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박열>의 한 장면.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영화 <박열>의 한 장면.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 메가박스(주)플러스엠


1920년대 일제강점기 아나키즘과 항일투쟁을 다룬 영화 <박열>이 연일 극장가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14일 오전 기준 <박열>은 2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 <스파이더맨: 홈 커밍>에 이어 2위에 올라 있다.

<박열>은 1923년 일어난 간토 대지진을 배경으로 아나키스트 항일 단체인 '불령사'를 조직한 박열(이제훈 분)과 그의 연인 가네코 후미코(최희서 분)가 일제에 의해 황태자 암살을 모의한 대역죄 피의자로 조작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는 가네코 후미코의 수기와 평전, 재판기록, 당시 신문기사 등을 참고해 최대한 사실에 가깝도록 그리고자 애쓴 흔적이 두드러진다. 국내에선 흔히 볼 수 없는 실존 혁명가를 다룬 영화이고, 단순 독립운동을 넘어 당시 각종 반체제 사상의 중심지였던 도쿄를 무대로 천황제를 가차 없이 비판한 저항적 인물들이 등장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간 '실존' 인물을 다룬 시대극은 인물의 면모나 사건을 극 속에 충실히 반영하기보다는 '영화적 상상력'을 더 우위를 뒀다. 이는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상 특별히 부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다큐멘터리처럼 실제의 사건을 단순히 재현하기보다는 작가와 감독의 의도와 상상력을 집어넣는 것이 영화적으로 더 자연스럽고 재미를 보장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 관객은 영화 혹은 드라마에 역사적 사실이 왜곡 없이 충실히 반영되는 것을 선호하고, 흔히 영화 속 묘사가 실제 사건이라고 여기고 감상하는 경향이 있다. <박열>을 연출한 이준익 감독은 이 점을 염두에 둔 듯 개봉 전후 "실제 사건과 영화가 90% 이상 일치한다"고 언론에 강조했다. 실제 사건이 워낙 드라마틱하기 때문에 따로 이야기를 보태거나 뺄 만한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그만큼 강조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역사학자들이 본 <박열>

그렇다면 일제강점기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들은 영화를 어떻게 봤을까. 일제강점기 재일 한인 아나키즘 운동을 연구해온 김명섭 박사는 "단순히 90년 전 사건이 아니라 영화가 던진 의문은 현재도 해결을 못 하고 있는 것"이라며 "관심 있는 이들이 영화를 통해 좀 더 생각이 넓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현해탄을 넘은 세기의 사랑 정도로 치부될까 봐 걱정했는데 간토 대학살과 식민지배, 천황제를 법정에서 정면으로 비판하는 모습이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칭찬했다. 김명섭 박사는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국내 유일의 사학자다.

그는 또 "불령사 동지들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점이 장점"이라며 "맏형 노릇을 한 홍진유(민진웅 분)와 김중한(정준원 분)이 영화에 나오는데, 이들을 책 등을 참조해 성격을 잘 드러냈다. 홍진유는 박열보다 2살이 많고 민중운동 잡지를 발행한 노동자이면서도 이론을 갖춘 엘리트다. 사건 이후에 서울로 돌아와 단체를 만들고 활동했지만, 고문 후유증으로 31세에 죽은 진짜 아나키스트다. 중요한 사람인데 조금 약하게 보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박사는 "막내인 최영환(백수장 분)도 잠깐 나오는데 직접 상해에 가서 폭탄을 가져온 분"이라며 "다이쇼 대학 불교학과를 졸업했고 후에 합천 해인사 주지도 지냈다. 한용운과 함께 일하다 구속된 적도 있다. 간단하게 처리된 것이 아쉽다"고 전했다. 김 박사에 따르면, 최영환은 해방 후 국내 신문에 상해에서 직접 폭탄을 입수한 것이 자신이라고 밝히는 내용의 기고를 했다고 한다.

김 박사는 법정 투쟁, 부부의 연을 맺고 기념사진을 찍은 것, 가네코의 죽음, 무덤 이장과 유골 인수 등은 사실에 가깝다고 했다. 김 박사는 "영화에서 예심판사 다테마스(김준한 분)가 박열과 가네코를 만나게 해주고 박열 가족에게 보내는 사진도 찍게 해주지 않나"라며 "영화가 안 보여준 것은 나중에 그것 때문에 다테마스가 파면되고 더 나아가 일본 내각이 붕괴되고 물갈이된다. 치안유지법도 대폭 강화된다. 사진 한 장이 불러온 파급력"이라고 평했다.

영화에 다 담기지 않은 박열과 가네코의 이야기

 언론에 처음 공개된 박열의 사진(왼쪽 두 번째).

언론에 처음 공개된 박열의 사진(왼쪽 두 번째). ⓒ 정창현 교수 제공


김명섭 박사는 이밖에도 최근 일어난 안타까운 사실 한 가지를 전했다. 가네코 후미코는 천황제에 반대한 반체제 인물이라는 낙인이 있어서 일본에서도 생전의 흔적을 찾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지난 6월 말께 후미코의 어머니가 살던 야마나시현의 가옥이 헐값에 팔리면서 헐릴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가옥은 일본식 전통 목조주택으로, 가옥의 마당에 후미코가 지은 단가를 새겨 넣은 시비가 자리 잡고 있다. 해당 시비는 후미코의 생애와 사상을 기리며 지역민들이 세워준 것으로, 가옥은 한일 연구자들이 박열의 고향인 경북 문경과 함께 매해 번갈아가며 추도회와 학회를 여는 뜻깊은 장소다.  

