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랑 연출, 김수현 주연의 영화 <리얼> 포스터.

이사랑 연출, 김수현 주연의 영화 <리얼> 포스터. ⓒ CJ 엔터테인먼트


배우 김수현에게 A부터 Z까지를 다 맡긴 영화, 그의 '원맨쇼'로 일관하는 작품 <리얼>을 보며 가장 먼저 든 느낌은 "참으로 낯설다"는 것이었다.

문화예술 부문에서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란 영화보다 문학에서 먼저 발현됐다. 빅토르 쉬클로프스키(Viktor Shklovski)란 러시아의 평론가는 "통상적으로 허용되지 않던 비유와 반어 등의 사용은 기존에 존재하던 시와 소설의 형식을 무너뜨림으로써 내용적 새로움에 가닿는다"는 말로 전위성을 옹호했다.

이 문화예술이론은 20세기 초반 프랑스의 시인들을 매료시켰다.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의 선봉에 섰던 앙드레 브레통(Andre Breton)과 트리스탄 차라(Tristan Tzara) 등은 기존 질서의 가장 강력한 은유였던 '아버지'와 '사회적 권위'를 조롱하면서 당대의 스타 작가가 된다.

그들이 사용한 게 바로 '낯설게 하기'다. 일상어의 과감한 시어(詩語) 사용, 존재하던 스타일의 전폭적인 파괴, 근경과 원경의 의도적 착란 등이 그 대표적 예다.

어려운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고. 영화 <리얼>로 돌아가자.

<리얼>을 연출한 감독의 이름을 확인했다. '이사랑'이란다. 해사하고 고운 얼굴을 가진, 이전엔 들어본 바 없는 '낯선' 이름이다. 좋다. 새로움을 자신의 작품 안에 투영할 수 있는 젊은 감독에겐 기존질서에 도전할 용기가 있어야 하고, 그 용기를 통해 세상 속으로 '성큼 걸어 나올' 자격도 있다. 그런데….

 영화 <리얼>의 한 장면. '요령부득(要領不得)'이란 사자성어는 이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듯하다.

영화 <리얼>의 한 장면. '요령부득(要領不得)'이란 사자성어는 이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듯하다. ⓒ CJ 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자기 혼자 만들어 자기 혼자 보는' 게 아니다

사실 영화란 '1만 명의 눈으로 보는 2만 개의 시선'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 좋고 싫음이 갈리는 게 당연하고, "졸작이다" 혹은, "걸작이다"라는 평가가 엇갈리기 마련.

이사랑 감독의 의도를 짐작 못 하는 바는 아니다. 뭔가를 보여주고자 하는 열망에 애드벌룬처럼 들뜬 자신의 첫 영화. 김수현과 설리란 '핫'한 배우의 티켓 파워를 십분 활용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겠지.

플롯의 의도적 파괴와 스토리라인 비틀기, 등장인물에 모호성을 삽입해 관객과의 의도적 거리두기를 보여주고 싶었겠고, 촬영기법에 있어서도 '낯설고' 진일보한 진경에 이르려 했을 테고. 브레통이나 차라처럼.

그러나, 그런 것들은 영화가 영화로서의 완결성을 가질 때 자연스레 드러나는 것이지, 연출자가 절치부심(切齒腐心)한다고 생겨나는 게 아니다.

분열된 두 가지의 자아를 연기하기엔 벅찼던 듯한 김수현, 등장의 이유조차 불분명한 설리(송유화 역), 여기에 허술한 캐릭터 설정 탓에 영화 속 제 자리를 못 찾고 헤매는 조폭 역의 성동일, 정신과 의사 역을 맡은 이성민...

영화를 본 적지 않은 관객들이 "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거야?"라고 질문하는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터.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2017년 한국의 관객은 바보가 아니다.

그럼에도 <리얼>은 관람객들의 자괴감까지 부른다. "나만 이 영화를 이해 못하는 걸까?"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다. 영화는 카메라 들고 혼자 만들어 골방에서 혼자 보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보편성과 설득력을 가져야 한다.

 영화 <리얼>에 출연한 배우 설리. 갈피를 못 잡는 스토리라인 탓에 그녀의 연기력은 발휘될 기회를 차단 당한다.

영화 <리얼>에 출연한 배우 설리. 갈피를 못 잡는 스토리라인 탓에 그녀의 연기력은 발휘될 기회를 차단 당한다. ⓒ CJ 엔터테인먼트


이해할 수도 이해해달라고 부탁할 수도 없는 영화

'내용적 전위성'에 있어서는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가 연출한 일련의 영화를 모방하려 했고, '형식적 새로움' 측면에선 이명세 감독 흉내를 내고 있는 <리얼>. 물론, 자신이 전범(典範)으로 생각하는 것을 제대로 흉내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모방과 흉내'는 광대의 영역이지 영화감독의 몫은 아니다.

시작부터 내내 한숨과 끌탕을 부르는 이사랑 연출, 김수현 주연의 영화 <리얼>. 건축업을 하는 선배 하나는 "상영시간 내내 언제 나가는 게 좋을까만을 고민했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나 역시 마찬가지의 심정으로 극장에 앉아 있었다.

리얼 이사랑 감독 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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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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