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의 야심작 <알쓸신잡>. 화제 속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tvN의 야심작 <알쓸신잡>. 화제 속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 tvN


tvN의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아래 <알쓸신잡>)이 화제다. KBS <1박2일>에서부터 시작해서 tvN <삼시세끼> <윤식당>에 이은 <알쓸신잡>까지 승승장구하는 나영석PD의 성공담도 대단하지만, 무엇보다 <알쓸신잡> 자체의 매력이 인구에 회자하고 있다. 나 역시도 오랜만에 프로그램 본방사수를 위해 금요일 밤 TV 앞을 지키고 있다.

<알쓸신잡>의 포맷은 나 PD의 프로그램이 늘 그렇듯 아주 단순하다. 출연자들이 어느 지역을 자기 취향대로 돌아보고 저녁에 만나 수다를 떠는 것이 전부다. <1박2일>처럼 게임을 강요하지도 않고, <삼시세끼>나 <윤식당>처럼 어떤 미션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여행하고 소회를 나눌 뿐이다.

다만 그 출연진들이 남다르다는 것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특징인데, 실제 출연진들의 면모는 화려하다 못해 입이 쩍 벌어질 정도다. 사회를 맡은 유희열을 위시로 유시민, 황교익, 김영하, 정재승까지 하나같이 우리 사회에서 한 분야의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데 그들이 한 곳에 모여 잡담을 나눈다 하니 그들의 수다가 궁금할 수밖에.

그러나 그 지적 호기심만이 <알쓸신잡>의 인기요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알쓸신잡>은 기존의 프로그램과 달리 일방적인 지식전달을 지양한다. 출연진들은 이 시대의 지식인으로서 그동안 대중들에게 다양한 지식을 전달해 왔지만, <알쓸신잡>에서만큼은 그냥 동네 '아재'들로서 '아무 말 대잔치'를 벌린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출연진들의 이야기는 온통 시시껄렁한 것투성이다. 그들은 그날 다녀온 여행을 매개로 각자 알아서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를 건넬 뿐이고, 그들이 말하는 지식을 선택해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은 오롯이 시청자들의 몫이다.

정보습득을 위해서 굳이 애쓰지 않고, 술 한 잔과 함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두런두런 같이할 수 있는 자리. <알쓸신잡>이 인기 있는 이유는 그들이 다양한 지식을 전달하기 때문이 아니라, 어떠한 말이라도 뱉어낼 수 있는 자유에서부터 기인한다.

뚜렷한 목적 없는 대화의 힘

 <알쓸신잡>의 잡학박사들. 이들이 나누는 대화는 '아무 말' 같지 않은 '아무 말'이다.

<알쓸신잡>의 잡학박사들. 이들이 나누는 대화는 '아무 말' 같지 않은 '아무 말'이다. ⓒ tvN


우리는 일상에서 많은 술자리를 갖는다. 직장 회식부터 시작해서 가볍게 끝내려다가 끝을 보고 마는 직장 동료와의 술자리, 아주 오랜만에 보는 동창들과의 술자리, 일상을 이야기하는 동네 친구와의 술자리 등등.

그러나 그 술자리가 모두 편한 것만은 아니다. 회식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술자리 역시 종종 불편할 때가 있다. 술자리에서 이야기하는 '아무 말'이 나의 삶과 괴리되는 경우가 그렇다. 비록 '아무 말'의 탈을 썼지만, 주식, 집값, 아이 교육 등 절대 아무렇지 않을 수 없는 일상의 무게가 담긴 대화들. 그것은 결코 '아무 말'이 아니다.

사실 우리는 '아무 말'을 할 줄 잘 모른다. 격동의 시대를 살아오면서 뚜렷한 목표의식만이 우리의 생존에 도움이 된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마음의 여유를 얻기 위해 떠난 여행에서도 무언가를 얻어야 하고, 어떤 이야기를 하던 자신의 목적을 위해 효율적으로 말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대화라고 생각하는 사회. 그런 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아무 말'은 공허하다 못해 무섭기까지 하다. 시간이 곧 돈이라는 계율을 전면적으로 어기기 때문이다.

