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에 잠긴 홍명보  홍명보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이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열린 사퇴 기자회견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지난 2014년 7월 10일 있었던 사퇴 기자회견에서 홍명보 전 축구국가대표팀 감독. ⓒ 이희훈


한국축구의 시급한 현안은 최근 한꺼번에 공석이 된 축구대표팀 사령탑과 기술위원장을 선임해야 하는 문제다. 울리 슈틸리케 전 감독과 이용수 기술위원장이 최근 대표팀의 성적부진에 책임을 지고 동반 하차하면서 수뇌부를 잃은 대표팀은 운영이 중단된 상태다.

아무래도 여론의 관심은 차기 대표팀 사령탑 후보들에 쏠려 있지만 오히려 실질적으로 더 중요한 것이 바로 기술위원장이다. 규정상 축구대표팀 감독 추천과 선발권이 기술위의 권한이기 때문이다. 새 기술위원장은 선임과 동시에 A대표팀 감독과 다음 달 6일 소집 예정인 23세 이하(U-23) 대표팀 감독을 한꺼번에 선임해야 한다.

특히 A팀은 현재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2경기를 남겨놓은 상황에서 본선 진출을 확정지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시작과 동시에 신임 기술위원장과 A팀 감독이 손발을 잘 맞춰서 일종의 운명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축구협회가 후임 기술위원장을 누구로 선택하느냐에 따라 차기 감독 후보의 윤곽이나 대표팀 운영의 방향성까지 가늠할 수 있기 때문에 책임이 더 막중하다.

하지만 예상보다 더딘 인선 과정이나 참신한 후보의 부재로 인하여 가뜩이나 대표팀의 축구협회에 대하여 불만이 누적된 팬들의 여론은 좋지 않다. 대표팀 감독만 해도 슈틸리케 감독 해임 이후 차기 감독이 국내파로 낙점될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한 가운데 대부분이 커리어가 '고만고만한' 국내 감독 후보들에게 팬들이 대체로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술위원장 후보 역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 후보들의 면면도 대부분 세간의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뻔한 수준이어서, 결과적으로 이번에도 축구협회의 '돌려막기식 회전문 인사'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심지어 도저히 기술위원장이 될 만한 자격이 없는 인물들까지 버젓이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는 사실은 불안감을 자아내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홍명보 전 대표팀 감독이다. '축구협회의 황태자'로 불리우며 지난 2014년 브라질월드컵 대표팀 사령탑까지 맡았던 홍 전 감독은 불과 1년 남짓한 재임 기간 중에도 '의리축구' 등 숱한 구설수를 일으켰다. 성적도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 포함 역대 대표팀 감독 최악의 승률을 기록하며 팬들의 뭇매 속에 불명예 하차한 인물이다.

홍 전 감독이 기술위원장 후보로 거론된다는 자체만으로 축구협회의 개혁과 자성의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모순이 아닐 수 없다. 홍 전 감독은 3년 전 대표팀에서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기며 한국축구에 다시 외국인 감독 시대를 불러오게 만든 원흉이다. 그런데 슈틸리케호가 실패했다고 해서 이번엔 3년 전의 실패에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인물을 다시 데려온다? 그것도 어쩌면 감독보다 더 중요한 권한을 쥐고 있는 기술위를 맡긴다? 상식적으로 명분도 실리도 없는 인선이다. 지나간 실패에 대해서 반성이나 교훈을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

