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메인포스터

▲ <내 사랑> 메인포스터ⓒ 오드(AUD)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01.

영화 <내사랑>의 감독인 에이슬링 월쉬의 시작은 스크린과 거리가 멀었다고 한다.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그녀는 더블린 근처의 항구도시인 던 레아리(Dun Laoghaire)에서 순수 예술을 공부하게 되지만, 당시 아일랜드에는 제대로 된 영화 교육을 받을만한 곳이 없었고 홀로 두어 편의 단편을 만들어 본 것이 다였다고. 이후 영국으로 건너가지만 영화보다는 TV 프로그램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되었다.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5편의 장편 작품을 연출했지만 그보다는 지난 2005년,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의 원작 이야기인 <핑거 스미스>를 영국의 BBC 드라마로 연출한 것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역을 맡은 샐리 호킨스를 처음 만난 것도 그 작품을 통해서였다. 많은 TV 시리즈를 연출하면서도 에이슬링 윌쉬 감독의 마음 속에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스크린 위에 표현하는 것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다른 작업을 이어가면서도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이 작품 <내 사랑>의 이야기를 준비했고, 영화는 정식 개봉 전부터 토론토국제영화제, 베를린국제영화제, 샌프란시스코국제영화제에 초청되며 큰 기대를 받았다.

02.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캐나다의 화가 모드 루이스(샐리 호킨스 역)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전기 영화다. 그 동안 수많은 작품들이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연출되었지만,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보이후드>(2014)를 제외하고는 이 작품처럼 오랜 시간을 공들인 작품도 드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참고로 <보이후드>는 한 소년의 성장기를 영화에 담기 위해 12년을 준비한 작품이었다).

물론 <내 사랑>의 촬영 기간이 그만큼 길었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하나의 작품을 위해 10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감독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단순히 시간을 많이 투자했기 때문도 아니다. 사회에서 소외 받아온 두 인물의 사랑과 일생을 그리기 위해 감독은 고증을 통한 재현과 풍경을 통해 두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내 인생 전부가 액자 속에 담겨 있다'던 모드의 말처럼, 그녀의 인생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그녀가 평생 바라보며 그림으로 표현해냈을 풍경의 재현이 그 어떤 작품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내 사랑> 스틸컷 모드는 자신의 삶 뿐만 아니라 에버렛의 삶까지 바꾸어 놓는다.

▲ <내 사랑> 스틸컷모드는 자신의 삶 뿐만 아니라 에버렛의 삶까지 바꾸어 놓는다.ⓒ 오드(AUD)


03.

영화는 유일한 혈육인 오빠로부터 버려져 이모와 함께 살고 있는 모드의 모습으로부터 시작된다. 가족들로부터 극진한 보살핌을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그녀. 어린 시절부터 관절염을 앓았다는 이유로 모두에게 무시당하고, 아무것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들여다 보면 가족들 역시 좁은 항구 마을에서 나쁜 소문이 돌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녀의 행동을 막고 있을 뿐이다. 영화가 조금 진행된 뒤에, 모드가 에버렛(에단 호크 역)의 집에 들어간 후에 만난 이모가 하는 말이 바로 그 지점을 대변한다. '마을 사람들이 전부 널보고 창녀라고 생각해' 집을 떠난 그녀가 밖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도 궁금해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부터 걱정하는 이모의 모습을 앞에 두고 모드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뜻을 꺾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04.

마을의 상점에서 에버렛이 집에 들일 가정부를 찾는다는 구인광고를 보고 그의 집으로 무작정 찾아간 일은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 사건이 된다.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그 동안 가족의 뜻대로 움직였던 그녀의 자주적인 첫 번째 선택. 그는 생각보다 훨씬 거칠고 무뚝뚝한 사람이었지만 그녀는 그와 함께 생활하는 것을 선택한다. 한 번도 집을 떠나본 일이 없는 그녀였기에 새로운 삶에 적응하는 일 역시 쉽지 않다.

