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사드반대평화행동 집회.

지난 24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사드반대평화행동 집회. ⓒ 신상호


"저희가 어른이 되었을 때는 이런 무기는 다 사라지고 남한과 북한이 서로 평화롭게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JTBC <뉴스룸>은 24일 한 중학생의 일성을 화면에 담았다. 이날 사드한국배치저지전국행동이 주최한 '6·24 사드 철회 평화 행동' 집회에 참여해 마이크를 잡은 학생이었다. 세월호 노란 리본과 성주 파란 리본과 팔찌를 손목에 찬 이 학생의 한 마디에는 남북통일과 사드 배치 반대, 미래 세대의 평화에 대한 비전이 다 들어 있는 듯했다.

한미정상회담을 일주일가량 앞두고 광화문 서울광장에서 열린 이 날 집회에는 '성주사드배치철회투쟁위원회'를 비롯해 100여 개 시민단체에서 3000여 명(주최 측 추산)이 참가했다는 소식이다. 특히 사상 처음으로 서울 광화문 미 대사관을 인간 띠로 에워싸는 행진이 진행돼 관심을 끌기도 했다.

이렇게 "사드 배치 반대"와 "사드 가고 평화 오라" 구호를 외치는 국민이 있는 한편, 그 반대편에 선 이들도 있다. 지난 22일 서북청년단 등 극우단체 회원 400여 명이 성주 소성리 일대에서 집회를 열었다.

성주투쟁위에 따르면, 이들은 주민들과 마을 이장, 부녀회 회원들에게 고성과 막말을 동반한 위협을 가하는 한편 여성 주민들 앞에서 소변을 보는 등 성추행까지 일삼았다고 한다. 또 주민들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 담배를 피우고 고성을 지르며 외벽에 방뇨까지 했다. 마을 내에 걸린 '사드 반대' 현수막과 깃발들도 무단으로 훼손했다고 한다.

일종의 백색테러에 가까운 폭력 행위들이 버젓이 일어난 셈이다. 이에 대해 초전면 소성리 마을 이장들과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단체들은 지난 23일 경북지방경찰청과 성주경찰서에 성주 내 시설보호와 집회·행진 금지를 요청했다. 또 주민들은 서북청년단 회원들을 재물손괴·모욕죄·성추행 혐의로 성주경찰서에 고발했다.

이런 와중에 사드 배치 반대 투쟁을 그린 독립 다큐멘터리도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미 이명박·박근혜 정부 하에서 수많은 평점 테러가 있었다. 하지만 새 정부 출범과 함께 한미정상회담을 앞둔 지금 사드 배치 반대 투쟁을 다룬 다큐멘터리에 혹평 댓글이 이어지는 것은 그 의미가 남다를 수 있다. 지난 22일 개봉한 다큐 <파란나비효과>가 바로 그런 피해 사례를 호소하는 작품이다.

'사드 배치 반대' 투쟁을 그린 다큐, 왜 욕 먹을까

 <파란나비효과> 개봉 전 쏟아진 악평들.

<파란나비효과> 개봉 전 쏟아진 악평들. ⓒ 네이버 영화


"확실한 건 성주 놈들 다른 지역에 설치했으면 반대 안 함ㅋ 개웃김 지들이 새누리 표 줘놓고 왜 저럼? 애국보수 경상도에 사드 배치해야지."

"지들 손으로 이완영 찍고 나서 민주당 가서 깽판 부렸지? 그 후 대선에서도 홍준표 56% 받았더라? 무슨 양심으로 이걸 내놓냐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과학적 근거가 없어 근거가. 사드배치는 신중하고 또 정치적으로 잘 해서 미국과의 새로운 협상카드로서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이런 식의 아무런 근거 없는 식의 반대는 반대한다."

지난 24일 하루, <파란나비효과>의 네이버 평점란에 달린 혹평 댓글이다. 영화를 보지 않은 채 '사드 배치 반대' 투쟁을 그린 다큐멘터리라는 소재만을 겨냥해 '1점'을 주고 악평을 적은 글들이 적지 않다.

