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익숙한 대중 문화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에서 공연하는 로드.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에서 공연하는 로드. ⓒ Dork


4년 전, 뮤지션 로드(Lorde)(본명: 엘라 마리아 라니 일리치 오코너)의 등장은 충격적이었다.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관중을 응시한다. 노래가 시작되면 쉼 없이 팔을 움직인다. 비트에 맞춰 춤을 추지만, 케이팝 걸그룹처럼 정돈된 움직임은 아니다. 굳이 예뻐 보이려고 애쓰지 않는다. 무대 위 로드의 움직임은 오히려 무언가에 거나하게 취한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다. 1996년생 소녀는 낮고 퇴폐적인 목소리로 이렇게 노래한다.

"우리는 왕족이 되고 싶지 않아. 그런 것은 우리의 피에 흐르지 않지."
"우리는 돈으로부터 오지 않았어."

뚜렷한 자의식을 가진 팝스타의 탄생이었다. 뉴질랜드 솔로 가수 중 최초로 빌보드 차트 9주 연속 1위에 올랐고, 거장 데이비드 보위는 그녀를 '음악의 미래'라며 추켜올렸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대' 따위의 수식어는 덤으로 따라오는 것이었다.

3년의 공백 끝에 로드가 새 앨범 < Melodrama >를 들고 돌아왔다. 데뷔 앨범을 함께 한 잭 안토노프(그는 국내에서도 유명한 Fun.의 리드 기타리스트이기도 하다)가 다시 프로듀서를 맡았다. 로드는 그라임스(Grimes), 라디오헤드(Radiohead), 제임스 블레이크(James Blake), 케이트 부시(Kate Bush) 등 수많은 뮤지션들을 듣고 흡수해 온 뮤지션이다. 그래서 로드의 음악은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기반을 두고, 여러 장르에 줄기를 뻗치고 있다. 안개가 낀 듯한 분위기는 1집의 연장선에 있다고도 볼 수 있지만, 더욱 선명해졌다.

이별과 청춘의 일기, < Melodrama >

 로드의 두 번째 앨범 < Melodrama >의 재킷 이미지.

로드의 두 번째 앨범 < Melodrama >의 재킷 이미지. ⓒ Universal Music


첫 앨범을 내던 시점의 로드와 지금의 로드는 분명 다르다. 그녀는 수년 동안 사귀었던 남자친구와 결별했다. 그래서 이번 앨범을 관통하는 주제는 '이별을 마주하는 마음가짐'이다. 경쾌한 피아노 소리와 빠른 템포의 'Green Light'는 시작부터 감정을 고조시킨다. 이 노래에서 그녀는 이별과 새로운 시작에 대한 의지를 내비친다. 뮤직비디오 속에서도 장소를 가리지 않고 춤추는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바로 이어지는 곡 'Sober'에서 로드는 결별한 상대의 몸을 그리워하면서 듣는 이에게 혼란을 준다. 호주 DJ 플룸(Flume)이 선사한 'The Louvre'는 리버브가 걸린 기타, 몽환적인 신시사이저가 한데 엮여 있다. 이 무대 위에서 그녀는 이별 후의 공허한 감정을 노래한다. 역동적인 구성의 'Supercut'도 놓치지 말아야 할 곡이다.

'Liability'는 이 앨범에서 가장 아름다운 멜로디를 자랑하는 발라드다. 피아노 연주 위에 얹힌 그녀의 목소리가 인상적이다. 이 곡에서 그녀는 자신을 Liability(짐 덩어리)라고 묘사하는데, 로드가 노래에서 이 정도로 감정을 표출한 적이 있었는가 싶다. 이 곡을 지배하는 정서는 자기 혐오, 그리고 무기력이다. 전 세계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는 그녀지만, 사람과의 관계에서 적지 않은 상처를 받았음을 짐작하게 된다.

"사람들은 뒷걸음치고 마음을 정해 버리네. 이제 나도 이해하네. 나는 짐덩어리일 뿐이라는 것을. (...) 그들은 내가 석양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본다네. 당신들은 모두 내가 석양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본다네." - < Melodrama > 'Liability' 중에서

아픔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성장하다

로드의 변화는 사랑뿐만이 아니었다. 4년 전, 로드는 상업성에 경도된 팝 문화를 비판하면서 등장한 뮤지션이었다. '화장실에서 약이나 하는 노래'를 비판하는 패기가 있었지만, 동시에 '우리는 꿈속에서 캐딜락을 타고 다니니까'라고 노래하는 낭만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로드 역시 엄연한 팝스타, 백만장자가 되었다. 팝스타 '로드'와 개인 '옐라 마리아 라니 옐리흐 오코너'의 자아는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이 아이러니를 인정하는 길을 선택했다. 이러한 자세가 잘 드러난 곡이 마지막 트랙 'Perfect Places'다. 다소 밝은 멜로디와 달리, 노래 속의 화자는 매일 밤 '죽다 살다'를 반복한다. 그녀는 성공 뒤에 찾아온 부담과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파티장에 간다. '화장실에서 약이나 하는 노래'를 비판했던 그녀지만 술과 약물에 탐닉한다. 낯선 남자의 옷을 벗기고, 맨살에 몸을 비벼도 이 공허함을 끝내 떨치지 못한다. 이 노래의 마지막 가사가 보여주듯이, 그녀는 아직도 '완벽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로드는 자신의 '표류'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그렇게 그녀는 한 걸음 더 성장한다.

"우리는 매일 밤 술과 약에 취한 채 시간을 보내지. 현실을 잊을 수 있는 완벽한 장소를 찾아 헤매면서…. 그런데 완벽한 장소는 대체 뭘까?" - < Melodrama > 'Perfect Places' 중에서

로드는 이번 앨범을 '나의 거칠고도 선명했던 2년간의 기록'이라고 표현했다. 그녀는 요동치는 감정들을 애써 숨기지 않는다. < Melodrama >는 청춘의 불안함을 붙잡고 그려낸 수채화이지만, 동시에 용기 있는 성장 드라마다. 그녀의 솔직함은 음악팬들로 하여금 이 앨범을 계속 찾게 만드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 스토리텔링에 만족했는지, 발매와 동시에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했다. 평단의 반응도 뜨겁다. <롤링 스톤> <피치포크> 등 해외 매체들도 입을 모아 < Melodrama >에 대한 예찬을 쏟아내고 있다. 현재 해외 평단의 평균 점수가 92점(100점 만점)을 돌파한 상태다. 아직 2017년은 많이 남았지만, 올해를 대표할 앨범 중 하나가 될 공산이 크다. 한편, 로드는 오는 7월 28일, '지산 밸리 록 뮤직 앤 아츠 페스티벌'에서 첫 내한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필자는 그녀와 함께 흐느적거리며 춤을 출 예정이다)

로드 LORDE 멜로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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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음악과 공연,영화, 책을 좋아하는 사람, 스물 아홉.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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