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이 글에는 영화 <내 사랑>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사랑을 하면 변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서열을 알려줄게. 나, 개, 닭, 그 다음에 당신이야"라고 소리치던 남자가 "날 떠나지마. 왜냐하면 당신은 나보다 나은 사람이니까"라고 속삭인다. 

지난 13일 캐나다의 화가 모드 루이스(1903~1970)와 그녀의 남편 에버렛의 사랑과 예술을 담은 영화 <내 사랑>이 개봉했다. 에이슬링 월쉬가 감독을 맡고, 에단 호크와 샐리 호킨스가 남녀 주인공으로 케미를 선사했다. 아름다운 자연 풍경과 막대사탕처럼 알록달록 사랑스런 그림 구경은 말할 것도 없고.

영화는 어눌한 손놀림으로 힘겹게 붓을 잡고 벽에 꽃 그림을 그리는, 할머니 모드 루이스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이어서 왜소한 체격에 절뚝거리는 젊은 모드 다울리로 바뀌면서, 두 남녀가 만나고 함께 살아가는 모습들을 잔잔한 감동으로 보여준다. 말미에는 실제로 생전 방송에 출연한 부부도 만날 수 있다. 

영화 <내 사랑> 포스터 극중에서 모드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담은 포스터이다. 모드는 물감 그 자체를 붓에 그대로 묻혀 자신이 본 세상을 아기자기한 감성으로 표현했다.

▲ 영화 <내 사랑> 포스터 극중에서 모드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담은 포스터이다. 모드는 물감 그 자체를 붓에 그대로 묻혀 자신이 본 세상을 아기자기한 감성으로 표현했다. ⓒ 오드


모드 다울리는 괜찮은 집안 출신에 오빠보다 공부도 잘했지만,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집안에서 주로 지내야만 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같이 살게 된 숙모는 부족함이 많다며 30대인 그녀를 어린애처럼 대했지만, 정작 그녀는 몰래 클럽에 가서 즐기는 대범함을 가졌다. 어느 날, 오빠 찰스가 찾아와 어머니의 유산으로 받은 집을 팔았으니 떠나라고 통보한다. 이에 독립을 결심한 그녀는 동네 식료품점에서 생선장수가 주인을 통해 작성한 가정부 구인광고문을 들고 무작정 그에게 간다.

에버렛 루이스는 고아원 출신으로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했지만, 강건한 몸과 근면한 정신으로 홀로 험난한 세상과 맞서 온 중년 남성. 장작패기, 고아원 허드렛일, 생선장수로 일하며 조그마한 집도 장만했지만, 일에 치여 사는 데다 버럭 성질이라 다가오는 여자가 없다. 그래서 가정부라도 구하려 했더니, 유일하게 온 여자는 절음발이에 체격도 작아 도무지 신통찮아 보인다. 그런데 이 여자, 담배를 꺼내 피면서 "여자 다섯 명 정도의 일을 할 수 있어요" "당신은 내가 필요해요"라고 당돌하게 말한다.

그렇게 둘은 한집에서 살게 된다. 워낙 작은 집이라 2층에 있는 침대 하나에서 같이 자야 했다. 진짜 잠만 자건만, 길에서 만난 숙모는 주위에서 '에버렛의 성노예'라 부른다며, 그녀가 집안 망신을 시킨다고 화를 낸다. 하지만 그녀는 혼자 낄낄거리며 웃을 뿐이다.

모드와 에버렛의 집 모드는 먼지가 쌓이고 황량하던 집에 알록달록 귀여운 그림을 그려 예쁘게 꾸며갔다. 이 집은 그녀와 에버렛의 거주공간이자 그녀가 작업하는 화실이었다. 또한 집 자체가 그녀에겐 그림을 그리는 캔버스였다.

