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문태유의 김명준, 문명준 29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연극 <모범생들>에 출연 중인 배우 문태유를 만났다. 지이선 작가와 김태형 연출의 첫 만남으로 유명한 <모범생들>은 올해 10주년을 맞은 작품으로 외국어고등학교 내에서 일어나는 모범생들 사이의 치졸하고 비열한 일련의 사건들을 그린다. 문태유는 김명준 역으로 분해 열연한다. 사진 촬영을 본격적으로 하려던 찰나 카메라가 갑자기 고장나는 불상사가 생겨버렸다.

ⓒ 곽우신


문태유의 김명준, 문명준 29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연극 <모범생들>에 출연 중인 배우 문태유를 만났다. 지이선 작가와 김태형 연출의 첫 만남으로 유명한 <모범생들>은 올해 10주년을 맞은 작품으로 외국어고등학교 내에서 일어나는 모범생들 사이의 치졸하고 비열한 일련의 사건들을 그린다. 문태유는 김명준 역으로 분해 열연한다. 사진 촬영을 본격적으로 하려던 찰나 카메라가 갑자기 고장나는 불상사가 생겨버렸다.

▲ 문태유의 김명준, 문명준 29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연극 <모범생들>에 출연 중인 배우 문태유를 만났다. 지이선 작가와 김태형 연출의 첫 만남으로 유명한 <모범생들>은 올해 10주년을 맞은 작품으로 외국어고등학교 내에서 일어나는 모범생들 사이의 치졸하고 비열한 일련의 사건들을 그린다. 문태유는 김명준 역으로 분해 열연한다. 사진 촬영을 본격적으로 하려던 찰나 카메라가 갑자기 고장나는 불상사가 생겨버렸다. ⓒ 곽우신


문태유처럼 '모범생' 같은 배우가 또 있을까. 대극장 작품의 앙상블로 배우를 시작한 그는 꾸준히 노력하며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왔다. 2013년 <레미제라블>의 앙상블 때부터 그를 눈여겨 본 팬이 있을 정도로 가능성이 남다른 이였다. 작품에서 그리 비중이 크지 않은 역이었음에도, <드라큘라>의 렌필드를 맡았을 때는 '신 스틸러' 이상의 노래와 연기를 선보였다. <오케피>에서 '혼자 연애하는' 기타 연주자를 거쳐 <로기수>의 '로기수'를 맡았을 때, 그는 정말 작품 속 노랫말 그대로 "각오 높게" 춤췄고, '날아올라'가기 시작했다.

그에게는 재능이 있었고, 그 재능을 갈고 닦는 노력이 있었고, 그 노력을 발휘할 기회가 주어졌다. <스위니토드> <블랙 메리 포핀스> <벙커 트릴로지> <나쁜 자석>까지…. 소극장과 대극장, 연극과 뮤지컬을 가리지 않았다. 새로운 작품을 할 때마다 기대하게 만드는 배우였고, 그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다. 앉을 자리가 남아 있지 않아서, 그가 연기하는 <광염 소나타>의 'J'를 보지 못하고 보낸 게 두고두고 아쉬운 것도 그 기대 때문이다. 어떤 작품에서든 문태유는 문태유답게, 문태유스럽게 존재감을 뽐내니까. 예컨대 <나쁜 자석>에서 지나가듯 한 마디 나오고 마는 동화 <새의 가장 이상한 결정>을 제목만 듣고 실제로 써냈다. 그 동화를 낭독하는 관객과의 대화 자리에서 저절로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런 그가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한 연극 <모범생들>의 김명준을 맡았다. 지난 6월 4일 개막한 연극 <모범생들>은 오는 8월 27일까지 드림아트센터 4관에서 상연된다. 지금까지 해왔듯이, 그는 역시, 잘해냈다. 지이선 작가의 "문태유는 참, 문태유처럼 해요"라는 평이 이해가 됐다. 직접 만나서 얘기를 듣고 싶었다. 6월 29일, 대학로의 카페에서 만난 그는 공연월간지 <씬플레이빌>에 실린 자신의 기사를 꼼꼼하게 읽고 있었다.

