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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카페에 들어선 그녀는 그런 인사를 전했다
 "감사합니다."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카페에 들어선 그녀는 그런 인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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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카페에 들어선 그녀는 그런 인사를 전했다. 당시 나는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 상담소에서 모집한 성폭력 피해자 재판동행지원단 활동에 참여하고 있었고(현재는 '성폭력 피해에 공감하는 첫사람'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관련 링크), 감사를 건넨 사람은 우리가 이제 막 참관을 마친 재판에서 자신의 피해를 증언하신 분이었다.

재판 동행 활동을 한다고 해도 법정 밖에서 피해 당사자와 마주칠 일은 매우 드물었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거의 없는 일이었기에 참으로 낯선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그분이 고마움을 표하시는 게 멋쩍었다.

사실 지원단으로 재판에 참여하며 뭔가 큰일을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다. 재판동행지원단의 주요한 임무는 방청석에 앉아 재판 과정을 꼼꼼하게 모니터링 하고 판사나 변호사, 검사의 문제가 될 만한 행동을 기록하는 것이었다. 혹은 이들이 피해자에게 그와 같은 폭력을 휘두르지 못하도록 무언의 압력을 넣기도 했다.

말하자면 기록하고 지켜보는 것, 그것이 나의 일의 전부였다. 법정에서의 싸움은 오롯이 피해자의 몫이었고 나는 그 광경을 바라보는 것 외에 별다른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때의 나는 머쓱하고 괜히 미안했다.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아니요, 저는 한 일이 없는 걸요. 홀로 직접 이루고, 싸우고 계신 거예요."

피해자의 위치는 생각보다 녹록지 않다

'법대로 하자'. 한국에서 살다보면 한 번쯤 듣게 되는 말이다. 일상에서 크고 작은 시비가 발생할 때 사람들은 저렇게 말하곤 한다. 법을 만드는 국회도, 거기에 기반해 판단을 내리는 법원도 크게 신뢰하지 않으면서도 유독 재판을 받으면 공명정대한 결과를 얻으리라 생각하곤 한다.

그래서인지 가끔 이런저런 판례를 찾아보면 '저걸 굳이 대법원까지 들고 갔어야 했을까' 싶은 사건을 종종 발견한다. 형사 사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피해자의 서사란 다음과 같다. 범죄가 발생한다. 피해자는 경찰을 찾고 사건은 법원으로 넘겨진다. 그리고 판결을 통해 가해자는 마땅한 처벌을 받는다. 끝.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생략된 과정이 많다. 피해가 정말로 발생한 것이 맞다고 해도 그것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는다면 사건은 법원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재판이 열린다고 해도 판결을 위해서 또 다시 가해 여부를 재검토한다. 말하자면 경찰이나 사법부로 사건이 넘겨진다고 해도 모든 게 끝나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이는 피해자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서면으로든 화상으로든 아니면 직접 법정에 서든, 피해자는 계속해서 자신의 경험이 사실이며 가해 행위가 존재했음을 증명해야 한다. 그냥 떠올리기도 힘든 기억을 말로, 그것도 구체적이고 조리있게 풀어내야 한다. 개개인의 차이야 있겠지만, 대부분 사람에게 고통스러운 일이다. 또 다른 싸움의 과정이 피해자 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영화 <한공주> 스틸컷. 집단 성폭행을 당하고 사회에서 내몰린 주인공 공주는 “저는 잘못한 게 없는데요...”라고 말한다.
 영화 <한공주> 스틸컷. 집단 성폭행을 당하고 사회에서 내몰린 주인공 공주는 “저는 잘못한 게 없는데요...”라고 말한다.
ⓒ 리 공동체 영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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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피해자를 위축시키는가

이렇듯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리고 재판에 참여하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문제는 또 있다. 바로 증언 과정에서 발생하는 폭력이다. 물론 가해자의 변호인이 피해자의 말에 의문을 던지고 정확한 실체를 파악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수준을 넘어 사건과 무관하고, 피해자에게 수치심과 모멸감을 줄 수 있는 질문을 던지는 경우가 매우 빈번히 발생한다.

