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공식 포스터.

제2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공식 포스터. ⓒ BIFAN


벌써 21년째다. '사랑, 환상, 모험'을 주제로 20년 넘게 항해해 왔다. 앞서 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아래 BIFAN)는 지난해 20주년을 맞아 김만수 부천시장이 조직위원장 자리를 민간에 이양했고, 신임 정지영 조직위원장이 취임하며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영화제의 구조적 독립성이 다시금 재확립됐다고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순조로웠다는 평가 속에 과거 BIFAN을 이끌었던 김영덕 프로그래머의 복귀와 함께 새로운 프로그래머들도 다수 영입됐다. 

13일 열린 개막식에 참석한 김만수 부천시장(명예조직위원장)은 이를 의식한 듯 "제가 맡아았던 조직위원장 자리를 정지영 감독에게 맡기면서 영화인이 중심이 되는 영화제로 거듭났다"는 축사를 전했고, 정지영 조직위원장 역시 "지난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다양한 변화를 모색했던 프로그램에 깊이를 더하고 신선함을 불어넣기 위한 시동을 걸었다"고 밝혔다.

오는 23일까지 진행되는 21회 BIFAN은 총 58개국 289편의 상영 편수를 자랑한다. 전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월드 프리미어'는 63편, 자국을 제외하고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인터내셔널 프리미어'가 28편에 달한다. 이번 BIFAN은 이미 외형상 안정화에 돌입했고 청년기에 돌입했기에, 외양과 수치만을 중시한다기보다 질적 안정화를 꾀한다는 인상이 강하다. 

특히 올해는 "영화로 기억되는 영화제"라는 슬로건 아래 판타스틱 장르의 확장은 기본이요, 한국 영화의 초청 확대 등을 반영한 프로그램들이 인상적이다. 개막작은 신하균, 도경수 주연의 <7호선>, 폐막작은 동명의 일본 인기 만화가 원작인 <은혼>으로 두 작품 모두 예매 오픈 후 즉시 매진되는 등 장르 마니아들의 BIFAN에 대한 관심을 입증했다.

"개인적으로는 초창기 부천마니아였다. 그 곳에서 <떼시스>, <사무라이픽션>, <지옥갑자원>, <메멘토>, <레퀴엠>, <배틀로얄>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새롭고 골 때리고 재미난 영화들을 보았다. 워낙에 장르영화를 좋아하다보니 한국에 그것도 서울과 가까운 부천에 판타스틱영화제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했었다. 하지만 한 번의 진통('리얼판타스틱영화제'라는 이름으로 따로 개최되기도)을 크게 겪은 후, 과거의 명성을 느리게 잃어갔다.

장르영화팬으로서 이 사실을 너무나도 안타깝게 생각한다. 하지만 올해는 뭔가 달라 보인다. 많은 부분이 바뀌었고 새롭게 시작하는 느낌이다. 각설하고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문자 그대로 판타스틱하게 펼쳐지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과거 <노르웨이 숲>으로 BIFAN에 초청받은 바 있는 노진수 감독이 개막 하루 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피력한 소감이다. 아마도 BIFAN을 사랑하는 영화 팬들이라면 이에 공감하는 바가 적지 않으리라. 하지만 노진수 감독처럼 변화의 기운을 감지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특히나 상영작들의 면면이나 다채로운 특별전의 활력만 봐도 그러하다. 이번 21회 BIFAN의 특징을 상징할 만한 몇몇 작품들을 꼽아 봤다. 장르의 판타스틱한 바다가 실감 날 것이다.

스페인의 거장 알렉스 데 라 이글레시아를 만나다

 알렉스 데 라 이글레시아 감독의 <잠 못 들게 하는 영화 1- 아기의 방>(2006)의 한 장면.

알렉스 데 라 이글레시아 감독의 <잠 못 들게 하는 영화 1- 아기의 방>(2006)의 한 장면. ⓒ BIFAN


장르 영화의 거장이라면 필히 대중성을 겸비해야 마땅하다. 스페인의 알렉스 데 라 이글레시아가 딱 그런 경우다. 이번 BIFAN은 브뤼셀 국제판타지 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야수의 날>로 전 세계 장르 팬들의 환호를 받은 이글레시아 감독의 특별전 '알렉스 데 라 이글레시아 : 판타스틱 영화의 거장'을 개최한다.