▲ 모드와 에버렛의 집 모드는 먼지가 쌓이고 황량하던 집에 알록달록 귀여운 그림을 그려 예쁘게 꾸며갔다. 이 집은 그녀와 에버렛의 거주공간이자 그녀가 작업하는 화실이었다. 또한 집 자체가 그녀에겐 그림을 그리는 캔버스였다. ⓒ 오드


모드는 시간이 날 때마다 그림을 그려 집을 꾸몄다. 에버렛은 그림이 새인지 요정인지도 구분도 못했지만, 그리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뉴욕에서 왔다는 산드라가 생선 배달이 잘못 되었다며 따지러 집을 방문한다. 그녀는 그림에 감탄하며, 자투리 종이와 판자에 그린 그림을 사겠다고 제안한다. 이에 모드와 에버렛은 그림도 돈벌이가 됨을 깨닫게 된다. 점점 그녀의 그림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자 아예 집 앞 길에 그림을 판다고 안내판도 둔다.

먼지투성이에 황량하던 집은 점차 꽃과 새, 개, 닭 그림 등으로 아기자기하게 변해갔다. 그리고 에버렛의 마음에 모드가 차지하는 공간도 늘었다. 처음엔 그녀를 집에서 키우는 닭 다음 서열일 정도로 무시하던 그에게 변화가 왔다. 고용주와 가정부라는 갑을관계는 서서히 평등한 연인관계로 바뀌었다.

돈이 든다는 이유로 결혼을 꺼리는 에버렛을 고려하여, 지인 부부 한 쌍만 초대한 아주 소박한 결혼식을 올린다. 신혼여행은 비록 식을 올린 고아원에서 신랑이 끄는 생선 싣는 수레에 신부가 걸터앉아 집까지 오는 길일 뿐이지만, 그녀는 가장 환하게 웃고 있다.

영화 <내 사랑>의 스틸컷 영화 <내 사랑>의 포스터에도 담긴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다. 결혼식을 마친 신혼부부는  곧장 집으로 향하는데, 이 부부에게는 그 길이 신혼여행이라 할 수 있다. 예전에 모드는 가정부 신분으로 에버렛이 끄는 수레 뒤를 따라 걸어갔으나, 이제 아내로서 수레에 앉아 활짝 웃고 있다.

▲ 영화 <내 사랑>의 스틸컷 영화 <내 사랑>의 포스터에도 담긴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다. 결혼식을 마친 신혼부부는 곧장 집으로 향하는데, 이 부부에게는 그 길이 신혼여행이라 할 수 있다. 예전에 모드는 가정부 신분으로 에버렛이 끄는 수레 뒤를 따라 걸어갔으나, 이제 아내로서 수레에 앉아 활짝 웃고 있다. ⓒ 오드


첫날밤, 그녀의 자그마한 맨발이 커다란 그의 구두 위에 살포시 올라간 채 둘은 춤을 춘다. "낡은 양말 한 쌍처럼 살자"고 그녀가 말하자, 그는 "한 짝은 다 늘어나고, 한 짝은 구멍난..."이라 대답한다. 이에 "하얀 면양말"이라고 말하는 그녀에게, 그가 미소 지으며 나지막하게 속삭인다. "당신은 감청색이나 카나리아 색깔의 양말."

훗날 모드는 이름이 널리 알려져 그녀의 그림을 보러 온 사람들로 온종일 집안이 북적거렸고, 부통령이 그녀의 그림을 사기도 했다. 그러던 중 그림을 사겠다며 오빠가 그들의 집이자 화실에 나타났다. 그녀는 5달러에 판다고 했던 그림을 곧장 6달러로 올려 받으며 똑똑한 척 하던 오빠에게 시원하게 한 방 날린다. 한편, 임종을 앞둔 숙모는 그녀에게 숨겨둔 비밀을 알려준다.

모드와 에버렛. 그들의 사랑은 색깔도 길이도 다른, 낡은 짝짝이 양말 한 쌍을 닮았다. 오히려 그 다름이 있기에 동일한 양말 한 쌍이 갖는 따분함이 사라졌다. 그리고 내 발에 맞춰 늘어나 있어서 새 양말처럼 발목과 발가락을 조이지도 않는다. 또한 낡아서 부드러운 촉감에 익숙한 냄새. 따스하다. 편안하면서  멋스런 그들의 사랑은, 세상 사람들에게 부족하게만 보였던 그들을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죽음을 앞둔 숙모는 모드에게 고백한다. "우리 집안에서 네가 유일하게 행복하구나."     

내 사랑 모드 루이스 영화 감상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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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어로 '좋아할, 호', '낭만, 랑',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이'를 써서 호랑이. 호랑이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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