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해효 "홍상수 감독이 지금 이전의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가 아닐까 생각"
김새벽 "감독님이 사진을 찍어서 흑백으로 보여줘 어렴풋이 흑백영화겠다 생각"

 영화 <그 후> 관객과의 대화 현장

영화 <그 후> 관객과의 대화 현장 ⓒ 김광섭


홍상수 감독의 신작 흑백영화 <그 후>는 아침 식사를 하는 봉완(권해효)에게 아내 해주(조윤희)가 말을 걸면서 시작된다.

"자기, 요즘 이상해."(해주)
"내가 이상해 뭐가?"(봉완)
"전보다 표정이 달라졌어."(해주)
"내가 표정이 달라졌어?"(봉완)
 …
"자기 요새 여자 생겼지?"(해주)
"뭐라는 거야 지금."(봉완)
"자기 여자 생긴 거 아냐? 이상해. 좋아하는 여자 생겼어?"(해주)

출판사 사장이며 문학평론가인 봉완. 출판사 직원이며 봉완과는 내연 관계인 창숙(김새벽). 창숙이 떠난 자리에 새 직원으로 들어온 아름(김민희). 아름을 봉완의 여자 친구로 생각하고 그의 뺨을 때리는 해주. 다시 봉완에게 돌아온 창숙. 창숙이 돌아와 아름에게 함께 일할 수 없겠다고 말하는 봉완. 그들을 향해 뻔뻔하다고 외치는 아름. 아름이 진짜 여자친구였고 관계를 정리했다고 아내를 속이자고 봉완에게 제안하는 창숙. 그 후, 아름이 출판사를 찾았을 때 아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봉완.

영화는 세 명의 여자 사이에서 표정이 달라졌다고 듣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지만 정작 남자는 표정의 변화에는 무심한 듯하다. 그에게 표정은 자신의 것이 아닌 타인이 정한 얼굴이기 때문일까. 외도를 들킨 이후에도 아무 일 없었던 듯 출판사를 운영하며 이전과 같은 삶을 산다. "내 표정은 늘 그대로야"라 말하는 것처럼.

지난 7월 6일, 압구정 CGV에서 진행된 영화 <그 후> 관객과의 대화에 권해효, 김새벽 배우와 정한석 평론가가 함께했다. 영화 제목은 나쓰미 소세키 소설 <그 후>에서 따왔다.

영화를 본 첫 느낌

"칸 국제영화제에서 처음 봤어요. 모니터링 때는 좀 더 어두운 톤이었어요. 전체적 느낌이 좀 더 어두울 것으로 생각했는데 톤이 밝아져 첫 번째 인상이 '밝아졌네' 느낌이었어요." (권해효)

"제가 안 나오는 신이 많으니까 모르는 신이 많잖아요? '내가 찍은 영화가 이런 영화였구나' 화면이 밝아졌다고 해도 쓸쓸한 영화였고요." (김새벽)

 배우 김새벽

배우 김새벽 ⓒ 김광섭


촬영 당일 대본이 주어지는 현장

"현장 가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처럼요. 촬영 첫날에도 무슨 인물인지 모르고도 (촬영장에) 가고요. 어떤 대사와 어떤 상황이 주어질까 기다리는 재미가 있어요." (권해효)

"촬영지가 연남동이었거든요. 집과 가까워 자전거를 타고 즐겁게 갈 수 있었어요. 부담감도 있어요. 오늘은 대사가 얼마나 주어질까? 내가 할 수 있을까 불안하면서도 즐거움이 있었어요." (김새벽)

"홍상수 영화만의 즐거움인데요. 배우들이 다 출연한 다음에도 이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 몰라요. 영화관에 가서야 전체 이야기를 알게 돼요. 앞뒤 상황도 모르거든요. <밤의 해변에서 혼자> 같은 경우는 촬영이 끝난 다음에 걱정을 했어요. 번역자에게 '시간 짧지 않아' 물으니 '1시간 30분 넘어요' '왜?' ' 독일에서 찍은 게 있잖아요' 1부가 있다는 걸 모르고 2부를 찍었어요. 한국에 있는 사람들은요. (이번 영화는) 처음으로 시작부터 촬영 끝까지 있었어요. 김민희씨가 택시 타는 한 장면 빼고는요. (이번에는) 전체 줄거리를 알고 극장에 갔지만 그 이전 작들은 극장 가서 처음 보는 이야기들인 거죠. 굉장히 재미있어요." (권해효)

"화면을 보면 말할 사람에게 카메라가 미리 가 있잖아요?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할지 모르는 것이 대부분이고 1초를 바라보지 못하는 인생인데요. 촬영 직전에 주어진 대사들은 우리 삶의 진실에 가깝게 가는 방식으로 선택된 것이 아닐까? 내일을 모르는 것처럼 배우가 그 다음 벌어질 일들을 알아야 꼭 영화에 좋은 일일까? 이런 질문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권해효)

