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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국회의장이 1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제69주년 제헌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1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제69주년 제헌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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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절의 기원이 된 1948년 7월 17일, 국회는 헌법을 통과시켰다. 이 헌법 서문(전문)에서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라고 선언함으로써 3·1운동이 있었던 1919년을 대한민국의 출발점으로 설정했다. 이 문구는 제3공화국 출범 전날인 1963년 12월 16일까지 효력을 유지했다. 박정희·최규하·전두환 정권 때의 헌법 전문에는 이 문구가 없었다.

전문에서 그 문구가 부활한 것은 24년 뒤인 1987년 10월 27일이다. 이날 국민투표로 헌법 개정이 확정되면서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는 문구가 전문에 등장했다.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됐다'는 문구에 더해 '임시정부(1919년 4월 출범) 법통을 계승한다'는 문구를 추가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출발점이 1919년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이다.

미국인들은 1776년 7월 4일을 자신들이 독립한 날로 기념한다. 이날 미국이 건국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날은 영국을 상대로 독립선언서를 발표한 날이다. 실제 독립한 것은 훨씬 나중이다. 파리조약을 통해 독립이 국제적 승인을 받은 것은 1783년이고, 헌법이 제정된 것은 1787년이고, 의회 및 정부가 구성된 것은 13년 만인 1789년이다. 독립선언서를 발표한 지 13년 만에 독립국가 면모를 갖췄던 것이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자국이 1789년에 건국됐다고 말하지 않는다. 1776년이 미국의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독립을 선언한 그 시점부터 식민 지배를 거부하고 영국에 맞서 싸웠기에 그때부터 미국이 존재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만약 1789년에 건국됐다고 말한다면, 1776년 이후의 13년간에도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 된다. 그런 모순을 부정하고자 1776년에 건국됐다고 말하는 것이다.

8월 15일을 건국절로 만들고 싶은 우파들

헌법전을 든 이승만 대통령. 충북 청주시 문의면의 청남대에서 찍은 사진.
 헌법전을 든 이승만 대통령. 충북 청주시 문의면의 청남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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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국의 보수우파 진영은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만들고 싶어 한다. 표면적 명분 중 하나는, 임시정부가 실질적 기능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에 못지않게, 임시정부 출신들이 해방 직후에 김구를 중심으로 남한 단독정부를 반대하고 남북협상을 추진했다는 점에 대한 거부감도 작용하고 있다.

헌법 전문에 임시정부의 법통을 못 박은 사람들도 임시정부의 무능과 한계를 몰랐던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들도 임시정부가 좌우 대립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자주독립에 큰 기여를 하지 못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또 1919년 임시정부 수립 이후로도 일본이 계속해서 한반도를 지배했다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대한민국 건국의 기초를 임시정부에 둠으로써 생기는 효과가 한둘이 아니다. 우선, 대한민국의 출발점을 1919년으로 인정하기가 수월해진다. 대한민국이 3·1운동으로 건립됐다고 하는 것보다는 임시정부 수립으로 건국됐다고 하는 게 법적으로도 자연스럽다. 정부가 수립돼야 국가가 세워진다는 것이 인류의 통념이기 때문이다.

또 임시정부 법통을 인정함으로써, 1945년 이전 일본의 지배를 우리 법률상으로 불법화시킬 수 있다. 또한 우리의 독립이 중국·소련·미국·영국 등의 도움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이룩한 것임을 전 세계에 천명할 수 있다. 물론 외세의 도움이 있었던 게 사실이지만, 우리 스스로 이룩한 독립이라는 점을 부각시킴으로써 국가로서의 최소한의 자존성을 유지할 수 있다.

위안부 문제 해결 토대 만든 '임시정부' 법통 계승 헌법

그 외에도 효과가 많다. 일제강점으로 피해를 입은 우리 국민을 보호하는 데도 유리하다. 위안부 피해자나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아픔을 법적으로 조금이나마 달래는 데도 유리하다.