<커먼웰스> <800블렛> <퍼펙트 크라임> <광대를 위한 슬픈 발라드> <마녀 사냥꾼>등 그의 대표작과 신작 <더 바>가 상영된다. 그 중 TV무비로 제작된 <잠 못 들게 하는 영화 1- 아기의 방>(2006)의 이글레시아 감독의 정통 호러. 오래된 저택에 갓난아이와 함께 막 이사를 온 부부가 겪는 기이하고 공포스러운 경험을 예상치 못한 반전과 독특한 주제에 녹여낸 작품이다.

아이의 방에 모니터를 설치하는 부부, 기자인 남편이 추적하는 침입자(?)의 실체, 후반부의 반전이 작가주의 호러의 참맛을 한여름 부천을 관객들에게 제대로 알려줄 영화이기도 하다. 남종석 프로그래머는 "흔하디 흔한 유령 들린 집 이야기가 식상했다면"이라며 이 작품을 추천한 바 있다.

SM 뮤지션과 허당 삼촌, BIFAN의 장기 일본영화를 탐하다

 <나는 변태다>의 공식 포스터.

<나는 변태다>의 공식 포스터. ⓒ 엔케이컨텐츠


BIFAN이야말로 마니아들이 일본 신작영화를 국내에서 가장 빨리, 확실히 접할 수 있는 창구 아니겠는가. 그에 부응하듯 BIFAN은 매년 좀비, 호러, 작가주의 영화 등 일본영화 장르의 성찬을 펼쳐내고 있다. 올해 역시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전망이다. 그 중 BIFAN이 발굴한 <변태가면> 시리즈의 뒤를 이을 또 하나의 '변태' 영화가 관객들을 찾는다.

'낮에는 음악왕, 밤에는 매력왕'이란 카피가 인상적인 '흑백영화' <나는 변태다>는 범인들이 범접하기 힘든 SM 플레이를 소재로 한다. 아니, 주인공이 SM 플레이어다. 예쁜 아내의 사랑을 받는 주인공은 보기엔 멀쩡한 비주류 포크 뮤지션이지만 자신의 확고한 취향을 버릴 순 없다. 그래서, 학생시절부터 알아온 애인과의 관계도 청산하지 못한다. 김봉석 프로그래머는 "모든 것이 붕괴할 위기에 몰리자 그의 변태력이 폭발한다"며 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흑백 화면과 설산에서 펼쳐지는 SM 플레이, '록큰롤 핑크 코미디'를 표방한 독특한 장르의 결합이 BIFAN의 일본영화 마니아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해 보인다. 이 'SM' 뮤지션을 연기한 마에노 켄타는 실제 뮤지션으로 영화 음악까지 담당했다. 영화제 기간, 삽화작가 출신 감독과 주연배우 마에노 켄타, AV 배우 출신으로 아내를 연기한 시라이시 마리나가 내한하는 건 덤이다.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신작 <우리 삼촌>의 한 장면.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신작 <우리 삼촌>의 한 장면. ⓒ BIFAN


일본 청춘영화의 젊은 거장 야마시타 노부히로의 신작 <우리 삼촌>도 주목할 만하다. 노부히로 감독은 <린다린다린다>, <마이 백 페이지>, <고역열차> 등이 그의 대표작으로 최근 <오버 더 펜스>로 한국의 평단과 관객들로부터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감독이기도 하다.

<우리 삼촌>은 다소 이례적인데, 평범한 아이 유키오의 눈으로 본 철학강사이자 노총각 삼촌(마츠다 류헤이)의 이야기를 그렸기 때문이다. 가난하고 결혼도 못해 집에 얹혀 살며 지지리 궁상을 떠는 이 삼촌은 유키오의 엄마가 소개해 준 에리(마키 요코)에게 한 눈에 반해 그녀가 살고 있는 하와이로 향하는 엉뚱한 인물이다. 그리고 이 삼촌의 돌발 여행에 유키오가 동행한다. 어린이와 청소년이 가족과 함께 볼 판타스틱 영화로 구성되는 '패밀리 존' 상영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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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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