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국회에서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정상화 토론회.

지난 22일 국회에서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정상화 토론회. ⓒ 성하훈


"김동호 이사장은 문화융성위원장으로, 강수연 집행위원장은 배우로 되돌아가야 한다."

지난 22일 국회에서 열린 부산영화제 정상화 토론회의 핵심은 부산어린이청소년영화제 김상화 집행위원장이 밝힌 이 한마디로 요약된다.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을 맡은 김 위원장이 김동호 이사장과 강수연 집행위원장의 거취 문제를 공개적으로 표명했다는 점에서 가볍지 않다.

김상화 위원장을 비롯해 조종국 전 부산영상위 사무처장, 이미연 감독 등 주요 발제자들이 입을 모았다. 이들은 부산영화제 정상화는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강제로 쫓겨난 2016년 2월 이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관련 기사 : 문체부 직원의 자기고백...부산영화제 토론회에서 벌어진 일들)

물론 부산영화제 측을 대표해 발제자로 나온 남동철 프로그래머는 "다른 세 명 발제자의 문제제기가 제가 생각하고 있는 내용과 다르다"며 "김동호, 강수연 두 분은 영화제를 지키기 위한 방패로 모셔왔고,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옆에서 지켜봤다. 지난해 영화제가 파행적이라도 치러진 것은 두 분의 헌신과 노력이 있었다"고 옹호했다.

또한 부산영화제 이사인 이춘연 영화단체연대회의 대표도 "김동호 이사장과 강수연 집행위원장은 하고 싶어서 그 자리를 맡은 게 아닌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요청에 따라 수락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까지 부산영화제 사태 전개 과정에서 김동호 이사장과 강수연 집행위원장이 모호한 태도를 보여 왔다는 게 영화계 인사들의 여론이다. 이들이 직접 두 사람의 거취 문제를 작정하고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논쟁의 확산을 막기는 어려워 보인다. 지난해 부산영화제를 거부했던 영화단체들의 입장 역시 요지부동이어서 부산영화제의 고심이 커질 전망이다.

앞에서는 부산시 비판, 뒤에서는 시장과 화기 애애 오찬

 지난 1월 부산시장을 고발한 부산영화제와 부산시민단체들. 부산영화제 측이 고발인으로는 참여했으나 적극적인 의지를 나타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월 부산시장을 고발한 부산영화제와 부산시민단체들. 부산영화제 측이 고발인으로는 참여했으나 적극적인 의지를 나타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 부산독립영화협회


김동호 이사장의 거취에 대한 의견은 그간 영화인들이 사석이나 SNS 등을 통해 개인적인 의견으로 밝히던 사안이었다. 그런데 이번 토론회를 통해 공개적으로 표출된 것은 김동호 이사장에 대한 영화인들의 실망감이 작용한 면이 크다. 김상화 위원장의 비판에서 드러나듯 부산지역 영화인들의 시선은 부정적이다.

김동호 이사장이 영화인들로부터 비판과 퇴진요구를 받는 것은 부산영화제 사태의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애초 기대와는 다른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핵심은 <다이빙벨> 상영으로 부산영화제 구성원 중 유일하게 정치적 탄압을 당한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명예회복 대한 태도다.  영화계 일각에서는 김동호 이사장이 보인 소극적 태도가 박근혜 정권 문화융성위원장을 지냈다는 한계가 드러난 게 아니냐고 평가한다.

정권 차원에서 이루어진 탄압의 실상이 공개되면서 부산 시민단체들은 서병수 부산시장을 고발한 상태이다. 그러나 정작 고발인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부산영화제가 어정쩡한 태도를 보인다는 부산 지역 영화인들의 목소리가 크다. 서 시장에 대해 면죄부를 주려는 상황 아니냐며, 김동호 이사장의 책임론이 부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영화제작가협회장을 역임한 차승재 동국대 교수가 지난 1월 '부산영화제 집행부는 희생자인가? 부역자인가?'라는 물음을 던진 것도 이런 우려의 표현이었다. (관련 기사: 특검 수사에 대한 부산영화제 입장, 뭔가 이상하다)

앞서 부산영화제는 지난 1월 강수연 집행위원장 명의의 입장문을 통해 "박근혜 정부의 보복 조치를 비판하며 부산시 또한 이런 과정에 직접 관여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행정지도점검, 집행위원장에 대한 사퇴 압박과 검찰 고발 등 부산국제영화제에 가해진 일련의 보복 조치가 부산시를 통해 이뤄졌고 특검이 이런 모든 사태의 전모를 소상히 밝혀주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 이사장과 서 시장의 우호적 관계가 지속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부산영화제의 입장이 나온 지 약 한 달 뒤, 김 이사장과 강수연 집행위원장이 서병수 시장과 함께 오찬을 함께했다는 사실은 이런 주장의 근거가 됐다. 조종국 전 부산영상위 사무처장은 "총회를 앞둔 의례적 자리라고 할 수 있지만 정상적이지 않다"고 비판했다. 김 이사장은 이런 비판에 대해 해명하거나, 부산시 고발에 대한 분명한 견해를 밝히지 않고 있다.

