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긴급조치 19호> <클레멘타인> 그리고 <리얼>.

누리꾼 사이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몇몇의 영화들이 있다. 한국 영화사를 빛낸 명작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이들 영화에 달린 수식어는 '희대의 망작'이다. 최근까지 한국 영화계의 대표적인 망작으로 지목된 작품들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2002), <긴급조치 19호>(2002), <클레멘타인>(2004)이고 어떤 사람들은 여기에 더해 <7광구>(2011), <영웅>(2013), <주글래 살래>(2003)을 꼽기도 한다. 개봉 당시 관객들을 경악케 하며, 망작 반열에 올랐던 이재용 감독의 <다세포 소녀>(2006)는 시대를 앞서간 컬트라는 평가도 있다.

최근 잠잠했던 한국 영화 망작사가 다시 주목받게 된 것은 지난 28일 개봉한 <리얼>(2016)의 공이 컸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리얼>을 두고 하나같이 <클레멘타인>의 명대사 "아빠 일어나"가 절로 떠오르는 희대의 영화라고 했다. 네이버 영화 사이트에 평점을 올린 어느 누리꾼은 "<리얼> 이야말로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클레멘타인> < 7광구 >와 함께 한국영화의 4대 천왕이자, 마스터 피스다"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래도 네티즌들이 꼽는 역대 망작에 속하는 <다세포 소녀>는 평론가들의 비교적 호의적인 반응이 뒤따랐지만, <리얼> 같은 경우에는 개봉에 앞서 언론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먼저 접했던 평론가, 영화 기자들이 앞장서서 해당 영화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토로했다.

'도대체 어느 정도기에'라는 호기심에 <리얼>을 봤다가 아직도 <리얼> 관람 부작용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1인으로서, 이참에 <리얼>을 포함한 한국 영화 망작사를 정리하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부디 <리얼>을 끝으로 다시는 한국 영화 망작사에 오르내리는 영화가 나오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원해본다.

[하나] 1990년대 대표 감독 장선우를 사라지게 한 불멸의 영화 <성소림>

 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2002) 포스터.

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2002) 포스터. ⓒ CJ 엔터테인먼트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을 연출한 장선우 감독은 명실상부 1990년대 한국영화계를 대표한 문제적 감독이었다. <서울 황제>(1986)로 데뷔한 장선우 감독은 2년 뒤 연출한 <성공시대>(1988)의 성공에 힘입어 비슷한 시기 데뷔한 박광수, 정지영, 이명세 등과 더불어 1980~1990년대 중반 한국 영화의 새로운 흐름(훗날 '코리안 뉴웨이브'로 평가)을 이끄는 감독으로 주목받는다.

이후 장선우가 내놓은 영화는 언제나 파격과 논란의 연속이었다. 지면상 장선우가 1990년대 한국영화사에 남긴 거대한 족적들을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겠지만, 개인적으로 장선우 하면 가장 떠오르는 충격의 영화는 <거짓말>(1999)이다. 개봉을 준비하던 당시 영상등급위원회로부터 등급 보류 판정을 받아, 영화계 안팎으로 영화 검열 및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쟁을 촉발하기도 했던 <거짓말>은 <우묵배미의 사랑>(1990), <경마장 가는 길>(1991), <화엄경>(1993), <꽃잎>(1996) 등 장선우가 만든 수많은 걸작을 제치고 장선우가 90년대 남긴 최고의 화제작으로 꼽을 만하다.

파격의 화제작은 <거짓말>에서 끝냈으면 좋으련만…. 밀레니엄 시대를 맞아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영화를 만들겠다는 굳은 다짐을 안고 장선우 감독은 2000년대 초반 평균 제작비 30억 원을 훨씬 웃도는 '92억 원' 제작비에 빛나는 SF 블록버스터를 만든다. 그렇게 자기 자신은 물론 한국 영화계에 씻을 수 없는 '재앙'을 남기고 그는 영화계 뒤편으로 쓸쓸히 사라진다. 2004년, 장 감독 영화의 조연출로 인연이 있었던 김수현 감독의 데뷔작 <귀여워>(2004)에 출연한 것 외에,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이후 필모그래피가 없는 걸 봐서,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 남긴 재앙이 어느 정도였는지 대충 가늠이 된다. 시대를 앞서가도 너무 앞서갔던 컬트 영화로 평가할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을 두고 '산으로 가는 연출, 신인 배우들의 발연기가 돋보이는' 의심할 여지 없는 망작으로 일축한다.

[둘] <클레멘타인> "아빠, 일어나!"로 빛나는 간증 열전

 영화 <클레멘타인>(2004) 포스터.

영화 <클레멘타인>(2004) 포스터. ⓒ 엔터모드


<클레멘타인>이라는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도 <클레멘타인>이 남긴 명대사 "아빠, 일어나!"는 잘 안다. 영화가 공개된 지 15년이 지난 지금도 네이버 영화 평점 4점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과 달리, <클레멘타인>에 대한 네티즌들의 평가는 유독 후하다.

이 영화에 대한 네티즌들의 후기는 거의 '간증'에 가깝다. '이 영화를 보고 암이 나았다'는 고백부터 시작해서, 아직도 "아빠~ 일어나"에서 받았던 감흥을 잊지 못해 하루를 살아간다는 고해성사도 줄기차게 이어진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과 함께 한국 영화의 대표적 재앙으로 거론되는 <클레멘타인>은 의심할 여지 없이 관객들에게 충격과 절망을 안겨주었던 희대의 망작이다. 하지만 네이버 영화 평점 9점대를 자랑하는 <클레멘타인>에 대한 네티즌들의 열렬한 반응은 영화와는 별개로 새로운 인터넷 문화로 자리 잡았다. <클레멘타인>의 뒤를 잇는 영화로 지목되는 <리얼> 또한 개봉 직후 쏟아지는 악평들을 뒤로하고 <클레멘타인>처럼 네티즌들의 재치있는 간증이 쏟아지는 명작으로 재평가받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셋] <긴급조치 19호> 가요팬들의 한숨을 쉬게 한 한국영화 대표적 '재앙'

 영화 <긴급조치 19호>(2002) 포스터.

