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중위 사망 사건을 조명하고 있는 방송 화면

김훈 중위 사망 사건을 조명하고 있는 방송 화면 ⓒ SBS


제작이 멈춰진 영화 <아버지의 전쟁>이 중단 원인을 놓고 투자자와 제작자, 감독이 각각의 입장을 내놓으며 공방을 벌이고 있다. 책임이 서로에게 있다며 비난하면서 논란도 커지는 조짐이다.

<아버지의 전쟁>은 배우 한석규가 주연을 맡은 작품으로 군의문사인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김훈 중위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다. 아들의 죽음을 밝히기 위한 예비역 장군 아버지의 고군분투를 기본 골격으로 하고 있다.

지난 2월 촬영이 시작된 영화가 논란으로 부상한 것은 지난 12일 연출자인 임성찬 감독이 SNS를 통해 스태프들의 임금 체불 사실과 이에 따른 영화산업노조의 제작자·투자자 고발 사실을 공개하면서부터였다.

영화제작 중단에 스태프 임금 미지급, 네 탓 공방

임 감독은 "지난 4월 촬영 중인 영화를 제작사와 투자사가 일방적으로 중단시켰고, 이 과정에서 30여명의 스태프들과 20여명이 넘는 단역 배우들이 임금을 지급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 투자사가 제작사를 통해 "시나리오 저작권을 투자사에 넘겨줘야 주면 스태프들과 배우들의 잔금을 모두 지급해 주겠다는 약속이 있어 응했으나 이마저 이행되지 않았다고 비판하면서, 인권을 주제로 한 영화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해 유감을 나타냈다.

이에 대해 투자사인 우성엔터테인먼트(아래 우성) 12일 오후 반박입장을 냈다. 우성 측은 촬영 중단과 임금 미지급은 심각한 계약 불이행에 따른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훈 중위 유가족들이 지난 4월 27일 영화 촬영 및 상영금지 가처분 소송을 냈다"며 "제작사인 무비엔진과 임성찬 감독이 영화화하는 것에는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힌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유족 동의가 있어야 제작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제작사가 영화촬영 시작 전에 합의된 촬영 회차를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중소 투자사로서 자금 여력이 여의치 못해 시나리오의 필요 없는 장면을 삭제하여 예산을 줄이기로 제작사·감독과 합의했는데, 이들이 무리한 촬영을 강행했다는 것이다. 결국 예산을 초과할 것이 자명해 계약 위반을 통지했다는 것이 우성 측의 설명이다.

하지만 제작자인 무비엔진 배정민 대표는 13일 입장을 내고 투자사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배 대표는 "시나리오상 불가피하게 묘사된 영화적 허구(픽션) 상황 때문에 유가족과 이견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투자사인 우성엔터테인먼트 또한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던 내용이라며 유가족 동의 문제는 투자계약서에 없는 내용이라고 밝혔다.

또 제작 진행률이 고작 35%정도밖에 진척이 안 된 본 영화에 대하여 촬영 회차를 위반했다는 투자사의 주장은 어불성설이라며 투자계약서에 규정 자체가 없다고 반박했다. 이어 촬영이 중단된 것은 4월 11일로 당시 투자사가 밝힌 이유는 현장편집본의 퀄리티에 비추어 감독과 촬영감독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고 이들을 교체하지 않으면 더 이상 영화촬영 진행을 시키지 않겠다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배 대표는 또한 "미지급 임금 지급을 조건으로 지분 및 판권의 양도를 요청하는 투자사의 입장을 받아들여 합의서를 체결하기로 했지만, 투자사가 이를 미루다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임금 체불에 대한 책임은 우성에 있다"고 강조했다.

투자사의 감독 불신이 밑바탕에 작용

 지난 2월 24일 서울 중구 천주교 인권위에서 열린 군 의문사 피해자 고 김훈 중위 19주기 추모미사

지난 2월 24일 서울 중구 천주교 인권위에서 열린 군 의문사 피해자 고 김훈 중위 19주기 추모미사 ⓒ 이희훈


3자 모두 여러 가지 사유를 대고 있지만 각각의 입장과 영화계 인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렇게 정리된다. 투자사는 제작 중인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었고, 감독은 영화 촬영이 막힌 답답함에 더해 인권 영화를 만든다면서 스태프들의 임금은 체불되는 현실에 화가 난 것이었다. 제작자는 갈등을 봉합해 어떻게든 영화를 완성시켜보려 했던 과정에서 절충이 안 되면서 안팎의 비난과 책임을 떠안게 된 상황이다. 

