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 라이더>

<싱글 라이더> ⓒ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올해 2월 개봉한 <싱글 라이더>는 이병헌과 공효진이 출연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많은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다. 신인 이주영 감독의 데뷔작이었고, 톱스타 이병헌이 시나리오를 보고 출연을 결정했다는 사실에 많은 영화팬들의 기대를 모았다. <밀정> 이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가 두 번째로 제작한 한국 영화라는 사실은 덤이었다.

그런데 흥행 성적은 참담했다. 손익분기점이 150만 명이었으나, 총 관객 수는 35만에 그쳤다. 흥행을 하지 못 했다고 해서 '안 좋은 영화'라고 단정 지어서도 안 된다. 지난 상반기를 돌아보는 요즈음, 올해 가장 저평가된 영화는 <싱글 라이더>라고 생각했다.

길 잃은 사람들을 비추다

 <싱글 라이더> 중

<싱글 라이더> 중 ⓒ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주인공 재훈(이병헌)은 극중에서 단 한 번도 편히 쉬지 못하고 정처 없이 길을 걷고 있다. 한 여름인데도 검은 양복을 입고 군중 사이를 돌아다니는 그는 분명 이방인이다. 재훈은 가족의 행복을 위해 아내와 아들을 호주로 보낸 가장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 속에서 그는 가족을 향해 다가가지 못한다. 주인공인데도 주체가 되지 못하고 서성인다. 가족을 보기 위해 무작정 호주로 떠났다. 재훈은 시드니의 메리 스트리트를 걷다가 낯선 아주머니를 만난다. 재훈은 그녀에게 자신의 상황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

"I'm lost" (길을 잃었어요.)

그렇다. 이 이방인은 길을 잃었다. 대사처럼, 영화는 길 잃은 삶들을 내리 비추고 있다. 완벽하다고 믿어왔던 것이 붕괴되고, 마지막에 기댈 수 있는 유대마저 그 자리에 없을 때 인간의 삶에는 허무만 남는다. 내가 '나의 인생'에서 주변인이 되고 마는 것이다. 재훈은 시종일관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다가 어느 시점부터는 홍수처럼 감정을 쏟아낸다. 이 영화를 자신의 '인생 영화'라고 정의한 이병헌의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재훈과 함께 길을 헤매는 '워홀러' (워킹홀리데이를 하는 사람) 지나(안소희) 역시 울림을 주는 캐릭터다. 안소희의 연기력을 언급하며 간혹 '다 된 영화에 소희 뿌리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결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소희를 좋은 연기자라고 말하기에는 주저하게 된다. 그녀의 오열은 베테랑 배우들에 비하면 서툴러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 서툶이 오히려 지나라는 캐릭터에 더 어울린다.

지나는 참으로 '서툰 사람'이기 때문이다. 보장받지 못한 미래를 바라보며 죽어라 일했다. 그러나 세상 물정을 잘 모른다. 약삭빠르지 못해서 2년 동안 일해서 모은 돈을 다 잃는다. "새벽 5시에 버스를 타보면은요, 게을러서 가난하다는 말. 그거 진짜 다 개소리거든요" 라는 지나의 대사는 지나치게 현실적이라서 아프다.

빈 틈의 영화

 <싱글 라이더> 중

<싱글 라이더> 중 ⓒ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캐릭터만 보면 많은 관객들이 괘씸하다고 말하겠지만, 공효진이 연기한 수진은 극중에서 가장 행복해 보인다. 그녀는 한국에서는 가정을 위해 바이올린을 팽개치고 살았다. 그리고 호주에서 그 바이올린을 다시 집었을 때 그녀는 다시 자신이 누군지를 알게 된다. 수진은 결혼과 육아에 자신의 삶을 종속시킨 수많은 여성들을 대변한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나'를 위해 무엇을 포기했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영화는 관객의 경험과 만났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아버지에게, 어머니에게, 한국 여성에게, 학생에게, 취준생에게.. 저마다의 렌즈를 통해 싱글라이더는 굴절되고 반사될 것이다.

영화를 보다가 조금 울었다. 이 영화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다가갈지 궁금하다. 사실 재미있는 영화를 찾는 사람들이라면 싱글 라이더를 추천하지 않는다. 결말 부분을 제외하면 자극적인 요소라곤 찾아볼 수 없다. 이 영화는 느린 호흡으로, 강물처럼 천천히 흘러가는 이야기다. 그러나 느리기에 더 남는 것이 많다. 생각할 틈이 많기 때문이다. 영화의 먹먹한 정서가 마음에서 소용돌이친다. 나는 이 먹먹함에 사로잡혀 엔딩 크레딧이 다 내려갈 때까지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사실 이 영화 막판에 등장하는 반전은 영화 전체적인 흐름과 조응하지 않는다. 반전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았다면, 이 영화는 더욱 좋은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생각해보면 재훈도, 지나도, 결국 행복을 위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삶 속의 모든 선택들은 곧 무언가에 대한 포기이기도 하다. <싱글 라이더>는 그 선택의 과정에서 길을 잃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영화다. 나의 삶에 때가 많이 끼었을 때 이 영화를 다시 본다면 또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영화가 시작할 때 고은 선생의 시 '그 꽃'이 잠시 화면에 등장한다. 영화관을 나설 때, 이 시가 다시 머릿속에 떠올랐다. '지금 우리가 놓치고 있는 꽃은 무엇일까?' 이 질문을 한 번이라도 던질 수 있다면, 97분의 러닝타임이 헛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 꽃/고은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보았던
그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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