문태유, 김명준을 만나다

'모범생' 김명준이 된 문태유 지난 6월 8일, 서울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4관에서 열린 연극 <모범생들>의 프레스콜이 열렸다. 1등급이 되고
 싶은 2등급 학생 김명준으로 분한 배우 문태유가 열연하고 있다. 연극 <모범생들>은 외국어고등학교 내에서 일어난 '백색 누아르'를 표방한 극으로, 올해 10주년을 맞이했다.

▲ '모범생' 김명준이 된 문태유 지난 6월 8일, 서울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4관에서 열린 연극 <모범생들>의 프레스콜이 열렸다. 1등급이 되고 싶은 2등급 학생 김명준으로 분한 배우 문태유가 열연하고 있다. 연극 <모범생들>은 외국어고등학교 내에서 일어난 '백색 누아르'를 표방한 극으로, 올해 10주년을 맞이했다. ⓒ 곽우신


"실제 저와 가장 교집합이 큰 것도 명준입니다. 우선 종태 같은 완력이나 위압감이 제게는 없고요. (웃음) 수환 같은 가벼운 분위기도 없고 그렇다고 민영처럼 갖고 태어난 게 많은 사람도 아니거든요. 넷 중에서는 명준에 가장 가까운 것 같아요.

명준을 표현하는 데 필요한 재료도 잘 떠올랐어요. 이번 역할을 준비하면서 명준을 타인으로 두고 관찰하지는 않았어요. 렌필드(<드라큘라>)나 고든(<나쁜 자석>)을 할 때는 추리하고 상상했지만, 명준은 연기에 대한 접근이 좀 달랐죠. 최근 작품 중 가장 현실적인 인물이라는 영향도 있고…. 다들 속으로 갖고 있는 그 속물적인 요소를 표현하자고 생각했어요. 내 속에 있는 것들을 잘 다듬고 극대화하면 명준이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거기에 초점을 맞춰서 고민했어요."

연극 <모범생들>의 시간적 배경은 학력고사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전환을 앞둔 그때이다. 마지막 학력고사 세대인 대림외국어고등학교 독어과 A반 김명준은 1등급과 2등급에 걸쳐 있다. 언제나 1등을 도맡아 하는 반장 민영이가 부럽기만 하다. 정작 자신은 이번 모의고사에서 2등급으로 미끄러졌다. 아무리 풀어도 답은 '4A'인데, 보기에는 '4A'가 없었다. 압박감에 못 이겨 유서까지 쓰고 자살을 시도하지만, 막상 올라간 옥상은 너무 높고 무서웠다.

야간자율학습 간식비도 부담스럽고, 가정통신문을 빙자한 촌지 요구서도 끔찍하다. 하지만 김명준에게 가장 무서운 건, 자신의 등을 바라보는 부모님의 시선이다. 중졸 택시운전사 아버지 그리고 국졸 어머니는 명준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갈변을 막기 위해 소금물에 적셔둔 사과, 그래서 그 짭짜름한 끝 맛이 명준은 견딜 수가 없다. 어떻게든 상위 3%에 올라갈 것이다. 서울대에 갈 것이다. 이 질서의 위에 올라서서, 그는 기득권이 되고자 한다. 하지만 어떻게? 큰 거 3장에 답안지를 거래하는, 돈으로 성적을 사는 인간들도 있는데! 돈도 없고, 백도 없는 명준은 노력만으로는 극복하기 버거운 등급의 벽 앞에서 아등바등한다. 그리고 결국, 편법을 쓰기로 한다.

커닝. 어느 정도의 노력도 필요 하고,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정도의 편법. 명준은 수환과 함께 범위를 나누어서 공부하고, 둘만의 신호로 정답을 공유하기로 했다. 계획은 차질 없이 실행될 것처럼 보였다. 이전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킨 뒤, '잔디를 깔고' 대림외고에 입학한 종태가 화장실에서 우연히 이 얘기를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일은 점점 커지고, 학벌을 통해 계급 사다리의 위로 올라가고 싶은 학생들의 욕망이 서로 뒤엉킨다. 그들은 어른을 닮아가고 있었다. 아니, 기득권의 논리를 충실히 답습하는 명준은 이미 어른이었다.

