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길 바쁜 LG 트윈스에 또다시 비보가 전해졌다. LG의 베테랑 투수 봉중근(37)이 어깨 수술을 받아 올 시즌 마운드에 서지 못하게 됐다. 봉중근은 28일 미국에서 수술을 받았고 재활과 복귀에는 최소 1년 정도가 걸릴 것으로 알려졌다.

봉중근은 지난 시즌을 마치고 FA 자격을 획득했으나 LG에 잔류했다. LG는 봉중근의 전성기가 지났다는 평가에도 베테랑과 프랜차이즈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2년 총액 15억 원이라는 준수한 대우로 봉중근과 재계약했다. 선수생활 막바지에 다시 한번 부활을 다짐하던 봉중근이었지만 시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깨 통증을 호소하며 전력에서 이탈했다. 올시즌 1군무대에서는 단 한 번도 등판하지 못했고 퓨처스리그 고작 5경기에 등판하여 2홀드, 자책점 1.17의 기록만을 남겼을 뿐이다.

물론 냉정하게 말해 봉중근이 현재 LG 마운드 전력 구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팀성적에 크게 영향을 미칠만한 전력누수는 아니라고 하지만, 정작 LG 팬들로서는 지난해 이병규의 은퇴에 이어 또 한명의 예비 레전드가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조금씩 잊혀져가고 있는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봉중근은 2000년대 후반 이후  LG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는 선수다. 미국무대에 도전했다가 2007년 국내로 유턴하여 LG 유니폼을 입게 된 봉중근은 이상훈-김기범 등 LG 토종 좌완 에이스의 계보를 잇는 선수로 등극했다. 선발투수로서 2008년부터 3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하며 리그 정상급 투수로 자리매김했고, 2012년 이후로는 마무리로 전향하여 4시즌 간 무려 109세이브를 달성하기도 했다. 특히 2013시즌에는 한 시즌 개인 최다인 38세이브로 전체 2위에 이름을 올렸다.

굳이 LG 팬이 아니라도 봉중근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국가대표팀에서의 활약은 결코 잊을수 없다. 2006년 초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2008 베이징올림픽 9전 전승 금메달-2009, 2회 WBC 준우승-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모두 봉중근이 태극마크를 달고 활약하던 시절에 이룬 성과들이다. 최고의 활약을 펼친 순간은 역시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이었다. '일본전 전담 투수'로만 3경기에 선발 등판해 2승을 거두며 14.2이닝 간 1자책점만 내주는 눈부신 호투를 펼치며 약체 평가를 듣던 한국을 결승전까지 끌어올린 일등공신이었다. 이때의 활약을 바탕으로 봉중근에게는 '봉열사', '봉의사' 같은 별명이 붙기도 했다.

봉중근의 전성기, LG의 암흑기와 겹쳐

하지만 어떤 면에서 보면 봉중근은 시대를 잘못 타고난 선수이기도 했다. 봉중근의 전성기는 하필 LG의 암흑기와 상당 기간 겹친다. LG는 2003년부터 2012년까지 10년 연속 가을야구 진출 좌절이라는 시련을 겪었는데 봉중근 개인으로서는 신체적 능력과 구위가 정점에 달해있는 시기였지만 동료들의 지원 부족과 팀성적의 한계로 봉중근의 분투는 빛이 바래기 일쑤였다.

팀 사정상 선발과 불펜을 오가야 했던 것이나, 비시즌 잦은 국가대표팀 차출도 봉중근 개인으로서는 득이 되지 못했다. 봉중근은 광저우 아시안게임 우승 이후 이듬해 팔꿈치 수술을 받으며 이때부터 구속이 크게 떨어지는 조짐을 보였다. 마무리로 활약하다가 2015시즌 후반기부터 다시 선발 전향을 모색했으나 사실상 실패로 끝났고, 2016시즌에도 고작 19경기에 출전하여 1승 2홀드 자책점 4.95라는 초라한 성적에 그쳤다. 선발과 불펜에서 모두 KBO 정상급으로 군림했던 투수의 통산성적이 55승  46패  109세이브 자책점 3.41이라는 것은 봉중근의 재능과 활약을 모두 담아낸 기록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또한 봉중근은 해외무대에 진출했다가 20대 후반이 다되어서야 국내로 복귀하면서 다른 선수들보다 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 시기와 횟수에서도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봉중근과 같은 해외파 출신으로 KBO에서 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은 동갑내기 송승준(롯데)만해도 2015년 4년 계약에 총액 40억을 받은 것에 비하여 이미 첫 FA자격을 획득할때부터 극심한 하향세였던 봉중근의 계약 기간과 규모에서 송승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지난 겨울 LG의 좌완 토종 에이스로 새롭게 영입된 차우찬이 무려 95억을 받으며 FA 역대 투수 최고액을 경신한 것을 감안할 때 7-8년전의 봉중근이 만일 지금 시대에 건재했다면 어떤 대우를 받았을까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LG 구단으로서는 최근 뚜렷한 세대교체 흐름속에도 불구하고 봉중근 만큼은 한 번 더 기회를 줬지만 결과적으로 헛돈만 날릴 위기에 처했다. 재활이 순탄하게 진행된다고 해도 봉중근은 빨라야 내년 후반기에나 겨우 복귀가 가능하다. 복귀한다고 해도 예전의 구위를 되찾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는데다 그때 봉중근의 나이는 이미 불혹을 가까이 바라보게 된다. 사실상 봉중근을 1경기도 활용 못하고 2년계약을 마칠 가능성도 대단히 높다. 

봉중근에 지불한 FA 몸값 15억이 결과적으로는 사실상 퇴직금 혹은 위로금이 되어버린게 아니냐는 씁쓸한 농담이 나오는 이유다. 그동안 LG 역대 좌완 에이스들의 마지막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는 징크스도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이래저래 꼬여버린 봉중근과 LG의 인연이다. 내년에 과연 봉중근이 다시 한번 건강하게 LG의 마운드로 돌아오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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