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 힐만 감독이 이끄는 SK 와이번스는 2017시즌 전반기를 3위(48승 1무 39패, 승률 .552) 라는 준수한 성적으로 마감했다. 낯선 KBO리그에서 처음으로 도전하는 외국인 감독을 기대반 우려반으로 바라보던 전문가와 팬들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호성적이었다.

SK는 올시즌 토종 에이스 김광현이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한데다, 개막전부터 충격의 6연패를 당하며 최악의 출발을 보였다. 하지만 연패를 탈출하자마자 연이은 연승 행진으로 금세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왔다. -6으로 출발했던 승패 마진을 전반기가 끝날 때까지 +9까지 끌어올리는 저력을 보여줬다.

지난 시즌보다도 페이스가 좋다. 2016년 SK는 전반기 43승42패(승률 0.506)로 4위였다. 3위였던 넥센과도 무려 5.5경기 차이로 격차가 컸다. 올해는 2위 NC와 단 2게임 차이밖에 나지 않아서 후반기에는 플레이오프 직행까지 노려볼만하다.

올시즌 SK의 팀컬러는 '홈런'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SK는 전반기에만 무려 153개의 팀 홈런을 기록하며 압도적인 전체 1위에 이름을 올렸다. 세 자릿수 홈런을 돌파한 팀은 SK가 유일하며 공동 2위 두산·기아(99개)와도 무려 54개나 차이가 난다. SK는 전반기 두 자릿수 홈런을 돌파한 선수만 6명이나 된다. 나란히 최다 홈런 1,2위로 '집안 경쟁'을 펼치고있는 최정(31개)·한동민(26개) 두 선수가 합작한 홈런 숫자만 해도 이 부문 최하위 LG(55개)의 팀홈런보다 더 많고 9위 KT(57개)와는 맞먹는다.

이밖에 백업포수 이홍구도 9개로 곧 두자릿수 홈런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고, 박정권(7개), 이재원·정의윤(5개) 등도 언제든 한 방을 날릴 수 있는 타자들도 구성되어 있다. 투수입장에서는 1번부터 9번타자까지 모두 장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타자들이다.

SK는 후반기 61개의 홈런만 추가하면 KBO 역대 한 시즌 최다 팀홈런 기록인 2003년 삼성의 213개)를 뛰어넘어 신기록을 달성하게 된다. 현재 SK의 페이스를 감안하면 최대 250개 이상의 홈런도 충분히 가능하다.

다만 지나친 홈런 의존도는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홈런을 제외하면 SK의 팀타율(.265),  득점권 타율(.272), 도루(30개) 등에서 모두 꼴찌에 그치고 있으며  출루율(.342)도 8위에 불과하다. 역대급 홈런 페이스를 감안하면 정교함과 다양성 면에서 아쉬운 부분이 많다. 장타 의존도가 기형적으로 높다보니 홈런이 안터지는 경기에서는 득점루트가 단조로워지는 약점도 뚜렷하다. 많은 홈런과 비례하여 SK는 삼진(663개)도 압도적인 리그 1위다.

하지만 전반기 SK의 땅볼/뜬공 비율은 0.92로 두 번째로 낮았고 병살타 역시 61개로 삼성(60개)과 불과 한 개밖에 차이가 나지않는 두 번째 최소 기록이었다. 주축 타자들 대부분이 큰 부상이나 슬럼프없이 꾸준한 컨디션을 보이며 SK는 홈런만으로도 충분히 상대팀을 괴롭힐수 있었다.

홈런쇼에 가려졌지만 든든한 선발야구도 SK의 상승세를 이끈 한 축이다. 메릴 켈리, 스콧 다이아몬드, 윤희상, 문승원, 박종훈으로 이어지는 안정적인 5인 선발 로테이션이 자리를 잡으며 김광현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선방하고 있다. 전반기 SK의 페이스가 가장 좋았던 6월(17승 9패)에는 26경기에서 4.23의 팀 자책점으로 월별 전체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선발에 비하여 불펜진은 아쉬웠다. SK 선발 투수들의 평균자책점은 4.36으로 리그 3위지만 불펜은 5.39로 7위다. 시즌 초 마무리로 낙점된 서진용이 극도의 부진으로 블론세이브를 남발하며 보직에서 해임됐고, 대신 마무리로 복귀한 박희수도 부상이 겹치며 고전했다.

박정배의 선전이 위안이었지만 전반적인 필승조의 안정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SK는 올스타 휴식기를 앞두고 7월 5승 6패에 그치며 전반기 마무리가 아쉬웠다. 불펜이 연달아 무너지며 7월 팀자책점이 7.76으로 치솟은 게 뼈아팠다. SK는 전반기에만 무려 17번의 역전패를 허용했다.

그래도 SK의 전반기 가장 큰 수확은 '힐만 리더십'과 '프런트야구'의 안정적인 조화를 꼽을수 있다. 제리 로이스터 전 롯데 감독에 이어 KBO 역사상 두 번째로 등장한 외국인 사령탑인 힐만 감독은 긍정의 리더십과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비교적 짧은 기간에 SK 야구의 색깔을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각에서 우려했던 감독 출신 염경엽 단장이 이끄는 프런트와의 협업에서도 별다른 잡음이 없었다.

메이저리그와 일본야구를 두루 경험한 베테랑 지도자 답게 힐만 감독은 구단의 역할과 플랜을 존중하면서도 자기만의 색깔을 녹여내는 '조율형 리더십'을 보여줬다. 2스트라이크 이후에도 타자들에게 삼진을 두려워하지 말고 공격적인 배팅을 주문하며 자신감을 일깨워주고, 넘쳐나는 야수 자원들을 적절한 로테이션을 통하여 선수단의 효율성을 극대하하는가 하면, 팬들에게도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다가가는 등 열린 행보로 경기장 안팎에서 호평을 받았다. 메이저리그 스타일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아시아 야구도 경험해본 감독답게 필요할 때는 적극적인 작전구사나 수비시프트도 주저하지 않는 유연한 모습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후반기를 앞두고 힐만 감독이  KBO 외국인 감독 신드롬의 원조인 로이스터의 데뷔 첫해 성적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로이스터 감독은 롯데에서 첫 시즌인 2008시즌 69승 57패(.548), 3위를 기록하며 8년만의 가을야구로 이끌며 신드롬을 일으킨 바 있다. 전반기 성적은 46승 46패로 간신히 5할승률을 맞추며 4위를 기록했지만 후반기에만 23승 11패로 반등했다. 전반기 성적만 놓고보면 힐만 감독의 출발이 더 좋았다.

로이스터 감독은 롯데에서 지휘봉을 잡은 3년간 항상 정규리그 후반기에 더 강한 모습을 보이며 팀을 가을야구로 이끌었다. 하지만 정작 단기전인 포스트시즌에는 한계를 드러내며 3년연속 준플레이오프 스윕패를 당하며 결국 재계약에는 실패했다. SK에서 장기적으로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힐만 감독이 로이스터의 한계마저 뛰어넘으며 KBO에 외국인 감독의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을지 기대되는 후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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