김 박사는 "원래 가네코의 남동생 가족이 살았는데 이번에 헐값(한화 약 4000만 원가량)에 팔렸다"며 "이 점을 영화에서 후기에 자막으로 다뤄줬으면 좋았을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익명을 원한 한 저명한 독립운동사 연구자는 "영화는 그 나름의 문법과 상상력이 있는 것이므로 실제 사건과 꼭 같을 필요는 없다"며 <박열>에 호감을 드러냈다. 다만 "후세 타쓰지(야마노우치 타스쿠 분) 변호사의 분량이 적은 것은 아쉽다"며 "조선인들을 변호하다가 1930년대 극우화된 일본 당국에 의해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하고 옥고까지 치른 분"이라고 설명했다.

또 "노무현 정부 때 공로를 인정받아 일본인 최초로 대한민국 건국훈장(애족장)을 받았다. 이미 1960년대에 장제스 등 한국 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들이 서훈 받은 것에 비하면 한참 늦은 것"이라고 추서의 의미를 높게 평가했다.

후세 변호사는 영화에 묘사된 것처럼 법정에서 "조선인 학살이라는 범죄행위를 감추기 위해 조선인의 범죄를 조작해낸 것"이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영화에선 선명히 드러나지 않으나 판결이 나오기 약 한 달 전인 1926년 3월 1일, 후세 변호사는 박열과 가네코의 옥중 결혼을 성사시켰다. 또 야밤을 틈타 박열의 동료들과 가네코의 시신을 발굴, 화장해 유골을 자기 집에 안치한 것도 후세 타쓰지다.

영화엔 나오지 않으나 유골을 박열의 형이 인수하기 위해 도쿄로 갔으나 일제가 중간에 끼어들어 방해하면서 경북 상주경찰서가 인수를 받는다. 상주서가 가네코의 유골을 팔령산 밑에 가매장해버리고 박열의 가족이 제사도 지내지 못하게 감시했다. 그녀의 묘는 그렇게 해방 때까지 버려져 있다가 일본인들이 유골을 다시 일본으로 가져가려고까지 했다. 일제는 한국인들이 가네코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이때 불령사 옛 동지들과 생존 아나키스트들이 다시 모여 유골을 지키고 1973년 비석을 세웠다. 가네코의 묘는 지난 2003년 박열의 고향 경북 문경에 있는 박열의사기념관 경내로 옮겨졌다.

한국에서 인정 받지 못한 가네코

이렇듯 가네코 후미코는 죽은 후에도 곡절이 많았다. 또 후세 타쓰지가 뒤늦게나마 독립운동 공훈자로 인정받았지만, 정작 가네코는 여러 차례 신청에도 불구하고 독립유공자 서훈이 아직 이뤄지지 못했다. 영화에 등장한 불령사 멤버 최규종(배제기 분)과 정태성(최정헌 분)도 현재까지 추서 받지 못하고 있다.

"천황제 비판은 일본인에게 더 익숙한 주제이고, 일어 대사도 일본인이 더 잘 소화할 수 있으니 가네코 역을 일본 배우가 했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에, 김명섭 박사는 "일본 여배우 중 하려는 사람을 구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일본인이 가네코 역을 맡는다는 것은 배우로 활동하기 어려울 정도의 낙인이 찍히는 것이다. 천황을 반대한 대역죄인이라는 인식 때문에 학회를 열었을 때도 극우파들이 행사장을 방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을 정도다. 지금은 일왕이 인간으로 내려왔다고는 하지만, 현재도 일본 형법에선 일왕을 비판하거나 위해를 가하면 대역죄인이다. 영화에 출연한 일본인 배우들의 용기에 박수를 더 쳐줘야 한다"고 격려했다.

 애국열사릉에 있는 박열 묘소. 언론에 처음 공개되는 사진이다.

애국열사릉에 있는 박열 묘소. 언론에 처음 공개되는 사진이다. ⓒ 정창현 교수 제공


또 다른 일본 현대사 연구자는 "자막에 나온 것처럼 자료조사에 바탕을 둔 점은 평가할 만하다"면서도 "하지만 이 점이 이 영화의 아쉬운 점이기도 하다. 자료가 진실은 아니다. 동일한 사건에 대해 상반된 자료는 얼마든지 있다. 결국 감독의 상상력이 중요하다"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다.

그럼에도 이 연구자는 "감옥에서 인터내셔널가를 부르는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라며 "배우들의 일본어 처리가 매우 훌륭하다. 특히 가네코 역을 맡은 배우의 발음이 아주 훌륭하다. 미즈노 역을 맡은 배우는 일본어가 모어인 사람 같다"고 평가했다. 영화에서 대역죄 조작의 기획자로 등장하는 내무상 미즈노 렌타로 역의 배우는 김인우로, 재일조선인 3세다.

다만 그는 "자막 번역과 대사가 다른 부분이 약간 있다"면서 "기술적인 문제라고 생각되지만 아주 중요한 부분에서 다른 것도 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박열은 6.25 때 인민군에 의해 납북됐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정창현 교수에 의하면, 1974년 사망 후 평양 애국열사릉의 형제산구역에 묻혔다고 한다. 그러다 2000년대 중반 용성구역에 재북인사묘가 새로 조성되면서 그곳으로 옮겨졌다(사진 참고). 애국열사릉은 김일성 직계의 항일빨치산 인사들이 묻힌 '혁명열사릉'보다 한 급 낮은 묘역이지만, 북한 정권이 특별히 예우하는 독립운동가와 정치인, 납북 고위 인사들이 안장된 곳이다.      

한편, 오는 7월 23일은 가네코 후미코의 91주기다. 이날 박열의사기념관에서 추모회와 학회 등 관련 행사가 개최된다. 같은 날, 여성학자와 근대문학 연구자가 주축이 된 일본의 '가네코 후미코 연구회'도 야마나시현에서 예년보다 성대하게 추도회를 열 예정이라고 한다.

덧붙이는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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