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 사는 남자' MBC 화면 갈무리)

'죽어야 사는 남자' MBC 화면 갈무리) ⓒ MBC


때때로 나는 공중파 방송에서 여과 없이 그대로 노출되는 아랍, 이슬람, 무슬림, 중동에 대해 무지와 무식과 무례를 느낀다. 지난 21일, 후배를 통해 <죽어야 사는 남자>라는 드라마가 최근에 막 방송을 시작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드라마가 이슬람 문화를 희화화했다는 논란에 빠졌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래서 드라마를 직접 보았다. 드라마 속 아랍어 대사에 맞춰 나오는 아랍어와 한글 자막도 짚어보았다. 지난 22일 한 트위터리안은 MBC 새 드라마 <죽어야 사는 남자>와 관련해 장문의 비판 글을 올렸다. 그의 주장 또한 살펴보았다.

한국 미디어에 비친 이슬람

 트위터 사용자 MAY가 주장한 이 내용은 드라마의 내용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죽어야 사는 남자> 속 한 장면. ⓒ MBC


 드라마가 이슬람을 희화화했다는 주장이 있다.

<죽어야 사는 남자> 속 한 장면. ⓒ MBC


이 과정에서 몇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먼저 해당 방송과 한국 언론에 아랍과 무슬림, 이슬람, 중동에 대한 무지와 오해, 무례함이 가득했다는 것이다. 오래전 거북스러운 감정을 자제하며 봐야 했던 <개그콘서트>의 '만수르'(2014) 코너도 기억났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 속에는 때때로 아랍어가 나오거나 아랍인들이 등장한다.

수년 전부터 한국 영화 속에서도 아랍인(또는 아랍인으로 설정한 배역)이 나오고 배우들이 (짧지만) 아랍어를 구사하는 장면도 나오기 시작했다. SBS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2011), 영화 <베를린>(2013), <해적 : 바다로 간 산적>(2014), <협녀 – 칼의 기억>(2015) 등에서도 아랍인, 혹은 아랍인 역할을 한 배역을 만날 수 있다. 영화 <베를린>에서 아랍인은 테러리스트로 등장했고, 다른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주로 상인으로 출연한다.

<죽어야 사는 남자> 역시 마찬가지다. 주인공 최민수의 아랍어 발음은 너무 엉망이다. 띄어 읽기라도 제대로 했으면 좋았겠다. 내가 사는 미국에서 멀지 않은 아랍 커뮤니티를 찾아가 <죽어야 사는 남자>를 틀어주고 이슬람 문화권 사람들에게 몇 가지를 물어보았다.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에 거주하는 쿠웨이트인 압달라는 최민수씨의 발음을 보고 어느 나라 말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억양은 물론이고 한 단어로 말해야 할 것을 몇 개 단어로 나누는 모습까지 보였다.

 주인공 이름을 표기한 아랍어 철자가 완전히 깨져버렸다. (드라마 화면 갈무리)

주인공 이름을 표기한 아랍어 철자가 완전히 깨져버렸다. (드라마 화면 갈무리) ⓒ MBC


예를 들면 '손대지 마라'(라 탈미쓰니)를 '라탈 맘싸니'로 발음하는 식이다. 게다가 자막으로 표시한 아랍어 문장에서는 어디서 나온 것인지 도통 모르는 표현들이 보이기도 한다. 소리 말을 아랍어로 음역해서 옮기면서 정확하지 않은 철자가 사용되기도 했다. 게다가 어떤 아랍어 철자는 완전히 깨져버렸다. 일부 아랍인 출연자의 발음과 표현은 제대로이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다. 옷차림새도 출처 미상이다. 완전 비빔밥 같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문제점은 아랍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 단순하다는 것이다. 한국 미디어가 바라보는 아랍·무슬림의 모습은 획일적이고 종교적이다. 그러나 이슬람 문화권에도 계층이 있고 소위 높은 계층에서는 아랍어 이상으로 영어를 자신의 언어로 사용한다. 또 외국인 가사 도우미와 외국인 운전기사와 집사들을 두고 살아간다. 내국인을 하인으로 쓰지는 않는다. 치타나 사자, 아주 특별한 낙타 같은 애완동물을 키우고 산다. 취미 활동을 위해 매 몇 마리 소유하는 것은 일반적이다. 그러나 드라마 속의 주인공의 저택은 온통 아랍인들로만 가득 찬 것으로 묘사한다.

