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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범

박재범 ⓒ AOMG


8년 전, 박재범이 쫓겨나듯 한국을 떠났을 때 지금의 상황을 예상한 사람은 몇이나 됐을까? 현재 박재범은 힙합 레이블 AOMG의 수장이며, 전문가들에 의해 '올해의 음악인'으로 인정받은 뮤지션이다. <쇼미더머니>에서는 심사위원으로서 쟁쟁한 래퍼들을 평가하고 있기도 하다. R&B 보컬로서, 그리고 힙합 뮤지션으로서 각자의 영역을 마련했다. 지금 한국에서 그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 뮤지션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무소속이 된 박재범이 처음 힙합 음악에 몸을 던진다고 했을 때만 해도, 그에 대한 의심섞인 시선은 적지 않았다. 그가 인기 좋은 아이돌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열심히 믹스테이프들을 녹음하고, < Take A Deeper Look > < New Breed > 등 괜찮은 작품들을 내놓았지만 그에 대한 물음표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대형 기획사인 싸이더스HQ와의 계약을 마친 그는 또 다른 대형 기획사로 향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사장이 되었다. 사이먼디와 함께 AOMG를 설립한 것이다. <불후의 명곡> 무대를 준비하면서 만난 프로듀서 그레이(GRAY)를 영입했고, <쇼미더머니>의 우승자였으나 정착하지 못했던 로꼬를 영입하는 등 레이블의 크기를 키워 나갔다. (박재범은 로꼬에 대한 신뢰의 의미로 빚청산을 하라며 2억을 빌려주기도 했다.) 박재범을 따라 다니던 팬들은 자연스레 AOMG의 팬이 되었다. 즉, 박재범이 힙합 공연 시장의 규모 자체를 키우는 데 크게 공헌했다고도 볼 수 있겠다.

"꾸준하되, 잘 해야 한다"

2015년 발표된 < Worldwide > 앨범은 박재범의 커리어에 있어 가장 중요한 앨범 중 하나다. 사실 앨범으로서의 흐름을 두고 보자면 아쉬움이 남는다. 자수성가를 과시하는 'Don't Try Me'와 '몸매' 사이에 달달한 'My Last'가 껴 있다는 것은 조금 뜬금없지 않은가. 그래도 이 앨범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힙합적인 문법이다. 이 앨범에서 그는 시종일관 '명분있는 성공'을 강조하고 있다. 약점이었던 한국어 랩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일리네어와 하이라이트 레코즈, 저스트뮤직 등 레이블을 가리지 않는 27명의 피처링진은 더 없이 화려했다. < Worldwide >는 한국 힙합의 '단일화'(!)라고 할 만 했다. 단순히 친분 자랑이 아니라, 박재범이 힙합신에서 얼마나 인정을 받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 앨범 이후, 아이돌이라는 과거를 언급하는 힙합 팬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우린 절대 지름길을 택하지 않았어
우리 자존심은 INDEPENDENT
나 좋아해 줄 필요 없어 내 음악 들을 필요 없어
인정할 건 인정해 Respect 할 수밖에 없는 Hustle"

- 박재범, 'Worldwide' 중

 박재범의 정규 4집 < Everything You Wanted >

박재범의 정규 4집 < Everything You Wanted > ⓒ AOMG


박재범을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악인'으로 만든 정규 4집 < Everything You Wanted >는 커리어의 정점에 있다. '당신이 원한 모든 것'이라는 제목처럼 R&B를 기반으로, 다양한 사운드를 선보인 작품이다. 이 앨범에서 박재범은 본토 R&B신과 비교해도 결코 부족하지 않은 사운드, 그리고 장르에 대한 이해력과 섹시한 표현력을 보여준다. 특히 퓨쳐 베이스와 R&B를 결합한 'FOREVER'는 이 앨범의 정수 중 하나다.

아이돌이라는 색안경은 진작에 벗겨졌다. 한국 힙합팬들에게 박재범은 '열일의 아이콘', '믿고 듣는 제이팍', '허슬러'(Hustler/ 힙합신에서 '노력하는 사람'이란 의미로 쓰이는 말)로 인정받는다. 박재범과 함께 AOMG의 공동대표인 사이먼디는 언더 그라운드에서 힙합을 시작하면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그에 대한 힙합팬들의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도, 이렇다 할 결과물을 오랫동안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박재범은 단순히 꾸준함만으로 세워진 성이 아니다. 단순히 양만 많다고 해서 박수를 보내는 사람은 없다. 꾸준하되, 잘 해야 한다. 물론 박재범이 꾸준히 내 놓는 결과물들은 늘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를 보장하고 있다. 한국대중음악상의 강일권 선정위원 역시 "박재범은 단지 열심히 해서가 아닌, 탄탄한 음악적 결과를 통해 찬사를 이끌어냈다"며 선정의 변을 밝혔다.

박재범은 자신의 앨범 뿐 아니라 다른 아티스트와의 프로젝트에도 열심이다. 같은 레이블의 랩퍼 어글리덕과 < Scene Stealers >을 발표하면서 파티를 조장(!)하는가 하면, 뉴잭스윙 뮤지션 기린과 함께 'City Breeze'를 부르면서 1990년대의 향수를 자극하기도 했다. 올 여름 들어서도 3주 동안 '니가 싫어하는 노래', 'Love My Life', 'YATCH' 등 신곡을 연달아 발표했다. 이쯤 되면 '몸이 몇 개냐'라는 흔한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최근 박재범은 AOMG의 프로듀서 차차말론과 함께 '하이어 뮤직'을 설립했다. 그는 '멋있고 실력있는 뮤지션들이 빛을 보게 해 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JYP와 계약이 만료된 지소울과 pH-1을 영입하는 등 가속도를 올렸다. 그는 단순히 좋은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문화의 확장을 기도하고 있는 중이다.

음악인을 증명하는 방법은 결국 '음악'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재범은 한국에서 가장 성실한 힙합 뮤지션이며, 알앤비 뮤지션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쉼없이 움직이면서 자신을 증명해왔다. 이제 막 서른이다. '리얼 허슬러'에게 달릴 힘은 충분하다.

박재범 AOMG 그레이 로꼬 지소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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