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 홈커밍> 포스터

▲ <스파이더맨: 홈커밍> 포스터 ⓒ 소니 픽쳐스


온 세상이 스파이더맨에 환호하는 듯하다. 마블의 본고장 북미는 물론 태평양 건너 아시아에서도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스파이더맨: 홈커밍>은 한국에서도 600만 관객을 훌쩍 넘겼다. 올해 1월 개봉한 <공조>에 이어 2017년 관객 수 2위의 기록이며 흥행속도로는 범접할 수 없는 독보적 1위다. 손익분기점 역시 넘어선 지 오래다.

다음 주부터 줄줄이 개봉하는 크리스토퍼 놀런의 <덩케르크>, 류승완의 <군함도>, 장훈의 <택시운전사>가 강력한 경쟁작이 되겠으나 <홈커밍>이 올 한 해 가장 흥행한 작품 가운데 한 편이 되리라는 데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시리즈와 마크 웹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500만 관객을 한 차례도 넘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리즈 가운데 최고의 기대를 받고 출발한 작품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홈커밍>의 뜨거운 인기는 상당부분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MCU: 한 편의 영화를 넘어 마블코믹스 전체 캐릭터들이 이루는 세계관)에 힘입은 바 크다. 실제 영화는 오프닝에서부터 <어벤져스>와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의 유산을 꺼내놓길 주저하지 않는다.

어벤져스와 치타우리족 간의 전투로 파괴된 시가지에서 피해를 복구하는 업체가 등장하는 장면이 그렇고, 피터 파커가 <시빌 워>에서의 활약까지를 직접 홈비디오 형식으로 촬영한 부분이 그렇다. 이쯤 되면 <홈커밍>이 독립된 영화가 아니라 TV 드라마의 한 편 정도로 여겨질 정도다.

심지어 영화는 <시빌 워>에서 피터 파커(스파이더맨/톰 홀랜드 분)와 인연을 맺은 아이언맨이 그를 멀리서 지켜본다는 설정으로 전개된다. 아직 미숙한 피터가 조바심에 거리로 나서 위험한 상황에 끼여 들면 어디선가 아이언맨이 나타나 뒷수습을 하는 식이다. 평단에서 흔히 말하는 유사 부자의 구도로 MCU에서 마지막 영화를 찍고 떠날 것으로 보이는 캐릭터 아이언맨이 MCU의 새 시대를 열 스파이더맨에게 바통을 넘기는 세대교체의 순간인 듯도 하다.

묘하게 마음이 쓰이는 악역

<스파이더맨: 홈커밍> 히어로에 대항하는 반영웅적 악역 벌처를 연기한 마이클 키튼. 과거 배트맨을 연기한 그가 마블 영웅에 맞서는 악역을 연기했다는 건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그에게 빼놓을 수 없는 작품 <버드맨> 속 캐릭터를 연상시키는 외양의 캐릭터란 점도.

▲ <스파이더맨: 홈커밍> 히어로에 대항하는 반영웅적 악역 벌처를 연기한 마이클 키튼. 과거 배트맨을 연기한 그가 마블 영웅에 맞서는 악역을 연기했다는 건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그에게 빼놓을 수 없는 작품 <버드맨> 속 캐릭터를 연상시키는 외양의 캐릭터란 점도. ⓒ 소니 픽쳐스


영화에서 스파이더맨은 몇 차례 시행착오 끝에 저 스스로가 가진 가능성을 깨닫는다. 그는 역경 속에서 이제껏 아이언맨이 겪고 배웠을 것들, 그러니까 힘에 따른 책임과 선택의 무게를 차츰 알아간다.

좀도둑과 강도를 잡으며 동네 영웅으로 소소하게 활약하다 외계물질로 만든 무기를 밀매하는 전국구 악당 벌처(마이클 키튼 분)와 상대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과정은 아이를 어른으로 성장시키는데 충분한 자양분이 되어준다. <홈커밍>의 마지막 장면에서 슈트를 입은 피터가 영화가 시작할 때의 그와는 전혀 다른 인물로 보이는 이유다.

한편 피터의 반대편에 선 벌처는 묘한 공감을 자아내는 인물이다. 불법으로 무기를 제조해 돈을 벌고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물건을 탈취하려는 계획까지 품고 있지만 그 출발이 정의의 편에 선 히어로들보다 우리의 모습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영화 초반부 그는 폐기물 처리업체 사장으로 <어벤져스> 뉴욕 대전투 이후 남겨진 외계물질을 처리하는 사업권을 따내 일에 열중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벌처 앞에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분)가 지원하는 기관 데미지 컨트롤 직원들이 나타나 사업장에서 빠져줄 것을 요구한다. 우주에서 온 모든 물질을 그들이 차지하겠다는 것이다.

벌처는 사업권을 정당하게 따냈고 이 사업에 자신은 물론 직원들과 그 가족의 삶이 달려있다고 호소하지만 데미지 컨트롤은 이를 묵살하고 벌처와 그 직원들을 현장에서 쫓아낸다. 일생일대의 기회라고 판단해 빚까지 져가며 장비를 구입한 그의 사업은 그대로 고꾸라질 밖에 도리가 없다. 벌처가 토니 스타크와 그의 기업에 원한을 품었을 건 자명한 일이다.