고아원에서 자라 그 곳을 나온 뒤로는 일만 하며 자란 에버렛 역시 모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모르는 눈치다. 개보다 못하다고 윽박지르고, 어떤 일에서도 자신보다 아래에 두고자 하고, 심지어 폭력도 휘두른다. 이 모든 것이 모드에게는 처음이었을 터. 이 때도 모드는 떠나려고 하지 않는다. 아무런 상의도 없이 이모를 떠난 자존심일까 싶기도 하지만, 여기서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다. 에버렛의 집을 처음 찾아갈 때 모드가 신고 있던 잘 손질된 새 신 한 켤레와 마을 아이들이 돌을 던져 맞았다고 하니 다리 어귀까지 배웅해 주던 에버렛의 행동. 어쩌면 모드는 이 때부터 벌써 에버렛의 진짜 모습을 알아차렸던 게 아닐까? 자신의 인생이 모두 담겨 있던 자신만의 액자 속 시선으로 말이다. 이후 그녀는 그의 집에서 함께 살면서 자신의 작품 활동을 시작하고, 그 작품들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게 된다.

05.

영화의 많은 부분들이 이렇게 채워지고 있다. 두 사람의 행동 뒤로 전해지는 진심과 이해가 알 듯 모를 듯 슬쩍 내비쳐지는 듯 말이다. 모드와 에버렛이 함께 지내는 시간이 더해질수록 서로가 서로의 행동에 대해 더욱 진하게 반응한다. 날벌레가 들어와서 그림 그리기가 힘드니 덧문을 달아달라는 모드의 말에 툭툭거리면서도 이내 곧 덧문을 구해오는 모습과 같은 것들. 마지막에는 그녀를 도와 집안일을 하려고 빗자루를 든 에버렛에게 먼지가 날려 작업을 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문을 닫으라고 소리치는 모드의 모습까지 볼 수가 있게 된다.

이 영화에 긴장감을 줄 정도로 특별한 사랑 장면이 있는 것도 아닌데 관객들이 두 사람의 모습을 통해 사랑을 느끼게 되는 이유다. 러닝 타임 내내 조금씩 쌓여온 두 사람의 모습 속에 관객들은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물들다 그렇게 빠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감독은 그런 표현들을 통해 사랑의 진짜 감정은 이런 것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 듯 보인다.

<내 사랑> 스틸컷 두 사람의 행복한 시절이 시작되는 순간

▲ <내 사랑> 스틸컷두 사람의 행복한 시절이 시작되는 순간ⓒ 오드(AUD)


06.

물론 영화가 두 사람의 사랑에만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작품의 원제가 여주인공의 이름인 < Maudie >인 것만 봐도 그렇다. 지면 상의 이유로 여기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지는 않았으나, 감독은 여류 화가 모드 루이스가 남긴 작품들과 그녀가 실제로 겪어야 했던 여러 사건들에 대해서도 시선을 놓지 않는다. 병 때문에 떠난 가족들이 그녀의 성공 이후 태도를 달리하는 모습들이라든가,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일이 그녀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처리된 것을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된다거나, 혹은 그런 그녀의 지위 뒤로 에버렛이라는 인물이 겪어야 하는 부침과 같은 것들에 대해서 말이다.

이런 점에서 국내에서 개봉을 앞두고 이 작품의 타이틀이 원제가 아닌 <내 사랑>으로 변경된 점은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모든 선재물의 홍보 방향이 그녀의 인생보다는 모드와 에버렛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에 맞춰져 있다는 점 때문에 타이틀을 변경한 것이 나쁜 선택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영화의 전체 내용을 아우르기에는 원제인 < Maudie >가 훨씬 더 적합해 보이기 때문이다.

07.

산드라(캐리 매쳇 역)에게 장당 5달러에 팔기로 했던 그림을 6달러로 올려 받을 수 있게 된 것만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티없이 행복을 나누던 장면. 그 순간에 어렴풋이 느껴지던 처연함과 같은 것을 모드는 자신의 마지막 순간에 사랑이었노라 말한다. 두 사람이 함께 살던 집 주변으로 바람에 스산하게 울리던 갈대밭 소리와 그 위로 조용히 내리던 아름다운 노을. 영화가 끝나고 나니 모드와 에버렛 두 사람이 모습이 꼭 그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억세고 거친 갈대밭에서야 제 색을 드리울 수 있었던 여자와 내리는 노을 아래에서 따뜻한 품을 내어주었던 남자의 이야기를 샐리 호킨스와 에단 호크, 두 배우는 완벽하게 그려내고 있었던 것이다.

덧붙이는 글 브런치(https://brunch.co.kr/@joyjun7)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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