네이버 관객 평점이 관람객들에게 영화를 선택하는 주요한 잣대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파란나비효과>는 독립다큐멘터리인 만큼 평점에 참가한 관객이 100여 명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러한 악평으로 인해 이 영화의 전체 평점은 6점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반면 관람객들이 내린 평점은 9점이고, 평론가들은 6.5점을 줬다.

영화 개봉 전 작성된 '리뷰'들은 이보다 훨씬 더 자극적이다. 영화 개봉 전 득세했던 이런 악평들은 대선 이후에 극심해졌다. 대표적인 것이 아래와 같은 글이다.

"홍준표 몰표로 찍어주고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 되니까 거기에 정책 구걸 하십니까? 성주 주민 여러분 벼룩도 낯짝이 있다는데 인생 그렇게 살지 맙시다!! 최소한의 문재인 후보 지지는 해 주고 사드 철회를 요구해야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저도 오늘부터 성주 참외 안 먹을 겁니다!

지역 이기주의만 내세우는 성주와 성주 주민들 정말 싫습니다. 국정 돌보느라 고생하는 문재인 대통령께 최소한의 미안한 마음이 있다면 이런 글도 뻔뻔하게 써서 올리지 마십시오. 사람이라면 부끄러운 줄 알고 좀 살아갑시다."

박문칠 감독의 절절한 호소 "단언컨대, 이들 중 홍준표를 찍은 사람들은..."

 영화 <파란나비효과>의 한 장면. 사드 반대는 정말 '님비' 현상일까.

영화 <파란나비효과>의 한 장면. 사드 반대는 정말 '님비' 현상일까. ⓒ 인디플러그


지난 대선에서 성주군의 여야 후보 득표율에 많은 관심이 쏠렸다. 과연 사드 반대 투쟁의 중심에 있던 성주군이 어떤 후보를 선택했는지 말이다. 성주군 전체는 '사드 유보'를 천명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득표율을 포함 당시 야당 후보들에게 표가 골고루 쏠렸다.

하지만 또 그만큼 홍준표 후보가 엇비슷하게 득표를 하게 되면서 일부 야당 지지자들은 성주 군민들에게 비난을 쏟아냈다. <파란나비효과>의 개봉 전 쏠린 악평들은 이러한 맥락과 궤를 같이한다. 영화를 관람한 사람들은 호평을 내리는데, 영화를 보지 않은 이들이 '반대'를 외치는 꼴이다.

'사드 배치 찬성'을 부르짖는 전통적인 극우·보수층과 '사드 배치 반대'를 전형적인 '님비'로 몰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지난 대선에서 성주군의 홍준표 후보 득표율에 반감을 지닌 이들까지 한꺼번에 비난을 가하는 것이다. 보다 못한 박문칠 감독은 개봉 전인 지난 16일 아래 내용이 포함된 호소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다소 길지만, 그대로 인용해 보자.

"개봉을 앞둔 요즘 성주가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사드를 반대한다면서, 어떻게 홍준표 몰표가 나올 수 있느냐' '사드 배치는 성주가 딱이다' 등 투표결과에 실망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 마음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저도 아마 이 영화를 만들지 않았다면, 비슷한 말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1년 가까이 성주분들과 호흡하며, 직접 다큐의 제작·촬영·편집을 하다 보니, 사태가 그리 간단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분들의 진심을 곁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감히 몇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성주 투쟁을 보고, 많은 분들이 성주 군민 전체가 사드를 반대한다고 오해하시는 것 같습니다. 물론 초기에 성주군수가 앞장 서 혈서를 쓰고 투쟁을 이끌 때에는 그런 분위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사드 부지를 좀 더 인구가 적은 롯데골프장으로 옮기면서, 국방부와 군수는 주민 간 갈등을 부추겼고, 투쟁의 불씨를 끄기 위해 끈질긴 회유와 압박을 가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반도 어디에도 사드 배치는 안 된다고 외치는 사람들은 소수가 되었고, 이번 선거 결과는 그 뼈아픈 사실의 반영입니다.

