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드 히치콕의 <싸이코>(1960). 아마도 공포영화라는 단어에 자동반사적으로 떠오를 이미지.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특별상영되었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싸이코>(1960). 아마도 공포영화라는 단어에 자동반사적으로 떠오를 이미지.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특별상영되었다. ⓒ 유니버셜 픽처스


여름철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흔하게 들었던 영화를 통한 '납량'이라는 말은 이제 거의 무의미해 진 것 같다. 극장에서 공포영화를 찾아보기가 점점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시간이 가면서 점점 더 두드러지는 것 같다. 도대체 뭐가 달라진 걸까? 내 생각에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구조의 문제. 어떤 공포영화가 만들어진다고 해도 블록버스터들이 스크린을 대부분 장악하는 여름철에는 스크린 경쟁력이 없는, 즉 일종의 서브컬쳐(sub culture)에 가까운 취급을 받는 공포영화들이 스크린을 확보하기가 시간이 갈수록 훨씬 어려워지고 있다. 

따라서 점점 공포영화들은 블록버스터들이 공백인 시기에 그나마 짧게라도 개봉하는 전략을 취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상황상 이런 전략조차 포기한 공포영화들은 VOD 시장으로 직행하거나 장르영화제를 통해 그저 며칠간 마니아들을 만날 뿐이다.

공포영화의 본질은 결국 이들에게 공포라는 부정적인 또는 불쾌한 본능적 정서들을 유도하는 것이다. 따라서 온갖 영화 장르 중 호불호, 마니아와 안티, 지지와 혐오, 또는 소비와 소외가 가장 첨예하게 공존하는 장르이다. 하지만 반대로 산업의 이윤은 상품이 보편적일 때 극대화된다. 이런 의미에서 적어도 한국에서 만큼은 CJ가 배급하고 1700만 명(한국의 인구는 약 5100만 명이다)이 넘게 본 <명량>(2014)과 같은 영화들 반대편의 가장 어두운 곳에 있는 영화들은 그나마 몇 안 되는 상영관이라도 찾아갈 수 있는 예술영화들이 아니라 상업공포영화들이다.

두 번째, 질적 문제. 그간 우리가 지난 몇 년간 그나마 쉽게 만날 수 있는 공포영화들은 사실 공포영화라는 표현보다는 차라리 점프 스케어 프랜차이즈(jump scare franchise)라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였다. 장르 공식에 따라 빠르게 양산되어 거의 동어반복에 가까운 지루한 자기복제들을 쏟아낸 <쏘우>, <컨져링>, <파라노말 액티비티>, <인시디어스> 같은 시리즈물 말이다. 그리고 이런 물량공세에 지금은 산업과 관객 양쪽 모두 지쳐버린 상태인 것 같다.

즉 공포영화 제작자들은 과거 공포영화의 장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공포에 대해 보다 고상한 고민을 한다거나 관객들과 교감하려 노력하지 않는다. 대신 경제학적 의미로 점점 영악해져갔다. 최근의 공포영화와 제작자들은 관객들의 돈으로 관객의 머리 위에 서서 게임을 하려고 하지만 관객들은 이제 그 게임에 점점 흥미를 잃어가는 중이며 스스로도 그 게임에 지쳐가고 있다.

공포영화 없는 여름

 국내에서도 200만 명이 넘계 본 것으로 집계되는 <겟 아웃>. 아마도 올해의 공포영화.

국내에서도 200만 명이 넘계 본 것으로 집계되는 <겟 아웃>. 아마도 올해의 공포영화. ⓒ UPI 코리아


앞의 가설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사실은 올해도 공포영화들의 수가 적다는 것이다. 내 기억에 올해 극장을 통해 관객들을 만났거나 지금 만나고 있는 공포영화들은 <링스>(2017), <겟 아웃>(2017), <다크 하우스>(2017), <47미터>(2017), <위시어폰>(2017) 5편 정도뿐이며, <겟 아웃>을 제외하면 사람들이 그나마 이 공포영화들을 볼 수 있는 시간은 주로 이른 아침과 자정 즈음 하루에 두 차례 가량 이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마니아들에게 안타까운 소식은 앞으로 올 여름 개봉 예정인 한국 공포영화는 허정 감독의 <장산범>(2017) 정도라는 사실이다. 그나마 상반기에는 섬뜩한 유머를 섬세하게 배치했던 조던 필의 <겟 아웃>이 근래의 공포영화치고 이례적으로 많은 스크린을 통해 관객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 마니아들에게는 작은 위안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면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공포영화를 보아야 할 것인가. 몇 안 되는 상영작이라도 보기 위해 직장에서 그 쓰기 어려운 월차를 내고 잠도 줄여가면서 무거운 몸을 이끌고 새벽이나 심야에 정말로 공포영화를 찾아 해매야 하는 걸까? 그래서야 아무래도 공포영화보다 지금 우리 삶이 더 공포스러워진다.

나는 이럴 때 그냥 우리를 무시하는 극장을 배신하라고 말하고 싶다. 공포영화뿐만 아니라 모든 영화는, 그 영화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고 배급되든 영화는 본질적으로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다. 영화의 최우선 윤리는 보기를 원하는 관객과 만나는 것이다. 중간에 끼어있는 장사꾼들의 수익분배와 관련된 복잡한 계산법들은 그 이후에나 고민되어야 하는 것이다.

