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전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열린 거창국제연극제 지키기 전국 연극인 모임 기자회견. 김삼일 연출가와 최종원 배우가 대표로 참석했다.

27일 오전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열린 거창국제연극제 지키기 전국 연극인 모임 기자회견. 김삼일 연출가와 최종원 배우가 대표로 참석했다. ⓒ 성하훈


29년 역사의 지방 연극제가 두 동강이 났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기조는 사라졌다.  지원을 하니 간섭도 하고 아예 직접 운영하겠다는 태도에 전국의 연극인들이 수습을 호소하고 나섰다. 매년 여름 경상남도 거창에서 개최되는 거창국제연극제(아래 거창연극제) 이야기다.

26일 오전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연출가 김삼일 씨와 배우 최종원 씨 등 두 명의 연극인이 나서 기자회견을 했다. 이들은 "거창국제연극제를 지키기 위해 전국의 연극이들이 함께 모여 큰소리로 수습을 위한 호소를 하고자 한다"며 "두 동강이 난 연극제가 부끄럽다"고 말했다.

거창국제연극제는 1989년 시월 연극제를 모태로 시작된 국내 대표 연극제 중 하나다. 부산 출신으로 거창에 정착한 이종일 연출가에 의해 시작됐다. 1998년 10회 연극제부터 거창의 대표적인 휴양지 수승대에서 행사가 개최되면서 점차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여름 휴양지에서 피서도 즐기고 시원한 밤바람을 맞으며 연극도 보는 행사가 관객들을 사로잡은 탓이다.

연극제의 효과는 대단해서 평균 보름정도의 개최기간 동안 최대 20만 명의 관객이 찾았고, 지역의 대표 축제로 부상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보조금이 지원되며 안정적인 발전이 이뤄졌고, 농촌지역으로 연극의 불모지와 다름없는 곳에서 관심이 활성화되는 긍정적인 효과도 나타났다.

29회 거창국제연극제 vs. 2017 거창한 거창국제연극제

하지만 29회를 맞는 올해에는 두 동강이 나게 됐다. 연극제의 운영에 문제가 많고 개선이 어렵다고 판단한 거창군(양동인 군수)이 군수가 이사장인 문화재단을 만들어 기존 연극제 주최 측을 밀어내고 직접 운영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에 맞서 기존 거창연극제 주최 측은 정통성을 내세우며 자신들이 주도하는 연극제를 그대로 밀고 가겠다는 방침이어서, 올해는 '거창연극제'라는 이름의 행사가 동시에 두 곳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29년의 역사성을 강조하는 이종일 거창국제연극제 육성진흥회 회장은 29회 거창국제연극제를 7월 28일~8월 5일까지 거창연극학교에서 개최할 예정이고, 거창군이 주최하는 2017 거창한(韓) 거창국제연극제는 7월 28일~8월 13일까지 기존 행사장이었던 수승대에서 열게 된다. 명칭은 밀려난 연극인들이 계속 갖고, 장소는 거창군이 차지한 모양새다. 두 연극제가 개최되는 장소는 반경 3Km 안에 있다.

양측은 그동안 지속적인 협의를 벌여왔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서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다. 연극인들이 단체로 나서 기자회견까지 한 것은 오래돼 온 연극제가 이처럼 두 개로 나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다.

최종원 배우는 "'2017 거창국제연극제'에 참여하는 단체는 예술단체로서 마치 돈을 좇는 듯한 마음에 갈등에 젖고, 예산이 없는 '29회 거창국제연극제'는 안타까움에 연극단체들이 자진 참여하면서 열악한 환경의 단체들에 어려움을 가중하는 형국이 바로 오늘의 현실이 됐다"고 답답함을 내비쳤다.

사법기관 조사 등 문제 지적에 모두 무혐의 반박

 휴양지에서 야외연극으로 인기가 좋았던 거창국제연극제.

휴양지에서 야외연극으로 인기가 좋았던 거창국제연극제. ⓒ 거창국제연극제


거창군은 그간 연극제를 주관해오던 거창국제연극제 육성진흥회에 상당히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면서 공적 지원을 받으면서도 경비 집행의 문제로 사법기관의 조사와 공무원들이 중징계를 받은 것과 협찬금 수수료 논란, 불투명한 정산과 해외 출장 때 일등석을 이용한 문제, 내부 갈등 등을 대표적으로 꼽았다.

하지만 양쪽의 입장을 종합해보면 연극제가 파행으로 치달은 가장 큰 문제는 행사가 커짐에 따라 간섭하고자 했던 이전 거창군수와 지역 정치의 대립 구도가 얽혀 있는 부분이 더 커 보인다. 문화에 대한 간섭에 별 문제의식이 없는 것도 일정 부분 작용한 모양새다. 거창국제연극제 측은 이전 군수와 좋은 관계가 아니었던 것이 이후 정치적 압박이 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거창군과 거창문화재단은 2008~2015년까지 감사와 징계, 사법기관 조사가 이어지는 악순환이 있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이 맞는다면 적어도 8년이란 시간 동안 지속해서 발생한 문제를 방치했다는 것으로 공무원들의 직무유기로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거창군의 한 관계자는 "지역사회에서 다 아는 관계다 보니 다음에 잘해보자는 식으로 넘어간 부분이 있고, 담당 공무원들이 인사이동으로 인해 업무의 지속성이 약한 이유 등이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정작 사법기관의 조사를 받았다는 거창연극제 측은 수차례 감사와 수사를 받았지만 모두 무혐의가 났다며 반박하고 있다. 또 공무원들의 징계도 훈계에 불과하고 징계 다음 해 승진도 했다며 거창군이 자신들의 책임을 떠넘기면서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른 문제 제기들도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당사자들이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어 거창군 개최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한 구실로 보이는 형국이다.

난처한 연극인들

 거창문화재단은 2017 거창한 거창국제연극제에 박정자, 손숙, 윤석화 배우의 참여를 홍보했으나 이들 배우들은 두 동강난 연극제에 올 수 없다며 불참을 선언했다

거창문화재단은 2017 거창한 거창국제연극제에 박정자, 손숙, 윤석화 배우의 참여를 홍보했으나 이들 배우들은 두 동강난 연극제에 올 수 없다며 불참을 선언했다 ⓒ 거창문화재단


연극인들은 "정말 문제가 많다면 예산 지원을 중단하고 쇄신책을 요구하는 식으로 해결방안을 모색해야지, 군청이 문화재단을 앞세워 직접 연극제를 운영하겠다는 것은 옳지 않다"며 비판적 시선을 보내고 있다. 

연극제가 두 동강이 나자 올해 거창군이 주최하는 2017 거창국제연극제에 참여하려던 박정숙, 손숙, 윤석화 배우 등 국내 대표 연극인들은 동강 난 연극제에 갈 수 없다며 불참을 선언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나선 연극인들은 수습위원회를 구성해 하나의 공연 예술제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연극인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거창군과 문화재단이 관 주도의 연극제를 강조하고 있어 해결의 기미는 어려워 보인다. 지원과 간섭을 구분치 않는 행정이 30년 가까운 연극제를 두 동강 내고, 작품을 공연하는 연극인들의 처지마저 난처하게 만드는 모습이다.

거창국제연극제 거창군 이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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