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뉴스룸>의 문화초대석에 나와서 손석희 앵커와 이야기를 나눴던 이효리.

JTBC <뉴스룸>의 문화초대석에 나와서 손석희 앵커와 이야기를 나눴던 이효리. ⓒ JTBC


1979년생 이효리.

그녀를 직접 알지 못하는 것은 물론, 팬이었던 적도 없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연예인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관심을 가져본 적은 없었다. 그녀가 아이돌 그룹 '핑클'로 데뷔했을 때 나는 공부를 해도, 하지 않아도, 정신없고 고된 수험생이었다. 어쩌다 TV를 틀면 소위 '핫'하다는 그녀가 나오지만, 길거리 캐스팅이 될 정도로 출중하게 예쁘다는 말도 별로 와 닿지 않았다. 스무 살의 풋풋함과-역설적이게도-묘하게 조숙한 그의 매력을, 그보다 어리고 바쁘기까지 한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런 그녀를, 한 번도 관심 가져보지 않았던 그녀를, 쇼 프로그램도 아닌 무려 JTBC <뉴스룸>에서 마주했다. 왜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던가. 인터뷰어는 냉철하기로 이름난 손석희 앵커. 그녀보다 어린 나이인데, 나에게 때 이른 갱년기라도 왔단 말인가. 갑자기 솟구치는 이 눈물의 정체는 뭔가.

곰곰 생각해보면, 그녀가 달라 보이던 순간이 있었다. 지금은 없어진 어떤 쇼 프로그램에서, 진행자들은 연예인의 얼굴이 보기 흉하게 캡처된 장면을 패널로 만들어 희화화했다. 그 아무리 아름다운 아프로디테라도, 순간적으로 포착된 찰나의 순간마저 빠짐없이 예쁠 수 있을까마는, 그 치사한 장난이 그때는 유행이었던 듯하다.

이효리에게는 특유의 환하게 웃는 얼굴의 패널을 줬다. 눈은 반달 모양에, 잇몸까지 드러내고 웃고 있는 모습. 그녀의 미소는 늘 매력적이지만, 캡처된 화면은 결코 예쁘지 않았다. 애초에 목적이 그 '흉함'에 있었기에. 자, 이제 연예인이 당황하는 것을 볼 차례다. 그렇게 진행되는 게임이니까.

그러나 그녀는 그 패널을 가린다거나, 숨기는 동작을 취하기는커녕, 그 악의적으로 캡처된 장면을 그 자리에서 재연해 보였다. 그녀, 놀라는 진행자들에게 말하기를….

"뭐 어때요. 이효리 예쁜 거 다 아는데."

생각해보니, 그녀가 조금 달라 보였던 것은, 그래서 내 눈에 들어왔던 것은, 그때부터였던 듯하다.

이효리, 속박, 해방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패니 플래그 지음 / 김후자 옮김 / 민음사 펴냄 / 2011.01 / 1만4500원)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패니 플래그 지음 / 김후자 옮김 / 민음사 펴냄 / 2011.01 / 1만4500원) ⓒ 민음사


훌륭한 페미니즘 소설로 알려진 패니 플래그의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에서, 주인공 에벌린은 마흔여덟에 이르러서야 자신이 평생 남의 기준에 맞춰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남의 눈 때문에 순결을 지켰고, 남의 눈 때문에 결혼했으며, 남의 눈 때문에 아이를 갖고, 바가지를 긁지 않고, 언성을 높이지도 않은 등 모든 것의 기준은 제 안이 아니라 바깥에 있었다.

그리하여 완성된 것이 남들에게 존경받고 스스로에게도 당당한, 자부심 넘치는 여인이었다면 다행이겠건만…. 남은 것은 막돼먹은 낯선 아이의 상종할 가치도 없는 막말 "이 피둥피둥한 멍청이 같은 년아!"에도 한순간에 무너져버리는 약해빠진 자아뿐이다. 타인의 눈치를 살피며 모든 규정에 순종하며 살아왔으나, 스스로에 대한 환멸과 "인생이 그냥 제 곁을 스치고 지나가 버린 것만 같"다는 회한과 마주하게 된다.

이렇게 혼란에 빠진 에벌린 앞에 삶에 통달한 듯 보이는, 바비큐와 파이만 먹으면 행복하겠다는 여든여섯의 스레드굿 부인이 나타난다. 에벌린은 스레드굿 부인을 통해 약 반세기 전 휘슬 스톱 마을의 이야기를 들으며, 잃었던 자아를 되찾아간다.

연예인이라는 직업상, 어찌 남의 눈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겠느냐마는, 그녀의 그 당당한 태도는 그 소설을 떠올리게 했다. 그 후, 브라운관에서 그녀의 얼굴을 자주 볼 수 없게 된 뒤, 간간이 들려오는 그녀의 소식은 뜻밖에도, 유기견 돌봄과 봉사활동, 그리고 쌍용차에 관한 언급, 노란 봉투들이었다. 특히 티볼리에 관한 언급은, 그녀만이 할 수 있는 발랄함 가득한 촌철살인의 한마디였다고 생각한다.

다시,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로 돌아가 본다. 휘슬 스톱 마을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이지와 루스의 당찬 삶은 충분히 감동을 주었지만, 나를 감화시킨 것은 무엇보다 그들의 뜨거운 연대의식이었다. 인종차별이 만연하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이지와 루스는 편견 없이 모든 이를 환영한다. 그들 곁을 채우는 건 차별이 아닌 사랑이다.

자유를 꿈꾼 나머지, 차별의 대상이었음에도 상대적으로 자유로워 보이는 흑인을 부러워하는 에벌린. 그녀는 어느 날 마틴 루서 킹 기념 침례교회를 찾아가게 되고, 그곳에서 해방을 맞이한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의, 그녀 안의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을.

"자기 자신을 용서했다. 그녀는 자유로웠다. 자유로웠다. 온갖 고난을 겪었으면서도 증오와 두려움이 사랑의 정신을 죽이게 두지 않았던, 바로 오늘 이곳에 모인 사람들처럼."

약한 자들의 아름다운 연대의식

페미니즘으로 유명한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의 백미는, 약한 자들의 연대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실상, 내가 이해하는 페미니즘도 이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모든 속박으로부터의 해방.

스스로 아는 게 별로 없다고 겸손의 말을 덧붙이면서도, 계속해서 사회적 참여를 주저하지 않는 이효리. 환하게 웃으며 인터뷰에 응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지나온 그녀의 행보를 동시에 떠올렸나 보다. 동시대의 사람들과 연대할 줄 아는, 자신만의 세계에 갇히지 않고 기꺼이 세상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서는 그녀. 그녀의 성장은, 나 자신도 지나온 길을 돌아보게 만든다.

결국, 길게 쓴 팬레터가 되었다. 언제나 그녀를 응원할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은, 나 역시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과 잘못된 것에 대해 내 방식대로 표현하며 세상과 연대할 것이라는, 하나의 다짐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패니 플래그 지음 / 김후자 옮김 / 민음사 펴냄 / 2011.01 / 1만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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