어떤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보고 싶은 영화들을 도저히 정상적인 산업망 내에서 만날 수 없을 때, 우리는 웹 하드를 뒤지든 전 세계 토렌트 커뮤니티를 떠돌아다녀야 한다. 설 곳이 없던 영화들이 그렇게라도 사람들을 만나고 영화애호가들 사이에서 다시 회자될 때 영화는 미약해진 생명력에 그나마 약간의 활기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라도 부여받는다. 이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떠돌게 만든 책임은 사람들의 요구가 있을 수 있는 적절한 상품들을 준비 못한 산업의 탓이 크다.

극장을 배신하라

 올해 부천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뮤지션 플라잉 로터스의 장편 데뷔작 <쿠소>

올해 부천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뮤지션 플라잉 로터스의 장편 데뷔작 <쿠소> ⓒ Brainfeeder Films


그래서 공포영화 마니아들 또는 공포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극장을 배신하고 공포영화를 만날 수 있는 방법과 지금 무료로 볼 수 있는 몇몇 공포영화를 추천하고자 한다.

우선 첫 번째 방법은 매년 7월 부천에서 열리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에 가는 것이다. 올해는 7월 13일부터 23일까지 개최된다. 장르영화나 영화제들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BIFAN은 부산과 전주 국제영화제에 비해 좀 덜 알려진 경향이 있는데 10일 동안 300편에 가까운 영화들이 상영되는 매우 큰 규모의 영화제다. 그리고 판타스틱영화제 중에서는 가장 큰 규모의 영화제 중 하나다.

특히 공포영화 마니아라면 부천시청에서 공포영화를 연속으로 상영하는 심야상영
프로그램을 관람할 것을 권한다. 금요일과 토요일 자정부터 다음날 첫 차 다닐 무렵까지 공포영화 3편을 내리 관람할 수 있으며 티켓 가격도 저렴하다. 상영되는 영화들의 특성상 주로 영화제 이후에 국내에서 정상적인 경로로는 볼 수 없는 작품들이 많다. 올해 놓쳤다면 내년에는 꼭 참가하자.

 일본영화가 학원과 청춘을 다루는 한 극단. 미이케 다카시의 <악의 교전>

일본영화가 학원과 청춘을 다루는 한 극단. 미이케 다카시의 <악의 교전> ⓒ Toho


다음은 방법은 제타미디어에서 설립한 VOD 스트리밍 서비스 비플릭스(BFLIX)를 통해 공포영화들을 보는 방법이다. 특이한 점은 플러스 A관 카테고리의 영화들과 무제한 B관 카테고리의 영화들이 다른데 플러스 A관의 영화들은 현금결제가 필요한 영화들이고 무제한 B관의 영화들은 광고를 관람하면 무료로 볼 수 있다.

BFLIX에서 볼 수 있는 추천작
<이트>(지미웨버, 2014)
<프리즈너스>(드니 빌뇌브, 2013)
<악의 교전>(미이케 다카시, 2012)
<레이드: 첫 번째 습격>(가렛 에반스, 2011)
<살인마 가족 2>(롭 좀비, 2005)
<공포의 수학 열차>(로저 스포티스우드, 1980)
<고모라>(마테오 가로네, 2008)
<계부>(조셉 루벤, 1987)
<좋은 아들>(조셉 루벤, 1993)
<아쿠아리스>(미셸 소비, 1987)
<컨트랙티드>(에릭 잉글랜드, 2013)
<매드니스>(존 카펜터, 1995)
<강시: 리거모티스>(주노 막, 2013)
<더 씽>(매티스 반 헤이닌겐 주니어, 2011)
<늑대의 시간>(잉마르 베리만, 1968)
<펌프킨 헤드>(스탠 윈스턴, 1988)
<텍사스 전기톱 학살>(토브 후퍼, 1974)
<헤드헌터(트라우마)>(다리오 아르젠토, 1993)

 싱글맘의 정서적 육체적 불안을 공포로 구현한 제니퍼 켄트의 <바바둑>은 2015년 가장 중요한 발견이자 제니퍼 켄트를 단숨에 스타 감독으로 만들었다.

싱글맘의 정서적 육체적 불안을 공포로 구현한 제니퍼 켄트의 <바바둑>은 2015년 가장 중요한 발견이자 제니퍼 켄트를 단숨에 스타 감독으로 만들었다. ⓒ Causeway Films


끝으로 <옥자>(봉준호, 2017) 논란 덕에 국내에서 더 유명해진 넷플릭스(NETFLIX)에서 제공하는 공포영화들을 보는 방법이 있다. 넷플릭스는 세 가지 요금제를 차등적으로 서비스하고 있는데 요금제마다 지원되는 화질과 동시 사용한 디바이스 수가 다르다. 넷플릭스는 현재 가입자에게 1달간 무료로 모든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지금 가입한다면 무료이용기간으로 공포영화들을 보면서 올 여름은 지날 수 있겠다.

NETFLIX에서 볼 수 있는 추천작
<XX>(조방카 부코비치 외, 2017)
<헬리온스>(부르스 맥도널드, 2015)
<바바둑>(제니퍼 켄트, 2014)
<슬립타이트>(자우메 발라게로, 2011)
<호스텔>(일라이 로스, 2005)
<호스텔2>(일라이 로스, 2007)
<이벤트 호라이즌>(폴 앤더슨, 1997)
<스크림>(웨스 크레이븐, 1996)
<황혼에서 새벽까지>(로버트 로드리게즈, 1996)
<드라큐라>(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1992)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톰 사비니, 1990)
<샤이닝>(스탠리 큐브릭, 1980)
<싸이코>(알프레드 히치콕,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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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공허한 공포를 떠올린 나는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어디건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 보기로 결심했다" -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그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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