그래서일까. 벌처는 동료들과 함께 작업현장에서 빼돌린 외계물질로 무기를 만들어 팔기 시작한다. 당연히 불법이지만 합법적인 일을 할 때도 토니 스타크와 어벤져스의 세상이 그를 막아서지 않았는가.

히어로가 지키는 건 히어로의 세상

<스파이더맨: 홈커밍> 갈라진 유람선 사이에 매달려 배의 침몰을 막고 있는 스파이더맨(톰 홀랜드 분). 양 팔을 벌리고 괴로워하는 모습이, 그 뒤에 펼쳐진 재앙과 같은 순간이 마치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듯하다.

▲ <스파이더맨: 홈커밍> 갈라진 유람선 사이에 매달려 배의 침몰을 막고 있는 스파이더맨(톰 홀랜드 분). 양 팔을 벌리고 괴로워하는 모습이, 그 뒤에 펼쳐진 재앙과 같은 순간이 마치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듯하다. ⓒ 소니 픽쳐스


벌처는 동료들에게 "세상이 변하고 있다. 우리도 변해야 해"하고 말한다. 그가 볼 때 세상은 이미 어벤져스와 같은 능력자들의 것이다. 그들이 아니라면 토니 스타크와 같은 돈 많은 이들의 것일 테고. 그의 눈에는 아무리 올바르게 살고 정당하게 사업권을 따낸다 해도 토니 스타크와 같은 이들이 원한다면 자리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게 세상의 규칙이다. 이제껏 나온 MCU 영화들을 되짚어 봐도 크게 틀리지 않은 판단이다.

벌처는 스스로 강해지고자 한다. 피터처럼 기연을 만나 남다른 능력을 가질 수도 없고 토니처럼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지도 못했으나 스스로의 노력과 능력으로 세상의 주역으로 당당히 서겠다는 꿈을 품는다. 좋은 남편, 좋은 아빠, 좋은 동료이고자 했던 그에게 범죄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과연 벌처에게 다른 길이 있었을까. 벌처의 말처럼 남이 먹고 남긴 부스러기만 주워 먹는 길과 기존 질서에 대항하는 길만이 그 앞에 펼쳐져 있었던 게 아닐까.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아이언맨과 스파이더맨에 환호하지만 우리는 그들과 같아질 수 없음을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아이언맨과 스파이더맨 같은 이들이 자기들끼리 치고 받고 다시 봉합하는 세상 가운데 나와 같은 평범한 시민은 도움 받고 구해지며 박수치는 수동적인 존재로만 등장하지 않는가 말이다.

<홈커밍>과 MCU를 공유하는 많은 히어로물은 영화 밖에서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과시한다. 천문학적인 제작비를 들여 어렵지 않게 본전을 뽑아내는 이들 영화를 보고 있자면 영화 속 거리에서 히어로들의 활약을 지켜보는 군중 가운데 한 명이 된 듯 한 기분이 들 정도다.

<홈커밍>이 한국에서 개봉 첫 날 차지한 스크린 수는 1703개다. 한국 모든 극장의 스크린 수가 2500여개 정도니 단 한 편의 영화가 한국 전체 스크린 셋 가운데 둘을 차지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말 없이 따를 것인가, 힘을 다해 저항할 것인가

<스파이더맨: 홈커밍> 영화는 MCU에서 빼놓을 수 없는 두 캐릭터, 아이언맨과 스파이더맨의 관계에 집중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보라. 능력을 가진 유사부자 뒤를 쓸쓸히 따르는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 <스파이더맨: 홈커밍> 영화는 MCU에서 빼놓을 수 없는 두 캐릭터, 아이언맨과 스파이더맨의 관계에 집중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보라. 능력을 가진 유사부자 뒤를 쓸쓸히 따르는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 소니 픽쳐스


혹자는 "그래서 뭐가 문제냐"하고 물을지 모르겠다. 다른 많은 마블 영화가 그렇듯 <홈 커밍> 역시 호평 속에 흥행하고 있고 다른 어느 영화도 감히 그 앞을 가로 막을 엄두를 내지 못하는데 말이다.

하지만 가공할 흥행행진 저편에서 적은 스크린을 놓고 고군분투하는 작은 영화들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몹시 불편해진다. 갈라진 유람선에서 위기에 처한 승객들을 구하는 게 아이언맨과 스파이더맨 같은 영웅뿐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관객들의 무신경함에 화가 난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째서 배에 타고 있었을 수십 명의 승무원은 단 한 장면조차 허락받지 못하는 건지. 왜 히어로가 아닌 존재들은, 그러니까 FBI와 경찰 배지를 가슴에 단 이들은 질서의 회복에 자그마한 기여조차 할 수 없는 것인지. 어째서 나는 거대한 스크린 앞에서 무방비로 이런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이따위 물음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 것이다.

마블은 오늘도 전 세계 스크린 위에서 자기들끼리 싸우고 부수고 그 위에 다시 세상을 창조하는 축제를 벌이고 있다. 어벤져스가 될 수 없는 우리는 그 곁에서 여전히 박수치는 대중으로 남을 것을 요구받고 있다. 빌런이 되거나 이름 없는 대중으로 남거나 선택을 강요받는 MCU 속 시민들처럼 극장 앞에 선 우리도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지 모르겠다.

철거현장에서 데미지 컨트롤을 만난다면 나는 과연 벌처가 될까 돌아서서 부스러기를 찾아 헤매일까.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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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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