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속사정쌀롱>에 출연했던 고 신해철.

JTBC <속사정쌀롱>에 출연했던 고 신해철. ⓒ JTBC


"(청년)백수들에 대한 한 가지 더 변명인데, 내가 전혀 수입 없이 작업실에 앉아서 무한정 나오지 않는 곡을 기다려요. 모든 가족들에게 민폐를 끼치면서, 가족들에게 못난이가 되면서, 내 가족들이 고통 당하지만 나도 죽을 거 같고 힘들어. 그런데 내가 여기서 벗어나서 무슨 '사이드잡'이라도 구하고 당장 생계에 도움이 될 거 같은데, 여기서 발을 떼지 못하는 이유는 그 알바 자리 한 번이라도 갔을 때, 내가 다시는 이 작업실로 돌아오지 못할 까봐."

영상 속 신해철은 변함없는 달변가였다. 속사포 같은 속도로 진지하게 논지를 이어가다가도 "왜 <100분 토론> 분위기가 되느냐"며 너스레를 섞었던 고 신해철. 최근 소셜미디어 상에선 과거 jtbc <속사정살롱> 1회에 출연했던 그의 영상이 재조명되고 있었다. 이미 유투브와 페이스북 도합 70여 만회가 조회된 이 영상은 신해철 식의 '청년들을 위한 항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헤매는 청춘을 다그치지 말라"라는 제목의 영상 속 신해철은 영상 속에서 위와 같이 '취준생'들은 물론 창작에 몰두하는 와중에 불안감에 시달리는 청년 세대의 심리를 대변하고 있었다. 이 '해철이 형'의 조언은 이미 청년 시절을 통과한 기성세대도 적지 않게 공감할 만한 내용이었다.

"'젊은 사람들이 직장이 없어서 난리라고 얘기하면서도 막상 힘든 일은 하지 않는다' 라든가 이렇게 비판적인 얘기들을 하잖아요. 요즘 사람들은 정신력이 약하다든가 그런 식으로.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게, 예를 들어서 (사연 속) 이 (청년) 친구 같은 경우 나가서 (무슨 일을 해도) 40만 원 정도 벌 수 있겠죠.

근데, 내가 다른 계획을 세울 수 있고, 한 달 뒤든 1년 뒤든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상태에서 내가 오늘 땀을 흘리는 거하고, 아무것도 디자인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오늘 하루 힘든 일 하는 거 하는 건 정말 달라요. (알바) 그거라도 해라…. 지금 그 상황에서 할 수는 있겠죠. 사람이 그걸 몸이 힘들어서 못 하는 게 아니거든요. (미래가) 보이지가 아니니까 못 하는 거지."

고 신해철의 충고, "헤매는 청춘을 다그치지 말라"

 JTBC <속사정쌀롱>에 출연했던 고 신해철.

JTBC <속사정쌀롱>에 출연했던 고 신해철. ⓒ JTBC


'청년 수당'과 같은 정책이 늦었지만 국민들의 공감대를 얻고, 서울시를 비롯한 각 지자체 별로 도입과 실험을 병행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 아니겠는가. 이 청년 세대에게 보이지 않는 미래를 위해 투자할 시간을 벌어주는 것, 수당과 같은 형태로 그 시간을 벌기 위한 금전적 여유를 보장해 주는 것.

이것이야말로 독일과 같은 국가가 청년을 우대하고 그들의 미래를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으면서 내수를 활성화시킨 원동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신해철의 '기름'과 '주유' 비유는 청년 세대는 물론 그 이상 세대에도 공감과 위로를 이끌어낼 만 했다. 보편적인 복지라는 측면에서 말이다. 

"우리가 운전하고 가다가 기름이 떨어져서 (차가) 섰을 때, 보험사 직원이 나와서 최소한 주유소까지 갈 수 있는 기름은 넣어 주듯이, 그런 과정에 있는 사람이 최악의 절망에 빠지지 않게 해주는 게 복지잖아요. 그런 주변 환경이나 사회적인 여건도 충분치 않는데, 오늘 하루 당장이라도 뭐라도 해야 될 거 아니냐고 몰아세우기엔, (청년이나 청년 백수들) 그들이 (무조건) 정당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일방적으로 나쁘다고 얘기해서도 안된다는 거죠."

어쩌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비단 청년 세대뿐 아니라 스스로들을 몰아세우고 있는 건 아닐지. 사회적인 기준에, 또 높아진 경제적 눈높이에 맞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자신들을 몰아세우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르렀을 때, 신해철의 이러한 논지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작품들이 떠올랐다. 지금 한창 개봉 중인 독립영화 <델타보이즈>와 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 <쌈 마이웨이>, 그리고 방영을 준비 중인 드라마 <청춘시대> 시즌2 말이다.