출연 배우들의 실제 말과 생각을 영화에 반영

"감독님께서 아무 질문이나 해보라고 했을 때, '왜 사는 걸까요?' 했는데, 그게 영화 대사로 나와서 재미있었어요." (김새벽)

"술 취하면 피부 자랑을 합니다. 피부가 어머니를 닮았어요. 술 먹으면 목의 주름 없다고 이야기하거든요. 술자리 대사를 사용해서 황당했던 일이 있죠." (권해효)

"처음 시작할 때, 사소한 현장에서 감독과의 대화들, 이야기들이 영화 속에 등장하지만 전체는 아니에요. 단초 같은 것?" (권해효)

"홍상수 영화에서 배우들의 실생활 말들이 응용되기도 하지만 단 한 순간도 픽션을 거치지 않는 순간은 없습니다. "(정한석)

홍상수 감독은 작곡자, 지휘자, 연주자

 배우 권해효

배우 권해효 ⓒ 김광섭


"보통 배우들이 어떤 장면을 맞이하면 감정 표현에 고민하는데, 홍상수 영화에서는 그럴 여지가 별로 없어요. 촬영 직전에 주어진 대본을 하나 오차 없이 해결해야하는 긴장도 있고요. 배우들은 습관적으로 자신을 덧칠해서 내보내려는 습성이 있는데 그것이 원천적으로 차단된 상태에서 촬영이 들어가다 보니 그냥 지금 나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해내는 일에 집중할 수밖에 없어요. 긴 테이크들이 많지만 애드립이 없어요. 완벽하게 홍상수의 계획과 그 리듬 안에서 움직여요." (권해효)

"보통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대본을 받으면 시나리오 연주자라고 생각을 해요. 이 대사와 배역을 어떻게 해내갈 것인가. 감독 같은 경우에는 지휘자의 느낌이고요. (그런데) 홍상수 영화 작업의 방식과 배우의 관계는 홍상수 감독이 작곡자, 지휘자, 동시에 연주자예요. 배우는 조율된 상태의 악기. 그래서 좀 달라요." (권해효)

"시간의 배열은 촬영이 끝난 과정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완벽한 순서에 의해 찍은 것입니다. 트릭과 페이크를 쓰는 게 아니라 진짜로 배열 자체가 그날그날 촬영 순서에 의해서 찍습니다." (권해효)

일문일답

- 홍상수 감독 작품에서의 NG 상황은?
권해효: "마이크가 화면에 출연하는 경우죠. 제일 많은 것은 대사 틀리는 것. 열 번 테이크를 가면 열 번 테이크 중에서 어느 장면이 OK고 NG인지 배우로서 저는 솔직히 구분을 못합니다. 홍상수 감독이 생각하는 리듬, 자신이 생각하는 카메라의 움직임,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아요. 그것을 조율해 나가는 과정이 테이크의 숫자인 것 같아요."

정한석: "촬영 현장을 직접 본 것에 의하면 권해효 배우가 설명한 거의 그대로인데요. 한 테이크를 찍고 나서 감독과 배우가 모니터링을 하지 않습니까? 이 제스처는 어땠어? 등 이야기를 하는데요. 그것에 대한 지적이 굉장히 정확하고 세밀한 편이라고 배우들이 이야기해요. 감정에 대해서 '이런 식으로 해줘'보다는 손을 이마만큼 올려줘, 다리를 어떻게 등 논리적, 정확한 디렉션을 한다는 특징이 있어요. 사운드가 잘못되거나 대사가 틀린 정도의 잘못이 일어났을 땐 NG를 정확하게 규정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대체적으로 '킵'해 놓고 감독 직감에 따라 골라내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 왜 사는지?
권해효: "'이 세상에 온 게 내 마음대로 온 것이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알겠느냐…' 영화를 본지 오래되었지만 한 번 한 대사들은 외우는 버릇이 있어서요."

- 아내와의 작업 소감은?
권해효: "연극 무대에서는 같이 했지만 영화에서 만난 것은 처음이었는데 좋은 점이 많았던 것 같아요. 아내가 이명세 감독의 <첫사랑> 이후, 거의 20여 년 만에 카메라 앞에 섰어요. 부부가 한 화면에 있을 때의 묘한 어색, 긴장이 첫 촬영, 첫 장면에서 '좋아하는 여자 생겼어?' 말에 반응 못하는 묘한 긴장감과 맞아 떨어진 기억이 나요. 무엇보다 부부가 함께 칸에 가서 재밌게 놀다 왔어요."

뒷이야기

[하나] 해주 역을 맡은 조윤희는 권해효의 실제 아내다. 캐스팅 제안을 받았을 때 처음에는 거절했다.

[둘] 내레이션은 같은 현장(화면 밖)에서 동시 녹음. 권해효의 편지 녹음은 배우가 직접 집에서 아이폰으로 녹음한 파일을 사용했다고 한다.

[셋] 배우들은 자신의 마지막 등장 장면이 언제인지 모른 채 촬영.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월간 <세상사는 아름다운 이야기> 8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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