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택시운전사>에 출연한 송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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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현대사의 아픔을 직간접적으로 다룬 영화들 몇 편을 기억한다. 2000년대 초중반을 수놓던 이 작품들은 우리가 겪은 독재와 억압의 그림자를 조명했고, 여러 질문을 던졌다. 정치권력에 대한 블랙코미디든, 시대와 불화한 개인의 아픔이든 한국 영화가 꾸준히 그것을 불러내 재해석하는 건 충분히 환영해야 마땅하다.

오는 8월 2일 개봉을 앞둔 <택시운전사>도 그와 맥락이 같다. 1980년 5월, 광주를 소환한 이 영화의 특징이라면 내부자가 아닌 두 외부자의 시선으로 해당 시대를 그렸다는 점이다. 한 명은는 독일인 외신기자인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이고 다른 이는 서울 지역 택시기사 김만섭(송강호)이다.

캐릭터성 

영화 초반부는 이 외지인이 광주의 비극에 동화되기까지 과정을 그렸다. 사우디에서 5년 간 고생하며 모은 돈으로 가족을 부양하던 만섭은 군부 독재에 저항하며 데모하는 청년들을 향해 "사우디에서 고생 좀 해봐야 정신 차리지"라며 혀를 차는 소시민 중 하나다. 아내와 사별한 후 딸을 키우며 어려운 살림을 도맡은 그는 10만원에 혹해 광주로 향하자는 외신 기자 힌츠페터를 태운다.

기자의 사명을 안고 한국 내 비극을 알리겠다는 힌츠페터와 달리 만섭은 영문을 모른다. 영화는 두 사람이 옥신각신하다 함께 참상을 목격했을 때 겪는 심리적 충격을 그대로 담아낸다. 여기에 광주 지역 대학생 구재식(류준열)과 광주 택시기사 황태술(유해진)이 합류하며 영화는 영문도 모른 채 고통 받던 당시 광주 시민들, 거기에 감응한 선한 사람들의 연대를 그린다.

 영화 <택시운전사> 관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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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보면 <택시운전사> 속 주요 캐릭터는 보통사람들과 피해자성을 대표한다. TV나 라디오 뉴스, 그리고 자신의 경험으로 적당히 몸 사리며 돈을 벌던 만섭은 임산부 같이 위급한 사람이나 사정이 어려운 노인을 기꺼이 태워주는 선한 인물이기도 하다. 대학가요제에 나가기 위해 대학생이 됐다는 재식과 군인들에게 짓밟히는 청년들을 돕는 태술 역시 순박하며 정의로운 인물이다. 영화는 철저하게 이들을 짓밟는 군경을 대비시키며 관객에게 일종의 감정적 동요를 이끌어 낸다.

앞서 묘사한대로 일련의 흐름이 한국 상업 영화가 택해온 전략과 일치한다. 입체적 인물을 깊은 심도로 묘사하기 보단 감정의 극대화를 위해 각 캐릭터를 기능적으로 배치하는 식이다. 대중성을 담보하기 위한 검증된 전략이지만 동시에 이는 새로움을 기대하는 관객들에겐 피로감을 준다. <택시운전사>는 그 점에서 아쉽다. 이런 식상한 전략이 송강호, 유해진 이하 배우들의 내공으로 가려진다는 건 다행이다. 배우들 면면만으로 충분히 볼 가치가 있으니 말이다.

진짜 하고 싶었던 말

물론 단순히 피해자 중심의 시선이 아닌 외지인의 시선으로 비극을 바라본 건 신선한 시도다. 보통사람으로 대표되는 만섭과 사명감을 가진 언론인 힌츠페터에 관객이 충분히 감정이입하도록 영화가 비교적 안전한 전략을 택한 게 아쉬울 따름이다. 더불어 북에서 남으로 향하는 택시가 광주 시내에서 좌충우돌하고 결국 남에서 북으로 향하는 이 방향성이 화면 속 미장센으로 충분히 드러났으면 어땠을까. 택시의 움직임에 따라 인물과 사건을 분류했다면 더 깔끔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다소 미장센이 산만한 것도 옥에 티다.

그럼에도 <택시운전사>는 마음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이건 6년 만에 영화를 내놓기까지 이 소재에 집중한 장훈 감독 이하 배우들의 진정성 덕이다. 세련됨과는 별개로 광주 시민들의 환영을 받는 독일 기자와 택시 기사, 광주의 비극을 뒤로 하고 홀로 서울로 향하려는 만섭이 갈등하는 모습은 애잔하고도 애잔하다.  

감독과 배우들은 "광주의 아픔을 되새기는 게 아닌 그 아픔을 딛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말하는 작품"으로 <택시운전사>를 소개한 바 있다. 희망을 말하고 싶었던 셈인데 영화 곳곳에 녹아 있는 유머들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분위기는 무거운 편이다. 좀 더 그 무게감을 덜고 임했다면 어땠을까? 여전히 시대의 어둠을 소환할 악한 정치인과 공인들이 현재도 차고 넘쳐서일까. 다짜고짜 빨갱이라 프레임을 씌워 공격하는 정치인과 보수 언론들의 전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 현재성 때문에 <택시운전사>는 희망을 말하기 보단 희망을 말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느껴졌다. 절망을 절망하지 않고 등가로 치환시킬 힘이 부족해 보인다.

 영화 <택시운전사> 관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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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택시운전사>의 묘미는 영화 중간중간 보이는 또 다른 메시지에 있다. 광주 시민들의 항쟁 장면 구석엔 '언론은 공정보도 하라'는 현수막이 걸려있고, 군부의 언론 통제 장면 너머로 비슷한 문구가 신문에 걸려있다. 장훈 감독 역시 "이 영화는 언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말한 바 있다. 진실을 외면하지 않았던 한 외신 기자, 이들을 도왔던 숱한 시민들. 그런데 정작 이들을 학대한 주범은? 군부 독재 세력뿐일까. 그 안에 기생하며 본분을 저버린 언론이 오히려 거악은 아닐지.

이 질문은 '빨갱이'라는 메카시즘과 함께 여전히 대한민국 사회에서 유효하다. <택시운전사>는 이 점에서 기존 시대극으로부터 한 발 나아갔다.

한 줄 평 :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아픔, 세상을 바꾸는 건 결국 보통사람들
평 점 : ★★★(3/5)

영화 <택시운전사> 관련 정보
감독: 장훈
각본: 엄유나
출연: 송강호, 토마스 크레취만, 유해진, 류준열
제공 및 배급: 쇼박스
제작: 더 램프
크랭크인: 2016년 6월 5일
크랭크업: 2016년 10월 23일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37분
개봉: 2017년 8월 2일


택시운전사 송강호 유해진 광주항쟁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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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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