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옥자>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옥자>의 한 장면.

영화 <옥자>의 한 장면.ⓒ 넷플릭스


이것은 거대한 선전포고다. 너무나 당연해져서 까맣게 잊고 있었는지 모를, 우리 대다수가 속박되어버린 기존 사고체계에 대한 봉준호식 선전포고 말이다. 봉준호 감독이 지시하는 대상은 명징한 듯 광활하다. 인간이 사육하고, 가공하고, 섭취까지 하는 모든 대상이라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옥자>의 '슈퍼돼지'가 품은 함의는, 대개의 봉 감독의 영화가 그러하듯 풍성하고 다중적이다. 더군다나, 베스트 슈퍼돼지 '옥자'는 거대 글로벌기업 '미란도 코퍼레이션'이 개발한 일종의 '괴물'이다. <괴물>의 주한미군(과 <살인의 추억>, <마더>의 국가와 경찰, <설국열차>의 열차그 자체와 윌포드)을 치환했다고 봐도 무방해 보인다. 언제나 '체제'를 건드리고, 그 안에서 피해자과 가해자의 관계를 성찰하고, 전복의 가능성을 상상하는 봉준호 감독답다.

한편으로 <옥자>는 애절한 사랑영 화이기도 하다. 정말, 애절하다. 미자의 옥자를 향한 사랑은. 미자가 옥자의 붉어진 눈을 애처롭게 응시할 때, 뉴욕 한복판에서의 난장 가운데서 옥자와 미자가 (마치 정적 속인 듯) 서로를 보듬을 때, 눈물을 쏟을 관객들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 봉준호 감독은 사실 관객을 펑펑 울릴 수 있는 감성의 소유자였던 것이었다. 

한 발 짝 더 들어가면, 이러한 감정은 <마더>에서 김혜자가 보여준 절대적(이어서 뒤틀린)인 '모성애'와는 다를 결일 수밖에 없다. 미자에게 옥자는, 친구이자, 동반자이자, 정서적인 동시에 물리적으로 보호하고 또 보호받는 존재다. 이 둘의 무한한 사랑과 연대는 심지어 아동과 동물은 현대사회에서 대상화되고 타자화 될 수밖에 없는 존재들 아니던가.

결론적으로, <옥자>는 이렇게 할리우드 장르 영화의 기본 이야기 구조와 닮은 듯 다르게 이를 비틀고 전복시킨다. 옥자를 비롯해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과 매력적인 배우들)이 관습과 비관습적인 상황들을 밀어붙인다.

올해 칸 경쟁부문에 초청받은 '예술영화'로서 애호가들의 구미를 자극하는 동시에 동물애호가를 포함한 일반 관객들이 충분히 만족할 만한 영화적인 '재미'를 곳곳에 포진한 영화다. 그 <옥자>가 29일 넷플릭스와 비(非)멀티플렉스 극장을 통해 전격 공개됐다.

역시, 봉준호는 봉준호다

 영화 <옥자>의 한 장면.

영화 <옥자>의 한 장면.ⓒ 넷플릭스


이야기 얼개는 이렇다. 강원도 산골 소녀 미자(안서현 분)는 4살 때부터 슈퍼돼지 옥자와 함께였다. 10년 전 글로벌 기업 '미란도'가 유전자 변형을 거친 슈퍼돼지를 기를 수십 개국의 축산 농가를 골랐고, 그중에서 한국 대표로 미자의 할아버지(변희봉 분)가 선택된 터였다. 그리고, 미란도가 정한 만기일이 다가왔다.

이른바 '미란도'의 CEO 루시 미란도(틸다 스윈튼 분)은 '슈퍼돼지 프로젝트'를 홍보하기 위해 옥자가 필요하다. 옥자는 죽어도 미자를 보낼 수 없다. 여기에 옥자를 이용해 루시를 막고, 미자를 돕기 위해 비밀 동물 보호 단체 ALF(동물해방전선) 멤버들까지 서울로 향한다. 미자 말고 옥자 주변엔 각자 이권에 따라 움직이는 '인간'들로 득시글하다. 그리하여 옥자를 지키기 위한 미자의 여정은 뉴욕으로 이어진다.

먼저, 봉 감독의 전작과 비교할 이들을 위한 안내. 액션 영화의 주인공 못지않은 미자의 고군분투는 <플란더스의 개>에서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아 헤맸던 박현남의 여정을 떠올리게 한다. <괴물>에게서 현서를 구하기 위한 가족들의 고군분투는 또 어떠한가. 또 옥자의 슬픈 눈빛은 <괴물>의 '괴물'과 어딘지 모르게 닮아 있다.

앞서 언급한 체제나 자본주의 비판은 <설국열차>를 비롯해 단편 <지리멸렬>에서도 엿볼 수 있었던 봉준호 감독의 메인 테마다. 또 미자의 옥자를 향한 사랑은 <마더>를, 네 가족이 모여 밥을 먹는 마지막 장면은 <괴물>의 상상 속 장면과 정확히 닮아 있다. <살인의 추억>을 비롯해 봉준호 감독 영화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장르 법칙 사이사이를 뚫고 나올 듯한 생생한 현실감은 <옥자>에서도 반짝반짝 빛을 발한다.

