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롯데엔터테인먼트


21세기에 접어들며 급속도로 발전한 컴퓨터 그래픽은 무엇을 상상하든 가능하게 만들었다. 영화는 존재하지 않는 디지털 캐릭터를 스크린에 새기는 단계에 이르렀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골룸을 시작으로 <트랜스포머>의 변신 로봇, <아이언맨>의 슈트, <아바타>의 등장인물은 디지털의 전지전능함을 관객이 느끼게 해주었다. 이들은 2000년대 영화 산업이 내놓은 '시각혁명'의 현주소이자 최대치였다.

<트랜스포머>가 시각 효과의 힘만으로 관객을 사로잡았을까? 가장 큰 원동력이 컴퓨터 그래픽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트랜스포머>는 관객, 특히 남성들이 욕망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소년이 가진 자동차가 로봇으로 변형하며 여자 친구와 세상을 구하는 모험담 속엔 많은 이가 어린 시절부터 꿈꾸었던 로봇과 인생에서 가지게 된 첫 자동차란 정서가 섞여 있다.

엉성한 각본, 의미 없는 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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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자인 스티븐 스필버그는 < E.T >의 지구 소년과 우주인 사이의 우정, < A.I >의 로봇과 유사하면서 한편으론 다른 <트랜스포머>의 매력을 꿰뚫어 보았다. 그리고 <트랜스포머>의 꿈을 완성할 주역으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제왕 마이클 베이를 영입한다. 마이클 베이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변신 로봇 계획에 장기인 스펙터클과 폭발을 얹고 컴퓨터 그래픽을 더해 21세기형 블록버스터 <트랜스포머>를 창조한다. 두 사람이 소년, 나아가 남성의 로망을 실현하는 순간이었다.

<트랜스포머>를 향한 대중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트랜스포머>(2007)는 7억 불(세계 5위),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2009)는 8억3천만 불(세계 4위), <트랜스포머 3>(2011)는 11억 불(세계 2위),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2014)는 11억 불(세계 1위)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했다. 국내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트랜스포머>는 744만 명(국내 2위),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은 750만 명(국내 3위), <트랜스포머 3>은 778만 명(국내 1위),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는 529만 명(국내 8위)을 동원하며 흥행의 보증수표로 군림했다.

<트랜스포머>의 흥행 전선은 맑음을 유지했으나 평단과 대중의 반응은 갈수록 차가워져 갔다. 전개는 점차 로봇들의 도시 파괴 공법에 치중되었고 인간은 로봇 전투 서사의 들러리로 전락했다. 그나마 3편에서 일단락이 되었던 이야기를 스티븐 스필버그와 마이클 베이는 '한 번 더'를 외치며 4편으로 이어갔다.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는 개연성 없는 전개로 시리즈 사상 최악의 평가를 받았다. 게다가 중국 시장을 겨냥한 무리수까지 남발하여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는 인물, 사건, 배경이 초토화된 상황에서 무언가를 보여주고자 안간힘을 쓴다. 할리우드의 내로라하는 12명의 작가가 라이터스 룸(Writer's Room)에서 다 같이 짜낸 아이디어는 두 가지. 하난 4편 이후 옵티머스 프라임과 메가트론이 사라진 뒤 인류는 TRF(Transformers Reaction Force: 트랜스포머 대응부대)를 구성하여 변신 로봇을 관리한다고 묘사한다. 영화의 풍경 속엔 우리가 겪는 테러의 공포와 정부의 대처가 녹아있다. 또 하나의 아이디어는 '아서왕과 12명의 기사' 신화에서 빌려왔다. 이것은 인류의 역사에 변신 로봇이 함께했다는 설정으로 발전한다.

12명의 작가가 아이디어만 만들고 라이터스 룸에서 노닥거린 탓일까? 아니면 마이클 베이가 시나리오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찍은 이유일까? 영문은 모르지만,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는 시종일관 황당무계한 전개로 일관한다. 전개하다 막히면 "나는 옵티머스 프라임이다"란 대사만 남발한다.

엉성한 각본이 만드는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시리즈 초기의 옵티머스 프라임과 메가트론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다. 두 캐릭터의 멍청한 모습을 보노라면 사이버트론은 망해도 싼 행성이란 생각마저 들 정도다.

옵티머스 프라임과 범블비가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은 엉망진창의 백미다. 이건 작가들이 쓴 각본이 맞나 의구심마저 든다. 난리 속에서도 마이클 베이는 개그 욕심을 버리질 않는다. 다양한 변신 로봇을 내세우며 폭발과 스펙터클을 만들지만 신선한 장면은 볼 수가 없다. 도리어 도심이 아닌, 하늘로 범위를 넓히면서 마이클 베이 특유의 액션 연출마저 빛이 바래졌다. 차라리 <인디펜더스 데이: 리써전스>의 공중 전투가 낫다.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는 전체 분량의 95%(왜 100%가 아니었을까?)를 아이맥스 3D 카메라로 촬영했다. 온전한 화면비를 보는 최적의 선택은 당연히 아이맥스. 그러나 맥락 없이 변화하는 화면비와 재미없는 내용을 고려한다면 아이맥스 3D의 비싼 금액을 내라고 권하고 싶지 않다.

마이클 베이의 패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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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포머> 시리즈는 21세기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다. (세계관을 공유하는 슈퍼히어로 영화와 <스타워즈> <스타트렉> <007> 등 계속 만들어지는 시리즈를 제외한) 현재 프랜차이즈 시리즈는 각각 뚜렷한 개성을 지녔다.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는 스타 시스템을 강조하고, <본> 시리즈는 액션의 지평을 넓혔다.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가 액션 어드벤쳐를 보여준다면, <트랜스포머> 시리즈는 SF의 대명사다.

공상 과학의 재미가 사라진 <트랜스포머> 시리즈. 이젠 유통기한이 완전히 끝난 느낌이다. 수명은 4편에서 끝난 것일지도 모른다. 중국 흥행으로 시리즈가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로 연장되었을 뿐이다. 다행스러운 건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의 실패가 마이클 베이의 몰락은 아니라는 점이다.

마이클 베이와 <나쁜 녀석들> <더 록> <아마겟돈> <진주만>을 작업한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는 그를 "대중영화를 재미있게 표현하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다"고 평가했다. <13시간>과 <페인 앤 게인>을 보면 마이클 베이의 재능은 여전히 유효하다.

마이클 베이는 매번 그만둔다는 약속을 어기고 <트랜스포머>의 연출을 맡았었다. 이번에도 그만둔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성인 등급 <트랜스포머>의 아이디어가 있다', '<범블비> 외전에 관심이 있다'는 소리가 들린다. 20년 가까이 블록버스터의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마이클 베이에게 간곡히 부탁드린다.

"이젠 당신을 위해, 모두를 위해 변신 로봇에서 손 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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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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