영화 <긴급조치 19호>(2002) 포스터. ⓒ 에스에스원시네마


정부의 긴급조치 발동으로 인해 가수들이 체포되는 긴박한 상황을 담아낸 <긴급조치 19호>의 출연진은 지금 봐도 화려하다. 당시 신인급이었던 공효진은 톱스타가 되었고, 주연급으로 출연했던 홍경민과 김장훈은 지금도 잘나가는 인기 가수다. 그리고 이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했던 가수들. 싸이, H.O.T 강타, 핑클, 신화, 베이비복스, 샤크라, 클릭비, 코요테, NRG 등 연말 가요 시상식 라인업을 방불케 하는 초특급 라인업은 그들이 나오는 그 자체만으로 영화 내용과 별 상관없이 전국에 흩어져있는 가요 팬들을 극장 안으로 모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시대를 대표하는 인기 가수들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처참한 흥행 실패와 함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과 함께 2002년 극장가를 충격과 공포로 몰고 간 한국영화의 대표적 '재앙'이 되었다. 놀라운 게 2000년대 초반에는 <올드보이>(2003), <살인의 추억>(2003), <지구를 지켜라>(2003) 등 지금 봐도 놀라운 개성과 참신함이 가득한 명작들도 많지만,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긴급조치 19호>처럼 언급하는 것조차도 민망한 영화들도 더러 있다(역시 명작과 망작은 한끝 차이인 것인가).

[넷] 다시 시작된 한국영화 망작 잔혹사 <리얼>

 영화 <리얼>(2016)의 포스터.

영화 <리얼>(2016)의 포스터. ⓒ CJ 엔터테인먼트


<해리포터> 시리즈의 '볼드몰트'처럼 감히 제목을 말하는 것도 두려운 이 무시무시한 영화들에 대한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만든 장본인, <리얼>은 앞서 언급한 전작들처럼 시작부터 밑도 끝도 없이 황당한 영화는 아니다. 중반까지만 놓고 보면 걸작까지는 아니더라도 다수의 관객이 그럭저럭 볼 수 있는 완성도이다. 중도 하차한 이정섭 감독이 대부분 맡아서 진행한 것으로 보이는 촬영은 비교적 준수한 편이며, 어떤 장면은 한국 영화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스타일리시' 비주얼을 자랑하기도 한다. 성동일, 이성민, 조우진, 이경영, 김홍파 등 연기 잘하기로 소문난 배우들의 연기 톤도 안정감 있다. 생애 첫 파격 연기를 선보인 설리도 기대 이상의 소임을 잘 해냈다.

그런데 영화가 후반부로 갈수록 자꾸만 산으로 간다. 중반까지는 잘 달리다가 후반부에 급격히 무너지는 현상은 대부분 한국영화가 보여주는 고질병이라고는 하나, <리얼>은 마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의 '재림'을 보는 것처럼 말로는 차마 표현할 수 없는 생경함을 안겨준다. 개인적으로 실험영화에 관심이 있어서 몇 번 봐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영화들을 많이 보는 편인데, 도대체 <리얼>은 어떻게 봐야 할지 도통 감조차 서지 않는다.

주인공의 자아 분열 혹은 환각 증상으로 압축되는 영화의 내용이 딱히 어렵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이 영화가 가진 최대의 문제점은 관객들의 완벽한 이해를 원하지 않는 불친절함, 난해함이 아니다. 영화라면 응당 가지고 있어야 하는 균형감이 보이지 않는다. 촬영, 연기 등 부분적인 요소만 놓고 보면 평균 이상은 보여주지만, 문제는 하나로 이어지다 보니 너무 과하다. 불필요한 극적 설정, 캐릭터, 풍경들이 계속 이어지다 보니 관객들은 지쳐가고 끝에는 헛웃음이 나온다. 그 와중에도 1인 3역을 맡은 주연 김수현은 시종일관 진지하게 연기하기에 보는 이의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리얼> 제작진 입장에서는 촬영, 연기, 내러티브 등 모든 면에서 공을 들인 자신들의 영화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클레멘타인>, <긴급조치 19호>와 같은 영화들에 비교되는 현실이 쉽게 납득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지금까지 한국영화의 대표적 망작으로 거론되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의 장선우는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독보적인 감독이었고, 당시 어느 누구도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 이렇게 망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역대급 망작까지는 아니지만,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지는 작품들이 숱한 최근 한국 영화계에서 그래도 수많은 사람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처절히 망하는 중인 <리얼>은 확실히 난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적어도 판에 박힌 천편일률적인 한국 상업 영화의 흐름에서는 벗어나려고 노력했으니 그 점은 높이 살 만하다. 그런데도 110억이 넘는 막대한 제작비를 가지고 매끈한 상업영화, 그렇다고 시대를 앞서간 컬트도 아닌, 그저 <클레멘타인>의 뒤를 이은 망작의 새 역사를 썼을 뿐인 <리얼>이 반복한 악순환은 여기서 끝나야 한다. 이제 한국 망작 4대 천왕으로 불리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긴급조치 19호> <클레멘타인>, <리얼>은 우리들의 과거의 기억에서만 머물기를 바라며, 한국 영화 망작 연대기를 마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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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지금 여기에서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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