이날 토론회를 지켜보다 발언에 나선 이춘연 대표는 "부산시장을 구속시키고 단죄하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 김동호 이사장은 부산시장을 법적으로 처벌하는 데 관하여 별다른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게 전반적인 평가이다. 그의 거취 문제가 공론화된 바탕이기도 하다. 토론자로 참석한 김영진 전주영화제 프로그래머는 "부산영화제 측에서 이용관 전 위원장을 비롯해 재판을 받는 분들에 대한 분명한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한다"며 "애매하게 재판 결과를 보고 이야기하겠다는 것은 이용관 위원장에 대한 배신이고 예의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용관 전 위원장 명예회복은 이견 없다지만

부산영화제 측은 이용관 전 집행위원의 명예회복에 동의한다며, 이에 대해 이견이 있는 사람은 없다는 기조를 이전부터 밝히고 있다. 그러나 신뢰감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 일부 영화인들이 의문을 나타내는 이유는 검찰 고발과 기소, 재판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김 이사장과 강 집행위원장의 행보가 무성의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부산지역의 한 영화인은 "두 분은 재판 과정에서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며 "정권이나 부산시장의 눈치를 살핀 것인지 모르겠으나 이용관 전 위원장과 선 긋기 하겠다는 태도인 것 같아 아쉬웠다"고 말했다.

이 전 위원장과 함께 기소된 일부 인사들도 서운함을 느낀 것으로 전해졌다. 영화제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기에 부산영화제 측이 직접 처벌불원서를 내주기를 바랐으나, 탄원서 정도만 써주겠다는 답을 들었다는 것이다.

<다이빙벨> 사태로 정치적 압박이 심해질 때 이용관 전 위원장이 보인 태도와는 차이가 있다. 2014년 영화제가 끝난 뒤에도 안팎으로 압력이 이어지자 당시 일부 영화계 인사들은 '작품과 관련된 프로그래머를 잠시 내보내고 잠잠해질 때 다시 복귀시키자'는 제안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 이 전 위원장은 그런 방안을 아예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정당한 상영을 부정하는 태도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김지석 부집행위원장 장례 절차 놓고 갈등

 지난 5월 29일 부산 영화의전당에서 엄수된 김지석 부산영화제 부집행위원장 영결식.

지난 5월 29일 부산 영화의전당에서 엄수된 김지석 부산영화제 부집행위원장 영결식. ⓒ 성하훈


지난 5월 프랑스 칸에서 급서한 김지석 부집행위원장의 장례 과정에서의 갈등도 감정의 골을 깊게 만들었다. 김지석 프로그래머 장례는 부산영화제장으로 치러졌는데, 부산지역 영화인들이 함께 참여하는 형식을 원했던 영화인장이 무산되면서 부산 영화인들의 분위기가 굳어졌다.

영화제 측은 유족의 입장을 따른 것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김상화 위원장은 "김 이사장이 주도권 문제라고 생각한 것이고 이용관 전 위원장과 같이하기를 원치 않은 것"이라며 "장례과정에서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대화가 있길 원했으나 그게 거부된 것"으로 해석했다.

김지석 부집행위원장의 빈소가 마련됐던 기간 동안 김동호 이사장과 이용관 전 위원장의 대화는 한마디도 없었다. 빈소를 찾은 서병수 시장에 대해서도 두 사람의 대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김 이사장이 서 시장을 맞이하는 동안, 상주 역할을 했던 이 전 위원장은 서 시장과 부산시 관계자들의 악수 요청까지 사양하며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오석근 전 부산영상위 운영위원장은 장례식 추도사를 통해 "지난 정권 블랙리스트에서 확연히 드러났듯이 <다이빙벨> 사태에서 비롯된 부산영화제 탄압의 실상도 낱낱이 밝혀져 방조하거나 묵인한 사람들도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화제 내부를 겨냥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서병수 사과, 이용관 명예회복, 정관 재개정 필수

 지난 2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부산영화제 정상화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영화인들.

지난 2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부산영화제 정상화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영화인들. ⓒ 성하훈


김동호 이사장에 대한 거취 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되면서 올해 영화제 역시 지난해처럼 반쪽으로 치러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부산영화제를 보이콧한 영화단체들이 올해 역시 명분 없는 복귀가 어렵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안영진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대표는 "부산영화제에 참가하고 싶지만, 명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 '명분'으로는 서병수 시장의 공개사과와 이용관 위원장의 원상회복, 정관 재개정을 통한 독립성 자율성 확보 등 3가지 조건을 못 박았다.

부산영화제 측은 지난해 정관 개정 이후 독립성이 확보됐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토론회를 주관한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영화계의 세 가지 조건에 대한 이행이 필요하다며 영화인들의 의견에 힘을 실었다. 전 의원은 23일 서병수 시장이 영화제 사태로 상처를 입은 분들에게 사과하는 것이 영화제 정상화를 위한 부산시의 첫 번째 과제라고 강조했다.

토론회를 끝까지 지켜본 한 영화인은 "내년 시장 재선에 나서려는 서병수 시장과 자리를 지키고 싶어 하는 김동호 이사장의 이해관계가 서로 맞물리는 부분이 있어 보인다"며, "정상화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영화 제작자 역시 "갈 길이 요원해 보인다. 야구에 구원투수가 있듯이 그 소임을 다했으면 물러나는 게 순리 아닐까 싶다. 재판의 결과를 보고 그때 가서 생각해 보는 것 스탠스를 잡는 것도 우습다."고 평가했다. 이어 "새로 선임된 부집행위원장은 연공서열 중심의 인사가 된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부산영화제 측에서는 이러한 부산지역 영화인들의 여론에 대해 어떠한 공식적인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

부산영화제 이용관 서병수 김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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