나 신념의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광주의 현실을 보고 무섭기도 하고 서울 집에 남겨진 딸 생각도 나서 도망 나간다. 차를 돌릴 때도 어떤 직업윤리나 사명감 보단 인간적 도리로 그리고 군인들의 살상 광경을 목격하면서 생긴 안타까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뭔가 불합리하다 생각한 거지. 이게 도리지. 힌츠페터 기자와 함께 서울로 갈 땐 진실을 꼭 알려야 한다 이런 생각 보단 내 손님과 헤어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컸을 거다. 그 이면에 광주의 비극이 투영되는 게 맞다 생각했다."

소시민성

 영화 <택시 운전사>에 출연한 배우 송강호.

류준열과 유해진과의 만남에서도 송강호는 몇 가지 사연을 언급했다. 특히 오랜 지인인 유해진과 처음 영화로 만난 것에 "나도 꼭 작품을 같이 하고 싶었는데 이번에 만나게 됐다"며 웃어 보였다. ⓒ 쇼박스


1989년 연극 무대를 밟은 이후 연기 경력이 약 30년 가까이 됐다. 막 군대를 제대했을 스물 셋 나이에 자연인 송강호와 배우 송강호 사이에서 느낀 딜레마가 있었으니 바로 연기를 '어떻게 잘할 것인가'와 '연기로 무엇을 말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연기를) 잘 하는 것만 중요한가 아니면 뭔가 의미 있는 얘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늘 고민이었다"고 그가 말했다.

"그런 것들이 20대 초반부터 늘 고민이었다. 세월이 많이 지났고, 많이 부족했지만 그 고민들을 그래도 나름 놓지 않고 오지 않았나. 그래서 지금의 작품으로 나름 성취를 했다고 생각해본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도 연기를 택할 것이고 같은 딜레마를 고민할 것 같다. 이 직업이 늘 행복한 건 아니지만 말이다. 어떻게 잘할 것인가가 중요한 게 아닌 무엇을 말할 것인가의 문제를 또 고민할 거 같다. (중략)

그런 의미에서 저에 대한 정치적 판단?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다. 일부 그런 편견을 가진 분도 있겠지. 하지만 다수 관객은 저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거고, 나 자신 또한 정치적 프레임을 고민했다면 <택시운전사>나 <변호인> 같은 작품을 못 했을 거다. 예술가의 소신이 있다면 그 소신을 (외부 시선이) 꺾진 못할 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 뭘 말한 건가가 중요하고, 그게 내 마음에 들어오면 하는 거지 외부 시선이 중요한 게 아니다."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예술하는 사람으로서 블랙리스트라는 관 주도의 검열에 대해, 그리고 그럼에도 보통 사람의 힘을 믿는다고 꾸준히 말한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던 그의 수상소감에서 비롯된 궁금증이었다. 올해 초까지 이어진 촛불 집회에 조용히 참석하기도 한 그였다.

"괜히 그 말을 해서(웃음). 농담이고 거창하게 얘기가 들려 죄송한데 단 한 명일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영화를 보고 많은 생각을 해서 마음이 움직인다면 세상이 바뀐다고 생각한 거다. 그걸로 끝은 아니다. 물론 (그때 감흥을) 잊어버릴 수도 있고, 반대로 성숙할 수도 있다. 근데 그런 마음이 하나씩 모이면 나중에 큰 힘이 된다. 꼭 영화 한 편이 그런 역할을 한다기 보단 큰 힘을 이루는 데 보탬이 된다는 차원에서 한 말이다."

그리고 남은 이야기, 실제 택시운전사는?
인터뷰 중 송강호에게 실제 택시운전기사를 찾으려 했는지 물었다. 영화에서 실제 이름으로 등장한 위르겐 힌츠페터는 장훈 감독 이하 연출부 인원들이 직접 만난 바 있기 때문. 김사복이라고 알려진 실제 당시 택시운전사는 지금까지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 송강호는 "촬영 전 여러 방도로 그 분을 찾으려 노력했는데 그 분과 같은 이름을 가진 여러 명이 계셨지만 다 아니라고 하셨다"며 "결국 찾을 수 없었다. 만약 살아계셨으면 지금쯤 돌아가시지 않았을까"라고 추측했다.


송강호 택시 운전사 광주항쟁 류준열 변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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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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