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영화유통 구조를 흔들어 생태계를 교란한다는 이유로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로부터 상영이 거부된 <옥자>가 화제의 중심에 있다. 흥행 보증수표와 같은 봉준호 감독 신작을 극장사업자들의 강력한 적이 될 것으로 여겨진 넷플릭스가 투자·배급했으니 처음부터 멀티플렉스의 민감한 반응은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불똥은 예상치 못한 곳으로 튀었다. 소규모 영화를 주로 상영해온 독립극장 이야기로 이들이 멀티플렉스에서 거부된 화제작을 사실상 독점 상영할 수 있게 되자 가용 가능한 스크린 대부분을 <옥자>에 몰아준 것이다. 독립상영관을 관객과 만날 유일한 창구로 여겨온 작은 영화들이 설 자리를 잃었음은 당연한 귀결이다.

관객 유치에 고전하며 경영에 어려움을 겪어온 독립극장들이 <옥자>에 스크린을 몰아준 건 합리적 선택이다. 기존 독립영화가 관객에게 외면받아온 현실 속에서 흥행 가능성 높은 재개봉영화를 적극적으로 틀어 적자를 메워온 게 이들 극장이 놓인 현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매달 다섯 편 가량 개봉해온 재개봉 영화는 <옥자> 상영이 예정된 7월 단 두 편으로 줄었다. 그마저도 <덩케르크> 개봉에 맞춰 재개봉하는 크리스토퍼 놀런의 <다크나이트>는 CGV에서 단독 개봉하고 <너의 이름은> 더빙판 역시 메가박스를 포함한 멀티플렉스에서 상영될 것으로 보인다. 멀티플렉스 아닌 독립극장에서 상영하기 위해 따로 기획된 재개봉 영화는 사실상 전무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재개봉작을 가려 뽑아 소개하는 이번 '씨네만세'에선 두 편의 재개봉작과 두 편의 지연 개봉작을 묶어 소개하려 한다. 지연 개봉작은 정식개봉 당시 한국 극장에 걸리지 못했으나 2차 시장을 통해 입소문이 퍼지며 마침내 개봉기회를 잡은 작품과 감독이 유명세를 얻으며 이전에 찍은 작품이 시차를 두고 새로 개봉하게 된 영화다.

이제 이들 영화를 들여다보자.

[하나] <다크 나이트>

다크 나이트 재개봉 포스터

▲ 다크 나이트 재개봉 포스터 ⓒ (주)해리슨앤컴퍼니


2008년 8월 개봉해 히어로 영화의 새 장을 연 크리스토퍼 놀런의 <다크 나이트>가 2009년에 이어 두 번째로 재개봉한다. <메멘토> <배트맨 비긴즈> <프레스티지>로 재능을 인정받았으나 크리스토퍼 놀런이 전 세계를 호령하는 스타 감독으로 자리 잡은 데는 <다크 나이트>에서의 성취가 결정적이었다.

기존 히어로 영화에서 고찰 없이 소비되던 선과 악의 대립 구도를 부분적이나마 해체해 새로운 구도로 펼쳐놓은 점이 인상적이다. 덕분에 히스 레저가 연기한 조커는 이전에 보인 적 없는 악역으로 인기를 끌었고 영화가 끝나고도 쉽게 잊히지 않는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했다.

악의 축을 규정하고 억압해 세계의 질서를 확고히 하고자 했던 미국과 그럴수록 혼돈이 커져만 갔던 2000년대 중반 국제정세가 <다크 나이트>의 저변에 깔린 비유이자 알레고리로 여겨지기도 했다. 감독 크리스토퍼 놀런은 수차례 이 같은 연관을 부정했으나 그의 말보다 영화가 더 진실한 고백을 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다크 나이트>는 20일 개봉하는 놀런의 신작 <덩케르크>에 한 주 앞서 CGV에서 만날 수 있다.

[둘] <너의 이름은>

너의 이름은 더빙판 재개봉 포스터

▲ 너의 이름은 더빙판 재개봉 포스터 ⓒ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올해 초 365만여 명의 관객을 모으며 흥행 돌풍을 일으킨 신카이 마코토의 <너의 이름은>이 더빙판으로 돌아온다. 개봉한 지 반년만으로 지난 1월 수입사인 미디어캐슬이 한국어 더빙판과 장애인 관객을 위한 배리어프리 버전을 내놓기로 한 데 따른 것이다.

