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증거를 다루는 사람이 거짓말을 한다."

12일 오후 방송된 KBS 2TV <추적 60분> '검찰과 권력' 2부작 '1편, 유성노조 6년 잔혹사의 비밀'을 보면서 든 느낌이다.

충남 아산과 충북 영동에 제조공장을 두고 있는 현대차 납품업체 유성기업은 지난 2011년 5월부터 심한 노사갈등을 겪고 있다. 특히 사측은 경비용역을 동원해 이 회사 노동자들에게 극한적인 폭력을 행사했다. 한 번은 경비용역 한 명이 승합차를 몰고 노동자들을 다치게 한 적도 있었다.

<추적 60분> 취재진은 유성기업에서 벌어진 일들을 재조명했다. 사실 유성기업의 노사갈등은 새삼스럽지 않다. 공영방송이 이를 심층 보도한 건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오히려 퇴진압박을 받는 이인호 이사장과 고대영 사장이 버티는 KBS에서 이 같은 내용이 전파를 탄 게 다행스럽기만 하다.

그런데 본방송을 못 본 이들이라면 유성기업의 노사갈등을 다루면서 '검찰과 권력'을 메인 타이틀로 정했는지 의아해할 것이다. 그러나 주제는 참으로 적절했다. 유성기업의 노사갈등이 6년 동안 이어지도록 한 일등 공신이 바로 검찰이기 때문이다.

검찰의 도 넘은 자본 편들기

 12일 오후 방송된 KBS 2TV <추적60분> '검찰과 권력' 2부작 '1편, 유성노조 6년 잔혹사의 비밀'에서는 6년째 이어지는 유성기업 노사갈등을 통해 검찰의 존재의미를 묻는다.

12일 오후 방송된 KBS 2TV <추적60분> '검찰과 권력' 2부작 '1편, 유성노조 6년 잔혹사의 비밀'에서는 6년째 이어지는 유성기업 노사갈등을 통해 검찰의 존재의미를 묻는다. ⓒ KBS


검찰, 더욱 정확하게 관할인 대전지방검찰청 천안지청은 노조가 제기한 사측의 노조파괴 행위에 대해 증거불충분 등의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그런 검찰이 사측이 불법적으로 설치한 CCTV를 가리고자 테이프를 붙인 노동자들에겐 '사안의 심각성'을 이유로 실형을 '때렸다.' 공권력이 손 놓고 있는 와중에 사측의 노조 탄압은 더욱 대담해졌고, 이와 반비례해 노동자들의 국가에 대한 신뢰는 추락했다. 또 사측의 고소·고발과 뒤이은 공권력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한 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벌어졌다.

더욱 기가 막힌 대목은 때에 따라 달라진 검찰의 증거 판단이다. 현대 법정은 철저하게 증거 재판주의가 지배한다. 따라서 증거에 대한 판단은 기소 여부를 좌우할 핵심이다. 검찰은 유성기업 사측이 자행한 노조파괴 행위를 입증할 증거를 심각하게 다루지 않았다. 또 유성기업의 원청업체인 현대차의 개입 정황이 담긴 증거도 확보했으나 역시 무시했다.

무엇보다 현대차의 노조파괴 개입 정도는 무척 심각하다. 현대차구매본부 측 실무자들은 유성기업 전무에게 '제2노조 가입촉진'을 독려하는 전자우편을 보낸다. 이에 대해 유성기업 담당자는 이렇게 답했다. 답변 내용은 현대차의 압박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케 한다.

"우리 회사 노무 현황에 대해 현대차의 컴플레인(불만사항)이라고 할지, 무리한 요구로 영업이 상당한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요구 사항 중 핵심은 유성 노조 신규 가입자를 70~80% 선까지 확보하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위에 인용한 현대차와 유성기업 사이에 오간 전자우편은 이미 지난 2012년 고용노동부가 압수 수색 과정에서 확보한 것이다. 한편 검찰은 현대차의 조직적 개입이 있었음도 확인했다. 그러나 검찰은 현대차 기소를 미루기만 했다. 그러다 새 정권이 들어선 선 뒤 공소시효를 불과 사흘 앞둔 지난 5월에 관련자들을 노조파괴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한 것이다. 기소 근거는 놀랍게도 이전에 애써 무시했던 문제의 이메일이었다. 검찰로선 재벌에게는 관대했다가 정권이 바뀌자 '태세전환'을 했다는 비판을 자초한 셈이다.

