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 음악(특히 헤비메탈)에 한참 빠져 있었던 1980년대 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새벽에 일어나면 음악부터 틀었고, 학교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면 공부(하는 척)하면서 음악을 듣기 일쑤였다. 인터넷도 휴대폰도 없던 당시에 음악을 듣고 음반을 사모으는 것은 나에게 거의 유일한 취미나 마찬가지였다.

학교에 가면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학생들도 몇몇 있었기에, 음악과 관련된 정보를 서로 교환하거나 음악에 관한 이야기도 자주 나누었다. 지금처럼 'MP3 플레이어'도 없던 시절이라 집 밖에서 원하는 음악을 들으려면 '워크맨'이라고 부르던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가 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어찌어찌해서 나도 하나 장만하게 됐다. 점심시간에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고 있을 때, 한 친구가 다가와서 "야 뭐 듣고 있냐? 나도 좀 들어보자" 라고 말했던 적도 있었다. 난 그 친구에게 이어폰을 건네 주었고, 5초도 지나지 않아서 그 친구는 이어폰을 귀에서 빼며 나에게 말했다.

"야 이 미친놈아, 뭐 이렇게 시끄러운 걸 들어?"

지금 생각해봐도 웃음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내 귀에는 전혀 시끄럽게 들리지 않는데. 당시에 나는 1986년에 폐간된 '월간 팝송' 같은 음악전문월간지를 보면서 내 나름대로 록 음악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알게 된 기타리스트가 바로 에릭 클랩튼이다. 'Slow Hand'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던 에릭 클랩튼. 별로 시끄럽지 않은 음악을 했던 에릭 클랩튼.

 <레일라>가 수록된 음반커버

<레일라>가 수록된 음반커버 ⓒ Polydor


3대 기타리스트 중 한 명이었던 에릭 클랩튼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1945년생), 지미 페이지(Jimmy Page, 1945년생), 제프 벡(Jeff Beck, 1944년생). 이 세 명의 기타리스트를 가리켜서 흔히 '영국 출신의 3대 록 기타리스트'라고 부른다.

이들의 공통점은 또 있다. 세 명 모두 60년대 영국의 그룹 야드버즈(Yard Birds)의 멤버였다는 점. 야드버즈가 해산한 이후에 이 세 명의 행보는 각각 달랐다. 제프 벡은 '제프 벡 그룹'을 통해서 활동을 이어나갔고, 지미 페이지는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을 만들면서 70년대를 주름잡았다.

그리고 에릭 클랩튼은 데렉&도미노스(Derec & Dominos)를 결성하고 앨범 < Layla And Other Assorted Love Songs >를 1970년에 발표하게 된다. 이 앨범은 데렉&도미노스의 유일한 정규음반이다.

개인적으로 에릭 클랩튼의 최고 명곡이라고 생각하는 '레일라(Layla)'는 이 앨범에 실린 곡이다. 이 곡을 좋아하는 이유는, 완성도가 뛰어나면서 동시에 여기에 담겨있는 아픈 사랑이야기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나도 그렇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아픈 사랑의 경험이 있지 않을까. 'Layla'는 12세기 페르시아의 시 <레일라와 광인>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곡이다.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 여인 레일라 때문에 미쳐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당시에 에릭 클랩튼은 비틀즈의 멤버였던 조지 해리슨의 아내이자 모델이었던 패티 보이드에게 푹 빠져있었다. 에릭 클랩튼에게 패티 보이드는 '레일라'였던 셈. 어찌보면 가망없는 사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인도문화에 심취해있던, 그래서 아내와 소원해졌던 조지 해리슨은 이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렸고 다시 패티 보이드의 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패티는 에릭 클랩튼을 보기 좋게 걷어차버렸다. 에릭 클랩튼은 실연의 아픔 때문에 술과 약물을 상습적으로 하게 됐고, 이때 만든 곡이 바로 'Layla'다. 상처 받았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여인에게 보내는 노래.

내한공연을 갖기도 했던 에릭 클랩튼

<Forever Man> 앨범 커버

앨범 커버 ⓒ Warner Music


'짝사랑은 실현되지 않는다'라고 하던가. 하지만 에릭 클랩튼은 그것을 나름대로 실현시켰다. 조지 해리슨과 이혼한 패티 보이드는 1979년에 에릭 클랩튼과 결혼하지만, 1988년에 결국 이혼하고 만다.

약 7분 길이의 곡 '레일라'는 솟구치는 슬라이드 기타의 연주로 시작된다. 그리고 보컬에 이어서 피아노와 기타의 앙상블로 마무리된다. 실연의 상처를 치유하던 시절, 이 곡이 에릭 클랩튼에게 어느 정도의 위안이 되었을까. '이제 나에게 남은 것은 음악과 기타 밖에 없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에릭 클랩튼은 2007년과 2011년에 연달아 한국을 방문해서 그의 음악을 관객들에게 들려주었다. 그 공연장에 가보지는 못했지만 나중에 사진으로 접했던, 하얗게 바랜 머리로 기타를 연주하던 모습은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다.

2016년에 에릭 클랩튼은 신경계통에 관한 질환을 앓고 있다고 밝혔다. 다시는 기타연주를 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70을 넘긴 나이라서 몸에 이상이 생기는 것도 어찌보면 피할 수 없는 일. 기타를 잡을 수 없는 에릭 클랩튼의 모습은 상상이 안되지만, 그동안 너무 열심히 연주를 해왔기 때문에 생긴 질환인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에릭 클랩튼이 질환을 극복하고 다시 한 번 팬들 앞에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

What will you do when you get lonley
And nobody waiting by your side
You've been running and hiding much too long
You know it's just foolish pride


- '레일라' 가사의 일부

덧붙이는 글 <내 인생의 BGM> 응모작입니다.
에릭 클랩튼 레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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