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취임식에서 슈퍼돼지 사업을 설명하는 루시 미란도

자신의 취임식에서 슈퍼돼지 사업을 설명하는 루시 미란도 ⓒ 넷플릭스


봉준호의 영화들의 (수치 상)규모는 점점 커지는 중이다. 제작비 62억 원이 들었던 소품 <마더>(2009)를 제외하면 <괴물>(2006) 150억 원, <설국열차>(2013) 430억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지난주에 개봉한 <옥자>(2017)는 579억 원의 제작비가 들어갔다고 알려졌다.

물론 영화의 제작비 금액이 커진다는 것 자체가 영화가 주는 스펙터클이 양적 팽창 하거나 질적 팽창하는 것과 직결되지는 않는다. 영화의 제작비도 결국 영화가 만들어지는 시기의 물가상승 법칙과 무관할 수 없을뿐더러 제작비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용되는지의 여부, 즉 프로덕션의 능력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제작비의 규모가 좋은 작품을 규정하는 것도 아니다. 제작비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영화가 만들어지고 사람들에게 보이는 영화의 생리와 직결되는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영화를 그저 친밀한 사람들과 공유하는 이야기나 예술로써 바라보는 우리에게는 그저 영화를 구성하고 있는 하나의 외곽선일 뿐이다.

내가 제작비에 관한 의견으로 <옥자>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는 것은 봉준호의 영화들이 점점 제작비의 규모가 커지는 것과 비례해서 동시에 그의 영화들이 점점 국적 불명의 영화들이 되어가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게 되는 사람들에게 내가 쓰는 국적 불명이라는 말을 다소 조심스럽게 이해해주기를 요청한다. 여기서 국적은 국경적 개념의 국적이 아닌 정서적 개념의 국적이다. 따라서 한국에 사는 당신이 고작 2시간짜리 영화 <옥자>를 보면서 그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이 지금까지 봉준호의 영화들과는 달리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면, 바로 그 이유는 <옥자>가 한국 사람들이 등장하고 한국 감독(그것도 심지어 봉준호)이 만든 가장 국적불명에 가까운 영화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이전 작 <설국열차> 역시 국적 불명의 영화이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당신이 <설국열차>에 보다 쉽게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설국열차>가 계급과 층위(level)를 다루는 영화였기 때문이다.

 강원도 오지에 살고 있는 소녀 미자. 하지만 미자의 국적은 어디인가.

강원도 오지에 살고 있는 소녀 미자. 하지만 미자의 국적은 어디인가. ⓒ 넷플릭스


<옥자>의 첫 번째 버전, 미자와 ALF

내 생각에 우리는 <옥자>를 주요 등장인물에 의지해서 두 가지 버전으로 볼 수 있다. 첫 번째 버전은 물론 유일한 친구이자 가족인 옥자를 되찾기 위해 자본의 세계로 위험한 모험을 떠나는 강원도 산골소녀 미자와 그녀를 도우며 미란도 기업에 대항해 투쟁하는 다소 교조적인 성향의 과격파 NGO인 ALF(Animal Liberation Front, 동물해방전선)의 모험기이다.

미자는 강원도 오지에서 할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소녀다. 미자는 학교도 다니지 않고 옥자 외에는 딱히 친구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미자의 유일한 일과는 옥자와 산속에서 과일을 따 먹고 물고기를 잡고 놀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미자와 옥자가 함께 노는 풍경은 낙원 같기보다 오히려 답답하고 위험하다는 느낌이 든다. 강원도는 산세가 가파르며 계곡은 좁고 날카롭다. 영화에서 옥자와 미자가 자유롭게 뛰노는 곳의 풍경도 여실히 그렇다. 반면에 옥자는 길이 약 4미터, 키가 약 2미터로 설정된 거대한 슈퍼돼지이다. 따라서 옥자가 사는 험난한 강원도 오지는 사실 그녀가 살기에 너무 좁고 위험한 환경이다.

