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수목 대전이 시작됐다. KBS 2TV <7일의 왕비>가 아직 마무리가 되지 않았지만, SBS <다시 만난 세계>와 MBC <죽어야 사는 남자>가 동시에 방영을 시작했다. SBS <다시 만난 세계>는 <옥탑방 왕세자>, <냄새를 보는 소녀>, <공심이>로 신선하고 대중적인 스토리로 시청률은 떼 놓은 당상이라 말할 수 있는 이희명 작가의 작품이다. 이미 <냄새를 보는 소녀>, <공심이>로 호흡을 맞춘 백수찬 피디와의 작품이니, 당연히 '기대작'이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본 결과가 무색하다. 당연히 1위를 하리라 믿었던 이희명 작가의 작품을 가뿐히 누르고 1위를 차지한 작품은 그 이름조차도 생경한 사이드 파드 알리 백작(한국명 장달구, 최민수 분)이 주인공으로 나선 <죽어야 사는 남자>다. (<죽어야 사는 남자> 9.6%, <다시 만난 세계> 7.2%, 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심지어 <죽어야 사는 남자>는 기존 미니시리즈와 달리 24부작(기존 12부작) 작품이다.

 최민수 주연의 <죽어야 사는 남자>

최민수 주연의 <죽어야 사는 남자> ⓒ MBC


그렇다면 당연했던 기대작이었던 <다시 만난 세계>와 <죽어야 사는 남자>의 희비를 엇갈리게 한 가장 큰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력'이 아니었을까?

1위 <죽어야 사는 남자> 그 매력은?

얼마 전 한국에서 화제가 되었던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처럼 <다시 만난 세계>는 시간을 거슬러 만나게 된 두 남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 첫사랑이었던 소년. 하지만 그 소년은 자신의 생일날 뜻밖의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되었는데, 바로 그 소년이 31살 첫사랑 소녀 앞에 다시 나타난다는 이야기로부터 드라마는 시작된다. 그런데 성해성(여진구 분)의 상대적으로 안정된 연기와 달리, 이제는 중견이라 말할 수 있는 여주인공 정정원(이연희 분)과 최근 구혜선과의 신혼일기로 예능에서 화제성을 얻은 차민준 역의 안재현 연기 중 누가 더 어색한가로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주인공 중 한 사람이라도 문제가 되는데 무려 두 사람의 연기가 문제가 되고 보니, 이희명 작가가 잔뜩 차려놓은 <옥탑방 왕세자> 못지않은 아련한 서사도, 백수찬 감독의 감성 어린 연출도 무기력해져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에 반해 <죽어야 사는 남자>는 생뚱맞은 스토리로 시작된다. 중동에 있는 가상의 이슬람 왕국 보두아티안 왕국의 백작이 된 남자 장달구. 이 어색한 설정을 드라마는 외국 로케 한번 없이 사막의 모래바람을 그럴듯하게 만들어낸다. 그리고 최민수의 연기로 '개연성 없음'을 설득해 버린다. 이제는 그 존재 자체로 '기인'인 되어버린 최민수에 연기를 입혀 중동 국가 백작이 된 장달구를 설명해내는 것이다.

 <죽어야 사는 남자> 중 배우 장예원.

<죽어야 사는 남자> 중 배우 장예원. ⓒ MBC


비록 "황당무계하다"는 반응이 있긴 하지만 희한한 설정을 최민수가 설득해 버리고, 그 위에 그의 딸일지도 모를 두 명의 이지영, 둘 사이에 남편과 불륜남으로 얽힌 익숙한 치정사가 토핑처럼 얹힌다. 이를 강예원, 이소연, 신성록이 또 기가 막히게 살을 입힌다.

이미 2회 만에 신성록은 <별에서 온 그대>의 사이코패스 이재경보다 더 얄미워졌고, 강예원은 <백희가 돌아왔다> 이래 또 한 번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은 듯 보인다. 거기에 '그래 내가 유부남 사귄다'는 이소연의 '이 구역 미친 년은 나야'라는 당당함이라니! 심지어 백작의 비서(조태관 분)에서부터, 호림의 동창 저축은행장 최순태(차순배 분), 지영의 친언니 같은 한방병원장 왕미란(배해선 분)까지 등장인물들의 연기 하나 놓칠 것이 없다.

그저 '백마 타고 온 왕자님 만나기'를 '벤틀리 타고 온 석유 재벌 아버지'로 바꾼 듯한 뻔한 신데렐라 이야기는 동명이인 이지영으로 인한 해프닝으로 그 이야기의 갈래를 더 풍성하게 한다. 또 그저 한 남자를 둔 치정극일 것만 같던 이야기는 시댁의 갖은 갑질에도 불구하고 방송 작가로서의 자신의 꿈을 접지 않는 이지영의 '캔디'같은 스토리로 '신데렐라 스토리' 이상의 가능성을 열어젖힌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수목극 전체 시청률 파이가 20%를 웃돌 정도로, 1위가 9%를 겨우 넘는 공중파 미니 시리즈의 위상은 초라하다. 또 충분히 흥미로운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2회 만에 되풀이되는 서사는 '사실 20부작이었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는다.

하지만 흥미로운 이야기와, 그 이야기들을 감칠맛 나게 연기해내는 배우들의 호연은 때로는 코믹하게, 때로는 진지하게 <죽어야 사는 남자>라는 색다른 이야기를 설득해 낸다. 부디 유종의 미를 거두어 미니 시리즈라면 기존의 16부작, 20부작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넘어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다. 그리하여 좀 더 자유로운 형식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미니시리즈'라는 시간을 통해 시청자들을 만날 수 있기를.

죽어야 사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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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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