공교롭게도 최근까지 유력한 차기 대표팀 감독 후보로 거론되고 있던 인물이 하필 허정무 프로축구연맹 부총재라는 점도 홍명보 기술위원장 카드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이유다. 브라질월드컵 당시 허정무 부총재는 대표팀의 단장 겸 축구협회 부회장 신분이었다. 다시 허 부총재는 홍명보 감독과 월드컵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동반사퇴했다. 그런데 3년이 흘러 이번엔 두 사람이 역할을 바꿔 허정무 부총재나 대표팀 감독으로, 홍명보 전 감독이 기술위원장으로 자리만 바꿔서 돌아온다면 이는 어떻게 변명해도 노골적으로 한국축구를 '2014년 이전'으로 되돌리겠다는 퇴행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팬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허정무와 홍명보의 상황 차이도 있다. 허정무는 적어도 '감독'으로서는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한국 축구에 첫 사상 원정 16강을 올렸다는 실적이라도 있다. 비록 브라질월드컵에서 실패를 맛봤지만 본인이 주도했다기보다는 직책상 상급자이자 축구선배로서 홍명보 호의 실패에 동반 책임을 진 것에 가깝다. 그런데 현재 한국축구가 월드컵 본선진출이 걸린 비상 상황이고, 대표팀에서 성공을 거둔 경험이 있는 지도자가 많지 않은 것을 감안할 때 감독으로서의 허정무가 '구원투수'로 거론될 자격 자체가 납득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홍명보는 한국 A대표팀 감독으로서 참혹한 실패를 맛본 이후로도 지난 3년간 지도자로서든 행정가로서든 별다른 업적을 남기지못했다. 최근에는 중국 항저우 뤼청의 지휘봉을 잡았으나 지난해 2부리그 강등의 수모를 피하지 못한 데 이어 올 시즌은 구단과 팀운영을 놓고 마찰을 빚다가 결국 계약기간을 마치지 못하고 시즌 중반에 낙마했다. 홍명보가 최근 세계축구의 흐름을 꿰뜷고 있다거나, 한국축구가 나아가야 할 개혁적 비전을 제시했다고 볼 만한 근거도 없다. 어쩌면 대표팀 감독보다 더 폭넓은 경험과 연륜이 필요한 기술위원장을 맡을 만한 자질이 증명된 게 아무 것도 없다.

무엇보다 절대로 홍명보가 다시 대표팀 관련업무나 축구협회 요직으로 돌아와서는 안 될 이유는, 그가 바로 지난 브라질월드컵의 실패에 대하여 단 한번도 진정한 반성이나 책임지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홍명보는 대표팀 사퇴 기자회견에서까지도 자신의 의리축구와 유럽파 특혜 선발 논란 등을 정당화면서 "K리그 선수를 B급"으로 폄하하는 망언으로 도마에 올랐던 인물이다. "소속팀에서 꾸준히 활약하는 선수를 중용하겠다는"는 원칙을 깬 것이나 감독 재임기간 중 '부동산 매입'같은 구설수에 대해서도 끝까지 자세한 해명을 하지 않고 얼렁뚱땅 넘어갔다.

심지어 항저우 감독 재직 시절이던 2016년 <풋볼리스트>와의 인터뷰에서는 대표팀 시절 의리 축구 논란을 전면 부정하면서 '외부의 잘못된 프레임' 탓으로 규정하고 오히려 자신의 대표팀 하차 과정도 부당했다는 뉘앙스로 이야기하는가 하면, 자신의 대표팀 운영에 대해서는 시종일관 변명과 자기 합리화로 일관해 많은 축구팬들의 공분을 자아낸 바 있다.

이처럼 자신의 무능과 독선에 대하여 지금까지도 전혀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고, 이렇다 할 실적도 없는 인물이 또다시 대표팀의 요직에 명분없이 '무임승차'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한국축구 전체가 다시 퇴행과 혼란의 길에 빠질 확률이 높아질 것은 당연하다.

신임 기술위원장은 한국축구가 처한 현재의 위기 상황을 수습하고 올바른 방향을 잡아줄수 있을 만한 안목과 경륜을 갖춘 인물을 찾아야 한다. 단순히 과거의 유명세나 인맥에 의지하여 적당히 축구협회와 가까운 면피용 인사를 선임하는 것은 지나간 실패의 악순환을 자초할 뿐이다.

슈틸리케가 한국축구를 위기로 몰아넣었다면 그 슈틸리케를 뽑은 것은 바로 이용수 전 기술위원장이었다. 인사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새 기술위원장과 감독을 동시에 뽑아야야하는 이번 인사는 위기의 한국축구가 전화위복으로 가느냐, 아니면 완전한 암흑기로 전락하느냐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수 있다. 정몽규 회장과 축구협회의 신중한 선택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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