2011년 8월 30일 헌법재판소는 대한민국정부가 위안부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는 것은 헌법 위반이라고 판시했다(2006헌마788 결정). 이때 법적 근거로 제시된 게 헌법 전문의 임시정부 법통 규정이다. 대한민국정부는 임시정부를 계승하고 있으므로 임시정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책임을 대한민국정부가 승계해야 한다는 논리가 나온 것이다. 

"우리 헌법은 전문에서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의 계승을 천명하고 있는 바, 비록 우리 헌법이 제정되기 전의 일이라 할지라도 국가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여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의무를 수행하지 못한 일제강점기에,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 동원되어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말살된 상태에서 장기간 비극적인 삶을 영위하였던 피해자들의 훼손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회복시켜야 할 의무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지금의 정부가 국민에 대하여 부담하는 가장 근본적인 보호의무에 속한다고 할 것이다."

위안부 소녀상. 서울시 종로구 중학동 소재.
 위안부 소녀상. 서울시 종로구 중학동 소재.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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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법통론을 근거로 한 판례는 2012년 5월 24일 대법원에서도 나왔다(2009다68620 판결). 강제징용으로 일본제철주식회사에서 강제노역에 종사한 피해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대법원은 임시정부 법통론 등을 들어 강제노역을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강제동원은 임시정부 규범에 어긋나므로 지금의 대한민국 헌법에도 위반된다는 논리가 나온 것이다.

"현행 헌법에도 그 전문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규정되어 있다. 이러한 대한민국 헌법의 규정에 비추어 볼 때, 일제강점기 일본의 한반도 지배는 규범적인 관점에서 불법적인 강점에 지나지 않고, 일본의 불법적인 지배로 인한 법률관계 중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은 그 효력이 배제된다고 보아야 한다."

이처럼 임시정부 법통론은 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식민지배 피해자들의 아픔을 달래는 데도 유용하게 활용된다. 이런 논리가 헌법에 없으면, 판사나 재판관들이 피해자들 편에 서는 게 그만큼 힘들어진다. 

임시정부 법통론은 일부 악의적인 친일파 후손들로부터 국민과 국가의 재산을 지키는 데도 활용된다. 실제로 이 논리는 2013년 3월 28일 대법원이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이 위헌이라는 주장을 배척하는 데도 활용됐다(2009두11454 판결).

"이는 '대한민국이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선언한 헌법 전문에서 알 수 있듯이,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가들의 공헌과 희생을 바탕으로 이룩된 것이라는 점과 나아가 현행 헌법이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를 배격하고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을 추구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신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는 사상적 토대 위에서,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을 부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친일행위에 대하여 그 진상을 규명하고 그러한 친일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재산을 공적으로 회수하는 등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로서 겪었던 잘못된 과거사를 청산함으로써 민족의 정기를 바로세우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며 진정한 사회통합을 추구하여야 한다는 헌법적 요청 내지 결단에 따른 것으로서, 위 각 규정은 ······ 헌법에 위배되지 아니하므로"

위 판결의 논리에 입각하면, 친일파의 매국행위는 막연한 반민족행위가 아니라 임시정부를 배반한 행위가 된다. 동시에 그것은 임시정부를 계승한 대한민국정부를 배반한 행위가 된다. 임시정부 법통론이 헌법에 규정되다 보니, 친일파를 단죄하기가 이렇게 쉬워진 것이다.

이처럼 헌법 전문의 임시정부 법통론은 무능하고 한계가 많았던 임시정부를 치켜세우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다. 1945년 이전 식민지배의 법적 효력을 부정하고 그로 인한 상처와 손해를 치유하는 것이 진짜 목적이다.

만약 뉴라이트로 불리는 보수우파의 주장대로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의 출발점으로 인정하게 되면, 위와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워진다. 1948년을 출발점으로 인정하게 되면 임시정부 법통 선언을 헌법에서 빼야 하고, 그렇게 되면 1945년 이전의 식민 지배를 법적으로 부정할 강력한 수단이 사라진다. 이것은 친일 청산 및 식민지배 청산을 더욱 더 어렵게 만드는 일이다.


태그:#건국절, #제헌절, #임시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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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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