아마도 봉준호는 극적 필요성으로 자본과 도시로부터 격리된 인물과 환경이 필요했으며 동시에 배경으로 (국경적 개념에서)한국을 강박적으로 포함시켜야 했기 때문에 실제로 돼지를 키우기에 보다 나은 경기도 외곽이나 충청도, 전라도 또는 제주도보다 오히려 심리적으로 서울과 격리된 강원도 오지가 보다 적절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인위적인 설정들의 연쇄는 미자가 IT기기에 해박하고, 난생처음 방문하는 복잡한 서울에서 단 한 번도 길을 잃지 않으며, 영어회화도 금세 습득해버리는 상황에 대한 이해를 오히려 방해하며, 결국 강원도 오지라는 지리적 국적 인장을 일종의 허위의식으로 만든다. 미자가 한국, 그것도 강원도 오지 소녀일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보다 공격적으로 다시 한번 묻는다면, 봉준호의 <옥자>에서 한국이 활용되는 방식이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에서 한국이 활용되는 방식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ALF가 미자의 모험에 개입하고 미자와 조력 관계를 맺고 저항하는 모습은 미자의 상황보다 더 생뚱하다. 활동의 본거지가 북미였던 그들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26마리의 슈퍼 돼지 중 왜 유독 옥자를 선택해서 머나먼 한국에 와서 위험천만한 작전을 펼쳐야 했는가. 또한 왜 그들은 긴박한 작전 중에 논쟁과 폭행이 발생할 정도로 교조적이 되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ALF의 카리스마적 리더 제이가 교리를 펼칠 때마다 멤버들의 얼굴에 스치는 두려움에 가까운 불안한 시선의 근원은 도대체 무엇인가. ALF에게 필요한 이 모든 장면들은 너무 과도한 여백으로 남겨지고 ALF의 투쟁기는 미자의 모험담에 그저 엉성하게 봉합된다(봉준호 자신도 이런 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었는지 엔딩 크레디트 이후 ALF를 위한 짧은 영상을 추가했다).

<옥자>의 두 번째 버전, 루시 미란도

<옥자>를 보는 두 번째 버전은 아버지와 언니(낸시 미란도)가 이끌던 미란도 기업과는 다른 새로운 성격의 자본으로 미란도 기업을 변화시키기 위한 루시 미란도의 강박에 관한 이야기로 보는 것이다. 즉 자본을 중심으로 <옥자>를 보는 것이다. 나는 <옥자>가 국적 불명의 영화인 이유로 첫 번째 버전의 이야기에서 봉준호가 실패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욱 인상적인 두 번째, 미란도의 버전으로 <옥자>를 볼 것을 권한다.

 자본 미란도의 인격들 중 하나인 루시 미란도. 그녀는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갈구하는 자본의 인격이다.

자본 미란도의 인격들 중 하나인 루시 미란도. 그녀는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갈구하는 자본의 인격이다. ⓒ 넷플릭스


2007년 미란도 기업의 새로운 CEO가 된 루시 미란도. <옥자>의 오프닝 시퀀스는 그녀의 CEO 취임식 겸 새로운 슈퍼돼지 사업의 사업 설명회이다. 이 오프닝 시퀀스에서 흥미로운 점은 루시 스스로 자신의 할아버지, 아버지, 언니로 이어졌던 미란도 기업이 가혹 행위로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환경을 파괴하며 부를 쌓아왔다고 태연하게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것은 지금 막 CEO가 된 자신은 과거의 경영자들과는 다름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루시 미란도는 이제 환경생명이 미란도의 새로운 기업윤리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에 따른 새로운 사업으로 슈퍼돼지 사업을 설명한다. 루시의 말에 따르면 슈퍼돼지들은 자연적으로 발견된 품종으로, 자연교배를 통해 26마리를 번식에 성공시켰으며 이 26마리의 슈퍼돼지들은 26개국의 선택된 축산민들에게 분양되어 10년간 성장하게 된다. 공개되면 이는 기아와 먹거리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약속한다.