강정, 밀양처럼 대규모 국책사업이 있을 때마다 등장하는 정부의 분열 책동과 새누리 군수의 악랄함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여러 방해 공작을 뚫고 지금까지 투쟁을 이어온 성주 촛불에 대한 단죄는 거두어주실 것을 호소드립니다. 이들이 비록 지역 내에서 소수이나, 철옹성같은 보수의 텃밭에서 의미있는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는 분들입니다. 이제 갓 걸음마를 뗀 사람들에게 왜 달리지 못 하냐고 돌 던지기 전에, 이들의 첫 걸음을 응원해주십시오. 그리고 척박한 지역에서 멸시와 냉소를 받아가며 힘들게 싸우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파란나비효과>는 바로 이분들의 정치적 변화를 다루고 있습니다. 평생 1번만 찍던 사람들이 세월호의 진실에 눈을 뜨고, 지금껏 5.18이 북괴의 소행이라고 믿었던 분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게 되는, 그런 작지만 놀라운 변화들이 담겨 있습니다. 지난 겨울, 이들은 우리와 함께 박근혜 탄핵의 촛불을 들었고, 새 정부의 탄생을 기뻐했습니다. 단언컨대, 이들 중 홍준표를 찍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정치는 생활이다"라는 <파란나비효과>, 온당한 평가 받기를

 영화 <파란나비효과>의 포스터. 이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의 주제는 '생활 속의 정치'이다.

영화 <파란나비효과>의 포스터. 이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의 주제는 '생활 속의 정치'이다. ⓒ 인디플러그


<파란나비효과>의 주제는 결국 '생활 속의 정치'요, 이를 바탕으로 한 '한국사회의 변화'에 대한 열망이다(관련 기사: '1번만 찍었던 사람들'은 어떻게 각성하게 됐나). 이 영화는 결국 "저희가 어른이 되었을 때는 이런 무기는 다 사라지"면 좋겠다는 이 나라의 아이들을 위해 '사드 배치 반대' 투쟁에 나선 엄마들의, 주민들의 이야기를 찬찬히 따라잡는 작품이다.

박문칠 감독 말마따나, 그리고 작품 속에 등장하는 주민들의 하소연처럼 "평생 1번만 찍었던 사람들"이 어떻게 사드 배치를 반대하고,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자유한국당에서 돌아서게 됐으며, '평화'와 '생명'을 부르짖게 했나를 1년여 동안 담아낸 작품이기도 하다. 그런 작품이 영화 외적인 요소로 인해, 혹은 지난 대선에서의 득표율로 인해 폄훼 당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고 가혹하기까지 한 처사다.

더욱이, 성주군의 득표율 역시 오해의 여지가 다분하다. 이해관계로 얽혀있는 성주군이라는 지역사회에 팽배한 '여당 제일주의'를 바탕에 두지 않은 채, 싸잡아서 비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오히려 그러한 갈등들을 잘 드러낸 작품이 <파란나비효과>라 할 수 있다.

한미정상회담과 사드 배치 반대 운동이 정점에 달한 지금 이 시기에 개봉한 <파란나비효과>는 관객들의 관심을 충분히 받아 마땅한 작품이다. 여성들이, 엄마들이 앞장서는 '생활 속의 정치'라는 주제적인 측면에서도 주목받을 수 있는 다큐멘터리기도 하다.

더는 이 시의적절하게 도착한 다큐멘터리에 가해지는 부당한 비난이 확산하지 않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아니, 고작 전국 38개 스크린(25일 현재)에서 관객들을 만나고 있는 이 유의미한 다큐의 개봉관이 좀 더 확대되기를 기원하는 바다.

파란나비효과 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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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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