가령 피해자의 과거 성적 경험을 질문하거나 가해 발생 당시에 어떤 옷을 입었으며 가해자에게 유혹으로 인식될 수 있는 행동을 하지 않았느냐고 질문하는 경우다. 이는 전형적으로 '피해자 유발론'을 뒤집어씌우는 행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피해자가 스스로 재판을 포기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여기에 성폭력 무고죄는 피해자를 위축시키는 또 다른 존재다. 무고죄는 타인에게 형사처분 또는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허위의 사실을 신고하는 경우를 처벌하기 위한 조항이다. 문제는 이 같은 조항이 성폭력 가해 사실을 허위로 몰고, 피해자의 입을 막기 위해 악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무혐의는 '피해 사실을 충분히 입증하지 못했음'을 뜻할 뿐이지 '성폭력이 없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특히나 증거나 증인이 남기 쉽지 않은 성범죄의 특성 때문에 당사자가 자신의 피해 사실을 충분히 증명하지 못하는 일이 종종 생긴다.

하지만 이런 경우 사람들은 피해자가 소위 말하는 '꽃뱀'이며 거짓 증언을 했으니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곤 한다. 때문에 험난한 재판 과정과 되레 범죄자로 몰릴 위험 때문에 성폭력 피해 신고조차 꺼리는 일이 발생한다. 익히 잘 알려져 있지만 성폭력은 발생 건수에 비해 신고 건수가 유독 낮은 범죄들 중 하나다.

4일 유명 연예인을 성폭행 혐의로 고소했다가 무고죄로 기소 당한 여성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이 서울지방법원에서 열렸다. 이날 재판은 4일 오전 9시 30분부터 시작해 그 다음날인 5일 오전 2시 35분에 끝이 났다.
 4일 유명 연예인을 성폭행 혐의로 고소했다가 무고죄로 기소 당한 여성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이 서울지방법원에서 열렸다. 이날 재판은 4일 오전 9시 30분부터 시작해 그 다음날인 5일 오전 2시 35분에 끝이 났다.
ⓒ 유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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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누군가의 용기다

얼마 전 성폭력 사건을 이유로 한 유명 연예인을 고소했다 되레 무고와 명예훼손으로 한 여성이 기소를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고소인의 직업은 유흥업소 종업원, 사건을 듣자마자 그런 예감이 들었다. 세간의 편견과 억측 속에서 정말 힘든 싸움을 벌이겠구나. 그리고 정말 법정에선 성폭력 피해자와 유흥업 종사자에 대한 편견 얽힌 질문이 난무했다.

왜 도망치지 않았느냐, 돈을 준다고 그래서 관계를 맺은 것은 아니냐는. 그리고 그 모진 시간을 뚫고 결국 1심 판결이 나왔다. 일곱 명의 배심원단은 무고 혐의에 대해 만장일치 무죄 의견을 냈고, 재판부의 결정도 같았다. 합의 처리나 무혐의가 곧 위증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걸 다시 보여줬다. 이번 판결은 또 하나의 큰 족적으로 남을 것이다(관련 기사).

기쁜 소식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나는 그 고소인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지금까지 법원 방청석에서 그리고 어느 날 법원 카페에서 마주쳤던 다른 피해자들의 모습도. 그리고 그제서야 한 피해자가 건넸던 고맙다는 말의 의미가 무슨 의미였는지 알 것도 같았다.

자신은 겪어서 알지만 재판정의 누구도 확신하지 못하는, 그래서 너무나 고통스러운 피해임에도 그만한 신뢰를 부여 받지 못한채 이를 계속해서 주장하고 입증하는 일. 그 일은 너무도 외로워서 멀리서 믿음을 가지고 바라 보기만 하는 사람의 존재 조차도 힘이 되는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 괴로움을 뚫고 일어섰던 이번 사건의 고소인과, 이전에 함께했던 피해자 분들에게 고마움과 지지를 보내고 싶다. 그 모습들은 분명 또 다른 누군가의 용기가 되어 주었으리라 굳게 믿는다.


태그:#성폭력, #무고죄, #성범죄, #여성주의,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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