<알쓸신잡>은 바로 이 강박관념을 깨트린다. '아무 말'을 하면 큰일 날 것 같은 목적 지향적인 사회에서 하나같이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아무 말'을 들려준다. 그리고 보여준다. 그 아무 말 대잔치가 얼마만 많은 사람에게 힘이 될 수 있는지를.

'아무 말'이나 떠드는 자리는 부담 없는 치유의 장이다. 술 한 잔을 주고받으며 자기가 아는 만큼 떠들고, 들어주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위안을 받게 된다. 그것이 곧 '아무 말'의 위력이며 쓸데없는 잡담의 필요성이다. 그것은 그동안 앞만 보면 달려온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보는 사람도 이렇게 즐거운데 떠드는 사람은 얼마나 즐겁겠는가. 출연진들이 쉬지 않고 떠드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1분 1초가 아까우니 당연히 수다로 밤을 지샐 수밖에.

술 한 잔에 논하는 젠트리피케이션

 <알쓸신잡>의 잡학박사들. 그들의 경주 이야기는 젠트리피케이션까지 이어졌다.

<알쓸신잡>의 잡학박사들. 그들의 경주 이야기는 젠트리피케이션까지 이어졌다. ⓒ tvN


쓸모없는 대화로 점철된, 목적 없는 것이 곧 목적인 프로그램 <알쓸신잡>. 그러나 나 PD는 그것으로 끝내지 않았다. 대화 곳곳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심어놓고 유시민의 입을 빌려, 김영하의 입을 빌려 그것들을 끄집어냈다.

예컨대 지난 23일 방영된 <알쓸신잡>을 보자. 방송에서는 여러 잡다한 이야기 중 6.10 항쟁과 젠트리피케이션이 흘러나왔다. 물론 모든 주제가 사람 사는 이야기이니만큼 그것들도 그중의 하나겠지만 방송을 보는 시청자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정권이 바뀌어도 그렇지 어찌 예능에서 6.10 항쟁을 떳떳이 이야기하고, 요즘 가장 문제가 된다는 젠트리피케이션을 저리 쉽게 논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 쉽지 않은 주제들이 프로그램에 아무렇지도 않게, 친숙하게 섞여지더라는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의 경우 출연진들이 경주의 황리단길을 다녀온 뒤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는데, 땅값이 무려 10배 이상이나 뛰었다는 가게 점원의 표정만으로도 젠트리피케이션이 생활인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고 있는지를 쉽사리 짐작할 수 있었다.

거기에다 유시민은 자본주의 역사를 통틀어 아직 젠트리피케이션의 해답을 찾지 못했다며 조금은 심각한 이야기를 덧붙였는데, 이 사족 역시 프로그램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있었다. 평소에 각 잡고 공부해야 할 것 같은 젠트리피케이션이 예능을 통해, 그리고 우리의 직접적인 삶을 통해 사람들에게 쉽게 전달되는 순간이었다. 그 누가 예상을 했겠는가. 예능에서 술 한 잔 기울이면서 젠트리피케이션을 논할 줄은.

결국 <알쓸신잡>의 힘은 바로 이와 같은 현장성이요,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는 여유에서 비롯된 우연성이다. 물론 프로그램 대본에는 이미 젠트리피케이션이 들어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것은 <알쓸신잡>이 '아무 말 대잔치'의 향연을 모토로 했었기에 가능했다.

혹자는 지금을 '아무 말'이나 하면 안 되는 각박한 세상이라고 말한다. 만인의 투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신경을 더더욱 곤두세워야 한다고도 한다.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돌아가는 것이 옳은 법이다. 오히려 '아무 말'이나 하면서 마음을 비우고, '아무 말'을 통해 영감을 얻고, '아무 말'을 통해 서로 소통할 때 우리는 다시금 마음의 안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알쓸신잡>이 우리에게 묻는다. 아무 생각 없이 술 한잔하며 찐하게 수다 한 번 떠는 게 어떠냐고. 나는 대환영이다.

알쓸신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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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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