절정부를 이루는, 눈물과 고통 없이는 볼 수 없는 공장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리니까 우리가 너무나 익숙해서 이제는 자연의 일부처럼 느끼는 식품산업을 직접적으로 재현한 이 장면은 이야기 구조와 캐릭터의 감정과 단단히 연결돼 주제를 극대화한다. 한 마디로, 슈퍼돼지의 '분해' 과정이 고통과 슬픔을 동시에 자아내는 것이다.

"그러니까 극 중에서 옥자가 슈퍼돼지라는 존재인데, 사랑스러운 동물인데 동시에 또 제품, 상품이거든요. 식품? 잔인하게 말하면 식품. 먹을거리인 거죠. 그래서 그 식품산업에 관한 얘기가 나와요. 그래서 저런 공장의 모습이 디자인돼서 들어간 것 같아요." (봉준호 감독, JTBC <뉴스룸> 인터뷰 중>

<옥자> 속 자본, 자본가들, "우린 죽은 것만 팔거든"

 봉준호는 '옥자'봉준호 감독이 14일 오전 서울 광화문의 한 호텔에서 열린 영화 <옥자>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듣고 있다.

봉준호는 '옥자'봉준호 감독이 14일 오전 서울 광화문의 한 호텔에서 열린 영화 <옥자>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듣고 있다.ⓒ 이정민


과거 <뉴스룸> 손석희 앵커와의 인터뷰에서 포스터 디자인에 대해 설명하던 봉준호 감독은 실제 콜로라도에 있는 대형 도살장에 방문했던 경험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한 고통을 <옥자>는 그 어느 할리우드 장르 영화보다 훨씬 더 날것 그대로 전달한다. 그렇다고 동물애호의 관점에 천착할 필요는 없다. 산골과 도시, 자연과 문명(자본), 동물과 인간, 제1세계와 제3세계 등 대립 항으로 협소하게 단순화해선 곤란하다.

<옥자>는 옥자와 미자의 사랑을 훼방 놓는 방해자들의 균질하지 않은 상태를 미세하게 포착한다. ALF가 만든 난장 덕에 곧바로 잘리는 '사이코패스' 집안의 둘째이자 동물의 유전자 개발이 인류를 구원하리라 믿는 것 같은 루시 미란도도, 비폭력과 교조주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ALF도, 한국인들을 포함해 다국적 기업인 미란도에 소속된 다국적 노동자들도 <설국열차>의 꼬리 칸부터 호화로운 앞칸을 채우는 각양각색의 인간들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옥자와 미자가 처절한 '액션'을 펼치는 공간인 서울은 물론 이미 옥자가 나고 자란 산골 역시 마찬가지다. 옥자를 함께 기른 할아버지 역시 자본의 수혜를 품은 상태(인 동시에 미란도와 계약을 맺은 인물이)다. 그리하여, 끝끝내 허리춤에 찬 '허리 색'을 풀지 않던 미자가 마지막에 내놓는 의외의 해결책도 결국은 자본(과 체제)과 결부된 인간들의 시각과 그 차이를 드러내는 <옥자>의 주제를 강화시킨다. 

"우린 죽은 것만 팔 거든."

영화의 마지막, 틸다 스윈튼이 1인 2역을 연기한, 미란도를 자르고 CEO 자리를 차지한 루시의 언니 낸시는 "왜 옥자를 죽이려고 해요?"라는 미자의 울음 섞인 물음마저 가차 없이 잘라 버린다. "저건 내 개인 자산"이라며. 내내 루시는 자신의 아버지를 사이코패스로 규정하며 그 존재를 부정한다. 그 아비의 피를 이어받은 낸시가 딜을 제안하는 미자를 바라보는 그 기기묘묘한 눈빛이야말로 <옥자>의 명장면이다.

봉준호 감독과 캐릭터들의 대사를 통해 사이코패스라고 규정하고 비아냥거리는 듯한 이 자본가와 자본의 '미친' 속성을 기괴하고 상징적으로 함축하기 때문이다. '분해'되기 직전, 옥자를 구하기 위해 미자가 내놓는 의외의 제안 역시 이러한 자본의 자장 아래 위치하는 것은 봉준호 감독만의 지극한 아이러니이자 블랙 유머다.

그러니까, 선의를 지닌 '착한 자본'의 가능성을 엿본다기보다 결국 이 자본에 종속되는 방식의 한시적인 대안밖에는 제시할 수 없는 미자라는 미래세대/개별 노동계급의 한계를 보여주는 방식이랄까. 옥자와 미자가 공장 안에서 새끼 슈퍼돼지를 '구출'해서 산골로 데려오는 감동적인 설정에도 불구하고, <옥자>의 결말(과 크레딧 이후 배치된 쿠키를 포함해)이 일시적인 해피엔딩일 수밖에 없는 이유리리라.