"저도 명준처럼 질서의 상위권에 들고 싶었던 적이 있어요.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죠. 배우로서 굶지만 않으면 된다는 게 가장 큰 목표였거든요. 성인이 된 후에 배우라는 길에 뛰어 들면서, 명준이가 서울대를 가고 상위 3%의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것처럼, 저는 온전하게 배우로 먹고 사는 게 목표였던 시절이었죠. 그 시절에 동료에게 질투했던 것, 시스템에 품었던 불만 등이 생각났어요. 그 당시의 저는 세상에 삐쳐 있었거든요. 어떻게 해야 인정받고, 눈에 띌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던 시절…. '어떻게 연기해야 행복할까'라기 보다는 오로지 연기자로서 성공하는 데 대해서만 가득차 있었을 때였죠. 그걸 극대화하기로 했어요. 지금도 어딘가에는 그때의 저와 비슷한 사람이 있을 거잖아요."

문태유, 김명준, 편법

문태유의 김명준, 문명준 29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연극 <모범생들>에 출연 중인 배우 문태유를 만났다. 지이선 작가와 김태형 연출의 첫 만남으로 유명한 <모범생들>은 올해 10주년을 맞은 작품으로 외국어고등학교 내에서 일어나는 모범생들 사이의 치졸하고 비열한 일련의 사건들을 그린다. 문태유는 김명준 역으로 분해 열연한다. 사진 촬영을 본격적으로 하려던 찰나 카메라가 갑자기 고장나는 불상사가 생겨버렸다.

▲ 노래 혹은 연기 "예전에는 노래 보다는 연기에 집중하고 싶었어요. 제가 장기가 아닌 부분을 진검승부 걸어야 하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레미제라블> 이후 꾸준히 노래를 했고, 지금은 자신감이 좀 생겼어요. 잘해서가 아니라 (웃음) 예전엔 기복이 심해서 무대에서 혼나기도 했는데, 그 이후로는 레슨을 통해서 자신감이 많이 늘었거든요. 요새 뮤지컬의 재미도 많이 느끼고 있어요. 뮤지컬도 연극도 전부 다 좋아요. 다만 화려한 춤이 들어가는 작품은 앞으로 못 하지 않을까요…. 탭은 악으로 깡으로 했지만 몸을 쓰는 건 안 될 듯 합니다…." ⓒ 곽우신


질서의 꼭대기에 서고 싶다는 욕망, 그래서 그 기득권 체제 하에서 온갖 혜택과 특권을 누리고 싶다는 욕망. 어쩌면 인간이라면 한 번쯤 다 품게 되는 욕망일 것이다. 다만, 그 욕망과 균형을 이룰 혹은 견제할 다른 종류의 욕망들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사람의 행동 양식이 결정된다. 함께 갈 것인가, 혼자 살 것인가. 주변의 아픔에 공감하는가, 혼자만 행복하면 상관없는가. 명준은 명백히 후자의 사람이었나. 공부를 할 때는 대학에서 운동하는 사람을 혐오하고, 어른이 되어서도 학벌폐지를 외치는 사람을 혐오한다. 편법을 써도 상관없다. 3% 안에 들 수만 있다면.

"명준이가 민영을 질투하고, 독백 신에서 화를 내는 건 200% 공감해요. 하지만 저와 명준이의 정확히 다른 지점이 있는데, 전 편법은 쓰지 않습니다. (웃음) 편법이 주는 스트레스가 싫기 때문에요. 사람이 정직하지 못했을 때 발 뻗고 못 자잖아요. 저는 그게 성공하지 못해서 받는 스트레스보다 훨씬 심해요. 떳떳하지 못하면 느끼는 괴로움이 현실적인 스트레스보다 더 큰 편이거든요.

일이 한창 풀리지 않았을 때도 그런 고집이 있었어요. 내가 실력이 없다면 편법을 써서 기회를 얻어도 어차피 오래 못 갈 것이고, 실력이 있다면 언젠가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죠. 다만 그 기회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 (웃음) 그리고 만약 제가 실력이 없는 거라면 그 사실을 빨리 깨닫기만을 바랐고요. 배우라는 직업이, 연기가 제 존재 목표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제가 행복하게 살기 위한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만약 제가 공부를 했어도, 그 다음을 생각하면 커닝하지 않았을 거예요. 평생을 편법 속에서 살 수는 없잖아요. (웃음)"

편법 속에 살 수 없다는 문태유와 달리, 명준은 편법을 써서라도 사다리를 올라가려 한다. 그래서 소문의 흰 봉투가 실제로 등장했을 때, 반장인 민영과 담임 선생님만 만지는 출석부에서 그 봉투가 나왔을 때 명준은 안도했을 것이다. '서민영도 나와 비슷한 사람이구나' '서민영도 공부가 힘들었구나' '서민영도 편법을 쓰는구나'와 같은 생각들. 명준은 자신이 품는 이 욕망도, 편법을 쓰는 것도 스스로 정당화할 계기를 발견한 것일지 모른다. 그래서 민영이 이 300만 원의 주인이 아님을, 그냥 풀어도 수학 만점을 받는 사람이라는 걸 결코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로 드러났을 때, 그는 굴복하고 그 체제에 편입되는 길을 택한다.

