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말]
 영화 <그 후> 포스터

영화 <그 후> 포스터 ⓒ 콘텐츠판다


01.

'자기, 여자 생겼지?' 봉완의 아내 해주(조윤희 역)가 봉완(권해효 역)에게 묻는 말에 그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저 어이없다는 식으로 웃을 뿐. 그의 그런 애매한 태도에 그녀는 더욱 감정이 치밀어 오른다. 그런 그녀를 두고 출근하는 그의 뒷모습에 이어, 이번에는 그와 창숙(김새벽 역)이 밀회를 나누는 장면이 등장한다. 봉완의 아내가 어렴풋이 눈치 챘던 그 관계가 바로 등장하는 것이다. 두 사람이 아파트의 지하주차장으로 향하는 계단에서 밀회를 즐기는 이 장면은 봉완의 아내가 등장했던 장면보다 더 과거의 일이다. 다시 현재로 돌아온 영화. 아름(김민희 역)이 봉완이 운영하는 출판사에 첫 출근을 하게 된다. 조금 전 과거의 장면에서 사랑을 나눴던 창숙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서다. 영화는 이처럼 과거와 현재를 끊임없이 오가며 시점의 경계를 허문다.

02.

영화 <그 후>는 <오! 수정>(2000), <북촌방향>(2011)에 이은 홍상수 감독의 세 번째 흑백영화다. 세 작품에 공통점이 있다면 겨울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과 불확실한 무언가를 표현한다는 점이 될 것이다. 서로 다른 각각의 시각에서 불확실한 기억과 그에 따른 왜곡을 이야기했던 <오! 수정>과 불확실한 시간의 모호함을 표현했던 <북촌방향>. 이번 작품도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 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는 특정한 구분 없이 시종일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를 전개하고, 과거와 현재의 사건들을 모호하게 이어나간다. 어쩌면 감독은 흑백영화라는 외형적인 장치를 통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그로 인해 이야기할 수 있는 의식과 감정, 실존이 혼재한 진짜 '대화'를 자신만의 도구로 정착시켜 나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후> 스틸컷  그녀에게 남은 것은 과연 무엇일까?

▲ <그 후> 스틸컷 그녀에게 남은 것은 과연 무엇일까? ⓒ 콘텐츠판다


03.

여전히 그의 작품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옳고 그름을 떠나 매력적이다. 그들이 내뱉는 대사 역시 하나하나 다시 곱씹어 볼 필요가 있을 정도로 깊이 있다. 앞의 대사가 뒤의 상황을 암시하는 연결고리가 되기도 하고, 한 인물의 행동이 다른 인물의 행동을 촉발하거나 제재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봉완을 맹목적으로 사랑하지만 그의 결점을 제대로 짚어내는 창숙이나, 무엇이 진실인지 알기 어려울 정도로 자기 모순적 태도로 순간을 모면하고자 하는 봉완. 그리고 무엇이 믿음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음에도 자신의 믿음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아름이라는 인물이 표현해내는 입체적인 발상까지. 작품으로만 놓고 보자면 과거에 그가 만들어 온 장면들의 결과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04.

문제는 그의 외부적 상황이 변해버렸다는 것에 있다. 작년 떠들썩했던 스캔들 문제가 그가 작품 속에서 형성하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틈을 만들고, 그 속으로 스멀스멀 기어들어온다. 바로 지난 작품인 <밤의 해변에서 혼자>(2017)만 하더라도, 해당 작품이 그의 스캔들 직후 세상에 공개된 첫 번째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독립적으로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화의 외부적 환경이 작품의 오롯한 장점들을 제대로 느낄 수 없는 단초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그럴 수가 없을 것 같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지점, 배우들의 대화 속에 위치한 거의 대부분의 관념들이 마치 자신의 삶을 스스로 변호라도 하고자 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이 지점이 가장 큰 딜레마가 아닐까 싶다.

과거에 그의 작품들을 좋아했던 것은 현실 속에서 작품 속 그 장면이 홀연히 나타나고, 또 스크린 위에 현실의 내가 투영되는 지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작품들은 하나의 경험 위에 덧대어지는 또 하나의 경험이었고, 때로는 새로운 경험을 찾아나서는 시작점의 역할로 이후 동일한 현실의 경험을 다시 세워내는 그림자와 같은 것이었으니 말이다. 만약 앞으로도 계속해서 감독의 이야기 속에 그의 현실이 파고들게 된다면 무엇을 통해 그런 경험을 다시 할 수 있을까?

05.

창숙은 자신이 사랑하는 유부남 봉완에게 이렇게 말한다. '뭐 어때요? 우리만 정말 사랑하면 저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요.' 이런 부분들이다. '사는 것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혹은 '모든 게 다 괜찮다는 걸 믿어요. 모든 게 다 아름답다는 걸 믿어요'라고 이야기 하는 아름의 모습 또한 그렇다. 과거의 홍상수 감독이었다면 이 지점의 대사들은 관계에 대한 사유를 하게 만드는 촉매제로써, 그의 작품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가 되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외부에 존재하는 그의 현실이 이 작품을 뒤덮는 순간 모든 것은 다르게 해석되고 하나의 방향으로만 매몰되고 만다. 봉완과 그의 아내, 그리고 아름이 마주한 장면에서 계속되는 오해의 연속 또한 일방적인 작품을 통한 그의 개인적인 변명으로밖에 안 들리는 것이다. 지금 그의 영화에는 과거와 같은 낭만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다. 나는 더 이상 그의 작품을 보며 그의 실제와 스크린 속의 세계가 다른 것이라고 이야기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06.

영화를 평가할 때도 다면적인 평가가 중요하다고 이야기 한다. 결국 이야기라는 것은 그것이 예술 작품이든, 실존하는 사람이든, 하나의 기준으로는 그 깊이를 헤아리기 힘든 부분이 있기 때문에 말이다. 정말 새로운 경험을 한 것도 같다. 그 동안 수많은 작품들을 봐 왔지만 영화의 외부적인 요소에 의해 해석이 이렇게까지 달라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특히 과거에 그의 작품들을 좋아했던 것이 더 큰 영향을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적어도 이번 작품 <그 후>에서만큼은 과거 그의 작품들이 갖고 있던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의 표현'이라는 매력이 사라져버렸다는 점이다. 현실이 비춰진 비현실 속에서 누군가 그 현실을 깨닫게 된다면 그것으로 모든 것은 더 이상 현실로도, 비현실로도 존재할 수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브런치(https://brunch.co.kr/@joyjun7)에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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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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