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익숙한 대중 문화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현재 엠넷 <쇼미더머니>는 한국 힙합에 있어서 가장 거대한 변수다. 한 TV 프로그램이 문화 자체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것은 씁쓸한 일이다. 그러나 엠넷 <쇼미더머니>가 힙합의 대중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다. 피타입처럼 큰 족적을 남긴 거장들부터, 넉살 같은 실력파 랩퍼, 그리고 어린이까지 이 오디션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쇼미더머니>는 지난 5년간 비와이, 씨잼, 스윙스, 매드클라운, 로꼬 등 굵직한 랩스타들을 탄생시켰다. 그런데 <쇼미더머니>를 본 사람이라면 또 다른 랩스타 '원썬'(김선일)을 모를 수 없을 것이다.

 아리따움 세일 광고에 등장한 원썬

아리따움 세일 광고에 등장한 원썬ⓒ 아리따움 홈페이지


조롱의 대상인 한물간 랩퍼. 선택은 정면 돌파

원썬. 그는 본인의 입으로 밝힌 바와 같이 '한국 힙합 1세대' 랩퍼다. 1998년에 데뷔한 그는 한국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상징인 '마스타플랜'의 주축으로 활동했다. '축귀',' 넌 내게'와 같은 곡들이 잘 보여주듯이, 그는 힙합과 국악을 조합하는 실험에 집중한 뮤지션이었다. '국악의 대중화'를 주제로 서울대학교에서 강의를 할 만큼, 예술적 신념이 뚜렷한 랩퍼였다. 그러나 버벌진트가 한국말 라임을 체계화하고, 외국 트렌드의 수혈이 빨라지면서 한국 힙합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그 사이 원썬은 과거의 존재가 되어갔다.

그리고 작년, 그는 뜬금없이 <쇼미더머니 5>에 출사표를 던졌다. 뉴에라 모자를 꺾어 쓴 원썬의 첫 등장은 사뭇 당당했다. 그에게 도끼는 귀여운 동생이었고, 최근 한국 힙합씬에서 가장 성공한 프로듀서 그레이는 '꼬맹이'에 불과했다. 심지어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있으니까 '올 패스'(만장일치 합격)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는 모습까지.

그러나 원썬의 랩이 울려 퍼지는 순간 심사위원들은 당황한 듯 서로를 바라보았다. 원썬은 자신이 쭉 추구해 온 멜로디컬한 랩을 하다가 불구덩이 속으로 사라졌다. '날이 시퍼런 작두 위를 걷...' 문장을 마저 마치지도 못했는데 프로듀서들은 몹시 매정했다. 심사위원이었던 더 콰이엇은 "옛날 것을 듣는 느낌이었다"는 감상을 밝혔다.

그때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 장면이 새로운 스타의 탄생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자신만만한 태도와 너털웃음, 특이한 랩, 불 속으로 사라지는 원썬의 표정. 이 모든 것이 엮여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다. 그 날 밤 '늙은이는 안 된다?',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 등 수많은 유행어들이 탄생했다. 심지어 '1일 3썬'(하루에 세 번 원썬의 영상을 본다)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으니 말 다했다.

자신의 랩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니, 힙합에 젊음을 바친 뮤지션의 입장에서는 굴욕적으로 여겨질 만한 일이다. 그러나 그는 이 현실을 정면으로 받아들였다. 페이스북이나 SNS 메신저를 통해 짓궂은 장난을 걸어오는 학생들에게도 친절하게 답장을 해 주었고, 때로는 인생 선배로서 진지한 상담을 해주기도 했다. 한편 원썬은 현재 낮에 퀵 서비스, 인테리어 설비 등을 하며 돈을 벌고, 밤에는 홍대 힙합 클럽 '인투딥'에서 사장 겸 바텐더로 일하고 있다.

 <쇼미더머니5>에 출연한 원썬

<쇼미더머니5>에 출연한 원썬ⓒ 엠넷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팬들을 위한 공연을 열고 있고, 후배 언더 그라운드 랩퍼들을 위한 무대를 마련하고 있다. 장난삼아 그에게 말을 걸어온 학생들도 원썬의 상냥함, 그리고 우직한 삶의 태도 앞에 팬이 되었다고 한다. 최근 그는 화장품 '아리따움' 세일 광고에 등장해 자기 자신을 패러디하는 모습을 선보였다. ('세일하면 올 세일이예요') 단순히 그가 웃기다는 이유로, 화젯거리가 되었다고 해서 모델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마 그가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삶의 태도가 대중들에게 호감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원썬은 <쇼미더머니 6>에 다시 참가자로 나섰다. 결과는 예선 탈락이었다. '오래요', '오해요', '손해요' 같은 라임은 요즈음의 기준으로 볼 때 몹시 촌스러운 것이었다. 1992년생인 심사위원 딘의 입장에서는 그의 랩이 더욱 '올드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의 오디션 참가는 이름을 알리거나 우승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에게 계속 호응을 보내준 팬들에게 다시 한번 즐거움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어쩌면 지금 원썬이 보여주는 여유야말로 그가 이야기하던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 아닐까. 그는 지금 이 순간도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가끔씩, 그의 바이브를 배우고 싶어진다.

가지고 있는 물질적인 가치가
내 삶을 좌지우지하지 못한다는 굳건한 믿음,
신념이자 종교로 생각하며 타던 리듬. 바로 그 이름,
힙합, 내 목소리는 넣어두고, 남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도모.


원썬 -  K.I.R(Ooh La La La)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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