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 뉴스도 '뉴스', 연예 기자도 '기자'라는 점을 잊지 말자."

기자가 '카더라 통신'의 유포자가 됐다. 씁쓸한 일이다. 지라시(광고지-속칭 찌라시)로 도는 황당무계한 이야기들을 아무런 사실 확인 없이 대중에게 전달하고, 그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 가십(gossip)을 가려내야 할 기자가 오히려 가십을 생산하는 데 동참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김윤정 <오마이뉴스> 기자는 자신의 SNS에 이렇게 일갈했다. '연예 뉴스도 '뉴스', 연예 기자도 '기자'라는 점을 잊지 말자'고 말이다. 자조(自嘲)와 자성(自省)이 읽힌다. 업계를 향한 날카로운 비판이면서도 그 칼날을 자신에게도 겨누고 있는 고독한 외침이었다. (관련 기사: 놀림감 된 에이미... '인간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연예'와 관련한 글을 주로 쓰다 보니 아무래도 포털 사이트에서 뉴스를 살필 때 '연예' 면을 유심히 들여다보게 된다. '연예 정보 프로그램'들도 제법 참고하는 편이다. '쓰는' 것도 만만치 않지만, 사실 '보고 읽는' 일도 결코 쉽지 않다. 상당히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괴상한(?) 기사를 마주했을 경우에는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독자'라는 포지션이 그리 간단하지도 가볍지도 않다. 그런데 최근에는 '연예' 면에 시선을 두는 게 참 힘들었다. 솔직히 짜증이 났고, 심지어 욕지기가 올라올 때도 있었다.

이래도 되나? 너무 심한 거 아닌가? 해도 해도 너무한다 싶었다. 단순히 '부정적인' 내용의 기사가 많다고 해서, 혹은 누군가에 대해 '비판적' 뉘앙스를 띤 기사가 다수라고 해서 그 자체로부터 불쾌감을 느끼진 않는다. 그러한 기사를 쓰게 된 '근거'가 분명하고, 주장을 펼쳐 나가는 '논리'가 제대로 갖춰져 있다면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설령 그것이 '사회적 상식'에서 약간 비켜서 있다고 하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 결국 '부실한' 기반 위에 '함부로' 휘갈겨진, 그런 '엇나간' 기사들이 도배될 때 우리는 극도의 피로감을 경험하게 된다.

해도 너무한 연예 정보 프로그램, 피곤하다 

 <본격 연예 한밤>와 <풍문으로 들었쇼>

<본격 연예 한밤>와 <풍문으로 들었쇼> ⓒ SBS/채널A


지난 13일 SBS <본격 연예 한밤>은 김소연·이상우의 비공개 결혼식을 소개했는데, '검문소를 연상케 하는 분위기'라는 설명과 함께 '이은형이 청첩장을 지참하지 않아서 돌아가야 했다'고 보도했다. 방송을 본 시청자들과 그 방송으로부터 파생된 수많은 기사를 접한 대중들은 '(김소연·이상우가) 유난을 떤다'고 눈총을 보냈다. 하지만 곧 밝혀진 '사실관계'는 전혀 달랐다. 이은형은 애초에 결혼한 두 사람과 친분도 없었고, 따라서 청첩장을 받지도 않았다고 한다.

지난 19일 채널A <풍문으로 들었쇼>는 '정유라'에 대한 '가십'을 다루면서 '연예계를 뒤흔든 문제적 금수저 스타'로 방송인(으로 활동했던) 에이미를 '지목'하며 각종 '설'들을 쏟아냈다. 패널로 출연하고 있는 '기자'들은 온갖 풍문과 추측을 덧댔다. 방송이라는 공공재를 통해 질 낮은 '뒷말'이 공공연히 이뤄지는 참담한 장면이었다. 한 사람의 '인격'이 무참히 말살되는 순간이었다.

'알 권리'와 '알고 싶은 욕망' 

 <연예가중계>와 <섹션TV 연예통신>

<연예가중계>와 <섹션TV 연예통신> ⓒ KBS2/MBC


이뿐인가. 지난 21일부터 배우 '심은하'의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고, 그와 관련한 기사들이 포털 사이트를 가득 채웠다. 전날인 20일 심은하가 수면제를 과다 복용해 응급실로 이송됐다는 뉴스 때문이었다. 결혼과 동시에 연예계를 떠났던 90년대 최고의 스타의 근황에 관해 대중들의 관심이 컸던 것은 사실이지만, 언론은 과도한 취재 경쟁을 펼치며 온갖 추측성 보도를 쏟아냈다. 심지어 심은하의 남편인 지상욱 바른정당 의원의 사무실에 찾아가고, 집을 찾아가 이웃 주민에게 심은하를 본 적 있냐며 인터뷰를 해 방송에 내보내기도 했다.

언론과 기자들은 대중들의 '알 권리'를 위해서라는 그릇된 명분을 끌어안고 이와 같은 '비상식적인' 취재와 보도를 정당화하고 있다. 자신들의 '입'과 '펜'이 얼마나 무겁고, 또한 무서운 것인지 인지하지 못한 채 '칼춤'을 추고 있는 듯하다. 지난 25일, MBC <섹션TV 연예통신>은 송중기와 송혜교의 열애설에 대한 취재 내용을 전파로 내보냈는데, 굳이 당사자들이 부인한 열애설을, 그들이 묵었던 발리 호텔까지 쫓아가 호텔 관계자를 인터뷰했다. 그러면서 그 인터뷰 내용은 다음 주에 보도하겠다며 시청자들을 낚기까지 했다.

이쯤 되면 황색 저널리즘(yellow journalism)의 범람이라 이름 붙여도 무방하다. 연예 정보 프로그램들이 '보도'라는 이름으로 사실과 다른 소식들을 무분별하게 전하고, '기자'들은 팩트 체크가 되지 않는 각종 풍문을 마치 '진실'인 양 이야기한다. 그리고 포털 사이트에는 이를 받아적은 기사들이 쓰레기더미처럼 쌓여간다. 물론 우리는 저마다 알몸의 고다이바 부인을 훔쳐봤던 피핑 톰(peeping tom)의 관음증적 욕망이 있다. 스타들의 삶이 궁금하고, 그들의 뒷이야기에 호기심을 가진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욕망이 '옳다'라고 말해선 곤란하다. 적절히 제어되고 조절돼야만 한다. 적어도 그 욕망이 '알 권리'라는 이름으로 둔갑해 그 시선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놓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 오히려 그런 울타리를 치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할 '언론'이 철없이 욕망의 노예가 되어서야 쓰겠는가. 다시 한번, '연예 뉴스도 '뉴스', 연예 기자도 '기자'라는 점을 잊지 말자'는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본격 연예 한밤 풍문으로 들었쇼 섹션TV 연예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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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길을 가라. 사람들이 떠들도록 내버려두라.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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