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윅> 포스터

<존 윅> 포스터 ⓒ 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주)


검정 수트에, 권총 한 자루, 과묵한 표정까지. 킬러의 정석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이 영화의 줄거리는 딱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 '복수'이다. 전편에서는 자동차와 강아지 때문에, 그리고 이번 후속편에서는 집 때문에 그는 복수를 시작한다. 복수의 계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쩨쩨해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이 모든 것들은 병으로 세상을 떠난 아내와의 추억이 담겨있는 존재들이다. 목숨을 건 임무를 완수해가면서까지 조직을 떠나려고 할 만큼 사랑했던 아내를 잃고 상실감에 빠져있던 존을 지탱해주는, 마지막으로 남은 그의 전부였던 것들을 건드린 셈이니 존이 복수하려고 기를 쓰는 것도 이해가 간다.

이 다음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존은 복수의 대상들을 차례차례 추격하고, 그는 복수에 성공한다. 사실 애초에 영화 자체가 하나의 공식화 되어있는 플롯을 어떤 변칙도, 반전도 없이 그대로 차용하고 있어 보다보면 다음 내용을 예상할 수도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도 존 윅 시리즈는 1편과 후속편 모두 제작비를 훨씬 뛰어넘은 흥행 수입을 거둬들이며 연달아 호평을 받았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도대체 왜, 이런 뻔한 스토리의 영화에 찬사를 보내는 걸까.

깔끔한 전개

"언젠가 술집에서 그가 세 명을 처리하는 걸 본 적이 있어, 고작 연필 한 자루로."

1편에서 나온 대사로, 이제는 아예 일종의 상징과도 같은 대사가 되어버려서 이번 <존 윅-리로드>에서도 짤막하게 등장한다. 그야말로 킬러로서는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살아있는 전설과도 같은 인물인 존 윅이라는 캐릭터를 표현하는데 더없이 적격인 한 문장이다. 그런데 이 대사를 누가 말하느냐 하면, 바로 존이 과거에 소속되어있던 조직의 보스가 말한다. 마치 살면서 그런 놈은 처음 봤다는 듯이.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이 영화의 전개 방식이 가지고 있는 영리함이다.

아무리 뛰어나고 멋있는 존재라고 해도, 그걸 자기가 자기 입으로 직접 말하면 멋이 없다. 그렇다고 이 인물이 얼마나 대단한지 일일이 관객들에게 설명해주자니 영화가 늘어지게 된다. 여기서 "존 윅"이 대처하는 방법은 실로 영리하다고 할 수 있다. 존이 자기 입으로 떠들고 다니지도 않고, 하나하나 설명해주는 장면도 없다. 그저 주변 인물들의 행동이나 언급에 의해 존 윅이라는 존재의 무시무시함을 상기시킨다. 존 윅의 타깃이 된 인물들은 하나같이 곧 죽을 것처럼 두려워하고, 어떻게든 막아 보려고는 하지만 이미 어느 정도는 포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누구든지 '존 윅'이라는 이름이 나오면 표정이 바뀌고, 킬러들이 머무는 호텔의 직원들과 업계의 동료들 모두 그를 알아보며 그중 몇몇은 그에게 경의를 표하고 예우를 갖춰 대한다. 그렇게 관객들은 존 윅이라는 이름이 전설적인 존재임을 알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복수'라는 주제에 불필요한 로맨스, 감상적인 장면들을 일체 생략하는 과감함도 보여준다. 존의 회상에 잠깐씩 등장하는 아내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여주인공도 없다. 물론 여성 캐릭터가 나오기는 하지만, 애정의 대상이 아니라, 존에게 있어서는 그저 처리해야 할 상대일 뿐, 그 이상으로는 발전하지 않는다. 이러한 전략은 영화가 전체적으로 <존 윅>의 핵심인 액션에 좀 더 치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고, 그 결과 존 윅의 트레이드 마크라고도 할 수 있는, 전무후무한 액션이 탄생하게 되었다.

 영화 <존 윅>에서 액션이 가장 돋보였던 클럽에서의 총격전

영화 <존 윅>에서 액션이 가장 돋보였던 클럽에서의 총격전 ⓒ 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주)


<존 윅>만의 액션

<존 윅>의 액션은 독특하다. 총을 쏘긴 쏘지만 난잡하지 않다. 주요 액션신에는 대부분 권총을 사용해 한 발, 한 발 타격감을 전달하는데, 연사 기능이 있는 소총이나, 샷건을 사용할 때도 짧게 끊어서 쏘기 때문에 타격감이 살아있으며, 깔끔한 느낌을 준다. 또, 실제로 존 윅 역할을 맡은 키아누 리브스가 직접 무술을 배우고, 실제 총기로도 연습하는 등의 노력을 들이고, 카메라도 거의 정적인 움직임을 보이며 기존의 편집과 카메라 워크에 의존하는 액션과는 달리 시각적으로 관객을 만족시키면서도 장면의 전달력이 뛰어난 액션을 선보인다.

