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BS


'과로사'라는 말, 이젠 더 이상 우리 사회에서 생소한 단어가 아니다.

지난 8일 방영된 <그것이 알고싶다>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과로 자살'을 조명한다. 과로가 심해서 자살을 한다고? 그러면 열에 아홉은 이렇게 말하기 쉽다. '그만두면 되지, 뭐하러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거두느냐'고. 하지만 프로그램은 답한다. 과로사의 한 영역으로서 '과로 자살'을 인정해야 한다고.

인간 무한 요금제, 과로 자살을 부르다

ⓒ SBS


명문 카이스트를 나와 대기업 삼성중공업의 과장인 이창헌씨. 그는 부모님이 사시는 아파트에서 몸을 던졌다. 결혼한 지 일 년여, 두 달 된 딸내미를 둔 가장의 결정이라기엔 너무도 참혹하다. 자상한 가장이었던 남편의 죽음을, 성실한 직장인이었던 아들의 죽음을 수긍할 수 없어 가족은 회사에 항의하지만 '개인적 결정'인 자살 앞에 대기업인 회사나, 직장 상사들은 냉담하다.

하지만 삼십 대의 젊은 나이에도 체력이 달려 간호사였던 아내가 수액을 놔줘야 할 만큼 매일 야근의 연속이었던 그의 일상. 심지어 연구직 출신이지만 사업부로 보직이 변경되어 희망퇴직의 위협에 하루하루를 보내던 그의 마지막 선택은 세상을 버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회사의 입장대로 이런 선택이 이창헌씨만이 선택이었다면 '개인적 결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중소기업 입사 1년 만에 꺼리는 베트남 지사에 홀로 배치되어 새벽까지 업무를 보던 젊은 사원이나, 실적이 날 때까지 근무하는 '크런치 모드' 와중에 지난해 한 해에만 4명이 자살한 잘 나간다는 게임 업계, 2013년부터 지금까지 사망자 70여 명 중 돌연사 15명에, 자살 15명이라는 집배원 등…. 밥 먹듯 하는 야근과 과중한 업무 사이에서 결국 '자살'을 선택하는 직장인들이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업계를 막론하고 '비일비재'한 일이다. <그것이 알고싶다>의 문제의식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똑같이 주는 월급, 한도 끝도 없이 부려먹는 직장인의 현실을 '인간 무제한 요금제'라 스스로 자조하는 현실. 특히 1961년 생긴 근로시간 특례 제도 법은 통신·의료·광고·운수 등 집배원을 포함한 26개 업종의 경우 사업자가 근로자와 합의만 되면 법정 근로 시간과 상관없이 초과 근무를 시킬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런 법적 현실이기에, 설사 이곳을 떠난다 해도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없다는 절망감, 과로로 인한 판단력 상실, 우울증 등이 극단적 결정으로 오늘의 직장인들을 이끈다.

과연 이렇게 인간을 마지막까지 몰아붙이며 일을 시키는 관행과 적폐에 대한 대안은 없을까? <그것이 알고싶다>는 대형 광고 회사 덴츠에서 하루 20시간씩 일을 하다 '자살'을 한 다카하시 미츠리로부터 시작된 문제의식이 '과로사 방지법'(2014)으로 이어진 일본에서 그 해답을 찾고자 한다.

그렇게 <그것이 알고싶다>가 '법'을 통해 최악의 노동 현실을 돌파하려 했다면, 다음 날 방영된 < SBS 스페셜 > '회사를 바꾼 괴짜 사장'은 사용자의 의식 혹은 태세 전환으로서의 '일터 민주주의'를 제시한다.