"명준 입장에서 민영을 이길 수 있는 발판을 만드는 건 공부밖에 없어요. 가진 건 공부뿐인데 민영이가 그것마저 다 가졌다는 걸 인정하기 싫겠죠. 격차와 벽은 인정하지만, 그 격차를 넘어설 수 있는 도구까지 뺏기는 걸 인정할 수 없는 거죠. '그냥 풀어도 백점'이라는 말을 인정하는 순간 계급을 만들 게 되죠. 명준이는 신분상승 외에는 다른 데 가치를 두지 않아요. 모든 목적이 그것이고, 이를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도구가 공부죠. 민영이가 한발 앞선 건 사실이지만 언제든지 따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명준이가 그냥 풀었다는 걸 인정하면 그 격차를 줄일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셈이죠.

실제로 연기하다가도 '그냥 풀어도 백점'이라는 말을 들으면 등골이 서늘해요. 예를 들면, 엄청 고생해서 어떻게든 쓰러트려야 할 목표를 만났는데, 상대와는 절대 게임이 되지 않는 상태인 거죠. 자신이 너무 하찮아지는 느낌…. 그래서 서민영이 무서워요. 무서우면서도 그의 편이 되고 싶다는 느낌? 상대를 적으로 돌리는 게 더 이상 현명하지 않다는 걸 느끼고 제 편으로 만들고 싶어하죠. 재시험 이후 명준-수환-종태 셋은 와해되고, 명준은 민영이에게 잘 보이려고 하겠죠. 그 이후로 계속 결혼식까지 이어지겠죠. 아마 명준이는 민영에게 미안하다는 편지도 쓰고, 좋은 CD도 주고 그랬을 것 같아요. 필요에 의해서."

불편함에 대하여

'모범생' 김명준이 된 문태유 지난 6월 8일, 서울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4관에서 열린 연극 <모범생들>의 프레스콜이 열렸다. 1등급이 되고
 싶은 2등급 학생 김명준으로 분한 배우 문태유가 열연하고 있다. 연극 <모범생들>은 외국어고등학교 내에서 일어난 '백색 누아르'를 표방한 극으로, 올해 10주년을 맞이했다.

▲ <모범생들>과의 인연 문태유는 2015년 <모범생들> 오디션에 합격했었다. 하지만 일정 문제로 합류하지 못하고, 대신 이때 눈에 띈 계기로 <로기수>에 합류했다. "대학로에서 제 연기로 뭔가를 전달하게 해준 건 <로기수>였고, <로기수>를 만난 건 <모범생들> 오디션 덕분이었어요. 이 자리를 빌어 <드라큘라>를 함께 했던 이현정 누나에게 감사의 말씀을…. (웃음) 누나가 <모범생들> 추천해주신 덕분에 대학로에서 연기할 수 있었거든요." ⓒ 곽우신


참으로 치열하고, 치졸하다. 명준은 그런 캐릭터이다. 0.3% 안에 드는 사람에게 기생해서라도 3% 안에 들고 싶다. 자신을 친구라고 믿어줬던 종태를 철저하게 이용하고, 이용한 뒤에는 가차 없이 희생양으로 삼는다. 철저하게 악역인 주인공. 이 사회의 어른을 그대로 빼다 박은 이 작은 악마는, 신의 이름을 빌어 '심판'하는 서민영의 모략 앞에 무너지지만 삶의 태도를 반성하거나 개과천선하지 않는다. 작품은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며 보여준다. 권력에 빌붙어 2등이 된 명준. 자기 위의 1명만 인정하면, 자기 아래의 수많은 사람을 짓뭉개도 관계없는 삶을 사는 명준. 그런 명준이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극의 시작을 유서 신으로 시작하면서 명준이라는 캐릭터에게 감정을 떼어 놓고 보지 못하게 연출과 작가가 의도한 거예요. <모범생들>이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개인적으로는 하나, 위로를 얻길 바라요. '아, 나에게도 저런 속물적인 면이 있는데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하며 이 넷을 보고 위로 받으시기를! 그리고 둘, 넷이 저지르는 악에 가까운 행위를 보면서 저것이 악하고 불편하다는 걸 느꼈으면 좋겠어요. 유서 신이나 사과 등을 통해 위로를 받으면서도, 명준을 통해 불편함을, 저것이 살면서 추구하지 말아야 할 가치라는 걸 분명히 느꼈으면….  그걸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악과 편법을 행해서라도 타인을 따라잡는 게 아름다워 보이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이 두 가지가 제가 가장 주목했던 부분이에요.