이 지점에서 천안지검의 분위기를 간략하게 설명해야겠다. 이곳 주변 법률사무소 관계자들은 천안지검이 검사들에겐 위기이자 기회인 근무지라고 입을 모은다. 무슨 말이냐면, 천안지검은 대전지검에서 나온 '곁가지'다. 따라서 '실적'이 좋으면 다시금 대전이나 다른 주요 요직을 꿰찰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예산, 홍성 등 한직으로 밀려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분위기를 고려해 볼 때 지역 중견기업, 그리고 그 배후에 대기업이 얽힌 사건은 천안지검 검사들로선 자신의 존재감을 알릴 좋은 기회인 셈이다. 현재 tvN에서 방송 중인 드라마 <비밀의 숲>에서 검사가 재벌 회장에게 90도로 고개 숙인 장면을 떠올리면 분위기를 이해하기 더욱 쉽다.

실제 <추적60분> 취재진들과 접촉한 노동자들은 하나 같이 천안지검 검사들이 현재 구속 수감 중인 유성기업 유시영 대표에겐 우호적이었다고 증언했다. 더구나 재판부가 이례적으로 검찰이 구형한 징역 1년보다 높은 1년 6개월을 선고했음을 감안해 볼 때, 담당 검사의 편파수사가 도를 지나쳤다고 밖엔 볼 수 없다.

검찰은 <추적60분> 취재진에게 재판부 판단이 이례적임을 인정하면서도 봐주기는 아니고 "그 당시 사회 분위기나 견해차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뒷맛은 여전히 개운치 않다. 최근 검찰 개혁을 위해 검경 수사권 조정, 공수처 설치 등의 방안이 활발히 논의중이다. 여기에 기업사건, 특히 노사갈등 사건에 대해 검찰이 수사권을 행사하도록 해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정의는 뒤늦게라도 구현돼야

 12일 오후 방송된 KBS 2TV <추적 60분> '검찰과 권력' 2부작 '1편, 유성노조 6년 잔혹사의 비밀'에서는 6년째 이어지는 유성기업 노사갈등을 통해 검찰의 존재의미를 묻는다.

12일 오후 방송된 KBS 2TV <추적 60분> '검찰과 권력' 2부작 '1편, 유성노조 6년 잔혹사의 비밀'에서는 6년째 이어지는 유성기업 노사갈등을 통해 검찰의 존재의미를 묻는다. ⓒ KBS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그러나 정의는 뒤늦게라도 구현되어야 한다. 그래야 노조파괴가 근절되고, 이를 부추기는 재벌의 행태가 바로잡히고, 검찰의 노골적인 재벌 봐주기 관행이 사라진다.

유성기업의 노사갈등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비슷한 일을 겪고 있는 갑을오토텍도 마찬가지다. 사용자 측의 노조파괴 행위에 맞서 힘겹게 싸우는 노동자들이 하루속히 일과 가정에만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란다. 또 문재인 새 정부가 노조파괴 수단으로 전락한 복수노조에 대해서도 관련 규정을 정비해 달라고 당부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조대엽 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유성기업이 어느 재벌의 하청업체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니 걱정이 앞선다.

결국, 노동자들이, 그리고 시민들이 나설 수밖엔 없겠다. 새 정부가 모든 걸 다 해결해 줄 것이란 생각은 잘못이다. 목소리를 내는 만큼 세상은 앞으로 나간다. 유성기업 노사갈등이 정의롭게 해결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야겠다.

유성기업 노조파괴 추적60분 천안지검 갑을오토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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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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