일터 민주주의의 선두주자, 괴짜 사장님들

ⓒ SBS


프랜차이즈 업주의 갑질이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 법정 구속까지 가는 요즈음 그 정반대의 '사장님'들을 < SBS 스페셜 > '회사를 바꾼 괴짜 사장' 편이 다뤘다. 그 첫 번째 인물은 오늘은 북유럽으로, 어제는 중국으로 동거숙서가식(東家宿西家食)하는 여행사 사장님 신창연 대표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불황의 여행 업계에서 해마다 뛰는 매출 실적을 자랑하는 회사의 사장님이었던 신창연 대표. 그는 직원들을 위한 갖가지 복지 제도를 마련했다. 2013년, 사내 80%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사장 자리를 내놓겠다는 과욕을 부렸고, 단 한 명이 부족해 사장 자리에서 '잘리는' 처지가 되었다. 처음 투표의 결과를 받아들고 잠시 '멘붕'에 빠지기도 했다는 그였지만, 곧 진정한 회사 내 민주주의를 위해 기꺼이 자리를 내놓았다. 그 이후 그의 삶은 180도 바뀌었고, 지금은 세계를 오가며 자유롭게 사는 중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렇게 '사주'가 사라진 회사는 성장을 거듭했고, 그의 후임 사장 역시 지금은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 영업 본부장으로 현직을 이어나가고 있다. 자리가 아닌 일로써 존재하는 '사장' 자리. '사장'이 없어도 자율적으로 자기 일을 즐기는 기업 문화를 정착하게 했다.

신창연 대표만 괴짜가 아니다. 한때 몇 개의 요식업소를 운영하던 '갑'이었던 사장님은 이제 수유동 작은 일식당의 '해피님'이 됐다. 커다란 식당 대신 사람 몇 명만 들어가도 꽉 차는 작은 식당에는, 수많은 직원 대신 이 식당이 열렸던 그 시절부터 함께 하는 직원이 있다. 화장실 청소부터 온갖 허드렛일은 '해피님'이 도맡아 하고, 식당의 대소사는 모두 직원회의를 거쳐 결정되는 이곳은 '해피님'이 원하던 진짜 일터이다. 이곳엔 아르바이트 대신 이익금을 나눠 받는 직원이 있고, 언젠가 더 좋은 조건을 찾아 떠나는 직원 대신, 이곳에서 뼈를 묻을 각오가 되어있는 주인들이 있다.

한술 더 떠서 일주일에 4일만 근무하는 직장도 있다. 돈을 주면 무제한으로 부려먹는 것이 관행이 된 대한민국에서 불금을 회사 대신 가정에서 맞이하는 직장, 오후 6시만 되면 뒤도 안 돌아 보고 모든 직원이 회사를 비우는 직장이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그렇게 주 4일 근무한 이래 이 회사의 실적이 비약적 발전을 해냈다는 것이다. 그 결단은 사장님으로부터 시작됐다.

ⓒ SBS


밤거리를 빛내는 건물의 불빛, 그 불빛을 보고 직장인들은 '상사의 눈치로 인한 불가피한 태업'이라고 자조한다. 그 시간까지 할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전근대적 업무 관행으로 인해 할 일이 없어도 자리를 지켜야 한다. 늦은 퇴근과 그로 인한 피로의 축적, 업무 효율의 저하를 낳는다는 것을 회사원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최근 '창의성'과 '기발한 아이디어'가 화두가 되는 새로운 산업 생태계에서, 과연 우리의 전근대적 업무 관행이 우리 산업을 계속 승승장구하게 할 것인가. 다큐멘터리가 찾아간 미국 IT 업계 신생 기업의 자유로운 사내 문화는, 현 한국 사회에 제시하고 있는 바가 크다.

결국 '회사를 바꾼 괴짜 사장'이 내세운 것은 '갑'의 변화이다. 프로그램의 마지막 30년 동안 이끌었던 회사를 퇴임하는 회장님, 퇴임하는 회장님이라는 우리 사회에서는 이율 배반으로 들리는 이 정의를 실천하는 회장님을 통해, 회사는 새로운 전통을 일궈나간다. <그것이 알고싶다>가 말하고자 한 것도 그것이다. 법과 제도가 있더라도,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유용하고자' 마음먹는다면, 인간을 돈을 주면 무제한 부리는 대상으로 간주한다면, 과로사와 과로 자살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과로사처럼 과로 자살 역시 '산재'로 인정하는 사회적 경각심도 필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일을 하다 하다 자신이 도피할 곳은 죽음밖에 없다는 절박한 상황으로 몰고 가는 '과로 사회', 그 자체에 대한 법적 방지와 인식의 제고이다. 그리고 그 '가능성'의 하나로써 < SBS 스페셜 >의 괴짜 사장님들이 제시된 셈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알고싶다 SBS스페셜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