이전에는 유약하고 위태로운 역할을 많이 했죠. 굳이 말하자면 가해자보다는 피해자의 범주에 속하는? 명준은 이전과는 다른 캐릭터고 뭔가 주도하는 역할이라서 초반에는 불편해하는 분도 있었고요. 퇴근할 때 사인해드리면서 저에게 유도심문을 하시는 분들도 계셨죠. '그래도 명준이가 수환이를 친구로는 생각했던 거죠?'라든가. 그러면 단호하게 '아니요, 친구라고 생각한 적 없어요'라고 답해요. 상처 받는 분도 계시더라고요. (웃음) 받아들이는 건 당연히 관객의 몫이지만 질문을 하신 거에 제가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으니 말씀드리는 게 맞겠죠?

정당화하지 않고 인물을 연기해서 신선하고 새롭게 다가가는 것 같아요. 사실 이런 작품이 의미 있는 이유가 작품을 보고 관객들을 참 불편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삶이 불편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앞으로는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라고 느끼지 않을까요. 이런 부분에서 문화예술이 시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해요. 대안 학교도 많이 생기고, 일반 학교의 입시 위주 교육에 거부감을 느끼는 분들이 늘어나는 것도 좋은 현상이고요."

'모범생' 김명준이 된 문태유 지난 6월 8일, 서울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4관에서 열린 연극 <모범생들>의 프레스콜이 열렸다. 1등급이 되고
 싶은 2등급 학생 김명준으로 분한 배우 문태유가 열연하고 있다. 연극 <모범생들>은 외국어고등학교 내에서 일어난 '백색 누아르'를 표방한 극으로, 올해 10주년을 맞이했다.

▲ 문태유가 만드는 김명준 "모든 작품에서 모든 캐릭터를 잡을 때, 무엇이 이 작품에서 제일 효과적으로 기능하는 역할을 만들 수 있는 접근인지 그 틀을 정하는 게 어려워요. 처음에 정하는 게 모험이거든요. 그대로 연습이 시작되면 다시 바꾸기 어렵기 때문에요. 하지만 제가 이 틀을 밀고 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이후 디렉팅에서 반대를 받은 게 없었거든요. 그래서 확신을 가지고 밀고 갈 수 있었어요. 전 연출진의 말을 믿는 사람이거든요. 보는 사람이 제일 정확해요. 하는 사람은 정당화하기 마련이니까요." ⓒ 곽우신


명준이는 분명 사회적으로 성공했다. 국내 최고 대기업에서 잘 나가는 회계사. 그가 그토록 원하던 삶을 살고 있다. 외제차 딜러가 모나미 펜을 쓴다는 이유로 쿨하게 계약을 거절할 수 있고, 자신은 구하기도 힘든 한정판 펜으로 사인을 하면서. 좋은 옷, 좋은 시계, 좋은 차…. 하지만 관객 중에 그런 명준의 삶을 부러워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모범생들>이 구축한 세계, 이 시대의 반영이기도 한 그 세상 속에서의 성공은 인간적인 면 어딘가를 잘라내 버려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종태를 방패막이로 내세우고 그를 버렸듯이. 명준은 결코 인정하지 않겠지만, 그는 외로운 사람이고, 사실 진짜 행복이나 성공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재시험이 끝나고 욕을 내뱉는 이유도 그런 게 아니었을까.