<델타보이즈>와 <쌈, 마이웨이>

 영화 <델타보이즈>의 한 장면.

영화 <델타보이즈>의 한 장면. ⓒ 인디스토리


독립영화 <델타보이즈>는 신해철이 봤다면 소리 지르며 환호했을 만한 작품이다. 신해철이 <속사정쌀롱>에서 얘기한 그 주인공들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겨 놓은 듯한 이 <델타보이즈> 속 네 남자들은 남성 사중창 대회에 나가고자 주변에 '민폐'를 끼치는 이른바 '루저'들이다. '사이드 잡'에 매진하면 지금의 목표를 잃어버릴 것 같고, 다그치는 어른들은 주변에 넘쳐나고, 그럼에도 이 사중창 대회 출전은 자신들의 손으로 이뤄내고 싶은 네 남자(어른이)들.

맞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이들은 한낱 철없고 쓸모없는 애어른들일 뿐이다. 만날 돈이 없어 라면으로 매 끼니를 때우면서도, 아직 정신 차릴 생각이 없다. 아니,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다. 본업은 없거나 있어도 따분하다. 내 일이 아닌 거 같다. 그래서 이 흑인 사중창 보컬그룹 '델타 리듬 보이즈'의 노래를 꼭, 자신들의 노력으로 가창해 내고 싶다. 합창대회 무대에 꼭 서 보고 싶다. 그래야 '내'가 '나'일 것 같다.

<델타보이즈>가 우리 시대 '루저'(로 보이는 청춘)들을 위한 절절한 연가라면, 드라마 <쌈, 마이웨이>는 좀 더 달달하면서도 애달프고, 머금은 웃음기 안에 애환을 품은 청춘드라마다. "세상이 보기엔 부족한 스펙 때문에 마이너 인생을 강요하는 현실 속에서도, 남들이 뭐라던 '마이웨이'를 가려는 마이너리그 청춘들의 골 때리는 성장로맨스"를 담아냈기에, 젊은 층들에게 특히나 공감대를 얻어냈다. 

치명적 '하자'를 지닌 파이터 동만은 태생이 낙천적이다. 뉴스 진행이 평생의 꿈이었던 애라는 낙방이 계속될수록 맷집이 늘어간다. "취직하면…", "대리 달면…", "전셋집 구하면…"을 달고 살던 동만과 그런 동만에게 헌신하던 설희는 응원할 수밖에 없는 우리 시대의 보통 커플이다. 그래서 동만이 숨겨왔던 트라우마를 고백할 때, 애라가 건방진 후배에게 한 방 먹일 때, 동만이 설희에게 감춰왔던 진짜 속내를 드러낼 때, 이 시대의 보통 청년들은 공명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청춘시대> 시즌2

 드라마 <청춘시대>의 다섯 주인공들.

드라마 <청춘시대>의 다섯 주인공들. ⓒ JTBC


그리고, <청춘시대>. 셰어하우스 '벨 에포크'에서 동거하는 다섯 20대 여성들을 등장시킨 이 섬세하고 배려 깊은 드라마는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같이 지극히 '꼰대'스러운 해결책이 아닌, "니가 왜 죽어"라거나 "그래, 살어! 죽지 마"라는 단편적인 이해를 넘어서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통해 '함께 살아가기'를 모색한 바 있다.

20대를 통과해 온 여성들이 한 명 한 명 "이건 내 얘기"라 할 만한 생생한 캐릭터와 절제와 유연함이 공존하는 형식미를 보여준 <청춘시대> 시즌1은 한국 드라마에서 보기 드문 식상하지도, 과장되지도 않은 청춘드라마의 성취를 이뤄낸 작품이었다. 단순한 격려나 표피적인 응원이 아닌 섬세한 관찰이야말로 <청춘시대>를 우리 시대의 드라마이자 모범적인 여성드라마의 반열에 오르게 만든 바탕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시즌제가 기다려지는 좋은 드라마. 배우 분들 모두 잘 되셨으면 좋겠어요"라는 어느 네티즌의 댓글마냥, 2016년의 드라마 중 한 편을 손꼽히는 <청춘시대> 시즌2가 8월 말 방영을 앞두고 있다. 박연선 작가가 다시 집필하고, 스케줄로 인해 하차한 유은혜 역의 박혜수를 대신한 지우를 제외하고 시즌1의 배우들이 총출동한다.

제대로 된 시즌제 드라마의 정착까지도 담보해 낼 이 <청춘시대> 시즌2의 성공을 기원하는 이유는 어렵지 않다. 신해철의 당부처럼, "헤매는 청춘을 다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살아가기를 모색하기 위한 진지하고 사려 깊은 드라마가 흔치 않기에. <델타보이즈>와 <쌈, 마이웨이>와 같은 맥락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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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영화 기자, 오늘은 프리랜서 글쟁이. 살다보니 시나리오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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