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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디귀한 책을 본 적이 있다. 대략 15년 전쯤 경기도 양평에서다. 소설가 김성동(70)의 집필실.

무어라 정확히 형용하기 힘든 오래된 책들의 향기로 가득한 그곳에서 당나라 시대 만들어졌다고 하는 칠서(七書·예로부터 주요하게 취급된 일곱 권의 책)와 만났다. 묵은 표지에 붓글씨가 아득한 세월을 뛰어넘어 아직도 선명했다.

<주역> <서경> <시경> <논어> <맹자> <중용> <대학>. 다른 말로 사서삼경(四書三經)으로도 불리는 이 책들을 읽지 않고서는 불과 몇 백 년 전만 하더라도 벼슬길에 나설 수도, '선비'라 불릴 수도 없었다.

우리가 고전(古典)이라 칭하는 이 책들은 끊임없이 새로움을 갈망하는 학자와 독자들에겐 고루한 것으로 취급되기도 하고, 시간의 흐름 속에 그 가치와 중요성이 많은 부분 퇴색되기도 했다.

<주역>을 일상으로 가져와 누구나 알기 쉽게

<주역>에 관한 독특하고 따스한 해석이 담긴 이지형의 신간 <주역, 나를 흔들다>.
 <주역>에 관한 독특하고 따스한 해석이 담긴 이지형의 신간 <주역, 나를 흔들다>.
ⓒ 청어람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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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난 역사를 되짚어 살피지 않고서 우리가 어떤 새로움에 가닿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칠서'가 가진 현재성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해도 좋을 듯하다.

이 칠서 가운데 <역경>이라고도 불리는 <주역(周易)>은 많은 이들에게 일종의 '점술서' 비슷하게 이해되고 있는 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출간된 <주역, 나를 흔들다>(청어람미디어)를 읽고 나면 이 해묵은 오해는 깨끗이 일소된다.

<주역, 나를 흔들다>를 쓴 이지형은 종합일간지와 경제지 기자생활을 거쳐 현재는 출판사 주간으로 일하며 글쓰기를 병행하는 저술가다.

그는 이미 <강호인문학> <꼬마 달마의 마음 수업> <공간 해석의 지혜, 풍수> <사주 이야기> 등의 저서를 통해 "어려운 고전을 누구나 알기 쉽게 풀어 쓰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주역, 사주, 풍수로 세상과 사람을 읽어보려 한다"는 이지형의 말처럼 이번에 출간된 책 또한 단순한 '주역 풀이'를 넘어서는 '세상 속 인간 해설서'로 읽힌다. 예컨대 <주역>의 64괘 가운데 첫째인 '중천건(重天乾)'을 해설하는 이런 대목이다.

'나이 들어가면서 조연에 대한 애정이 차츰 깊어진다. 행여 TV 앞에라도 앉아 있는 날이면 나는 드라마나 영화 속 조연들에 늘 주목한다. 그뿐인가, 그 이름도 야릇한 성인가요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비주류의 밤무대 가수들을 지극히 바라보는 날도 있다.' - 위의 책 29페이지.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는 이지형의 따스한 눈길

한 사람의 일생이 오롯이 담겨 있다고 이야기되는 '건' 괘에서 주류가 아닌 마이너리티의 감수성을 발견해내는 이지형의 눈길은 깊고도 따스하다. 인간과 세계에 관한 그의 인식이 그러하기에 다시 이런 진술을 가능하게 한다.

'내가 더는 일류가 될 수 없다는 패배감도 완벽과 순수를 배척하는 하나의 이유가 된다는 사실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완벽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애정에는 개인적인 패배감 이상의 이유가 분명 있을 터.' - 위의 책 29페이지.

<주역>의 첫 괘에 대한 작가의 해석과 그 해석을 만들어낸 태도를 보았으니, 이제 훌쩍 뛰어넘어 마지막 괘 '화수 미제(火水未濟)'로 가보자. 이에 대해 이지형은 이렇게 말한다.

"주역의 마지막은 진한 페이소스로 사람의 마음을 적신다. 주역의 첫 번째 '건'괘와 두 번째 '곤'괘에 <주역>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들 하지만, 주역의 64번째 괘 '화수 미제'야말로 주역의 본질을 드러낸다."

주역은 강을 건너는 어린 여우의 꼬리가 물에 젖는 것으로 끝이 난다. 결국 '미완(未完)'인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지형은 아래와 같이 해석한다.

'완결은 정체다. 미완만이, 흠결만이, 아쉬움만이, 회한만이, 아픔만이 사람을 역동적이게 한다. 갈등과 모순 없이 전진이 있던 적은 없다. 꼬리를 적신 여우만이, 그렇게 몸과 마음에 반성의 생채기를 안은 여우만이 또 다른 여정을 시작할 수 있다.'
- 위의 책 242~243페이지.

나머지 62괘에 관한 해석이 궁금하다면

한 권의 책을 소개하면서 그 안의 내용을 모두 말할 수는 없는 일이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그건 영화의 스포일러(spoiler) 같은 것이기에. 그렇다면, 지금 기자가 소개한 주역의 첫 번째와 마지막 '괘'에 관한 이지형의 해석 외 <주역>의 나머지 62괘에 관한 해석이 궁금한 사람들에겐 한 가지 방법만이 남았다. 바로 서점으로 가는 것.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서 "<주역>이란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64개의 메시지"라고 말하는 작가의 세계와 인간에 관한 '독특하고 흥미로운 해석'과 만나는 건 분명 권장할 만한 피서법이다. 그렇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하나. 앞서 여러 차례 언급된 '괘(卦)'란 고대 중국에서 살았던 복희씨가 만들었다는 글자로 <주역>의 골자를 이루는 것이다.


주역, 나를 흔들다 - 매혹과 혼돈의 메시지 64

이지형 지음, 청어람미디어(2017)


태그:#주역, #이지형, #주역, 나를 흔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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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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