그리하여, 현서(고아성 분)의 빈자리를 대신해 괴물로부터 구출된 아이와 같이 밥을 먹었던 <괴물>의 강두(송강호 분)마냥, <옥자> 역시 밥을 먹는 일의 위대함을 강조하듯 끝을 맺는다. 여기서 질문 몇 개. 과연 미자는 초반부 직접 잡았고, 할아버지가 끓여줬던 '생선찌개'를 계속 먹게 될까. 미자와 옥자, 그리고 새끼 슈퍼돼지는 편안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까. <옥자>는 해피엔딩일까.

그리고 몇 가지 질문들     

 영화 <옥자>의 포스터.

영화 <옥자>의 포스터.ⓒ 넷플릭스


"사랑 영화인 건 사실이고요. 미자와 옥자가, 미자라는 소녀, 주인공 소녀랑 옥자라는 생명체가 사랑을 하니까 사랑 얘기인 건 맞는데. 사랑 영화들이 항상 보면 사랑의 방해물, 사랑의 방해자들이 나오잖아요. 그 방해물이 이제 방금 말씀드린 그 산업, 그다음에 말씀드린 정치, 사회적인 풍자, 이런 것들이 그 대목에서 영화 속으로 들어오게 되죠."

앞선 인터뷰에서 봉준호 감독도 인정했듯, <옥자>는 <설국열차>보단 <괴물>에 가까워 보이는 '풍자극'이다. 장르 영화에서 흔히 감정의 극대화를 위해 '볼륨'을 키우는 관습적인 음악의 사용도 최대한 배제한 느낌이다. 앞서 설명한 대로, 옥자를 구출하기 위한 미자의 모험 중간중간 사실적이거나 과장된 장면을 배치해 자본과 기술, 체제에 대한 '각성'과 '비판'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겁먹을 건 없다. 봉준호는 봉준호다. 이미 그는 <괴물>과 <설국열차>로 국내에서만 도합 2천만을 넘는 관객을 동원한 역대 최고의 '흥행사'다. 그만큼 액션과 (통역 개그를 포함해)코미디를 적절히 배치한 <옥자>의 오락성은 그의 전작들과 비교해도 빼어나다.

또 하나. '옥자'의 경탄할 만한 감정 연기는 물론 일심동체로 '봉준호 찬양'에 나서고 있는 국내외 배우들의 연기는 <옥자>를 이끌어가는 또 하나의 원동력이다. 열거해 보자. 1인 2역을 소화한 틸다 스윈튼의 섬세한 광기와 미디어와 결합한 기술을 상징하는 죠니 월콕스 박사 역의 제이크 질렐할의 약을 빤 듯한 수다는 장식적인 연기임에도 <옥자>의 절정이라 할 만하다.

옥자와 미자의 여정이 지속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제이 역의 폴 다노와 스티븐 연의 콤비 등 배우들의 향연 역시 <옥자>의 볼거리 중 하나다. 그 중심으론 단연, 몸 연기와 감정연기를 두루 겸비해낸 미자 역의 안서현을 꼽아야 할 것이다. 미자와 옥자가 끌어내는 그 깊이 있는 감정들이야말로 <옥자>의 핵심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또 다른 질문. 당신은 어디서 <옥자>를 보셨습니까. 혹은 어디서 보시겠습니까. 영화 외적으로, 이 질문은 중요하다. 칸에서부터 촉발된 넷플릭스와 국내외 멀티플렉스들/극장들과의 기 싸움은 종국엔 영화라는 매체가 향후 수용자들과 어떻게 만날 것인가 하는 '영화의 미래'에 관한 질문을 앞당겼기 때문이다. 

더욱이 멀티플렉스가 완전히 잠식한 국내 극장가의 <옥자> 개봉 상황은 무척이나 '영화'적이다. 넷플릭스가 아닌 스크린으로 <옥자>를 확인하고픈 관객들이 밀려들면서, 단관 극장들은 물론 일부 예술영화전용관이나 그와 성격이 비슷한 극장에서 <옥자>를 장기간 상영할 전망이다. 자본(넷플릭스)과 자본(국내 대기업 멀티플렉스)의 싸움에서 독립/예술영화들이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듯한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그런데, 단적으로 칸 경쟁부문에 진출한 만큼, <옥자> 역시 '예술영화'라 부를 자격 역시 충분하지 않은가(헌데, <옥자>는 또 4대 배급사에 포함되는 NEW가 배급한다). 관객들이 <옥자>를 스크린에서 볼 권리는 지켜져야 한다.

그런데 이 <옥자>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미비하게나마 피해를 입을 작은 영화들도 생겨날 수밖에 없다. '자본'이라는 주제를 품은 <옥자>는 이렇게 스크린 바깥에서도 그런 주제를 이어가는 운명의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진짜 마지막 질문. 그래서, 당신은 어디서 <옥자>를 관람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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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영화 기자, 오늘은 프리랜서 글쟁이. 살다보니 시나리오 쓰는 사람.

오마이뉴스 스타팀에서 방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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