<너의 이름은>은 일본에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타이타닉> <겨울왕국>에 이어 역대 4위 흥행기록을 작성했고 한국에서도 역대 일본영화 가운데 최고의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물 들어온 김에 노 젓는다고 제작사인 토호는 블루레이 출시도 앞둔 상태다.

재개봉을 앞둔 영화는 더빙 캐스팅을 놓고 논란에 휩싸인 상태다. 수입사 측이 당초 성우 공개오디션을 열기로 한 약속을 뒤집고 지창욱, 김소현 등 인기스타의 기용으로 가닥을 잡았기 때문이다. 제작사의 블루레이 출시일이 앞당겨져 오디션을 위한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는 게 수입사 측의 해명이다.

정재헌, 심규혁, 강수진 등 성우들은 SNS 등을 통해 불편한 심경을 내비쳤다. 성우 오디션을 열겠다는 수입사 측의 약속이 노이즈 마케팅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니냐는 의혹부터 성우업계가 무시당했다는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비판이 적지 않게 제기됐다. 더빙판 연출을 전문 더빙연출자가 아닌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김성호 감독이 맡았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이 같은 논란에도 <너의 이름은>의 더빙판 재개봉은 착실히 준비되고 있는 상태다. 재개봉은 13일로 예정돼 있다.

[셋] <플립>

플립 포스터

▲ 플립 포스터 ⓒ (주)팝엔터테인먼트


은근하고 끈기 있는 입소문 끝에 개봉 7년 만에 정식 상영기회를 잡은 <플립>이 7월 세 번째 추천작이다. 옆집 사는 소년 소녀의 로맨스를 다룬 영화로 한국으로 따지면 김유정의 <봄봄>이나 황순원의 <소나기>를 떠올리게도 한다. 열 세 살짜리 소년 소녀의 풋풋한 첫사랑을 지켜보고 있자면 영화를 보는 누구라도 입가에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감독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명장 로브 라이너다. 1980년대에 데뷔한 이래 할리우드 영화사에 기록될 명작을 여럿 남겼다. 대표작으로 부를 수 있는 작품만 꼽아도 <스탠 바이 미>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미져리> <어 퓨 굿 맨> 등 여럿이다. 이들 작품에서도 알 수 있듯 특정 장르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영화에서 능숙하게 흥행코드를 잡아채는 탁월한 연출자이며 제작과 연기, 각본에도 재능을 보이는 만능 영화인이기도 하다.

그가 직접 제작과 각본, 연출을 모두 맡은 <플립>은 환갑을 넘긴 영화인이 총력을 쏟아부어 만든 아름다운 이야기로 그에게 영화가 어떤 의미인지를 알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지금은 사라진 아름다운 시절을 낭만적으로 추억하는 것, 로브 라이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13일 개봉.

[넷] <헛소동>

헛소동 포스터

▲ 헛소동 포스터 ⓒ 백두대간


<어벤져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을 통해 할리우드에서 가장 주목받는 연출자로 떠오른 조스 웨던의 2012년 작이다. 셰익스피어의 인기 있는 희극을 현대적으로 각색해 만든 작품으로 초대형 블록버스터를 본격적으로 연출하기 전 조스 웨던의 관심이 어디에 머물러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 희극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한바탕 낭만적인 소동이 현대 미국 캘리포니아를 배경으로 유쾌하게 그려지며 사랑의 본질을 꿰뚫는 재치 있고 날카로운 대사가 화살처럼 날아다닌다. 셰익스피어 희곡을 수차례 연출해온 케네스 브래너가 앞서 이 희극을 영화화하기도 했지만 웨던의 이 작품 역시 그 못지않은 호평을 받았다.

웨던은 사랑을 믿지 않는 남녀가 사랑에 빠져든다는 로맨틱 코미디의 원전에 가까운 이야기를 감각적인 흑백 영상으로 되살려냈다. 영화 대부분이 실내에서 촬영됐으며 극의 전개상 중요한 사건이 벌어지는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가면무도회를 입체적이고 풍성하게 연출하는데 집중한 것으로 전해진다. 과거의 글과 현재의 세태가 절묘한 지점에서 만나 한바탕 어우러지는 <헛소동>은 27일 개봉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다크 나이트 너의 이름은 플립 헛소동 김성호의 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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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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