다들 이미 알고 있거나 또는 예상하다시피 물론 루시 미란도는 처음부터 거짓말을 하고 있다. 슈퍼돼지들은 사실 미란도라는 자본의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진 피조물이며, 끔찍한 강제교배와 육질개량실험들을 통해 생산되고 있다. 루시가 말하는 10년이라는 시간은 사실 전면적인 대량생산과 상품화, 유통망 구축에 걸리는 시간일 뿐이다. 한데 루시라는 인물은 미란도라는 기업에 대해 사람들이 받을 인식, 즉 자본의 이미지에 대한 결벽증적인 강박을 보인다. 서울에서 미자와 ALF가 벌인 소동 후에 미자가 미란도의 직원들과 경찰들에게 강제로 연행되는 찰나의 장면이 뉴스에 보도되자 그것 때문에 미란도는 이제 끝이라며 절망한다. 이런 맥락에서 루시 미란도는 이윤이나 효율성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인다. 대신 그녀가 진심으로 갈망하는 것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이다.

하지만 거짓으로부터 쌓아 올린 루시의 사랑에 대한 갈망은 미자와 ALF가 만든 균열 때문에 미란도의 민낯이 폭로되면서 결국 무너져버린다. 하지만 루시의 실패는 미란도의 실패가 아니다. 루시가 실패하는 그 즉시 또 한 명의 미란도, 낸시가 등장해 루시를 대체해서 모든 실패를 일사불란하게 정리해 버린다. 이미 대규모로 생산되고 사육된 슈퍼돼지들은 돌아온 CEO 낸시의 명령에 따라 도축되어 포장되어 시장에 풀리기 직전이다. 그리고 낸시의 말대로 슈퍼돼지고기들은 그저 싸면 잘 팔릴 것이다. 결과적으로 <옥자> 이야기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는 루시의 실패는 사실 그저 한 차례 마케팅의 실패일 뿐이며 미자와 ALF의 저항 또한 미란도에게 작은 생채기를 남긴 것에 지나지 않는다. 즉 미란도라는 자본의 본질도 과거로부터 전혀 변화하지 않았으며 변화한 것은 단지 미란도라는 자본의 욕망일 뿐이며 사실상 다른 색의 같은 담배를 피우고 있는 루시와 낸시는 시간차를 두고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는 자본인 미란도의 이중인격에 지나지 않는다.

미자보다 루시 미란도의 인상이 강한 이유

<옥자>에서 미자와 ALF의 이야기가 다소 가볍게 스쳐 지나가고 오히려 미란도의 이야기가 인상에 남게 되는 이유는 아마도 국적 불명인 영화 <옥자>와 같이 결국 자본에도 국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육식을 버리고 채식을 고민하게 된다는 <옥자>에 대한 허남웅의 1줄 평처럼 우리가 <옥자>를 보고 육식에 대한 메스꺼움을 느끼고 짧게나마 채식을 고민하거나 또는 무언가를 먹는다는 행위에 대한 윤리를 다시 사유하게 되었다면 봉준호의 <옥자>는 아마도 표면적으로만 성공하고 있다. 내 생각에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고 싶다면 우리가 실천해야 할 것은 1859년과 1867년의 마르크스가 던졌던 고민을 다시 이어가는 것이다.

추신.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옥자>가 스트리밍 서비스 이전 개봉일 보장에 대한 협의 불발로 멀티플렉스들은 <옥자>를 상영하지 않았다. 이에 넷플릭스는 멀티플렉스를 제외한 일반극장들과 예술극장, 공공기관의 상영관들에 <옥자>를 배급했다. 봉준호의 이전 작들인 <괴물>과 <설국열차>가 멀티플렉스의 스크린을 독과점했다면 <옥자>는 주로 작은 영화들이 걸리던 소규모 개봉관들과 예술극장, 공공 상영관들을 독과점하고 있는 기묘한 풍경이 만들어졌다. 멀티플렉스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CGV를 거느리고 있는 CJ는 원래 삼성그룹의 계열사로 창업되어 주로 설탕사카린을 생산했던 기업이었다. 넷플릭스는 미국에서 VHS 테이프와 DVD 대여업을 하는 기업이었다. 자본의 욕망은 항상 변한다.

옥자 봉준호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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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공허한 공포를 떠올린 나는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어디건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 보기로 결심했다" -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그 남자」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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