하지만 무엇보다 <존 윅>의 액션이 매력적인 것은 바로 현실적이라는 점이다. 모두들, 영화를 보면서 한 번쯤은 주인공이 사용하는 총에만 이상하게 총알이 떨어지지 않는 것에 의문을 가진 적이 있을 것이다. 영화를 가지고 현실적이지 않다고 비난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실감나게 전개되는 편이 좋지 않은가. <존 윅>에서는 그런 '주인공의 총'이 없다. 너무 정확하다 싶을 정도로 총기에 따른 총알의 개수가 현실적이다. 한창 총격전이 벌어지는 중인데도 탄창이 비어 교체해야하는 일도 허다하고, 탄환이 걸리는 상황도 생긴다. 가끔은 상대의 총을 빼앗아 쓰기까지 한다. 특히나 대치 상황에서 총알을 새로 장전해야 할 때 대처하는 존 윅의 액션은 색다른 재미이다.

현실적인 것은 총알뿐만이 아니다. 작중에서 존이 사용하는 사격술은 센트럴 액시스 리록, 또는 센터 액시스 리록이라 불리는 실제 존재하고, 사용되고 있는 권총사격기법으로, 영화의 액션에 현실감뿐만 아니라 전문성을 부여해 존 윅이라는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설정에 대한 설득력을 높인다. 또 술병을 이용하는 등 주변의 물건들을 이용하며 싸운다는 것 또한 꽤 현실적인 설정인데, 특히 <존 윅-리로드>에서, 앞서 등장했던 대사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연필을 가지고 자신을 노리는 다른 킬러들을 처치하는 장면은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존 윅 : 리로드>. 이전의 액션 영화들과는 달리 절제되어있고 현실적인 액션을 보여준다.

<존 윅 : 리로드>. 이전의 액션 영화들과는 달리 절제되어있고 현실적인 액션을 보여준다. ⓒ 제이앤씨미디어그룹


독특한 세계관

<존 윅>은 '킬러들의 세계'를 바탕으로 스토리를 전개한다. 이 세계관에서는, 킬러들이 우리 주변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섞여있으며, 그들만의 네트워크가 형성되어있다. 또 킬러들에게 있어 거의 유일한 비무장지대이자, 킬러들을 위한 호텔인 '컨티넨탈 호텔'이라는 장소가 곳곳에 있고, 호텔 부지 내에서는 절대 작업을 하면 안 된다는 규칙을 어길 시에는 엄격한 처벌이 뒤따른다. 이 호텔에서는 킬러들을 위한 여러 서비스가 준비되어 있는데, 사실은 호텔뿐만 아니라, 곳곳에 킬러에게 필요한 물건, 업무 등을 관리하는 장소가 있다. 그리고 그 시설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그 업계에서만 통하는 '금화'가 필요하다.

이러한 설정은 1편보다도 후속작인 <존 윅-리로드>에서 특히 돋보이는데, 총기 소믈리에나, 킬러 맞춤 양복집, 수배 의뢰소와 같은 요소들은 흔히 첩보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비밀스럽고 은밀한 매력을 흡수하여 <존 윅>만의 새로운 분위기와 매력을 만들어낸다. 이처럼 독특하고 재미있는 세계관은 마치 게임 속 스토리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관객들에게도 일상 속에서 영화 같은 세계관을 소소하게나마 상상해보는 재미를 주기도 한다. 또 영화 내부적으로도 여러 가지 설정들을 손쉽게 설명할 수 있는 장치 역할을 하니 편리하기까지 하다.

 호텔의 총기 소믈리에, <존 윅>만의 독특한 세계관은 관객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전해준다.

호텔의 총기 소믈리에, <존 윅>만의 독특한 세계관은 관객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전해준다. ⓒ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존 윅>이 별 볼일 없는 B급 영화가 될 것이라는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의외의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처럼 독특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나의 주제에 집중해 스토리의 간결성을 살리고, 최대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개성적인 액션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지나가는 화려하기만 한 액션에 지친 관객들이 오랜만의 절제되고 제대로 된 액션에 환호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또 <존 윅>의 선전으로 오랜 슬럼프에 빠져있던 키아누 리브스에게도 최고의 복귀작이 되었으니, 팬의 입장에서 참 애착이 가는 영화이기도 하다.

결코 <존 윅>이 완벽한 영화라고는 하지 않겠다. 무엇보다 스토리 면에서 단순한 전개로 구성된 플롯과,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가벼운 일부터 얼핏 보면 수습하기 힘들어 보이는 사건까지 거의 모든 사건의 당위성을 세계관에 맡겨버리는 등 빈약한 측면이 없지 않아 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복잡하고 심오한 스토리에 어떻게든 의미를 부여하려고만 하는 영화들이 범람하는 요즘, 가끔씩은 이렇게 단순명료한, 액션 그 자체를 위해 만들어진 <존 윅>같은 영화들이 나오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웰메이드 액션영화'로서는 충분한 값어치를 하는, 단순하지만 매력적인 영화, 그것이 바로 <존 윅>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우리 모두 연필을 조심하자.

존 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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