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 포스터. 다시는 찾지 않으려 했던 시리즈이지만, 결국 다시 보고야 말았다.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 포스터. 다시는 찾지 않으려 했던 시리즈이지만, 결국 다시 보고야 말았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다시는 보지 않으려 했다. 3년 전 개봉한 시리즈 4편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를 보고 쓴 기사 제목이 '내 돈 내고 장황한 광고영화를 볼 때의 참담함'이었다면 말 다한 거다. '지금까지는 모두 잊어라!'라는 광고문구와 함께 리부트를 선언한 4편을 나는 아주 기대했었다. 마이클 베이는 <더 록>과 <아마겟돈>을 찍어낸 감각 있는 연출자였고 <트랜스포머>는 자동차가 로봇으로 변신해 지구를 지키겠다며 죽으라고 싸우는 영화였다. 어떻게 기대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렇게 본 영화는 참담하다는 표현이 무엇을 뜻하는지 새삼 알게 했다. 눈앞에서 거대로봇이 격투를 벌이고 지구의 멸망이 코앞으로 다가와도 긴장감이라곤 전혀 느낄 수 없는 영화라니! 온갖 장르 여러 캐릭터를 한 데 욱여넣으니 장점은 오간 데 없고 삐걱대는 소리만 귓가에 맴돌았다. 낯을 붉히는 건 언제나처럼 오롯이 관객의 몫이었다.

그런데도 5편을 다시 본 건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라는 제목이 어딘가 시리즈의 종결을 예고하는 듯해서였을까, 4편까지 한 편도 빼놓지 않고 시리즈를 챙겨봤기 때문일까. 어쩌면 둘 다였는지 모른다. 20년 전 마이클 베이의 작품에서 번뜩인 놀라운 재능이 완전히 사라졌다고는 믿고 싶지 않은 영화팬의 기대도 조금은 남아 있었던 것 같다.

극장을 나오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기분이었다. 기대한 것보다는 실망스럽고 우려한 것보다는 다행스러웠는데 기대와 우려를 벗어나지 않는 작품이란 게 도리어 안타까웠다. 온갖 장르를 한 영화 안에 때려 박는 무모함은 여전했고 속편을 예고하는 뻔뻔함은 도를 지나쳤다.

필사즉생 필생즉사, 죽을 둥 살 둥 전력투구해도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게 오늘의 영화판이다. 그런데 쿠키 영상으로 속편을 예고할 생각을 하다니 마이클 베이의 용맹함을 칭찬해야 할까. 하기야 마이클 베이가 관객을 두려워할 줄 알았다면 간접광고가 너무 많아 영화 자체를 훼손하는 4편과 같은 작품은 내놓지 않았을 터였다.

1600년 간 인류와 함께한 트랜스포머

 세계관의 확장을 위해 카멜롯의 마법사 멀린의 이야기까지 끌고온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 카멜롯의 이야기를 다루며 마이클 베이가 <반지의 제왕>을 꿈꾸지 않았던 건 참 다행이다.

세계관의 확장을 위해 카멜롯의 마법사 멀린의 이야기까지 끌고온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 카멜롯의 이야기를 다루며 마이클 베이가 <반지의 제왕>을 꿈꾸지 않았던 건 참 다행이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시리즈의 오래된 물음, 어째서 트랜스포머가 지구로 오는가에 대한 해답을 담고 있다. 영화는 서기 484년경, 브리튼 족과 색슨 족의 전투로부터 시작한다.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이 나오는 바로 그 시절로 기사 랜슬럿이 이끄는 브리튼 족은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패배의 위기에 처해 있다. 희망은 마법사로 불리는 멀린에게 달려 있는데 그가 정말 마법을 쓰는 사람인지 그저 술주정뱅이에 지나지 않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같은 시각, 멀린은 불시착한 우주선에 은신 중이던 트랜스포머를 찾아 도움을 청한다. 꼴을 보아하니 전에도 수차례 도움을 청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멀린은 지구의 평화와 존속을 위해 트랜스포머가 힘을 빌려줘야 한다고 설득하고 간청한다. 결국, 트랜스포머가 하늘을 나는 고대 트랜스포머와 여신 쿠인테사의 힘이 녹아든 지팡이를 내줘 극적인 승리를 거머쥔다. 즉, 고대의 마법은 트랜스포머가 가진 과학의 힘이었다는 게 영화의 설정이다.

멀린이 죽은 뒤 지팡이는 그와 함께 묻혔다. 하지만 멀린과 지구에 은신한 트랜스포머들의 혈맹은 멀린의 직계 자손들로 이어져 존속된다.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단은 윗위키단이란 이름의 비밀결사로 계승되고 이들은 수 대에 걸쳐 멀린의 자손을 찾아 보호하는 임무를 맡는다. 트랜스포머는 그로부터 1600여 년 동안 윗위키단과 목표를 함께하며 공존해왔다. 하지만 오늘에 이르러 인류는 트랜스포머의 존재를 잊고 그들과 대립하고 있다.