투자사와 감독의 불신이 깊어진 것도 중요한 원인 중 하나다. 양측이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제작과정에서 방향에 대한 이견이 생기며 감정적인 대립이 있었고, 술자리 등에서 서로 간에 마찰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촬영이 절반도 안 된 상태에도 불구하고 작품 완성도 문제를 들어 투자사가 제작사에 감독 교체를 요구한 것도 이런 불신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감독이나 제작자는 앞으로 촬영 일정이 많이 남았고 후반작업 과정에서 보완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투자사가 감독과 촬영감독 교체를 요구하고 판권까지 요구한 부분은 쉽사리 좁혀지지 않은 투자사와 감독의 간극을 드러내고 있다.

다만 투자사가 유가족 동의 문제를 제작 중단 이유로 들고 있는 사안은 촬영이 중단된 날이 유가족이 소송을 제기하기 보름 전의 일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물론 유가족 동의 문제가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이기는 해도 제작사나 감독은 제작 중단을 합리화시키려는 투자사의 구실로 보는 입장이다. 김훈 중위 유가족 측은 영화적 상상력을 가미해 각색한 시나리오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낸 이후 임성찬 감독과 제작사의 배제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손아람 작가, 저작권 대가로 스태프 임금으로 인질극


영화계 관계자들은 공통적으로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다양한 시각차를 나타내고 있다. 한 영화인은 "최근 한국영화에서 투자사의 입김이 강해졌고, 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겠냐"며 "그게 싫으면 감독이 독립영화로 나서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돈을 투자한 투자사가 작품의 흥행성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작품의 질적인 부분에 대한 문제제기를 무시하기 어렵다는 시선이었다. 

하지만 투자사의 요구가 과도하는 비판도 나온다. 손아람 작가는 "약자들만 제대로 골라서 임금을 미지급한 것"이라며 "심지어 투자사 우성엔터테인먼트는 감독이 가진 영화 시나리오 저작권을 넘기면 스태프 임금을 지급하겠다는 인질극까지 벌였다."고 비판했다. 이어 제작자와 투자사는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임금을 지급하라고 촉구했다.

한 프로듀서 역시 "이런 경우는 투자사가 처음부터 투자를 하지 말든가 투자를 했다면 제작사에 맡겨야 하는데 판단을 잘못한 것 같다"며 '중간에서 어떻게든 절충해 작품을 끝내려던 제작자가 봉합 노력을 했겠지만 그게 안 된 책임은 어쩔 수 없이 제작자가 떠 안아야할 부분 같다"고 말했다.

<아버지와의 전쟁>은 박근혜 정권 시절 사회 고발 영화에 대한 투자가 어려움을 겪고 블랙리스트 논란까지 겹치며 제작 과정에 난관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 기획개발에 들어가 6년여의 시간이 흘렀고, 시나리오가 120고에 달할 만큼 수정과 보완이 지속돼 왔다. 미지급 임금 문제 해결을 위해 감독과 제작사가 판권을 넘겨주겠다는 결정을 내리기는 했었으나,  투자사가 제작자와 감독에게 판권까지 넘기라고 하는 것은 과도하고 무리해 보인다는 것이 영화인들의 시각이다.

영화 제작에 함께해야 3자가 각각의 입장 차이를 나타내면서 <아버지의 전쟁>은 사실상 좌초되면 상처만 남긴 꼴이 됐다. 다만 감독이나 제작사, 투자사 모두 영화촬영이 재개돼 완성되기를 바라는 입장은 동일한 만큼, 서로에게 돌을 던지기 보다는 이견을 조율해 작품을 완성하는 쪽으로 가는 게 좋다는 것이 영화계 인사들의 대체적 의견이다.

아버지의 전쟁 임성찬 감독 우성엔터테인먼트 군의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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