"재시험 때 민영이는 병원에서 시험을 치지 않았을까요? 명준이는 죽어라고 풀었을 거예요. 아니면 원래 하던 대로 나눠서 시험을 봤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종태가 다른 마음을 먹고 진실을 이야기하면 안 되니까, 다른 말 못하게 하려고 쪽지를 준 거겠죠. 종태는 반성문 때부터 명준이가 자신의 친구가 아님을 깨달았기에 쪽지를 먹은 거고요. 명준이하고 수환은 시험 잘 봤을 걸요?

결말 신에 저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봐요. 제 입장에서는 관계의 단절? 다른 명준들은 어떤 마음으로 욕을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리 목표가 있는 사람이라도 완벽히 혼자가 되면 정말 외롭지 않을까 해요. 삶의 회환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관객들에게도 씁쓸하게 다가는 것 아닌가 싶어요. 마지막에 책상을 비추는 조명이 하나씩 꺼지잖아요? 욕심과 목표만 가득 찬 사회인이 주변 인물들과 단절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만약 극의 등장인물이 더 많았다면 모든 인물이 나온 채로 불이 하나씩 꺼지는 식으로 표현되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민영이 결혼식 때도 친구 하나 없이 왔다가 오랜만에 수환과 종태를 만나는 그런 상황이 안됐기도 해요."

문명준(문태유+김명준)이 내뱉는 욕은 외로움에서 나온 욕이었다. 그렇다고 삶의 태도를 바꾸지는 않는다. 그는 괴물이 되는 길을 택했고, 그렇게 괴물로 성장했다. <모범생들>의 엔딩에서 좌우에 진열된 가면들은 마치 그를 조소하는 것 같다. 텅 빈 채로, 억지로 웃고 있는 사람들. 진심으로 민영의 결혼을 축하하는 사람은 없다.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각자가 원하는 게 있기에 찾아왔을 뿐이다. <모범생들>의 마지막은 이처럼 쓰지만, 아직 배우로서 엔딩을 보려면 많고 많은 시간이 남아 있는 문태유의 끝은 많이 다를 것 같다.

"사실 두렵기도 해요. 연기라는 게 객관적인 평가가 있는 게 아닌 일이기 때문에…. 저는 원래부터 저였는데, 몇 년 전에는 아무도 절 모르셨어요. 인기라는 건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굉장히 두렵죠. 잊히는 것도 순식간이기에…. 공연 중 대사를 절거나 낮은 퀄리티의 공연을 보여주면, 한 두 번이야 용서가 되겠지만 그게 계속 쌓이면 아마 순식간에 관객들에게 잊힐 거예요.

저를 캐스팅하는 건 관객이라고 생각해요. 제작사들은 관객의 생각을 염두하고 캐스팅하잖아요. 관객이야말로 제 사장님이죠. 제가 이 직업을 가지면서 다행인 부분이에요. 제 연기로 감동과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대상이 저의 고용주라는 게 참 좋아요. (웃음) 정직한 구조라고 생각해요. 편법을 아예 쓸 수 없는 구조는 아니지만, 쓴다고 하더라도 얼마 가지 않으니까요. 관객은 냉정하거든요. 치킨 2만 원에 온 국민이 난리였는데, 티켓 값을 생각하면 관객에게 감동을 주지 않을 수가 없죠. 관객이 가장 먼저 알아볼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대에 설 때는 항상 떨려요. 매 작품, 매 회차가 오디션 같아요."

문태유의 김명준, 문명준 29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연극 <모범생들>에 출연 중인 배우 문태유를 만났다. 지이선 작가와 김태형 연출의 첫 만남으로 유명한 <모범생들>은 올해 10주년을 맞은 작품으로 외국어고등학교 내에서 일어나는 모범생들 사이의 치졸하고 비열한 일련의 사건들을 그린다. 문태유는 김명준 역으로 분해 열연한다. 사진 촬영을 본격적으로 하려던 찰나 카메라가 갑자기 고장나는 불상사가 생겨버렸다.

▲ 다시 만나는 그때까지 "다작이라고 하셨는데,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는 마음으로 한 적은 없어요. (웃음) 정말 놓치고 싶지 않은 작품들이 어쩌다보니까 연속으로 들어와서 바빴는데…. 사실 그렇게 바빴던 것도 아닌데…. <모범생들> 끝나면 가을에는 좀 쉬고, 겨울에 돌아올 것 같아요." ⓒ 곽우신



모범생들 문태유 문명준 김명준 이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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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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