일부 잘못된 주장이 사실처럼 받아들여져

하지만 그렇다고 현재 인터넷 상에서 문제제기가 되고 있는 <죽어야 사는 남자>의 논란이 모두 맞는 건 아니다. 특히 이번 논란을 형성하는 것에 큰 몫을 한 영문 트윗글 작성자 글에는 사실 왜곡이 있다. '공주 한 명을 사고 나머지 두 명을 무료로 가져가'라는 대사라든지 '공주에게 결혼을 명령하는 장면'은 드라마에 등장하지 않는 트위터 사용자의 일방적이고 악의적인 주장이다.

 이슬람의 경전 꾸란을 가볍게 취급하였다는 비난을 받은 드라마 포스터.(드라마 화면 갈무리)

이슬람의 경전 꾸란을 가볍게 취급하였다는 비난을 받은 드라마 포스터.(드라마 화면 갈무리) ⓒ 트위터 갈무리


일부 네티즌들은 드라마에 전혀 언급되지 않은 내용을 마치 드라마가 표현한 것처럼 비판했다. 이는 드라마만 봤으면 충분히 이해가 될 내용이었다. 사실 온라인에서 관련 주장을 접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1차 자료에 접근할 여유를 갖고 있지 않다. 여기에 가짜 뉴스와 왜곡된 정보가 공유되고 확산될 여지가 있다.

또 논란을 제기하는 이들의 주장 가운데 동의할 수 없는 것이 적잖다. 가령 '무슬림은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런데 주인공이 포도주를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이것은 무슬림을 희화화한 것이다'라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기독교인은 성경이 말하는 대로 행하지 않는다. 각 종교인들이 종교적 가르침 그대로 사는 것도 아니다. 드라마는 일단 허구이다. 그러나 동시에 현실을 반영하는 측면도 있다. 현실에는 술 마시는 무슬림도 존재한다.

 드라마가 가상의 이야기이니 오해하지 말라는 식의 드라마 안내문이다. 그러나 의도하지 않은 희화화의 책임은 피할 수 없다. (드라마 화면 갈무리)

드라마가 가상의 이야기이니 오해하지 말라는 식의 드라마 안내문이다. 그러나 의도하지 않은 희화화의 책임은 피할 수 없다. (드라마 화면 갈무리) ⓒ MBC


일각에서는 방송 금지를 요청하는 탄원서, 서명 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결국 MBC는 사과한다. 이런 움직임에는 드라마 <죽어야 사는 남자>에 나오지 않은 불쾌한 정보까지 뒤섞은 왜곡된 주장도 한몫하고 있다.
그럼에도 드라마 제작 과정에서 보여준 부주의함은 적지 않은 아랍인들의 마음을 불쾌하게 만들고 있다. 한국에 살고 있는 이집트인 살마에게 페이스북으로 연락을 취했다. 그는 이 드라마를 화가 나서 더 볼 수가 없었다고 했다.

아랍, 이슬람 사회에 대한 무지와 편견, 기본적인 정보와 이해, 문화적 감수성조차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이것이 한국 방송과 영화의 현실이다. 이런 바닥난 무지와 여과 없이 드러낸 무례함으로 한국 드라마가 세계적으로 더욱 알려지고 있다. "예전에는 우리끼리 보고 웃고 말았을 텐데, 지금은 쉽게 인터넷에 퍼지고 국제적으로 이슈가 된다. 그래서 코미디 하나를 만들어도 조심히 만들어야 한다. 안 그러면 국제망신 당할 수 있다." 중동에서 20여년을 살고 있는 한인 A씨의 지적이다.

그럼에도 드라마 제작진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구어체 아랍어를 음역하여 아랍어로 표기하는 것은 큰 수고가 필요한 일이다. 일부 결정적인 철자 오기도 드러났지만, 감사할 일이다. 종교의 시선이 아니라 생활인의 시선으로 아랍 사회를 볼 수 있는 화면 구성을 해준 것도 고맙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다 입체적이다. 다양한 영역이 공존한다. 보이는 것, 아니 우리들이 생각하고 기대하는 모습과 어떤 면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다른 현실이 지구 반대편에서는 펼쳐지고 있다. 우리 곁의 아랍인, 무슬림으로부터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기회를 누렸으면 좋겠다. 맹목적 반대도 비호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미주 뉴스앤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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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문은, 아랍어를 전공하였다. 아랍 이슬람 지역의 과거와 현재의 문명과 일상, 이슬람 사회를 연구하고 있다. 그 것을 배우고 나누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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