창조주에게 임무를 부여받았으나 어떤 이유에선지 그 목적에 반해 지구를 위해 싸우는 트랜스포머. 이들은 지구의 에너지를 노리는 디셉티콘을 절멸시키고 그 배후에 있는 창조주와 맞서기 시작한다. 트랜스포머를 일깨우는 건 과거와 같이 소수의 깨어있는 인간이다. 전장은 바로 지구.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의 개략적인 얼개다.

시리즈 존속을 위해 리모델링을 감행했지만

 지구를 위협하는 디셉티콘과 지구를 지키려는 트랜스포머의 대결 구도. 시리즈는 이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악의 출현을 기대했다.

지구를 위협하는 디셉티콘과 지구를 지키려는 트랜스포머의 대결 구도. 시리즈는 이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악의 출현을 기대했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잘 빠진 자동차가 로봇으로 변신하는 건 지난 시리즈에서 충분히 보여줬다는 판단일까. 영화는 시리즈 고유의 로봇액션과 자동차 추격전에 더해 전쟁영화와 첩보영화, 미스터리나 SF영화의 전형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볼 거리를 마련하고 있다. 트랜스포머와 창조주의 우주선, 그들과 인간이 벌이는 전투는 흡사 <인디펜던스 데이>를 떠올리게 하며 우주선 외판 위에 상륙해 전진하는 군대의 모습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 류의 전쟁영화를 연상시킨다.

그뿐인가. 전작의 리더가 갑작스레 악당으로 돌아섰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는 설정은 <분노의 질주: 더 익스트림>과 다를 바 없다. 비슷한 플롯, 유사한 대사로 규모만 키우며 올해까지 8편을 찍어낸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8편인 <분노의 질주: 더 익스트림> 이후로도 최소 2편을 더 내놓을 계획이라니 6편 제작을 앞두고 있는 <트랜스포머>가 나아갈 길이 아닌가 싶다.

3편에 걸쳐 디셉티콘의 세력을 사실상 궤멸시킨 트랜스포머의 앞에 또 다른 적이 나타나야 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 결과로 시리즈 존속을 위해 지난 3편부터 언급된 창조주가 이번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에 이르러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갑작스런 강적의 출연이니만큼 세계관의 일부 확장도 불가피했을 테다. 마침 새로운 볼거리도 필요했으니 영화는 윗위키단과 멀린의 혈족이란 설정을 긴급 반영해 전반부를 기존과는 다른 느낌으로 이끌어간다. 트랜스포머라는 기둥은 그대로 두고 악당부터 주인공을 둘러싼 캐릭터를 모두 새롭게 투입하는 일종의 리모델링 공사가 이뤄진 셈이다.

여기저기 참 많이도 가져왔다

 군이 조작하는 로봇을 피해 도망치는 아이들의 모습은 인간과 기계의 대결을 그린 <터미네이터> 류의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군이 조작하는 로봇을 피해 도망치는 아이들의 모습은 인간과 기계의 대결을 그린 <터미네이터> 류의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윗위키단과 멀린의 혈족은 <원티드>나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의 비밀조직과 같이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역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결정적인 임무를 수행해온 집단이 존재한다는 신비감을 불어넣는다. 안소니 홉킨스가 연기한 마지막 윗위키단 기사의 역할이 <원티드>의 비밀조직 리더 슬로안(모건 프리먼 분)이나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의 해리(콜린 퍼스 분)를 떠올리게 하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여기에 인간이 트랜스포머의 과거를 잊고 그들을 내몬다는 설정이나 인간이 외계생명체를 보호구역 안에 억압해두고 있다는 설정도 성공한 전형을 그대로 따온 결과다. 영웅적 능력을 갖춘 인간을 돌연변이로 모는 사회를 배경으로 한 <엑스맨>과 <왓치맨> 부류의 영화, 외계인을 난민처럼 수용하고 있는 기묘한 상황을 그린 <디스트릭트 9>과 같은 영화가 대표적이다.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는 이처럼 다른 많은 영화의 설정을 한 작품 안에 욱여넣고 있다. 물론 이 같은 시도가 전편에서도 이뤄진 바 있고 최근 개봉한 다른 블록버스터, 예를 들면 <캐리비안의 해적: 죽은 자는 말이 없다>나 <미이라> 역시 이와 같은 선택을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수 있겠다. 하지만 노골적인 차용의 정도는 훨씬 심하다.

최소 다섯 명의 작가가 한자리에 모여 아이디어를 내놓고 이를 버무리는 라이팅룸 시스템이 가뜩이나 줄기는 약하고 이파리는 많은 시리즈를 더욱 산으로 가게 한 게 아닌가 안타깝다. 다섯 편의 시리즈를 갈무리한 마이클 베이를 내려놓고 다시 여섯 번째 시리즈를 준비할 것으로 예상하는 이 시리즈가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 싶다면, 후속작은 결코 리모델링 정도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영화감독은 죽어 필모그래피를 남긴다. <트랜스포머> 는 마이클 베이가 어떤 지향을 가진 감독인지를 보여주는 시리즈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영화감독은 죽어 필모그래피를 남긴다. <트랜스포머> 는 마이클 베이가 어떤 지향을 가진 감독인지를 보여주는 시리즈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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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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